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스케치] 교외선 정차역 탐방

일영~장흥~송추, 20년 전보다 오히려 쇠락 
“기차만 다시 다닌다고 관광객 오겠나…”
주변 인프라 정비, 프로그램 개발 고민해야

교외선 출발역인 대정역 플랫폼에서 원릉역 방향을 바라본 모습.
교외선 출발역인 대정역 플랫폼에서 원릉역 방향을 바라본 모습.

[고양신문] 교외선 재개통이 해를 넘기게 됐다. 아쉬운 마음에 개통 준비 현황을 직접 살펴볼 겸 교외선 정차역들을 지난 19일 차례차례 둘러봤다. 출발점인 대곡역 주변은 교외선보다 훨씬 큰 프로젝트인 GTX-A 역사와 주차장 조성 공사가 한창이다. 교외선을 탑승할 수 있는 플랫폼은 지하철 3호선 대곡역 건물 남동쪽 끄트머리를 지나는 단선철로 위에 깔끔하게 정비돼 있다. 마침 시범운행 중인 열차가 역사로 진입했다. 폐선될 당시처럼 디젤기관차가 끄는, 객차 2량짜리 기차다. 과거의 기억을 호출하는 풍경이다. 

대정역 부활 민원이 많았던 대장동 마을에는 긴 펜스 사이로 몇 개의 건널목이 만들어졌고, 유인 건널목을 지킬 건물도 들어섰다. 교외선 구간 중 유일하게 주거 밀집지역에 들어서는 원릉역 역시 플랫폼과 역사 건물 공사가 거의 마무리됐다. 직사각형 박스 형태로 지어진 역사에는 화장실과 역무실이 설치됐고, 승객들을 위한 플랫폼 셸터도 마련됐다. 전광판에는 열차 시범운행을 알리는 문구가 점멸한다. 역시 지역주민들의 재개통 요구가 있었지만, 결국 정차역에서 제외된 벽제역은 옛 역사 건물이 흔적 없이 사라지고, 철도화물을 받던 부속건물만 덩그러니 남았다.

공사가 마무리되고 있는 옛 대정역 인근 유인건널목 시설.
공사가 마무리되고 있는 옛 대정역 인근 유인건널목 시설.

철로는 고양시 선유동과 양주시 삼하리를 잇는 공릉천 철교를 건너 양주시 구간으로 넘어간다. 양주시 3개 역의 진도는 고양시 구간보다 많이 지체된 느낌이다. 일영역은 역사 공사가 분주하게 진행 중이었고, 장흥역도 진입구간 시멘트 포장 공사가 한창이었다,  

일영역~장흥역~송추역으로 이어지는 양주시 구간의 3개 역은 교외선 재개통의 명분을 제공한 역들이다. 국토교통부가 교외선이 20여 년 만에 다시 운행되는 이유로 ‘관광활성화’를 첫 번째로 꼽았기 때문이다. 

사실 교외선은 이름에서 짐작되듯 1963년 첫 개통 당시부터 ‘서울 외곽 관광명소를 잇는 철도’로 홍보됐다. 실제로 주변에 공릉천, 장흥계곡, 송추계곡을 끼고 있는 일영역과 장흥역, 송추역은 90년대 초까지 주말 유원지 나들이 코스로, 대학생들의 MT 명소로 인기를 끌었다. 재개통되는 교외선이 그런 명성을 되살릴 수 있을까?

수십년 전 모습 그대로 쇠락해 있는 일영역 앞 마을길.
수십년 전 모습 그대로 쇠락해 있는 일영역 앞 마을길.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풍경은 조금 실망스러웠다. 역 앞 골목에는 수십 년 전에 지어진 오래된 단층, 또는 2층 건물들이 쇠락해가고 있었다. 한때 식당이나 매점, 주점 등을 영업했던 것으로 보이는 상가들도 하나같이 문을 닫은 지 오래된 듯, 적막감만 감돌았다. 시골 간이역 앞이라도 하나쯤은 있을법한 편의점이나 커피숍도 눈에 띄지 않는다. 20년 전 이용객 감소로 열차 운행이 중단된 후 점포들의 사정은 더 어려워지고, 결국 20년이 지난 지금은 단 한 곳도 빠짐없이 전부 문을 닫고 만 것이다. 그나마 존재했던 소박한 간이역의 정취조차 무미건조한 디자인의 새 역사로 대체됐다. 관광열차라는 이름에 부합하려면 최소한의 주변 인프라 정비가 절실해 보인다.  

장흥역 앞에서 40년 넘게 정미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80대 어르신은 장흥유원지의 전성기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주말이면 기차 타고 사람들이 엄청나게 몰려왔지. 동네 아줌마들이 길가에서 옥수수나 찐빵만 팔아도 현금을 뭉텅이로 벌던 시절이었어. 그런데 90년대부터 너도나도 자가용이 생기면서 기차를 안 타더라고. 유원지에도 못된 것들(모텔 등을 말하는 듯)만 잔뜩 생기면서 동네 풍경도 버렸고.”

20년 만에 교외선 운행이 재개되면 마을에 다시 활기가 돌 것 같냐는 기자의 질문에 어르신은 “기차만 다닌다고 뭐가 달라지나?”라고 되물었다. 당연한 반응이다. 20년 전보다 훨씬 열악해진 인프라 속에서 덩그러니 기차 운행만 재개한다고 ‘관광활성화’가 실현될 것 같지 않았다. 

장흥역 앞에서 40년 넘게 운영 중인 장흥정미소 건물.
장흥역 앞에서 40년 넘게 운영 중인 장흥정미소 건물.

사실 교외선 재개통은 구체적인 수요 예측을 바탕으로 한 경제성의 측면에서 결정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경기북부 도시들이 공통적으로 교통인프라 부족을 호소하는 상황이다보니 지자체장과 지역 국회의원들마다 단골 공약으로 ‘교외선 재개통’ 목소리를 높여왔다. 결국 기존 시설을 재정비해 개통하는 노선이라 코레일 측은 상대적으로 적은 투입비용을 들여 노선 하나를 개통하는 셈이고, 지역 정치권에서도 ‘공약 실천’으로 내세우기 좋다는 점이 맞아떨어져 교외선 재개통이 추진됐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교외선을 이용할 것으로 예상되는 승객수와 운영수입 등을 묻는 질문에 대해 3개 지자체 어디서도 정확한 수치를 답변하지 못했다. “일단 운영을 해 보고, 추후 대응을 통해 활용 성과를 높인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들을 수 있었다.   

주변에 아파트단지가 들어선 송추역 모습.
주변에 아파트단지가 들어선 송추역 모습.

관광활성화라는 과제를 풀기 위한 나름의 방안도 모색되고 있다. 양주시 관광진흥팀 관계자는 “재개통하는 교외선 이용객을 양주시 시티투어와 연계하기 위해 올해 50회 운영됐던 시티투어 프로그램을 내년에는 22회 추가로 늘리려고 한다”고 밝혔다. 3개 역 중 유일하게 유인역으로 운영되는 일영역을 거점 삼아 양주시립장욱진시립미술관~기산저수지~가나아트센터~송암아트스페이스 등을 둘러보는 코스를 계획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이용객 규모와 수요에 따라 필룩스조명미술관~양주관아지향교~회암사지 등 양주 북부의 명소들로 코스를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고양시 관광과도 “고양에서 양주로 연결되는 북한산 둘레길, 자전거길 등과 교외선 이용객을 연계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보다 효율적인 관광활성화를 위해 3개 지자체가 함께 논의하는 자리를 곧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재개통하는 교외선의 운영적자는 고양·양주·파주 3개 지자체가 함께 분담한다. 정확한 금액은 운영을 해 봐야 알겠지만, 현재로는 연간 50억원 규모가 아닐까 예측한다. 이 중 고양시가 약 40%를 부담한다고 치면 20억원의 예산을 매년 투입하는 셈이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철도노선 하나를 더 확보하는 데 드는 비용치고는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이라 볼 수도 있지만, 어느 시점에 이용객수가 올라갈지 아무도 장담 못하는 노선의 운영비를 매년 지자체가 떠안는 게 과연 타당한지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새로 개통하는 철도노선이 기대와 동시에 숙제처럼 다가오는 이유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셔서 관련 동영상을 시청하세요

⧫ 교외선 올해 개통 무산.. / 대곡·원릉·일영·장흥·송추역 현재 상황은 어떨까? 직접 가봤습니다 ⧫ 《고양신문 뉴스택배 ep.333》 - YouTube

고양시 구간 두 번째 역인 원릉역 플랫폼.
고양시 구간 두 번째 역인 원릉역 플랫폼.
양주시가 연계관광 거점으로 계획하고 있는 일영역.
양주시가 연계관광 거점으로 계획하고 있는 일영역.
일영역 방향을 표시한 오래된 거리 표지판. 
일영역 방향을 표시한 오래된 거리 표지판. 
코레일 관계자들이 장흥역 공사 상황을 점검하는 모습. 
코레일 관계자들이 장흥역 공사 상황을 점검하는 모습. 
문 닫은 지 오래인 장흥역 앞 상가.
문 닫은 지 오래인 장흥역 앞 상가.
1992년에 문을 연 곳으로 짐작되는 송추역 인근 식당.
1992년에 문을 연 곳으로 짐작되는 송추역 인근 식당.
오래된 식당 간판. 가까이에서 살펴보면 '김밥 도시락 전문' 이라고 적힌 희미한 글씨를 읽을 수 있다. 
오래된 식당 간판. 가까이에서 살펴보면 '김밥 도시락 전문' 이라고 적힌 희미한 글씨를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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