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드신 분들은 무슨 맛으로 살까?
대학을 졸업할 무렵이던가, 한 친구 녀석이 “이제 우리도 꺾어진 오십이다.”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오십은커녕 마흔도 내 인생에 다가오지 않을 나이로 생각하던 때였죠. 그러니 “꺾어진 오십”이라는 그 말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영원히 이십대처럼 살다가 결판을 봐야 하는데, 웬 오십타령이야.’ 이런 마음뿐 나도 나이가 먹을 수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세월은 어김없이 흐르고 마흔을 후딱 건너 쉰도 훨훨 지난 나이가 되었습니다. 이 과정을 간추려 말하면, 나이가 드는 딱 그만큼만 나이듦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역설적 상황이었다고나 할까요? 그러다 오십 중반을 지나면서 비로소 나이 들어서 얻을 맛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아직도 한편에서는 언제나 마음은 이십대 후반에 멈추어져 있다고 여기고 있지만요.
고양신문과 건강넷이 함께 한 이번 기획에서 비로소 나이 드신 분들은 무슨 맛으로 살아갈까 하는 이 물음을 처음으로 실감나게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 어르신들의 생생한 인터뷰 덕분입니다.
한결같이 부지런히 몸을 놀리다
사실, 이 물음은 박완서 작가가 『너무도 쓸쓸한 당신』(창비, 1998)을 펴내며 쓴 서문에서 던진 것입니다. 이 소설집에 묶인 작품들은 작가의 눈에는 “젊은이들이 보기엔 무슨 맛으로 살까 싶은 늙은이들 얘기”가 대부분입니다. 작가 자신이 나이 들면서 나이 듦에 대해 깨달은 바를 바탕으로 한 작품들이겠지요. 작가는 젊은이들에게 큰 비밀을 알려주듯 이렇게 말합니다. “늙은이 너무 불쌍해 마라, 늙어도 살맛은 여전하단다.”
여기에다 진짜 비밀도 알려줍니다. 나이 들어서 재미있게 살 수 있는 네 가지 즐거움입니다. “적당한 육체노동, 맛있는 식사, 마음에 맞는 사람끼리 미운 사람 욕하기, 그리고 편한 자세로 좋은 책 읽기.”
너무 뻔하고 소박한가요? 저는 작가가 꼽은 이 목록을 음미할수록 인터뷰한 어른들 모습이 떠올라 더 실감이 납니다. 적당한 육체노동은 거의 모든 어르신에 해당하겠지요. 어린이들에게 신나는 마술을 보여주는 어르신이든, 평생 바느질로 다른 분들에게 봉사해 오신 분이시든, 주말마다 밭에 나가시는 어르신이든, 인터뷰에 응한 어르신들이 한결 같이 부지런히 몸을 놀리십니다.
여든 넘어서도 소년 소녀같은 어르신들
소식하신다는 어르신들이 참 많았는데 그분들 가운데서도 편식하지 않고 이것저것 맛있게 드신다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심지어 구운 마늘을 하루에도 열 통씩이나 드신다는 소년같은 어르신도 계셨고, 지금도 친구들과 맛있는 안주에 술 한잔 기울이기를 즐긴다는 어르신도 계셨습니다.
책 읽기는 작가이므로 일상 같은 일일 텐데, “마음에 맞는 사람끼리 미운 사람 욕하기”를 큰 낙으로 꼽은 대목에서 박완서 작가가 참 솔직하기가 거침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읽는 작품마다 담백하면서도 깊은 힘이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들 때가 많았지요. 그런 힘이 작가의 이런 솔직한 성격에서 비롯되었나 봅니다. 누구나 즐기는 일이지만 쉽게 드러내 놓고 말하지 못하는 바를 작가는 스스럼없이 인생을 사는 낙으로 꼽습니다.
우정의 향연처럼 진행된 공동의 작업
이번 기획 전체를 되돌아 보면, 우리 건강넷 회원들 편에서는 ‘우정의 향연’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삶의 고비마다 근처 마을 숲에서 마음도 몸도 치유한 이야기, 산책이든 과일이든 누룽지든 글쓰기든 자신에게 맞는 음식과 활동으로 꾸려가는 일상의 건강법, 책 읽는 맛의 풍미를 더하는 책 이야기, 술이든 약이든 자연의 기운이든 찬찬히 들여다보는 전문의료인의 시선, 텃밭일을 통해서든 아무 일도 하지 않을 자유를 통해서든 은퇴 후의 풍성한 삶을 구상하는 글까지, 우리 회원들의 글을 읽으며 크고 작은 기쁨을 누렸습니다.
박완서 작가가 노년을 살아가는 맛에 대해 말했지만, 작가는 “내가 맛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게 단맛만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깊이 새길 만한 말을 덧붙입니다. “쓰고 불편한 것의 맛을 아는 것”, 그것이 “연륜”이라고 말이죠. 앞으로 칼칼한 맛이나 알싸하게 기분 좋은 맛부터 호되게 매운맛까지 이런저런 맛들을 어쩔 수 없이 겪게 되겠지요. 이런 어려움을 이겨내려면 장광복 어르신 같으면 “용서, 이해, 너그럽게 참아주기”, 이런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하시겠지요. 마사 누스바움 같으면 “유머, 이해, 사랑” 이런 마음을 꼽을 테구요. 그런데, 마사 누스바움의 말처럼 이런 마음들을 받쳐주는 건 결국 우정일 것입니다. 입에 쓰고 불편한 맛을 아는 “연륜”을 쌓는 일, 건강넷 친구들의 첫 출발이 이제 시작된 듯합니다.
임영근 / 건강백세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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