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DMZ국제다큐영화제 개막작 ‘올드마린보이’ 진모영 감독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다큐 흥행기록 세워
3년 만에 발표하는 신작 기대와 관심 집중
“내 영화는 소중한 것 지키는 이들에게 보내는 헌사”

 

제9회 DMZ국제다큐영화제 개막작 '올드마린보이'를 만든 진모영 감독. 서교동 작업실 벽에 '올드마린보이' 주인공 가족의 사진과 쿠바에서 구해 온 어부 그림이 나란히 걸려있다.


[고양신문] 국내 최대 다큐멘터리 축제인 제9회 DMZ국제다큐영화제가 이달 21일 막을 올려 28일까지 다채로운 작품들을 선보인다. 가장 큰 관심을 모으는 건 아무래도 개막작이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이하 ‘님아…’)로 다큐멘터리 흥행 기록을 세운 진모영 감독이 3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 ‘올드마린보이’가 21일 파주 민통선 캠프그리브스에서 열리는 개막식에서 월드 프리미어 상영된다. 다큐멘터리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진모영 감독을 서교동 작업실에서 만나 신작과 다큐멘터리 장르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올드마린보이’가 올해 DMZ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다. 어떤 영화인가.

강원도 고성, 동해 최북단 마을에서 ‘머구리(바닷속에서 해산물을 채취하는 직업적 잠수부)’ 일을 하는 북한이탈주민 박명호씨의 삶을 담은 작품이다. 박명호씨에게는 북에서 함께 내려 온 아내와 두 아들이 있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명호씨는 가느다란 산소줄에 의지한 채 깊은 바닷속으로 들어간다. 남과 북을 경계를 넘어온 그가 매일 생과 사의 경계를 오가는 것이다.

■ 소재가 독특하다. 어떻게 영화화를 결정했나.

‘올드마린보이’는 11월 2일 일반개봉을 하는데, 흥미롭게도 정확하게 4년 전인 2013년 11월 2일 KTX를 타고 가다가 우연히 펼쳐 든 잡지에서 ‘머구리’와 만났다. 중년의 사내가 잠수복 헬멧을 벗어들고 청록색 바다를 배경으로 뱃전에 걸터앉아 카메라 응시하는 사진이 시각적으로 너무도 인상적이었다. 식솔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두 다리를 바다에 내어줘야 했던 장애인 잠수부였는데, 바다는 그의 두 다리를 불편하게 만들었지만 물속 세계는 역설적으로 그에게 자유의 공간이기도 했다. ‘찍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다.

그런데 그 장애인 잠수부의 건강이 악화돼 다른 자료를 찾다가 탈북자 잠수부 박명호씨를 발견했다. 처음엔 ‘머구리’와 ‘이방인’을 결합한 성격의 다큐를 만들 생각이었다. 그런데 명호씨와 접촉하며 가족의 삶을 책임지는 한 가장의 인생 이야기로 방향을 전환했다. 그게 박명호씨의 정체성이었다.

■ 오랜 기간 쵤영을 하며 박명호씨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었을 것 같다.

북에서 공병부대 중대장이었던 박명호씨는 2006년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남쪽으로 내려왔다. 가까이에서 본 박명호씨는 치밀한 설계자다. 서해로 근무지를 옮기고, 배를 장만하면서 탈북을 위한 준비를 치밀하게 했다. 잠수 일을 익힌 것도 남으로 내려가 먹고 살 길이 없으면 머구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에서란다.

명호씨 가족은 두 번째 시도 만에 탈북에 성공한다. 서해의 한 섬에 닿았는데, 낚시하는 노인에게 여기가 어디냐고 물으니 ‘옹진’이라고 답해 가슴이 철렁했단다. 북한 땅 옹진인 줄 알았던 거다. 다행히 마을 이장이었던 노인이 명호씨 가족에게 밥을 대접해주며 해경에 인계될 수 있도록 했단다.

남한에 와 보니 대개의 탈북민 남자들이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을 못 하고 무능력자가 되어 있었다. 그런 삶을 살지 않으려고 명호씨는 결국 머구리 장비를 쓰고 물에 들어가는 길을 선택했다. 자신이 익힌 방식의 잠수 일을 찾아 서해부터 훑어 내려가다 결국 동해 최북단 저도 어장 앞에서 텃세를 이겨 내고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 영화 속에 담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인가.

탈북자 가족이 고난을 이기고 남한 사회에 정착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영화는 가족의 생계를 지키기 위해 운명과 싸우는 가장의 묵직한 삶에 방점을 찍었다. 물속이라는 갇힌 구조에서 자기가 짊어진 세계를 보호하고 전진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그래서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부제는 ‘아버지의 바다’다. 북녘 땅 청진의 맑은 바다에서 수영하던 청년은 남한으로 넘어 와 잠수부가 됐는데, 늙어 죽을 때까지 고향에 돌아갈 수 있을까, 가족을 지킬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담아 ‘고해(苦海)’라는 한문 제목도 혼자 지었다.
 

'올드마린보이'의 장면들. 주인공 박명호씨는 가족들의 생계를 짊어지고 매일 깊은 바다로 들어간다.


■ 전작 ‘님아…’로 명성을 얻었다. 본인에게 어떤 영화였나.

이전 TV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때와는 달리 긴 호흡으로 하나의 작품을 완성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 새로운 세계로 향한 창이 인생에서 열린 것이다. 인생의 전환이 된 고마운 영화일 수밖에 없다.

■ ‘님아…’는 변치 않는 부부애를, ‘올드마린보이는’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을 다뤘다. 둘 다 보수적 가치관 아닌가.

내가 명호씨처럼 대단한 아버지가 아니고, ‘님아…’의 할아버지처럼 멋진 순정남이 아니라서 그 분들의 삶에 매력을 느낀 것 같다. 영화에 담긴 것들은 인간이 태어나서 연애하고 자식을 기르고 늙어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보수적 가치라기보다는 사회의 기본이 아닐까. 할 수만 있다면 그것들을 잘 하면 좋지 않겠나.

두 영화는 인생의 소중한 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 하는 사람에게 존경심을 가지고 바치는 헌사와 같은 작품이다. ‘님아…’를 찍고 난 후 나에게 ‘그래서 사랑을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고 묻는 이들이 많더라(웃음). 나는 사랑에 대한 강사가 당연히 아니다. 내가 만난 분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온전히 전달하고 싶을 뿐이다.
 

다큐멘터리 흥행 기록을 세운 진모영 감독의 2013년 작품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 영화에 등장하는 이들이 자연스레 자신의 일상과 속내를 드러내는 모습이 경이롭다. 대상을 무장 해제시키는 노하우라도 있나.

가끔 농담으로 우린 돈은 없지만, 값싼 무릎이 있다는 얘길 한다. 빨리 무릎을 꿇고 어머니, 이모, 형님 하며 친하게 뭉갠 다음 바짝 붙어서 찍는거다. 내가 볼 때 한국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찍으러 온 사람에게 마음을 열어주는 폭이 참 넓은 것 같다. 처음엔 체면을 차리지만, 상대에 대한 신뢰가 생겨 찍겠다고 결정하고 나면 함께 간다.

나를 촬영하러 여기까지 왔는데, 보아하니 돈도 없는 것 같은데, 잘 안 되면 어떡하지… 하며 말이다. 참 정이 많은 존재들이다. 그래서 후배들에게 다큐 찍을 때 잘난 척, 아는 척, 있는 척 하지 말고, 좋은 차도 타고 다니지 말라고 말한다(웃음).

어떤 이들은 자신의 비밀스런 이야기를 처음 본 카메라 앞에서 하는 경우가 많다. 가족들이 보면 깜짝 놀란다. ‘엄마가 이런 이야기 우리에게도 해 준 적이 없는데?’ 하며 말이다. 그런 순간이 출연자가 우리에게 맡겨 주는 특권이자, 이 직업이 주는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특권과 매력은 반대로 강력한 의무가 생기는 일이기도 하다. 그 사람의 진실을 왜곡하지 않고 정확하게 표현하고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걸 가볍게 여기면 ‘나쁜 놈’이 되는 거다.

■ 한국적인 특수한 소재 속에 보편적 가치관을 담을 수 있다고 보나.

나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다. 그 안에 소용돌이치는 뭔가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찍는 다큐 장르를 흔히 ‘휴먼 다큐’라고 구분하곤 하는데, 그 용어 속에 정치다큐나 사회다큐와 구분하기 위한 프레임을 들이대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 속에 사회와 정치와 인생에 대한 보편적 요소들이 같이 뒤섞여 있다고 보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올드마린보이’만 해도 그렇다. 미시적으로 보면 고성 바닷가에 사는 한 가족 이야기지만, 넓히면 한국사회가 보이고, 휴전선과 분단의 현실이 보인다. 특히 한국사회는 전쟁의 위험, 자본의 횡포, 노동과 환경, 인권의 갈등이 날마다 솟구치고 들끓는 곳이다. 그러니 동시대를 살아가는 누구에게나 시대의 모순, 또는 폭풍의 그림자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그 한국인의 특수성 안에 전 세계인을 대표할만한 보편성도 담긴다고 생각한다. 세계에서 가장 바쁘게 살아가면서도, 내면에 간직한 열정이나 인간성은 또 매우 순박하다. 우리 안에 지킬 박사와 하이드가 분명히 있지만, 개별적으로 만난 한국인 하나하나는 제대로 된 삶을 살려고 저마다 몸부림치고 있지 않은가.

■ 거시적 차원에서 인간에 대한 깊은 신뢰와 믿음이 있는 것 같다. 대상에 대한 애정이 작품을 만드는 힘이 되는 것도 같고.

칭찬으로 들린다(웃음). 인간에 대한 신뢰까지는 잘 모르겠고, 그냥 나쁜 놈은 미워하고, 좋은 사람은 막 칭찬하고 싶은 것 뿐이다.

 

인간을 향한 깊은 신뢰와 애정은 진 감독의 영화 열정을 떠받치는 든든한 토대다.


■ TV다큐멘터리를 만들다 극장 다큐멘터리 감독이 됐다. 두 장르를 비교한다면.

TV다큐와 극장 다큐는 속성 자체가 다르긴 하지만 ‘여기까진 TV, 여기부턴 영화’라는 식으로 기계적으로 나뉘는 건 전혀 아니다. ‘님아…’만 봐도 TV다큐 방식에 가깝다. TV다큐를 제작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잠재적인 기술들이 매우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주기적으로 생산물을 만들어내는 경험과 감각들이 큰 자산이다. 다만 납품 구조상 자신들이 만든 창작물의 저작권을 스스로 행사하지 못할 뿐이다.

세계적 추세를 볼 때 TV와 영화 시장을 아우르는 용어가 ‘크리에이티브 다큐멘터리’라고 부르는 영역이다. 하나의 콘텐츠로 방송, 극장, 부가판권시장 등 모든 플랫폼을 섭렵한다는 개념이다.

■ 우리나라의 다큐멘터리 생산 구조의 문제점은 뭔가.

TV와 극장 시장이 나뉜 건 방송사에 의해 다큐멘터리 장르가 왜곡, 교란되는 과정에서 나온 현상이다. 적은 제작비를 지급하고 모든 저작권을 방송사가 독점하는 구조에서 다큐가 만들어지면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도 방송 한번 타고 창고에서 사장되고 만다.

그러다보니 다큐멘터리스트들은 어렵더라도 방송사의 굴레에서 벗어나 다른 방식으로 제작비 마련해 본인이 만든 콘텐츠를 자신이 쥐고 싶다는 욕구를 가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욕구를 현실화하는 과정에선 감수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대개 혼자 10원을 가지고 퀄리티가 떨어지는 작품을 만들거나, 무리해서 100원짜리를 만들다 한 번에 망가질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10원을 투자하는 시장 10개를 모아 100원을 가지고 양질의 콘텐츠를 만드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결국 국내, 또는 해외의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 등을 활용해 제작 여건을 구축하는 긴 기간이 필요하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큐멘터리 장르가 점점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듯하다.

외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열악한 제작 여건에도 불구하고 매우 우수한 다큐멘터리 인력들이 다양한 영역에 포진해 있다. 사람이야말로 한국의 다큐를 전진시키는 가장 큰 자산이다.

굳이 장르를 구분하자면 크게 사회정치다큐 분야가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고, 소수지만 미디어아트 작업을 통해 예술적 다큐를 만드는 창작자들의 작품도 주목을 받는다. 그런가 하면 젊은 그룹들이 개인적인 이야기를 영상에 담아내는 사적 다큐의 흐름도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 DMZ국제다큐영화제와의 인연이 각별해 보인다.

‘님아…’를 DMZ국제다큐영화제에 출품할 때 장편다큐섹션과 신진다큐섹션 중 어디를 선택할까 고민하다가 상대적으로 입상 가능성이 높은 신진다큐섹션을 택했다. TV다큐 작업을 15년 넘게 했지만 영화 쪽에서는 신인이었으니까. 당시 ‘신인이긴 한데 많이 삭았다’는 얘길 많이 들었다(웃음). 작품은 2014년 DMZ국제다큐영화제를 통해 관객상을 수상하고, 그 여세를 몰아 극장 흥행에서도 큰 성공을 거뒀다..

인연을 좀 더 소개하자면, DMZ국제다큐영화제 사무국의 실무자가 ‘님아…’ 프로젝트를 ‘개인적으로’ 좋아한다며 투자자를 연결해주기도 했다. 공적 부분과 사적 부분에서 좋은 인연을 안겨준 셈이다. 그리고 3년 후 ‘올드마린보이’가 영예롭게 개막작으로 선정됐으니, 참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다큐멘터리 영화제의 가치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판타지를 바탕으로 하는 극영화와 달리, 다큐멘터리는 실재하는 대상을 통해 우리가 사는 세계의 한 측면을 정확히 보여주는 매력이 있다. 관객들은 한 편의 다큐 영화를 보며 감독이 기록하고 해석하고 되새김질한 새로운 세상 하나를 만나는 것이다. 그걸 함께 공감하고 탐험하는 재미가 다큐멘터리에는 있다.

그래서 다큐멘터리 영화제는 다양한 세계를 모아 놓은 축소판이라 말할 수 있다. 서로 다른 감독들이 만든 세상을 모아다가 자막을 넣어주고, 우리 동네의 멋진 극장에서 보게 해 준다는 게 다큐멘터리 영화제의 엄청난 미덕이다. 영화제를 위해 숨어서 땀 흘리는 스태프들은 복 받을 공을 쌓고 있는 것이다. 그 공을 생각해서라도 관객들이 많이 즐겨줬으면 좋겠다.

■ 다음 작품에 대한 계획을 말해달라.

좋은 소재가 있으면 좀 소개해 달라(웃음). 첫 작업 ‘님아…’가 흥행에 성공했을 때 겉으로는 ‘강박 따윈 없다’고 쿨하게 말했지만, 솔직히 말해 강박이 크더라. 그럴수록 세인들 평가와 관계없이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기준 같은 것이 필요하지 싶다.

어쨌든 세 번째 작업은 더 신중해진다. 사실 요즘 머릿속을 맴도는 게 있긴 하다. 우연히 만난 한 어머니 이야기인데, 어설프게 표현하면 안 되는 소재이기에 안 한다고 마음 먹다가도 자꾸만 떠오르곤 한다. 하게 될지 안 하게 될지 나 자신도 모르겠다. 일단 ‘올드마린보이’를 개봉하고 나서 천천히 생각해 보려 한다.
 

찰영을 마무리하며 진모영 감독은 박명호씨 가족들에게 멋진 사진을 찍어 선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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