전국에서 두 번째 창간한 지역신문
창간호 첫 기사 ‘일산신도시 반대’
고양 역동의 순간 첫 장면부터 기록

 

1989년 6월 1일 발행된 '주간고양' 창간호 표지.


[고양신문] 1989년 6월 1일은 고양의 첫 지역신문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날이다. 홍성신문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 고양군을 터전 삼아 창간된 지역신문의 처음 이름은 ‘주간고양’이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사회 곳곳에 민주화의 열기가 들끓고 있었고, 30년 만에 부활하는 지방자치제도로 인해 지역 언론의 싹이 조금씩 움트던 때였다. 일산신도시 개발, 지방자치 도입, 고양시 승격이 1~2년 간격으로 숨 가쁘게 이어졌고, 이들보다 조금 앞서 출발선을 박차고 나섰던 고양신문은 도시개발의 역사, 지방자치의 역사, 고양시의 역사 30년을 고스란히 목격하고 기록할 수 있었다.

타블로이드판 16면으로 발행된 창간호 표지 헤드라인은 ‘1989년 일산의 봄’이다. 아래로는 일산신도시 건설계획에 반대하는 일산주민들이 경운기와 트랙터에 ‘결사반대’ 현수막을 붙이고 시위를 벌이는 사진이 실렸다. 대대로 땅에 기대어 살아온 전통사회가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개발의 파도를 온 몸으로 맞았던 격변의 서막이 주간고양이 목도하고 기록한 첫 장면이었던 셈이다.

창간호 첫 칼럼은 지금도 고양신문 높빛시론 필진으로 활약하는 김종일 작가가 썼고, 페이지를 넘기면 백성운 고양군수와 이택석·이교성 국회의원, 이은만 고양문화원장, 허석 재경고양군민회장 등 당시 고양군을 대표하는 인사들의 축사가 이어진다.

이어 특별좌담(백성운 고양군수), 심층취재(일산신도시 건설 무엇이 문제인가), 역사탐방, 지역소식, 여성과 청소년 코너 등 흥미로운 꼭지가 곳곳에 배치됐다. 8~9면에는 손으로 정성스레 그린 고양군 그림지도가 실렸고, 경제면에는 원당과 능곡, 일산지역 시장의 50여 개 농신물 소매가격을 비교한 표가 등장해 당시의 생활거점과 장바구니물가를 보여준다. 각 면을 채운 탄탄한 구성과 알찬 내용은 창간호를 내기까지 얼마나 꼼꼼한 준비가 있었는지를 짐작케 한다.
 

'주간고양' 창간호에 실린 고양군 그림지도. 초대 발행인 나진택씨 부부가 직접 그려 손그림 특유의 감성이 물씬하다.


고양신문의 뿌리를 더듬어 올라가면 맨 끝에서 만나는 두 사람이 있다. 주간고양을 창간한 1대 발행인 나진택 우리들교회 담임목사와 그에게서 ‘주간고양’을 물려받아 1991년 ‘고양신문’이라는 새로운 제호를 갈아입힌 2대 발행인 이은만 문봉서원 원장이다.

돌아보면 두 사람은 나이도 신분도 확연히 달랐다. 당시 나진택 목사는 28살의 패기 넘치는 대학생이었고, 이은만 원장은 고양문화원장이라는 신분이 말해주듯 지역의 손꼽히는 유지였다. 나진택 청년이 민주화운동에 기반한 촉망받는 활동가였고, 이은만 원장은 지역 인사들과의 폭넓게 교류하며 고양군의 전통을 보전하는 일에 열정을 쏟고 있었다.

발행인으로 출발해 창간 이듬해까지 편집장을 맡았던 나진택 목사는 이후 정계에 진출해 경기도의원을 지냈고, 2009년부터 뒤늦게 목회자의 길을 걸어 지금은 불광동 우리들교회 담임목사로 봉직하고 있다.

나진택 목사에 이어 초기 10년을 이끌며 고양신문의 초석을 놓은 이은만 원장은 고양신문 사장으로 재임하는 기간 동안 고양의 문화와 역사를 발굴하고, 지역의 정체성을 보전하는 일을 활발하게 펼쳤다. 그는 지금도 문봉서원 원장과 가와지볍씨문화보존위원장을 맡고 있다. 고양신문 탄생의 두 주역을 차례로 만나 기억의 호출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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