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로 본 고양시 '폭우 재난 불평등'

20일 기준 고양시 공식 침수피해 데이터를 활용해 시각화한 고양시 동별 피해현황 지도. 총 446곳의 침수피해지역 대다수가 덕양구 다세대 주택과 빌라단지 반지하·지하 주거지에 집중됐다.  
20일 기준 고양시 공식 침수피해 데이터를 활용해 시각화한 고양시 동별 피해현황 지도. 총 446곳의 침수피해지역 대다수가 덕양구 다세대 주택과 빌라단지 반지하·지하 주거지에 집중됐다.  

[고양신문] 2025년 8월 13일, 기록적인 폭우가 고양시를 덮쳤다. 일주일이 지난 21일 현재, 도시는 일상을 회복하는 듯 보이지만, 누군가의 삶은 여전히 흙탕물 속에 잠겨있다. 20일 기준 시 공식 집계로만 446곳의 주택과 상가가 물에 잠겼다. 하지만 숫자가 말해주지 않는 진실은 따로 있다. 이번 참사는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닌, 우리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를 정확히 겨냥한 ‘인재(人災)’였다는 것. 피해의 60.1%는 반지하와 지하 주택에 집중됐고, 그중 대부분은 덕양구 구도심에 몰려 있었다. 재난은 왜 가난한 이들의 삶터부터 무너뜨렸나. 데이터와 현장 인터뷰를 통해 그 복합적인 원인을 추적했다. 

446건의 피해, 65%가 반지하 비중 높은 덕양구
이번 침수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피해가 사회적 약자의 주거 공간인 지하·반지하에 집중됐다는 점이다. 20일 기준, 고양시가 집계한 침수 피해 446건 중 268건은 반지하와 지하 주택에서 발생했다. 재난이 사회적 약자에게 얼마나 더 가혹한지를 보여주는 통계다.

피해는 특정 지역에 집중됐다. 총 피해의 65%를 넘는 292건이 덕양구에서 발생했다. 2022년 고양시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덕양구의 지하·반지하 주거 비율은 1.4%로 일산동구(0.7%)와 일산서구(0.6%)의 두 배에 달한다. 낡은 단독주택과 다세대주택이 밀집한 구도심의 주거 환경이 피해를 키운 핵심 원인으로 볼 수 있다. 피해 가구 대부분은 전·월세로 거주하는 주거 약자였다. 즉 자가 보유율이 낮고 주거 환경이 열악한 계층이 이번 폭우의 최대 피해자인 셈이다. 

히트맵으로 표시된 침수지역. 붉은색이 짙은 지역(화정, 행신)일수록 침수피해가 집중됐다. 
히트맵으로 표시된 침수지역. 붉은색이 짙은 지역(화정, 행신)일수록 침수피해가 집중됐다. 

공식 집계된 피해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보 취약계층인 노인 혹은 장애인들의 경우 피해를 입고도 신고 절차를 모르거나 포기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재 접수된 가구별 피해 현황뿐만 아니라 건물시설 등의 피해까지 파악될 경우 그 규모는 훨씬 더 커질 수 있다. 

피해 현장에서 만난 한 관계자는 “공식 집계된 가재도구 피해보다 건물 지하 기계실, 전기실 같은 공용 시설 피해가 훨씬 심각하다”며 “이는 장기적으로 건물 안전과 관리비 상승으로 이어져 세입자들의 고통을 가중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막힌 우수관, 실종된 컨트롤타워 침수피해 키워
이번 침수 사태는 기록적인 폭우가 직접적인 원인이었지만 그 외에도 여러 복합적인 징후들이 발견됐다. 수십 년간 방치된 도시 인프라와 부재한 예방 시스템이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이해림 시의원은 “능곡, 행주 등 구도심 우수관로의 경우 수 십년간 제대로 된 준설 작업 없이 방치된 탓에 토사로 절반 이상이 막혀 있었다”며 “지난번 대통령 지시로 뒤늦게 대대적인 청소작업을 진행했지만 이미 토사가 딱딱하게 굳어진 상태라 제거가 불가능한 상태였다”고 지적했다. 배수 기능이 약화된 상태에서 폭우가 쏟아지니 역류할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해당 지역은 재개발 예정지라는 이유로 시가 그동안 선제적인 인프라 투자를 외면해 온 곳이었다. 이번 수해는 이러한 ‘행정 공백’이 부른 참사라는 것. 여기에 과거 침수 이력에도 불구하고 사전 예방 조치가 전무했던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이해림 의원은 “폭우 예보가 있었음에도 차수판(물막이판)이나 모래주머니를 사전에 배포하는 등 시의 기초적인 예방 조치가 전무했다”며 “과거 시의회에서 이 문제를 몇 차례 지적했었지만 관련 예산조차 마련하지 않았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최소한의 방어선조차 없었던 셈이다.

피해 현황 파악 및 대책 마련 과정에서도 행정의 무능함이 드러났다. 기록적인 기후재난 사태에도 시는 아직까지 별도의 컨트롤타워(TF) 없이 관련 부서들이 각자 대응하며 극심한 비효율 행정을 초래하고 있다. 이로 인해 시는 침수사태가 발생한 지 일주일이 지나서야 겨우 공식적인 피해현황 데이터를 공개했다. 그마저도 신고받은 침수 건수 외 하천변 공공시설 피해 현황이나 재산상의 피해 규모 등은 아직까지(21일 기준) 파악이 덜 된 상태다. 이는 신속하고 정확한 의사결정을 방해하는 결정적 요인으로 지목된다. 

지난 19일 행신역 인근 한 건물 지하주차장. 침수 차량이 곳곳에 주차돼 있다.
지난 19일 행신역 인근 한 건물 지하주차장. 침수 차량이 곳곳에 주차돼 있다.
2020년 경기도 내 반지하 주택 수 및 침수피해 현황. (자료출처= 경기연구원 반지하 거주현황 개선방안 2020.12)

기후 취약계층 보호대책 마련돼야
이번 침수는 단기적인 복구와 지원을 넘어, 도시의 안전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과제를 던진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는 ‘찾아가는 피해 접수팀’ 운영과 ‘통합 지원 원스톱 서비스’, ‘긴급 인프라 점검 및 정비’ 대책을 수립하는 한편, 중장기적으로는 ‘재난안전 컨트롤타워 상설화’, ‘스마트 방재 인프라’ 구축 등을 주문했다. 

무엇보다 상습 침수 구역 내 반지하 신축을 금지하고 이주를 지원하는 ‘지하·반지하 주택 단계적 소멸 로드맵’이 고양시에도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녹색전환연구소 황정화 연구원은 지난 4일 건강넷·사과나무의료재단 주최 기후위기 대응 강연에서 “고양시는 2022년 기준으로 경기도 전체 반지하 주택 침수 피해의 34.3%가 발생한 지역”이라며 “도시계획과 복지정책을 연계해 저소득층, 노약자, 장애인 등 기후 취약계층을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대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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