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주산성에 숨은 보석같은 이야기를 찾아서 [연재순서]

삼국시대~조선시대, 덕양산과 행주강   
개화기~경제개발시대, 숨 가쁜 역사 
평화의 염원 품은 생태·감성 공간으로   

강변 가로막은 철조망 2012년부터 순차 제거 
숲속 동·식물, 습지생물의 풍요로운 보금자리 
걷기, 라이딩, 맛집여행… 멀티콘텐츠 여행지

[고양신문] 덕양산과 행주외동 마을에 본격적인 변화가 찾아온 건 2010년도 들어서부터다. 오랜 세월 민간인의 출입을 가로막고 있던 철책이 2012년부터 비로소 제거되기 시작한 것이다. 가장 먼저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온 곳은 지금의 행주산성역사공원이 조성된 한강 수변이었고, 이어서 행주대교 하단으로 개방구간이 점차 넓어졌다. 과거 초병들이 지키던 초소들은 주변 경관을 조망하는 전망대로 변신했고, 철조망 사이로 이어졌던 군 순찰로는 풍광이 아름다운 산책로가 됐다. 분단과 단절의 땅이 평화를 꿈꾸로 미래를 그려나가는 장소로 변모한 것이다. 

오늘날 덕양산과 행주강 일대는 고양시의 대표적인 미래 관광자원으로 손꼽힌다. 과거 호국안보관광지라는 단일한 이미지를 벗어나 역사와 문화, 생태와 평화, 휴식과 체험이라는 주제를 골고루 이끌어낼 수 있는 매력적인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철조망이 제거된 자리에 조성된 평화의 쉼터. 
철조망이 제거된 자리에 조성된 평화의 쉼터. 

덕양산 숲 야생생물 보호구역 지정

거대도시 서울과 고양의 중간에 위치한 덕양산숲은 생태적 관점에서도 무척이나 소중한 보고(寶庫)다. 행주산성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우리나라 산림의 주종을 이루는 다양한 수종들을 골고루 만날 수 있다. 입구에서부터 멋진 자태의 적송과 반송이 방문객을 반기고, 오르막길을 따라 은행나무, 밤나무, 왕벚나무, 잣나무, 상수리나무 등이 무성한 가지를 뻗고 있다. 그런가 하면 충장사로 오르는 길에는 단풍나무와 느티나무가 도열해 환상적인 터널길을 연출한다.

정상 전망대 주변과 토성길에도 회화나무와 물푸레나무, 신갈나무와 살구나무 등을 만날 수 있다. 오랜 세월을 방증하듯 나무들은 하나같이 밑동이 굵고, 푸르른 이끼와 덩굴들을 고즈넉이 감고 있는 녀석들도 적지 않다. 

이렇듯 숲이 울창하다 보니 새호리기, 붉은머리오목눈이, 노랑배진박새, 되새 등 다양한 새들이 덕양산에 깃들어 살아간다. 그런 까닭에 행주산성 일대는 고양시가 특별 관리하는 ‘야생생물 보호구역’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건강하게 숨 쉬는 기수역 생태계 

덕양산 아래 한강 하구의 습지 생태계는 더더욱 풍요롭고 소중하다. 한강 하구는 우리나라 대하천 하구 중 유일하게 바닷물과 강물이 뒤섞이는 기수역(汽水域) 생태계가 가장 건강하게 살아있는 구간이다. 아울러 오랜 세월 이 땅을 차단하고 있었던 철책은 역설적으로 개발시대의 광풍으로부터 한강 하구의 자연을 보호해주는 뜻밖의 선물을 안겨주었다.

덕분에 고양시 한강하구 생태계의 핵심구간인 장항습지가 얼마전 람사르습지로 등재돼 생태적 탁월성을 국제적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행주산성역사공원 하단에 자리한 ‘한강하구 장항습지 버들장어전시장’을 찾아가면 한강 하구에 서식하는 다양한 습지생물들에 대한 다채로운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장항습지 버들장어전시장.
장항습지 버들장어전시장.

사방으로 연결된 걷기코스·자전거길

오늘날 가장 많은 이들이 즐기는 야외활동이 바로 걷기와 자전거타기다. 걷기와 자전거는 단순한 운동을 넘어 생태, 역사, 동호회 활동과 같이 다양한 요소들과 결합되며 다채로운 문화로 진화하고 있다. 행주산성과 덕양산 일대는 걷기코스와 자전거 라이딩의 중심점이기도 하다. 십여년 전만 해도 덕양산의 걷기 코스는 대첩문을 통과해 대첩비가 있는 행주산성 정상을 둘러보고 내려오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지금은 덕양산 전체를 돌아볼 수 있는 순환 산책로가 잘 정비됐다. 특히 한강을 바라보며 걷는 남측 코스는 산길을 오르내리는 숲속 오솔과 강변을 따라 걷는 수변산책로가 이중으로 조성돼있고, 강변북로 하단을 통과해야 했던 북측 코스 역시 산길을 따라 걷는 오솔길이 깔끔하게 정비돼 나들이꾼들의 편안한 발걸음을 이끈다. 

이러한 매력 덕분에 덕양산은 고양누리길 중 4코스 행주누리길, 5코스 행주산성역사누리길, 6코스 평화누리길, 그리고 14코스 바람누리길로 이어지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경기도가 조성한 평화누리길, 그리고 행정안전부가 새롭게 조성하고 있는 DMZ평화의길 역시 덕양산과 행주산성을 빼놓지 않고 통과한다. 

그런가하면 서울에서 한강공원 자전거길을 타고 서쪽으로 내달린 라이더들이 반환점, 또는 파주와 연천으로 가는 기착점으로 삼는 곳이 행주산성이기도 하다. 덕분에 행주산성먹거리촌에는 라이더들을 겨냥한 식당과 매장들이 성시를 이룬다.

창릉천과 한강을 이어주는 자전거길.
창릉천과 한강을 이어주는 자전거길.

임금님께 진상됐던 행주강 웅어

최근에는 나들이 문화의 트렌드 중심에 먹거리가 놓이곤 한다. 행주마을의 먹거리 자산 역시 더없이 풍성하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시대에는 봄날 행주강에서 잡히는 웅어를 임금님께 진상했다. 이를 관장했던 위어소(葦魚所)와 얼음을 보관하던 석빙고가 행주강가에 자리하고 있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진경산수화의 대가인 겸재 정선은 행주어부들이 행주강에서 작은 배를 타고 웅어를 잡는 모습을 ‘행호관어(杏湖觀漁)’라는 그림으로 남기기도 했다. 오늘날에도 고양 토박이들은 아카시아꽃이 피는 봄날이면 지인들과 약속을 잡아 고소한 맛이 일품인 웅어회를 먹으며 강변마을에 찾아온 봄기운을 비로소 실감하곤 한다.     

1970년대 이후 행주마을을 대표하는 음식은 장어구이였다. 고급스러운 음식이었던 행주마을의 장어요리는 서울의 부유한 호사가들에게도 인기였다. 당시 남다른 미식 성향을 문장으로 자랑했던 한 문필가는 “행주마을에서 먹는 장어구이가 서울 근교 으뜸의 맛”이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행주마을에 장어구이를 비롯해 다양한 음식점이 들어서게 된 이유를 행주대교와 김포공항과 연결해 설명하는 이들도 있다. 인천공항이 생기기 전 김포공항은 서울 하늘길의 관문이었고, 김포공항에서 신혼여행을 떠나는 신혼부부가 피로연을 마련했던 식당가가 바로 행주마을 먹거리촌이었다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행주산성 주변은 행주한우, 행주국수, 참게매운탕을 비롯해 다채로운 외식메뉴와 분위기 있는 카페들로 음식문화거리로서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다채로운 감동으로 만날 이야기들 

행주산성과 덕양산, 그리고 행주마을과 행주강 일대가 품고 있는 역사, 문화적 자산들을 개괄적으로 살펴보았다. 행주산성의 핵심 역사 콘텐츠인 행주대첩, 그리고 권율 장군과 의·승병들의 활약상, 그리고 행주치마에 돌을 나른 백성들의 이야기 외에도 서른 가지가 넘는 장소적  포인트가 짚어진다.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채 2km가 되지 않는 작은 공간적 범위 안에 이처럼 다양한 이야기들이 겹겹이 축적된 곳이 또 있을까. 

행주산성이 품고 있는 이야기 하나하나의 고유성을 진지하게 조명하고, 어떤 조합으로 엮어나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오늘날의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보다 다채로운 감동으로 행주산성과 덕양산, 그리고 한강 수변의 콘텐츠들과 만날 날을 꿈꿔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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