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병원 호스피스센터, 죽음 이전 마지막 안전망

창간36주년 기획_ 나로 존중받으며 살다가고 싶다
① 
존엄하지 못한 죽음, 벽제 시립승화원의 무연고 장례
② 존엄한 죽음을 희망하고, 지키는 사람들 
③ 고양시 요양·호스피스 현황과 사례
④ 지역사회의 할 일_공공돌봄과 공공호스피스 

고양시 최초, 입원형·가정형·자문형 ‘3트랙’ 운영
20병상 가동률 94.1%… 대기자 50명, 병동 부족
'미리 연습·애도하는 죽음' 지역사회 함께 만들어야

[고양신문] “한 사람의 죽음은 개인의 문제로만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그가 속한 가족과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변화이다. 한 사람의 준비 없는 죽음은 그래서 남은 사람에게도 큰 상실감을 줄 수밖에 없다. 죽음에 대비하지 못하고 맞이한 한 사람의 죽음 때문에 남아있는 여러 사람에게 부정적 영향을 끼는 것은 불행이다. …호스피스 병동은 살아가면서 고통을 완화하고 비록 내일 죽을지 모르더라도 인간답게 살다가 이 세상을 편하게 떠날 수 있도록 하는 곳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김종운의 『아름답게 떠날 권리』 중에서

오전 8시, 따뜻한 회진이 시작되다

오전 8시 회진을 돌고 있는 김영성 센터장과 의료진들.
오전 8시 회진을 돌고 있는 김영성 센터장과 의료진들.

오전 8시.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호스피스센터. 김영성 센터장과 의료진들이 전체 병상 회진을 돈다. 환한 빛이 들어오는 병실 창 너머로 백석 체육시설과 전경이 펼쳐진다.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안녕을 묻는 김영성 센터장의 표정이 따뜻하다. 

지난밤 섬망에 시달렸다는 김모씨의 보호자가 이런저런 증상을 설명한다. 호스피스 병동 환자들에게는 흔한 증상이라고 한다. 4개의 병상이 나란히 놓인 병실은 평온하고 조용했다. 전날 고인이 머물렀다는 임종실은 비어 있었다.

삶의 마감을 준비하고 있는 이들의 남겨진 시간을 어떻게 지켜줄 것인가. 일산병원 호스피스 병동은 임종을 '의료의 종료'로 보지 않고, '삶의 마무리에 함께하는 여정'으로, 환자와 가족이 마지막까지 존엄을 지킬 수 있도록 책임 있는 돌봄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회진 때마다 의료진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안녕과 아픔을 묻는다.
회진 때마다 의료진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안녕과 아픔을 묻는다.

고양시 최초 '3트랙' 호스피스의 선구자

2006년 보건복지부 시범사업으로 첫발을 뗀 뒤, 고양시 최초로 입원형, 가정형, 자문형 3가지 유형을 모두 운영하는 호스피스 병동이다. 2019년, 2024년 보건복지부 최우수 호스피스 전문기관으로 선정되기도 했고, 전국에서 오랜 전통과 경험을 갖춘 공공 호스피스 기관으로 자리매김했다.

연명의료결정제도,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으로 말기암환자들을 위한 다양한 국가 사업도 적극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김영성 호스피스센터장은 말한다. "우리는 치료가 아닌 삶의 마지막 과정에 참여하는 일을 합니다. 마지막 가시는 길을 평온함 속에서 가족과 함께 마무리될 수 있게 해드리는 것이 우리의 일입니다."

호스피스, '존엄한 돌봄'의 다른 이름

호스피스는 소생 가능성이 희박한 환자가 남은 시간을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지키며 지낼 수 있도록 돕는 총체적 돌봄이다. 통증·호흡곤란·불면 같은 신체 증상 조절뿐 아니라, 두려움·상실·슬픔을 다루는 심리·사회·영적 지지를 포함한다. 의료, 간호, 사회복지, 심리지원 등이 한 팀으로 움직이는 다학제 케어가 기본이며, 가족의 사별 애도까지 연결된다.

임성숙 병동간호1부 팀장(호스피스 병동 책임)은 "호스피스는 죽음을 앞둔 환자에게 '남은 삶의 질'을 높여주는 것이 목표"라며 "생명의 길이를 연장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잘 살아낼 것인가'를 함께 고민하고 동행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환자와 가족 모두에게 존엄한 이별을 준비할 수 있도록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끝까지 지켜주는 돌봄이 중요합니다."

호스피스는 의료진, 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 등 모든 직원들이 한 팀으로 움직이며 이루어진다
호스피스는 의료진, 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 등 모든 직원들이 한 팀으로 움직이며 이루어진다

여전히 제한적인 호스피스 대상

세계보건기구는 완화의료를 '고통의 예방과 완화를 통해 삶을 위협하는 질병에 직면한 환자 및 가족의 삶을 향상시키는 접근'이라고 정의한다. 삶의 관리에 목표를 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호스피스 수준은 아직 여기에 미치지 못한다. 현재 그 대상이 말기암 환자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호스피스 완화 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 치료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2018년부터는 말기후천성면역결핍증(AIDS), 말기만성폐쇄성폐질환, 말기만성간경화 등으로 대상이 넓어졌지만, 여전히 죽음을 맞이하는 모든 이에게 해당되지는 않는다.

일산병원뿐 아니라 전국의 호스피스 병동은 말기 암환자만을 대상으로 한다. 말기 암 환자는 연명의료결정법에 의거 '적극적인 치료에도 불구하고 근원적 회복의 가능성이 없고, 점차 증상이 악화되어 담당의사와 해당 분야의 전문의 1인으로부터 수개월 이내 사망이 예상된다는 진단을 받은 환자'를 의미한다.

94.1% 가동률, 대기자 50명

말기암환자 호스피스 이용률은 국립호스피스센터 국가 등록 통계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2년까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평균 입원기간은 14일이고, 고령 말기암 환자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일산병원 호스피스센터는 현재 20병상을 운영하고 있다. 평균 병상가동률 94.1%. 상시 19병상 안팎이 차 있다는 뜻이다. 대기자 수는 올해 7월 중순 기준 50명대 중반. 말기암 환자의 증상 악화 속도를 고려하면 하루하루가 길다.

인력은 의사 2명, 간호사 14명, 사회복지사 2명, 호스피스 보조활동 인력 24명(요양보호사), 자원봉사자 20명, 그리고 가톨릭·불교·개신교 성직자들이 팀으로 일한다. 가정형·자문형 전담 간호사 각 1명이 센터에 상주해 서비스 간 연속성을 보장한다. 다직종 협력회의(MDT)와 매일의 라운딩, 전원·퇴원 콘퍼런스가 환자의 '오늘'과 가족의 '내일'을 동시에 설계한다.

'통증'만 줄이는 게 아니다

말기암 환자에게 통증은 삶을 지우는 고통이다. 하지만 호스피스가 다루는 것은 통증만이 아니다. 호흡곤란, 오심·구토, 식욕저하, 불면, 불안·우울, 피부증상 같은 다중 증상, 그리고 '떠남을 앞둔' 마음이 겹친다. 

일산병원 호스피스는 약물·비약물 요법을 통합한다. 음악치료, 원예치료, 미술치료, 자원봉사 프로그램, 헤어컷, 물목욕, 발마사지, 휠체어 산책 등 '몸을 돌보는 시간'이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채워져 있다.

"우리는 환자 곁에 오래 머뭅니다. 통증 수치를 낮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밥 한 숟가락 더 뜨게 하는 것, 밤에 2시간이라도 더 자게 하는 것, 가족과 10분 더 웃게 하는 것이 병동의 목표예요. 간호사·사회복지사·자원봉사자가 '한몸'처럼 움직일 때 그 시간이 만들어집니다." 임성숙 팀장의 설명이다.

오늘도 '여느 보통의 날처럼'

호스피스에서 가장 환한 장면은 '일상'이 돌아올 때다. 병동에서는 환자들이 만든 그림과 뜨개 작품을 작은 전시로 엮은 적이 있다. 임 팀장은 "40대 여성 환자 한 분이 항암의 고통과 죽음의 두려움을 작품으로 버텼다"며 "임종 소식을 들었을 때, 그분이 남긴 색감이 가족에게 큰 위로가 됐다"고 했다.

진성미 사회복지사는 "첫 면담을 하다 보면 '호스피스'는 죽기 직전에 오는 곳이라고 오해하셔서 많은 고민을 하시고 다양한 감정을 갖고 자리하는 분들이 많아요"라며 "막상 경험해 보시면, 다들 그러세요. '별것 아니었네요'라고. 그렇게 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하나씩 함께 내딛다 보면 오늘 하루를 보통의 날처럼 함께 울고 웃고, 위로하며 이 시간들을 소중히 보내는 그런 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진성미 복지사가 맡고 있는 사별가족돌봄 프로그램은 사별가족 모임(연 2회), 사별키트(분기 1회)가 진행되고 있다.

일산병원 호스피스센터 가정방문용 차량. /사진제공 : 일산병원호스피스센터
일산병원 호스피스센터 가정방문용 차량. /사진제공 : 일산병원호스피스센터
환자, 보호자들을 위해 오늘도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진제공 : 일산병원호스피스센터
환자, 보호자들을 위해 오늘도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진제공 : 일산병원호스피스센터

집으로 가도 '같은 팀'이 간다

가정형 호스피스는 집을 병실로 바꿔준다. 전담 간호사가 정기적으로 방문해 증상 사정, 약물 조정, 돌봄 코칭을 한다. 환자가 가장 편안한 자리인 침대·소파·안방에서 마지막을 맞을 수 있도록 환경을 정돈한다.

김숙 가정형 호스피스 간호사는 "가족에게 '사랑한다', '고맙다'를 아끼지 말아달라고 요청한다"며 "가족 돌봄은 체력과 마음을 동시에 소모한다. 안내 책자와 24시간 연락체계로 혼자 버티지 않도록 돕는데, '두렵다'는 감정이 '할 수 있다'는 감각으로 바뀌는 순간이 온다"고 말했다.

호스피스병동에서는 '보호자'도 환자

호스피스가 돌보는 대상은 환자만이 아니다. 사회복지사는 가족 상담을 통해 죄책감·분노·슬픔의 감정을 꺼내고, 경제·요양·법률 연계를 돕는다. 성직자들은 종교를 넘어 '들어주는 시간'을 낸다.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은 병동의 온도를 올린다. 

발을 씻겨드리던 박윤희 자원봉사자는 "손과 발에 묻은 평생의 노동을 생각한다. 그 손을 씻기며 '존경합니다'라고 마음속으로 말한다"고 전했다.

이영주 홍보팀 대리는 "호스피스는 치료의 종착역이 아니라, 삶의 마지막 구간을 안전하게 안내하는 차선"이라며 "지역의원·보건소·복지관과 협력해 사전연명의료의향서 교육, 호스피스 리터러시 강의, 병동 오픈데이를 늘릴 계획이다. '아플 때 떠올리는 전화번호'가 되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오늘도 일산병원 호스피스병동에 아침이 온다. 어제밤 비워진 어느 병상, 아마도 충분히 위로받고 존중받았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이 하루는 마지막 수요일일지 모른다. 그렇기에 더 보통의 수요일이 되기를 기도한다.

환자, 보호자들을 위해 오늘도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진제공 : 일산병원호스피스센터
환자, 보호자들을 위해 오늘도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진제공 : 일산병원호스피스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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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가 아닌 안녕을 돕는 병동”

[인터뷰] 김영성 일산병원 호스피스센터장

일산병원서 전공의, 2005년부터 호스피스 운영
8병상으로 시작, 현재 20병상을 운영중
호스피스에 대한 인식 변화·공공적 지원 필요

김영성 일산병원 호스피스센터장.   /사진제공 : 일산병원호스피스센터
김영성 일산병원 호스피스센터장.   /사진제공 : 일산병원호스피스센터

20년 전, 병원 한켠의 작은 병상에서 출발한 호스피스가 오늘의 일산병원 호스피스센터가 되기까지, 김영성 센터장은 초창기 병원장의 결단과 동료들의 연대, 그리고 환자와 가족에게서 배운 존엄의 의미를 이야기했다.

호스피스 병동을 운영하게 된 과정은.  

전공의 시절부터 일산병원과 인연이 있었고, 2004년부터 전임의로 일산병원에 근무했다. 2005년 호스피스를 맡았는데 처음엔 13층에서 간이로 8병상으로 시작했다. 당시 병원장님이 “해보자”고 결단해주셨고, 동료들이 함께 했다.

일산병원 호스피스 병동을 소개해달라.

2006년 말기암 호스피스 지원사업 선정, 2009년 완화의료 전문기관 지정, 2015년 53병동으로 확대 개소했고, 2020년 가정형, 2022년 자문형 전문기관 지정을 받아 현재 입원·가정·자문형을 모두 운영한다. 현재 입원형 20병상을 운영중이고. 법적 최대 허가병상은 29병상까지이다 

 '호스피스는 무엇을 하는 곳인가'라는 물음에 어떻게 답하나.

‘죽음을 기다리는 곳’이 아니다. 인간의 존엄을 지켜드리고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공간이다. 최소한의 검사, 최대한의 증상 조절이 원칙이고, 임종이 임박하면 1인실로 모셔 의료적 개입을 줄인다. 환자와 가족이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환자·가족이 가장 힘들어하는 지점은.

통증, 불안, 섬망 등 환자들의 다양한 증상에 대한 걱정뿐 아니라 돌봄에 대한 부담감이다. 가정형 호스피스의 경우 임종장소를 가정으로 마음에 품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렵다. 열 분 중 한두 분 정도만 끝까지 집을 선택한다. 그만큼 마지막 순간에 대한 두려움과 돌봄의 부담이 크다. 그래서 입원형 호스피스와의 연계가 꼭 필요하다.

제도적 한계라면 어떤 게 있나.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 후 60일이 넘으면 수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게 된다. 병원으로서는 손해라는 얘기다. 다수의 병원이 환자에게 퇴원이나 다른 병원으로의 전원을 권하는 이유다. 수가도 일반보다 낮아 민간이 확충하기 어렵다. 그래서 공공이 먼저 해야 한다. 지역 의료원이 거점이 되고, 3차 병원은 자문형 중심으로 협력하는 모델이 현실적이다.

호스피스를 바라보는 '시선'의 중요성은 어떤 의미인가.

일본 대학병원 견학 때 들은 말이 기억난다. “우리는 여기(호스피스) 적자를 일반 진료에서 번 수익으로 메꾼다. 그게 병원의 일이다.” 이 말을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 말씀하시는 모습에 놀랐다. 한국도 언젠가 그렇게 되지 않겠나. 국민의 요구, 사회의 인식이 올라오면 시스템이 바뀐다. 고양시가 먼저 관심을 보여주면 더 빨라질 것이다.

시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호스피스는 환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보호자와 가족을 위한 시간이기도 하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한번쯤 작성해보시고, 본인이 원하는 삶의 마무리를 미리 이야기해두셨으면 한다. 우리는 그 시간을 ‘아프지 않게, 혼자 두지 않게’ 지켜드리겠다.

김영성 일산병원 호스피스센터장.
김영성 일산병원 호스피스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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