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신문] 오늘은 일요일. 진료가 없는 날은 늘 산으로 향합니다. 산행에 항상 준비하는 게 있습니다. 현미 누룽지입니다. 아내가 현미밥을 프라이팬에 눌려 미리 만들어 둔 현미누룽지를 냉장고에서 꺼냅니다. 큰 솥에 물을 붓고 센 불로 누룽지를 끓입니다. 한번 끓으면, 불을 가장 낮게 낮추고 30~40분 더 끓이죠. 그걸 보온병에 넣고 산중 점심으로 배낭에서 꺼내면 현미누룽지의 깊고 고소한 맛이 느껴집니다. 산행을 같이한 친구들과 함께 먹으면 더욱 꿀맛이죠. 친구들에겐 이건 누룽지가 아니라, 정성이 담긴 수제현미진액이라 눙치기도 합니다. 

저의 저녁밥도 대개는 현미누룽지입니다. 서양사람들은 식전주(에피타이저 와인)를 먹는다는데, 저는 대신 막걸리 한 사발과 간단한 안주로 하루의 피로를 누그러뜨리고, 현미누룽지로 저녁을 마무리합니다. 밖에서 저녁약속이 있는 날도, 집에 들어와 배가 출출할 차면 현미누룽지를 조금 끓여먹고 자는데, 라면처럼 흔한 야식에 비해 속도 편안하고 얼굴도 안 붓고, 다음날 배변하는 데도 더 좋은 듯합니다.

저의 점심도 물론 현미밥입니다. 저는 아침을 먹지 않는 간헐적 단식을 실천 중이라 점심이 가장 중요한 식사입니다. 진료가 있는 날, 저희 병원 구내식당의 줄은 두 줄입니다. 반찬은 모두 같되, 한 줄은 현미밥, 한 줄은 백미밥 줄이죠. 현미밥이 익숙지 않는 젊은 직원들을 고려해 두 줄을 만들었지만, 마음 같아선 백미밥 줄을 없애고 싶기는 합니다. 

먹는 동안 저는 현미밥과 반찬을 따로 따로 입에 넣고 천천히 오래 씹으며 침도 최대한 나오게 하려 합니다. 별로 씹을 게 없는 백미밥에 비해, 현미밥은 오래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올라옵니다.

현미를 좋아하게 된 것은, 현미 덕에 저의 젊은 시절 오랜 고민이 해결되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변비. 저질체질이라 스스로 얘기할 만큼 어렸을 적부터 감기를 달고 살았고, 소화가 어려웠고, 변비가 오락가락 했습니다. 그러다 마음먹고 현미를 기본으로 한 밥상으로 바꾼 다음 매일 아침 쾌변의 시원함을 봅니다. 의도치 않았지만, 체중도 약간 빠졌고요. 

현미를 포함한 통곡물(whole grain) 의 의학적 이점을 다룬 연구는 무수히 많습니다. 탄수화물만 덩그러니 남겨져 있는 백미에 비해 현미는 탄수화물뿐만 아니라 지방 단백질 무기질 등 무수히 많은 자연 영영소가 포함되어 있어 당뇨 고혈압 변비를 줄인다는 것입니다. 

또 현미의 식이섬유가 장내세균 중 유익균의 먹이가 되어 장내환경을 개선한다 합니다. 장내세균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인식이 점차 확장되면서, 현미에 대한 관심도 올라가는 흐름도 감지됩니다.

현미 먹기를 주창하고 나선, 사회운동가 강지원 변호사의 책, 『주식혁명(主食革命)』에 의하면, 우리가 백미를 먹게 된 것은 1910년대 일본에서부터 도정기술이 들어오면서부터였다고 합니다. 그전까지 우리조상들이 먹던 모든 밥은 현미였겠죠. 최근으로 오면서 그전엔 많지 않았던 대장암이 급증하고 있는 이유를 백미를 포함한 여러 가공탄수화물에서 찾는 주장도 많습니다. 

몸에서 나가야할 대변이 몸에 쌓이게 되는 변비는 절대 약으로는 해결할 수 없고, 오직 식생활의 변화를 통해서만 고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런 식생활 변화의 으뜸이 현미라는 것을 제 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김혜성 
사과나무의료재단 이사장, 치과의사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