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이곳만은 지키자!’ 선정된
공릉천 하구 둑방길 돌아보니
단풍잎돼지풀 창궐, 로드킬 흔적
자연과 사람, 느리게 만났으면...
[고양신문] 공릉천 하구가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선정하는 ‘이곳만은 지키자!’ 최종 명단에 올랐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고 휴일 오후 오랜만에 카메라를 둘러메고 공릉천 하구를 찾았다. 공릉천하구 보전지구가 시작되는 영천배수갑문에서 시작해 공릉천 물길이 한강과 만나는 송촌교까지, 왕복 7㎞에 이르는 공릉천 하구 양안 둑방길을 천천히 돌아봤다. 9월이 시작되고도 열흘이 지났어도 여전히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탁 트인 물길과 너른 들녘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더없이 상쾌했다.
영천배수갑문 바로 아래에는 김포-파주고속도로 교각을 놓기 위한 철제 가교가 물길을 가로지르고 있다. 개발의 물결은 어느 곳 하나 공백지대를 남겨놓지 않을 기세다. 고속도로공사는 내후년 연말까지 이어질 예정이라는데, 생태계 영향을 얼마나 고려하며 공사가 시행되고 있는지 걱정이 앞선다.
시멘트 포장공사가 한창 진행되던 둑방길은 지난해 봄 시민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혀 공사가 중단된 상태가 일년 반 가까이 이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둑방 바깥 농경지 쪽으로 거대한 배수로를 만드는 공사는 어느새 재개됐다.
둑방길 공사가 멈춰선 동안에도 생태계의 균열은 여지없이 진행 중이다. 제방 폭을 넓히기 위해 나무를 쓰러뜨리고 갈대군락을 밀어낸 자리마다 생태교란종 외래식물인 단풍잎돼지풀이 무섭게 창궐했다. 사람 키를 훌쩍 넘긴, 마치 울창한 관목숲처럼 둑방 전체를 점거하고 있는 줄기 끝마다 빼곡히 매달린 씨앗자리들이 여물 준비를 하고 있다. 몇 달 후면 저 많은 점들이 씨앗으로 흩어져 하천 주변의 토양을 뒤덮을 걸 생각하니 정신이 아찔해진다. 공사 이전에는 다채로운 토종 식물들이 촘촘한 스크럼을 짜고 단풍잎돼지풀의 유입을 막아냈는데, 둔치 사면을 함부로 긁어댄 포크레인 삽질이 생태교란종의 침공에 탄탄대로를 깔아줬다.
이맘때쯤이면 숫자를 헤아리기 어려울만큼 많았던 여러 들꽃들은 이제 한참을 걸어야 겨우 한두종을 만날 뿐이다. 몇 해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옹색해진 억새류 군락지는 포위망을 좁혀오는 단풍잎돼지풀의 위세에 그나마의 영역조차 위태로워 보인다.
청룡두교로 가는 곡선 둑방길에는 ‘공릉천친구들’의 전신인 공릉천지키기공동대책위원회가 원불교환경연대의 후원을 받아 시민들과 함께 식재한 작은 나무들이 줄지어 있다. 언제 공사가 재개될지 모르는 불안한 환경이지만, 시민들의 작은 바람을 대신하는 묘목들이 튼튼하게 뿌리를 내려줬으면 좋겠다.
서해바다 만조가 밀고 들어온 듯, 갯골 폭이 완전히 잠길 정도로 물길이 가득하다. 배수펌프장 배출수가 합류하는 물골 주변에는 왜가리, 해오라기, 도요와 갈매기 종류의 물새들이 유독 많이 눈에 띈다. 하구둑이 막히지 않은 감조하천(感潮河川, 조석의 영향을 크게 받는 하천의 하구)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고, 드넓은 초지와 습지가 공존하고 있고, 민물과 짠물이 뒤섞이며 풍성한 먹이터를 제공해주는, 물새들에게 공릉천 하구는 얼마나 소중한 삶터인가.
지난해 이미 시멘트 포장공사가 끝난 구간을 걷다 보니 차량 바퀴에 치여 로드킬을 당한 말똥게 사체들이 곳곳에서 눈에 들어온다. 집게발을 당당히 앞세우고 잰걸음으로 바닥을 기어 이동하는 그 모양 그대로 납작하게 바스라져, 마치 퇴적암층에 각인된 고대생물의 화석처럼 말라붙어버렸다. 껍질색깔이 선홍빛을 띠는 녀석도 있다. 말똥게보다 훨씬 개체수가 적은,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생물Ⅱ급으로 지정된 붉은발말똥게인 것 같다.
안타까운 장면이지만, 한편으로는 반갑기도 하다. 삶의 보금자리가 뒤집어지는 난리를 겪었음에도, 여전히 말똥게들이 이 주변에 서식하고 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공사가 시작되기 전, 공릉천 하구 둑방길에는 그야말로 말똥게들이 지천이었다. 여름 저녁에 이곳을 산책이라도 하려면, 둑마루를 가득 덮은 말똥게들을 행여라도 밟지나 않을까 조심스레 발걸음을 떼어야 했을 정도다. 도대체 그 많은 말똥게들이 어느 구멍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일제히 기어나온 것인지, 무슨 이유로 둑마루를 신명나게 가로지르는 것인지 신비롭기까지 했다. 그때는 정말 몰랐다. 말똥게 로드킬 사체를 보고 오히려 반가운 마음이 들 때가 오리라고는….
로드킬 말똥게 사진을 찍고 있는데, 자전거를 타고 지나는 이들이 페달을 멈춰 세우고 말을 건네온다.
“공릉천 하구 지키기 활동을 하는 분들이 있다던데, 그런 일 하시는 분인가요?”
“아닙니다. 가끔씩 이곳에 들러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를 취재하는 지역신문 기자입니다.”
“아, 그러시군요. 고마운 일 하시네요. 여기는 정말 아름다운 곳인데, 사람들이 잘 좀 지켰으면 좋겠어요.”
관심을 갖고 있는 이들을 만나니 반갑고 든든하다. 다시 페달을 밟는 이들의 뒷모습이 경쾌하다. 사람과 자연이 만나는 속도가 딱 저 정도까지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