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문] 박아름 정원작가
[고양신문]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붉고 노란 단풍잎이 아름다웠는데 어느새 낙엽이 수북해졌고 아침저녁으로 영하의 기온을 넘나들며 겨울이 성큼 찾아왔다. 빛마루정원을 조성하기 시작한 것이 지난 봄인 4월인데 벌써 정원의 식물들도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하는 계절을 맞게 된 것이다.
디자이너로서 정원을 조성한다는 건 어떤 걸까 고민해본다. 정원 만들기는 처음 장소와 만나게 되고 그 장소에 직접 가서 이 정원을 사용하게 될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듣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물론 작가의 의도도 중요하지만, 그 땅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잘 읽어내고 그 정원만의 감성을 찾아주는 걸 더 중요하다고 여긴다.
그렇게 해서 정원의 콘셉트를 잡고, 경사진 공간이니 특별히 배수를 고민하고, 또 정원의 주요 포인트 수종을 선택하고, 4계절의 개화 수종을 고민하며 시설물과 포장의 시공도면을 꼼꼼히 팀원들과 만들어간다. 또한, 식물이 잘 살아야 하는 땅을 튼튼히 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적절한 거름과 관수 계획도 수립하고 여러 차례에 걸쳐 발주처와 정원 사용자 사이의 의견을 조율하기도 한다.
여기까지가 보편적으로 정원을 만드는 과정일 것이다. 하지만 정원을 만들 때 잊지 말아야 하는 점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정원은 공사로 공간을 만드는 게 아니라 문화를 만드는 현장이라는 점이다. 함께 가꾸어 나가고 서로 소통하며 자연과 가까워지는 가장 좋은 행위가 정원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중부대가 위치한 빛마루정원은 정원문화를 선도하는 정원문화산업학과와 정원문화의 선구자인 박은영 교수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정원을 만드는 내내 디자이너와 자연이 소통하는 시간도 소중했지만, 함께 식물을 심고 그 과정에서 사람들과 소통하는 시간이 더 소중했고 그 과정을 통해 정원은 더 섬세하고 풍부해졌다.
빛마루정원은 빛이 머무르고 스며드는 장소다.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으며 오후의 빛이 특히 아름다운 장소다. 빛마루정원에 앉아 수분을 듬뿍 머금은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노을빛은 참 아름답다. 빛이 아름다운 이 정원에는 다양한 한국 자생 수종과 특별한 나무들이 많이 심겨 있다.
노을빛을 닮은 단풍들이 운치를 더하면서 겨울을 맞고 있지만, 또 땅속에는 새봄을 준비하는 많은 꽃이 자태를 뽐낼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자작나무 하부에는 바람의 흐름에 따라 새잎을 흩날릴 준비를 하는 털수염풀이 식재돼 있다. 이 털수염풀 사이사이 땅속에는 초봄에 개화할 노란색 수선화 구근, 5월에 크고 동그란 연보라색의 꽃을 피울 알리움이 봄을 기다리고 있다.
정원에는 봄을 기다리는 또 다른 나무도 있다. 그건 바로 정원의 주요 포인트로 식재된 미산딸나무(북방계, 스텔라핑크)다. 산딸나무가 보통 하얀색 꽃을 피우는 것과 다르게 영롱한 분홍색 꽃을 피운다. 그 꽃 색이 아름다워 특별히 중부대학교 박은영 교수님이 추천한 수종이기도 하다. 이 외에도 꽃복숭아, 노량향수목(북경라일락), 유럽분꽃, 꼬리조팝나무, 미스김라일락, 백당나무, 작약, 큰꿩의비름, 큰꽃으아리, 양지꽃, 꼬리풀 등 수많은 꽃과 나무들이 활짝 피고 자랄 새봄을 기다리고 있다.
고양시에는 특히 정원과 꽃과 나무를 아끼는 시민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 빛마루정원이 인근 지역주민뿐만 아니라 고양시민 누구나 정원문화를 교류하는 장이 되기를 바란다. 새봄에 고양시민들이 빛마루정원에 모여 아름다운 꽃과 향기로운 풀과 나무와 함께 이야기꽃을 피울 날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벌써 가슴이 벅차오른다.
박아름 정원작가(티엔디조경설계사무소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