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현·중산 주민들 즐겨 찾는 마을숲길
땅 소유주 울타리 설치… 해법 속수무책
샛길 정비마저 불가? 주민들 망연자실
[고양신문] 탄현마을과 중산마을 주민들의 큰 사랑을 받던 황룡산 숲길 산책로가 하루아침에 가시철조망에 가로막혔다. 이달 중순 황룡산 능선 중심부에서 시작해 동쪽 경사면 대부분을 차지하는 산림(성석동 산203번지)의 땅 주인(전주이씨 000파 문중)이 사유지 경계를 따라 철조망 펜스를 친 것. 이로 인해 고봉동 삼거리에서 시작해 능선을 따라 군부대 앞 정상 부근까지 이어졌던 황룡산 주 산책로의 절반 이상이 폐쇄됐고, 탄현마을과 황룡산 동쪽 기슭 상감천(감내)마을을 이어주던 고양누리길 9코스 고봉누리길 황룡산 구간도 여지없이 단절됐다.
가장 놀란 건 황룡산을 즐겨 찾던 주민들이다. 23년째 매일 황룡산을 산책하고 있다는 김필중씨에게 숲길 차단은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었다.
“13일 평소처럼 황룡산을 오르던 중 중턱에서부터 전에 없던 철조망 펜스가 눈에 띄어 대수롭잖게 여겼는데, 좀 더 올라가니 산책로를 떡하니 가로질러 막아버려 너무 놀랐습니다. 산에 올라오는 사람들마다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며 웅성거렸어요.”
김씨는 황룡산 숲길이 유독 소중한 이유를 “높낮이가 평탄해 나이 많은 사람들도 산책하기 좋아서 주로 50대 이상의 중년과 노년층이 즐겨찾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현장에서 만난 다른 주민들도 “등산로 폐쇄는 말도 안되는 일이다. 시가 토지 소유주와 당장 협상을 해서 원상복구를 하라”며 빠른 조치를 요구하고 나섰다.
민원 쏟아지는데 대책은 오리무중
능선 산책로가 폐쇄되자 주민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샛길을 찾아나섰다. 확인해 보니 폐쇄된 산책로 아래쪽 경사면을 따라 어느새 샛길이 이어져 있었다. 문제는 새로 만들어진 샛길이 깊게 파인 군사진지 통행로를 따라 이어졌기 때문에 매우 협소하고 위험하다는 점이다. 한 주민의 말에 따르면 실제로 며칠 전 샛길을 걷던 60대 여성 한 명이 발을 헛디뎌 넘어지는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때문에 “원래의 산책로 개통이 당장 어렵다면, 새로 생긴 샛길이라도 하루 빨리 안전하게 정비해달라”는 것이 이용자들의 추가적인 요구였다.
이처럼 주민들의 민원이 쏟아지자 관련부서인 고양시 녹지과와 일산서구청, 탄현2동 행정복지센터도 비상이 걸렸고, 이용우 국회의원과 고은정 도의원, 김미수 시의원 등 지역정치인들도 16일 황룡산을 찾아 함께 현장점검에 나섰다. 현장을 둘러본 정치인들은 한결같이 문제의 심각성에 공감하며 시급한 안전조치를 주문했다.
하지만 담당부서도 정치권도 근본적인 해결책을 모색하기는 힘들어보인다. 해당 지역이 사유지이기 때문에, 사적 재산권 보호를 위해 설치한 가시울타리를 당장 철거시킬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담당부서가 내놓은 조치 역시 △사유지를 벗어난 가시철조망 제거 △안전 안내 현수막 게시가 전부다.
철조망 위에 내걸린 ‘폐쇄’ 현수막
21일 현장을 찾은 기자가 처음 마주한 것은 위협적인 철조망이었다. 일정한 간격으로 박힌 쇠기둥을 따라 5단의 선형철조망이 이어져 있었고, 산책로와 직접 만나는 부분에는 선형철조망 하단에 원형 철조망이 이중으로 쳐 있었다. 또한 주요 지점에는 ‘이곳은 사유지이므로 무단 침입시 법에 따라 처벌된다’는 내용의 토지주가 내건 경고현수막이 곳곳에 게시돼 있었다.
여기에 고양시 녹지과에서 내걸은 ‘등산로 이용불가 안내’ 현수막도 더해졌다. 폐쇄구간 안내지도가 첨부된 시 현수막에는 △사유지 울타리 설치로 인해 등산로 이용이 불가하게 되었고 △샛길 등 위험 지역 출입을 삼가달라는 당부가 적혔다. 사실상 주민들이 원하는 산책로 원상복구도, 샛길 정비도 현실적으로는 어렵다는 사실을 현수막을 통해 공지한 셈이다.
“울타리 설치 적법 행위, 협상 없다”
황룡산 누리길은 2010년 고양누리길 코스 중 가장 먼저 정비된 구간 중 하나이고, 14개 코스가 정비된 고양누리길 중에서도 시민들의 이용률이 가장 높은 코스로 손꼽힌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토지주의 구간 폐쇄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뭘까. 시 담당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고양누리길 황룡산 구간은 조성 당시 관련 규정에 따라 사유지를 통과하는 코스를 정비했고, 그동안 별다른 문제 없이 누리길로 이용됐습니다. 하지만 토지주의 권리 보호가 강화되는 방향으로 산림문화휴양에 관한 법률이 개정돼 소유주가 구간을 일방적으로 폐쇄해도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가시철조망 울타리의 훼손 부분을 보수하고 있던 문중 관계자도 현장에서 만날 수 있었다.
문중 관계자는 “그동안 아무 대가 없이 고양누리길 코스로 사용하도록 허용했는데, 산지 훼손과 불법 묘지 조성 등의 문제가 빈번하게 발생해 문중의 중지를 모아 방침을 바꾼 것일 뿐이다. 사유지에 대한 울타리 설치는 적법한 행위”라고 강조했다. 주민 통행을 빌미로 사용료를 요구하려는 것 아니냐는 세간의 추측에 대해서는 “근거 없는 소리다. 시와 협상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대로 정상 가는 길 포기해야 하나
그렇다면 차선책으로 주민들이 다니는 샛길 정비라도 착수해야 하는 것 아닐까. 시는 이에 대해서도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현재 샛길이 난 구간은 고양시 땅이 아니라 파주시 땅입니다. 소유주가 울타리를 친 딱 거기까지만 고양시 땅이었던 겁니다. 그런데 파주시는 그 땅을 대부분 개발을 염두에 두고 잡종지로 변경한 상태입니다. 파주시에서 정비에 나설 이유가 없는 것이지요.”
결국 아쉽지만 황룡산 정상까지 올라가는 걸 주민들이 포기해야 한다는 게 고양시의 설명인 셈이다. 실제로 시는 황룡산 정상 부근에 설치돼 있던 체육시설과 벤치 등의 시설물도 일체 철거하는 조치에 들어갔다. 아울러 고양누리길 홈페이지에도 공지를 띄워 능선길 폐쇄를 알리고, 능선길 삼거리에서 일산동고·탄현근린공원 방향만 이용해 줄 것을 권고했다.
녹지과 관계자는 “향후 탄현근린공원 2단계 사업이 진행되고, LH로부터 탄현공공주택지구 개발과 연계해 근린공원부지를 기부채납 받으면 주민들을 위한 쾌적한 녹지 공간을 조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주민들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샛길에서 만난 한 이용자는 “근린공원 조성으로 능선길 산책로를 대체할 수 없다. 주민들이 가장 즐겨 찾는 산책로를 하루아침에 포기하라는 게 말이 되느냐”며 “고양시와 정치인들이 주민들의 삶의 질과 직결된 문제를 어떻게 취급하는지 눈 크게 뜨고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