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36주년 기획
나로 존중받으며 살다가고 싶다1

[고양신문] 고양시 초고령사회, '존엄한 노후'는 가능할까. 고양시는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했지만, 요양시설은 포화상태이고, 재가돌봄 등 노후 대안은 미흡한 상황이다. 다수가 바라는 '내 집에서 존엄하게 죽고 싶다'는 보편적 염원은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실현하기 어렵다. 노인과 가족의 주거, 건강, 사회적 관계의 총체적 변화 양상을 점검하고, 가장 밀접한 지방자치단체인 고양시가 가져야 할 책임이 무엇인지 독자들과 함께 고민해보고자 한다.

창간36주년 기획_ 나로 존중받으며 살다가고 싶다
① 존엄하지 못한 죽음, 벽제 시립승화원의 무연고 장례
② 고양시 요양시설과 호스피스 현황
③ 존엄한 죽음을 희망하고, 지키는 사람들
④ 지역사회의 할 일_공공돌봄과 공공호스피스 


주7일, 매일 4~6회 장례, 연고없는 이들위한 애도
무연고 사망자 73%, 가족이 장례 거부 연고 방기형
고양시도 연간 100명이상, 무연고 사망자 꾸준히 증가

영정없는 장례식장. 지난2일 시립승화원 무연고 공영장례식에 자원봉사자가 상주를 맡고 있다.
영정없는 장례식장. 지난2일 시립승화원 무연고 공영장례식에 자원봉사자가 상주를 맡고 있다.

빈 영정에 명패만 2개 놓여진 장례식장. 지난 2일 오전 9시 서울시립승화원 전용 장례 공간 '그리다'에 사람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21살 박소연, 40대 이미정, 70대 신승호(모두 가명)씨 모두 자원봉사자들이다. 나눔과나눔의 김민석 사무국장과 장례업체인 ‘해피엔딩’ 장례지도사들까지 도착하자 백**, 송**씨의 장례식이 시작됐다. 장례식장에 참석한 어느 누구도 고인들과 인연이 없다. 이날은 이미정·신승호씨가 상주를 맡았다. 

“백**과 송**을 그리워하며 잊을 수 없을 듯한 생생한 기억들을 배웅하며 진심으로 떠나보냅니다. 두 분이 우리와 함께 했던 삶을 떠나가는 자리, 우리는 그런 당신을 그리워하고, 기억합니다. 이 세상 일들 접어두고, 못다 이룬 꿈, 서운했던 모든 것들 내려놓고 편히 가십시오.”  

조사를 낭독하고 참석한 이들은 모두 헌화하며 고인을 애도했다. 이날 장례는 오전 9시 빈소 설치, 9시30분 추모의례, 10시10분 화장, 11시30분 유골 안치로 진행되어 2시간 30분 만에 마무리됐다.

시립승화원 무연고 공영장례식장。

가족이 장례를 거부하는 사회적 고립
공영장례는 장례의식없이 시신이 ‘처리’되지 않도록 정부, 지방자치단체가 무연고 사망자와 저소득시민들에게 검소한 장례의식을 직접 제공하거나, 장례의식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여 고인이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고 유가족과 지인 등이 고인을 애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장례를 말한다. 이는 장사법 제2조16호의 연고자 개념과 서울시 관련 지원조례에 근거하고 있다. 

사망자가 발생하면 장례식장을 통해 해당 지자체가 연고를 파악한 후 연고자가 없는 무연고 사망자의 경우 안치된 장례식장에서 공영장례식장으로 운구해 화장하고, 연고자가 없거나 인수를 기피하면 로 장례절차를 진행하고, 시신은 연고자들에게 인수 의사확인을 하게 된다. 연고자가 없거나 시신 인수를 거부하면 공영장례를 진행하고, 무연고화장장에 안치한다. 2010년부터 민간단체인 사단법인 나눔과나눔이 온전히 자원봉사와 후원사업으로 추진해 왔다. 2018년 서울시 관련 조례가 제정되어 승화원에서 매주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오전 오후, 하루 2회 이상 정기적으로 공영장례를 진행하고 있다. 전문 장례업체가 서울시 용역으로 절차를 진행하지만 여전히 나눔과나눔 활동가와 자원봉사자들의 참여로 운영되고 있다. 나눔과나눔 홈페이지에는 주7일 매일 4~5건의 공영장례가 안내되고 있다. 고양시도 2021년 ‘공영장례 지원 조례’를 제정해 무연고 사망자에게 최대 160만원의 장례비용을 지원하고 있으나 절차는 승화원에서 함께 진행되고 있다. 

지난 2일 공영장례에 상주로 참여한 자원봉사자 이미정씨는 “무연고 사망자와 공영장례가 점점 더 늘어나서 오늘처럼 1회에 2, 3명을 모시고, 오전 오후 진행돼 나눔과나눔 활동가, 자원봉사자들의 수고가 많아 보인다. 서울시나 승화원도 지원을 하고 있지만 좀 더 여유로운 공간이 마련되면 좋겠다”며 “고인이 사회적으로 고립된 존재였더라도 마지막만큼은 사회가 함께 애도해야한다”고 말했다. 

신승호씨는 “퇴직하고 장례지도사 자격증을 따서 일도 했는데 친구가 공영장례를 알려주어 두달 전부터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며 “어쩌면 나도 혼자 죽을 수도 있지 않나. 고인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내 미래를 위해 자주 오려고 하다”고 전했다. 

무연고 사망자는 법적으로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연고자가 전혀 없는 경우, 신원이 불분명해 연고자를 알 수 없는 경우, 연고자가 있지만 관계 단절이나 경제적 사유로 시신 인수를 거부한 경우다. 특히 세 번째 '연고 방기형'이 전체의 73% 이상을 차지한다. 즉, 무연고란 '누군가의 가족'이 장례를 거부함으로써 발생하는 사회적 고립의 결과인 셈이다.

나눔과나눔 김민석 사무국장은 “2020년 한 해 발생한 무연고 사망자는 3000여 명에 달한다. 그 중 대부분은 보건위생상의 이유로 '처리'되고, 부고를 알릴 기회조차 갖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을 것”이라며 “무연고사망자를 애도할 시간과 공간을 제공한다는 것은 그 누구도 박탈된 애도를 경험하는 일이 없도록 위로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무연고사망, 공영장례는 나와는 무관한 일일까. 

법적 가족 없으면 생전 준비한 장례도 무의미
“자식들과 연락이 끊긴 지 오래됐고, 제 부고가 알려진데도 장례를 치러줄 것같지 않아요. 알아보니 사전장례의향서라는 것이 있고, 상조회사에 셀프장례 상품이 있더라고요. 이것들을 이용하면 제 장례를 준비할 수 있을까요?”

나눔과나눔에 어느 날 이런 전화가 걸려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장사법에 의해 장례를 치를 수 있는 가족의 범위는 배우자, 자녀, 부모, 직계비속, 직계존속, 형제자매 등으로 규정되어 있다. 상조회사는 법적인 가족이 아니기에 사망진단서를 발급받지 못하고, 부고를 전달받을 수도 없다. 따라서 상조회사의 셀프장례 상품은 의미가 없다. 사전장례의향서 역시 사전연명의향서와 달리 법적인 구속력이 없다.

나눔과나눔의 사례 중 ㄱ씨는 본인의 봉안당을 미리 준비하고 평생 관리비도 지불했다. 그러나 ㄱ씨가 무연고 사망자가 되면서 유골을 봉안당으로 모시고 갈 사람이 없었다. 가족이 아니면 고인의 생전 결정을 실행해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ㄱ씨는 본인이 준비한 봉안당 대신 다른 무연고 사망자들처럼 무연고 추모의 집에 봉안됐다.

시립승화원 무연고 공영장례식에는 모두 연고가 없는 자원봉사자들이 상주와 진행을 맡고 있다。 

나눔과나눔은 '가족대신장례'를 추진하고 있다. 전통적인 혈연 중심의 가족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가족 발생 등 사회적 변화를 반영하고, 사망자 의사를 존중해 사망 후 장례절차, 방법 등에 대한 생전 자기결정권을 보장하자는 취지다. 2022년부터 보건복지부 장사업무 안내의 연고자 지정 절차가 간소화되면서 가능해졌지만, 여전히 가족들이 '무연고'에 동의해야 하고, 서울시 공영장례절차로 진행해야 하는 등 한계가 있다.

김민석 사무국장은 “어르신이 사망한 후 유언장에 김민석 팀장에게 장례를 부탁한다고 쓰여있다는 연락을 받고, 어르신의 자녀를 찾았는데 가족들이 주관을 자처해 어르신의 뜻과는 다르게 봉안절차가 진행됐다”며 “자녀들과 저를 포함한 누구도 박탈된 애도를 겪지 않아 다행이었다. 모두가 필연적으로 맞이하는 죽음 앞에 평등할 수 있도록, 애도받을 권리가 누구에게나 존재한다는 인식의 변화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죽음은 결국 삶을 비추는 마지막 거울이다. 그 거울 앞에서 존엄을 잃지 않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이별을 준비하고 있는가. 공영장례는 이 질문을 사회 전체에 묻고 있다.

자원봉사 문의 : 나눔과나눔(http://goodnanu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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