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8일, 10:00
전국적으로 마약이 기승을 부린다며 중앙지·지역지 가리지 않고 연일 마약뉴스를 찍어내고 있다. 이렇다뵈 시민들 사이 과장된 정보가 돌아 도시에 불안감만 역력한 상황이다. 이에 책임감에 사로잡혀 호기롭게 ‘마약심층취재’를 시작했으나, 별 소득이 없어 인터넷만 뒤지던 중 이태원 쪽 지인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전에 물어봤던 대마 텔레그램 방 있잖아… 나랑 일하는 오빠가 관련해서 좀 아는 것 같던데 오늘 저녁 시간 괜찮으면 같이 만나볼래?”
5월 9일, 00:00
지인소개로 만난 취재원으로부터 채팅방 정보를 얻은 뒤 귀가해 텔레그램을 처음으로 설치했다. 첫번째로 들어간 채팅방은 이른바 ‘소통방’이었다. 마약 구매에 대한 안내, 사기정보 공유 등 말 그대로 구매자들과 딜러들이 모여 ‘소통’하기 위한 방이다. 소통방 관리자가 대금을 받고, 구매한 상품을 고객에게 전달해 확인이 되면 판매자에게 지급하는 일종의 중개서비스도 제공한다.
그들은 ’안전한 소통방’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했지만, 소통방에 마약류를 이용한 성범죄를 시사하는 음담패설, 사채 등에 대한 메시지가 있는 것을 볼 때, 그들이 말하는 ‘안전’이란 ‘마약거래’에 한정된 듯하다. 그들 중 유독 말이 많아 딜러처럼 보이는 유저 B씨에게 개인채팅을 보냈다. “요즘 일산 쪽 마약 중에 뭐가 제일 잘 나가요?”
5월 9일, 00:30
몇 번의 대화가 오간 뒤 딜러로 확인된 B씨에게 일산 쪽에 거주 중임을 밝힌 뒤, 고양시 내 입수 가능한 마약 중 괜찮은 것을 추천해달라 부탁했다. 그는 취향별 마약 종류부터 구할 수 있는 물량까지, 기자가 궁금해하는 내용을 맞춤형으로 제공했다. 예비고객을 사로잡기 위한 그의 현란한 ‘마약 큐레이팅’은 흡사 ‘소믈리에’를 연상케했다.
하지만 마지막에 던진 “어디로 가야 얻을 수 있고, 어디서 마약을 들여오느냐”는 질문이 딜러의 역린을 건드렸던 걸까. “상세위치는 구매 전엔 못 알려줘. 왜 쓸데없이 자꾸 이상한걸 물어보지?”라는 말을 끝으로 결국 방이 삭제됐다.
5월 9일, 01:00~02:30
B씨와의 채팅을 시작으로 인터넷을 뒤져 딜러 몇 사람을 더 찾았고, 이들로부터 또. 다른 딜러들을 소개받으니 꽤나 많은 딜러들을 알게됐다. 이 중 사기성이 짙은 딜러, 정보제공이 적은 딜러 등을 제외하자 ‘고양시에 물건을 공급할 수 있는’ 업체 5곳 정도가 추려졌다. 지난 두 시간동안 딜러들과 구매자의 말투를 익혀놨던 덕분인지 나름 괜찮게 위장해 각종 마약 커뮤니티에 잠입할 수 있었다.
5월 9일, 03:00
진심이 통한건지 연기가 통한 건지는 모르겠으나, 최종적으로 채팅 유저 10명으로부터 기사 한 면 분량을 채울만한 ‘서울시와 비교되는 고양시 마약 유통 특징’, ‘기타 원산지’, ‘마약 유통경로’ 등 유통정보들을 얻어냈다.
그 유저들 중 한 명이 스스로 ‘대마애연가’라고 소개한 한국계 미국인 A씨이다. 텔레그램에서는 ‘여성딜러’로 위장해 대화를 나눴던터라, 라페스타 인근에서 만나자마자 기자 신분을 밝히고 간단한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는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면서도 경찰이 아니라 다행이라며 안도감을 보였다.
A씨는 액상대마 팟이 꽂힌 자신의 전자담배를 보여주며 “액상대마가 담긴 이 자그마한 팟 카트리지 하나가 35만원이나 한다. 우울증과 불면증 때문에 안정감과 수면을 유도하는 떨액(일반액상대마)을 시작하게 되었고, 이미 고정 루틴이 된지 오래”라며 “거래 할때 메뉴판 위의 ‘35만원’이라는 높은 가격은 바로 옆의 ‘15ml’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기사 마감을 앞두고 교정을 보는 지금까지, 5월 9일 가입했던 마약 소통방 채팅방 알림은 실시간으로 분주하게 울리고 있다. 불과 한 시간동안 자리를 비웠을 뿐인데, 삭제된 대화방을 제외한 4개 채팅방 중에 읽지 않은 메시지는 총 34건에 달한다. 분주하게 울리는 알림음만큼 마약이 절박한 사람들이 많겠다는 생각에 씁쓸함을 지울 수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