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자치강좌⑥ 정명현 임원경제연구소장
풍석(楓石) 서유구(徐有榘, 1764~1845)의 필생의 대작이자 ‘조선판 브리태니커 대백과사전’이라 할 만한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 대한 강의가 열렸다. 28일 주엽동 사과나무치과병원에서 열린 여섯 번째 마을자치 강좌에서였다.
113권 52책이라는 방대한 분량의 『임원경제지』는 그동안 너무 방대해서 이후 한국어로 번역할 사람이 없었던 나머지 도리어 저평가된 역작이다. 내용은 본리지 13권, 관휴지 4권, 예원지 5권, 만학지 5권, 전공지 5권, 위선지 4권, 전어지 4권, 정조지 7권, 섬용지 4권, 보양지 8권, 인제지 28권, 향례지 5권, 유예지 6권, 이운지 8권, 상택지 2권, 예규지 5권 등 16부분으로 방대한 양이다.
그런데 2003년부터 파주에 소재한 임원경제연구소는 『임원경제지』에 대한 번역작업 착수해 20년간 매달려오고 있다. 이날 여섯 번째 마을자치 강좌를 맡은 정명현 임원경제연구소장은 “우여곡절을 거치며 지금까지 96%를 완역했고, 그중 50%를 출판했다”고 전했다. 정명현 소장은 『임원경제지』 서문을 인용해 “이 책은 오로지 우리나라를 위해 나왔다. 그래서 자료를 모을 때 당장 적용 가능한 방법만을 가려 뽑았으며 그러하지 않은 것은 취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이날 정명현 소장의 강의 내용을 정리해 지면에 옮긴다.
서유구는 본인뿐만 아니라 아버지인 서호수, 할아버지인 서명익 등 3대에 걸쳐 농사를 지었고 농서를 집필한 집안 출신이다. 서유구는 농사에 관한 총론을 포함해 주로 곡물 농사에 관한 지식과 철학을 『본리지(本利志)』를 통해 드러냈다.
농사를 지어도 굶주림이 있을 수 있고 거름을 주어도 수확이 거의 없어 오히려 먹고 살기에 부족할 수 있다. 하늘은 반드시 인간의 일인 농사를 돕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인간은 하늘을 대신해 할 수 있는 일을 계속해야 한다. 하늘이 돕지 않더라도 인간은 구획을 나누어 씨앗을 심고 가뭄을 막기 위해 제방을 쌓는 등 농사에 바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적극적으로 인간이 자연에 개입해 자연을 인간에게 유용한 쪽으로 바꿀 수 있다는 세계관이 『본리지』에 투영되어 있다.
농사는 양생(養生)과 같다고 했다. 쟁기로 밭가는 것은 몸의 근육과 관절을 조절하는 것과 같고, 김매기는 머리를 빗고 목욕하는 일과 같고, 불을 놓는 것은 쑥뜸을 놓는 것과 같다는 비유도 있다. 그 풍토에 맞는 작물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새 작물을 풍토에 맞게 재배할 수 있다는 확신도 『본리지』 전반에 담겨있다. 신토불이나 토종을 농업의 최고의 이데올로기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좋은 시사점이다. 외래종이라도 우리 땅에서 잘 수확하면 새로운 토종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또한 해당 지역에서 초목이 나거나 죽고 꽃피거나 시드는 것만을 보고서, 농사짓고 씨뿌리고 수확하는 달력으로 삼자고도 했다. 이른바 ‘풀달력’을 사용하자고 권장했다.
문화예술 백과사전인 『이운지(怡雲志)』에는 산에 오를 때 지녀야 할 부적과 외워야 할 주문도 기록되어 있다. 현대인들은 이러한 기록을 황당하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그 시대에는 미지의 세계인 산에 갈 때 미리 조심하는 차원에서 유용하다고 받아들일 수 있다. 현대인의 기준으로 볼 때, 이성적 접근과 비이성적 접근이 섞여 있는 것이다. 지금의 이성주의적 세계관으로 조선인의 세계관을 재단해서는 안 된다.
건강(양생) 백과사전인 『보양지(葆養志)』에는 양생의 즐거움을 거스르고 일상생활에도 절제가 없기 때문에 나이 쉰에도 동작이 쇠하는 것이다고 적혀 있다. 또한 사람이 보중해야 할 것이 목숨이요, 아껴야 할 것이 몸이요, 중히 여겨야 할 것이 정(精, 골수, 기운, 정액)이다라고 했다. 남녀가 함께 사는 일은 인간 사회의 큰 인륜이지만, 정을 중히 여기야 한다. 정을 중히 여기는 것을 매우 잘 아는 사람은 침상을 따로 쓰고, 보통 잘 아는 사람은 이불을 따로 쓴다. 약을 1000첩 먹기보다 홀로 자는 게 낫다.
의(醫)·약(藥) 관련 백과사전인 『인제지(仁濟志)』에는 인체로부터 얻을 수 있는 약재 25가지를 간추렸다. 여기에는 머리털, 비듬, 귀지, 손발톱, 치아, 인분, 인뇨, 피, 정액, 음모, 월경혈, 모유, 탯줄, 태반, 천령개(죽은 사람의 정수리뼈가 십자 모양으로 벌어진 것) 등도 포함되어 있다.
식용식물과 약용식물을 총망라한 『관휴지(灌畦志)』에는 생강, 무, 가지, 인삼, 각종 채소 보관법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가령 가지를 화로에서 나온 재에다 저장하면 이듬해 3~4월까지 보관할 수 있고, 참기름을 담았던 옹기 항아리를 깨꿋이 씻고 불에 쬐어 말린 다음 족도리풀과 인삼을 한켜씩 서로 번갈아 넣고 밀봉하면 인삼을 오래 보관할 수 있다고 했다.
『전어지(佃漁志)』에는 동물, 사육, 사냥, 어로와 관련한 지식이 집대성되어 있다. 호랑이를 잡기 위한 함정의 구조, 거적으로 숭어 잡는 법, 어조망으로 물고기떼 잡는 법 등이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
의례 백과사전인 『향례지(鄕禮志)』는 향촌에 사는 선비라면 반드시 알아야 하는 지역 공동체 관련 예법인 향음주례와 향사례, 관혼상제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의 세세한 행위에 대한 규제와 그에 합당한 상벌도 기록해놓았다.
* 이 강좌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열렸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