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숨결 따라 역사의 흔적 따라, 고양의 생태하천 기행(12) - 대화천 하

고양생태공원에 풍요로운 생명 이어주지만
한강에서 연결되는 생태축 군데군데 단절
도시개발과 맞물려 함부로 손대면
생태적 상상력 실현할 기회 영영 사라져
생태하천 향한 논의·설계 “지금 시작해야”

대화천은 고양생태공원의 생태그물망을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통로 역할을 한다. 오른쪽 메타세쿼이아 나무벽 너머가 고양생태공원이다.

[고양신문] 지난주에 ‘잠재적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대화천의 미래를 구체적으로 상상해보자’며 글을 마무리했더니, 주변으로부터 시큰둥한 반응들이 돌아왔다. 대화천에 접근 욕구를 가진, 또는 변모를 갈망하는 주민이 얼마나 되겠냐는 얘기다. 맞는 말이다. 행정적 효율성에 비춰보자면, 인구 밀도가 높고 인근 주민들의 친수공간 확대 요구가 증대되는 곳부터 하천정비를 하는 게 맞을 게다. 그런 까닭에 하천이 전면적 변신의 운명을 맞게 되는 순간은, 대개는 대규모 택지개발과 맞물려 찾아오곤 한다.

하지만 그게 과연 바람직한 모습일까. 택지개발 과정에서 생태적 의제가 어떤 취급을 받는지를 떠올려보면 고개를 가로저을 수밖에 없다. 생태적 안목은 전무한 채 개발 가치만을 고려해 조성된 한류천이 결과적으로 어떤 난제를 불러왔는지를 고양시민들은 여실히 목도하고 있다. 얼마 전 창릉신도시와 탄현 공공주택 사업 환경영향평가 주민설명회가 열렸는데, 명색이 개발에 따른 환경영향을 함께 따져보자는 자리인데도 생태와 환경에 대한 진지한 논의는 아예 찾아볼 수 없었다. 소수의 생태전문가를 제외하면 공사 주체도 주민들도, 찬성하는 측도 반대하는 측도 ‘생태’는 그저 각자의 주장에 명분을 더하기 위해 만만하게 들먹이는 들러리 취급을 했다.

이처럼 개발의 여파가 몰아치는 시점에서 생태적 관점을 관철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불가능에 가깝다. 대중들의 관심 영역 바깥에 존재할 때 오히려 자유롭게 생태적 고민과 상상력이 가능하다는, 조금은 슬픈 역설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소하천인 대화천 이야기를 2회에 걸쳐 장황하게 늘어놓는 이유다.

대화천의 흰뺨검둥오리. <사진=한기식>

생태적 가능성 증명한 고양생태공원 구간

대화천은 콘크리트 배수로로 만들어졌지만, 2010년 수질개선 및 시민공원화 사업이 추진되고, 2015년 자연생태살리기 사업이 보태져 부분적으로나마 생태하천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대화천변을 따라 줄지어 선 메타세쿼이아 숲.

특히 대화천과 고양생태공원이 연결된 구간은 콘크리트로 발라진 인공의 배수로가 풍요로운 생태적 공간으로 변신할 수 있다는 증거를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지난해 고양생태공원에서 발간한 『이야기가 있는 고양생태공원 생태보고서』(저자 이미숙)라는 책에서 저자는 2013년 방치된 나대지를 활용해 조성된 고양생태공원이 몇 해 만에 생태적 오아시스로 변모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옆에 대화천을 끼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고양생태공원의 명소 메타세쿼이아길이 생겨난 유래를 밝힌 부분도 흥미롭다. IMF시기에 고양시가 공공근로사업을 다양하게 진행했는데, 그 중 하나가 대화천변에 나무를 심는 일이었다는 것. 책을 쓴 이는 우연의 산물로 심겨진 나무들이 고맙게도 무럭무럭 잘 자라줘 무척이나 대견하다고 말한다. 인간의 발길과 시선을 차단해 주는 무성한 숲길은 오늘날 대화천과 생태공원을 연결해주는 통로가 됐고, 그 길을 타고 너구리와 고라니, 족제비, 두더지, 멧밭쥐 등 다양한 동물들이 오가고 있는 것이다. 포유류뿐 아니라, 한강 장항습지와 연결된 대화천 물길을 따라 참게가 생태공원의 인공연못(정화지)까지 찾아들었다고 한다. 작은 물길 하나가 만들어내는 생명 네트워크의 확장이 경이롭지 않을 수 없다.

대화천의 왜가리. <사진=한기식>

고봉산과 장항습지 잇는 생태축 복원해야

고양 땅 생태계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한동욱 PGA에코다양성연구소 소장은 2013년 에코코리아 회원들과 대화천 생태 모니터링을 진행했는데, 당시 대화천과 인근 농경지에서 노랑부리저어새(멸종위기종2급), 큰기러기(멸종위기종2급), 흰꼬리수리(멸종위기종1급)와 같은 보호종이 발견됐고, 흰뺨검둥오리, 쇠오리, 청둥오리, 중대백로, 쇠백로, 왜가리, 쇠물닭, 민물가마우지 등 다양한 물새류를 볼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는 대화천에 대한 기대를 이렇게 요약한다.
“대화천 물줄기의 시작점은 고봉산 안곡습지 부근이고, 끝은 한강 장항습지입니다. 장기적으로 복개된 구간을 복원하고, 하류를 조수간만에 따라 하천 수위가 변하는 감조하천(感潮河川)으로 되살려야 합니다. 여기에 인접한 장월평천, 장항천까지 연결성을 확장한다면 고봉산에서 장항습지를 잇는 소중한 생태축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한 소장은 “대화천의 구조적 설계를 손대는 것이 쉽지 않다면, 우선 하천의 관리 원칙이라도 생태적 방식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지금처럼 주기적으로 하천 바닥을 일괄 준설하면 겨우 뿌리를 내린 습지식물이 파헤쳐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면서, 최소한 고양생태공원 구간과 같은 모습을 대화천 전 구간으로 연장해보자고 제안한다.

대화천 중간지점 부분 복개구간(건설기술연구원 뒤편 대화레포츠공원 자리)은 아무래도 생태연결로 복원에 걸림돌이 될 듯하다. 이에 대해 한동욱 소장은 “양재천의 경우 복원이 불가능한 복개구간을 수질 필터링 시설로 활용한 예가 있다. 대화천도 이러한 방식이 가능한지 검토해보자”는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대화천 유량 확보 문제와 관련해서는 대화역에서 유출되는 지하수를 대화천에 공급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한 박사는 “하천의 이용과 정비에 앞서 정밀한 생태 조사가 시급하다”면서 “어디에 어떤 생물종이 살고 있고, 이들이 어떤 생태적 구조에 의해 영향을 주고받는지를 정확히 조사한 후, 이를 바탕으로 정비와 이용 계획이 수립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화천에는 사시사철 수많은 물새들이 찾아온다.

“생태하천 조성, 타이밍이 중요하다”

국내 최고 하천 전문가 중 한 명인 안홍규 생태공학박사(한국건설기술연구원 수자원·하천연구소 연구위원) 역시 “고양시가 하루 빨리 생태적 관점에서 하천관리와 정비의 종합 마스터플랜을 세워야 한다”고 말한다.

대화천의 현실적 과제를 묻는 질문에 안 박사는 “종적 연결성과 횡적 연결성을 함께 배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람은 물론, 동물들도 통행하기 힘든 대화천의 높은 직벽과 둑방에 야생동물들을 위한 이동통로를 군데군데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안 박사는 고양하천네트워크 활동가들의 열정과 수고를 높이 평가하며, 이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와 경험을 경청해 하천 마스터플랜에 적극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아가 시민활동가들이 전문성을 갖추고, 이들이 하천관리의 권한을 가질 수 있도록 지자체가 적극적 육성정책을 펼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현재 대화천에는 자전거21 고양지부, 고양생태공원 자원봉사자, 대진고를 비롯한 생태하천동아리 등이 생태교란종 제거 등 하천 가꾸기 사업에 힘을 보태고 있다.

안홍규 박사는 “장기적으로 대화천 주변의 부지를 확보해 물이 머물다 나갈 수 있는 습지공원을 조성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대장천에 만들어진 습지공원처럼 하천에 포켓 모양으로 붙여 만들 수도 있고, 인근 주거밀집지역의 공원에 습지를 조성해 대화천과 물길을 연결하는 방안도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대화천과 나란히 흐르는 농수로를 활용해 한강물을 직접 공급받아 유량을 확보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이 모든 아이디어는 개발이 본격화되기 전에 설계해야 그나마 실현 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다”는 점을 짚었다.

안홍규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수자원·하천연구소 연구위원.

20여 년 가까이 고양시와 인연을 맺고 하천문제 관련 자문을 지속해 온 안 박사는 보람보다는 아쉬움이 더 컸다며 솔직한 심정을 토로했다.
“2000년대 초, 고양시가 ‘드림하천 가꾸기’라는 사업을 추진할 때 저도 적극 참여해 큰 그림을 함께 그렸던 적이 있습니다. 관심과 기대를 품었지만, 안타깝게도 사업이 단발성으로 그쳐버렸습니다. 이후 고양시에서 진행된 대규모 개발사업의 여파 속에서 생태하천 문제는 늘 뒷전으로 밀리는 모습을 지켜봐야했습니다.”

그는 고양시가 보다 적극적 의지를 가지고, 대규모 택지개발이 밀어닥치기 전에 생태하천 조성 마스터플랜을 추진해야 한다며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점을 반복해서 강조했다.

 

우선순위를 어디에 둘 것인가

대화천은 태생적으로 치수적 역할만을 부여받은 배수로로 만들어졌지만, 세월이 지나며 생태와 친수공간으로서의 가능성을 스스로 길러냈다. 하지만 대화천의 가능성이 선 자리는 무척이나 위태롭다. 고양시에서 개발 압력이 가장 높은 덕이동, 대화동, 송산동 지역을 관통해 흐르기 때문이다. 더 늦기 전에 생태적 활용 자산을 확보해 놓지 않으면, 또다시 개발지역의 배수로로 전락해 버릴지도 모른다.

도시의 하천은 그 도시의 생태·환경적 인식 수준을 가장 잘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하천을 개발에 종속된 변수가 아닌, 독자적 가치와 존재 이유를 가진 당당한 상수로 대접하고자 하는 이들이 하나 둘 늘어날 때 비로소 도시의 숨통이 트이지 않을까. “당신들은 어떤 하천을 꿈꾸는가.” 대화천이 우리에게 질문하고 있다.

■ 도움말 : 안홍규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수자원·하천연구소 연구위원, 한동욱 PGA에코다양성연구소 소장
■ 참고자료 : 생태하천지도 ‘아름다운 대화천’(고양하천네트워크, 저자 한기식), 『이야기가 있는 고양생태공원 생태보고서』(고양시, 저자 이미숙)

 

대화천은 콘크리트 배수로로 만들어졌지만, 시간의 축적과 함께 풍성한 생태계를 품게 됐다. 고양체육관 앞 도보다리에서 상류방향을 올려다 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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