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의 그림을 사실적이지 않다고 비난한다면?
[고양신문] 최근 개봉한 영화 ‘자산어보’에는 유배지 흑산도의 수산생물을 직접 조사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어류 도감 '자산어보'를 남긴 정약전과 함께 창대라는 물고기 박사 어부 청년이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귀양살이 온 정약전은 사서삼경을 가르쳐 주고, 창대는 흑산도 근해의 물고기를 가르쳐 주고. 서로가 서로에게 든든한 스승이 되어주는 배움의 품앗이로 두 사람은 도타운 사이가 되어간다. 그러나 두 사람이 생각하는 좋은 세상은 서로 결이 다르다. 성리학이 무너졌기에 관리가 썩고 백성이 고통받는다 생각하는 창대는 과거에 응시해 백성을 이롭게 하는 목민관이 되고자, 뜻을 품고 뭍으로 나간다. 그러나 서학을 접하여 성리학의 좁은 울타리를 훌쩍 넘어선 정약전에게 부패한 조선의 노멀은 이미 수명을 다했다. 뉴노멀의 필요성을 확신하는 약전은 갸륵하나 순진한 이상을 품은 창대가 안타깝다.
물론 역사적 사실 너머 영화적 상상력이 가미된 이야기다. 영화의 주된 시선은 시대를 앞서간 뛰어난 지식인 정약전의 탐구정신과 인간애에 맞춰졌지만, 18세기 후반 당쟁과 과도한 세금 수탈로 핍절된 민생을 담아내 위기의 양상은 다양해도 위기의 본질은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다는 무거운 목소리를 전달한다.
의료 분야의 ‘너머’를 이야기하는 책이 있다. 이 책 『한의원의 인류학』 의 저자 김태우는 “코로나 위기는 우리에게 노멀 너머를 상상하라고 강요하고 있다” 라고 말한다. 또한 팬데믹이 촉발한 뉴노멀의 위기(또는 기회)를 신자유주의 갱신을 위해서만 사용한다면, AI 기술과 비대면 경제만 키울 작정이라면, 노멀 너머는 이미 없다고 경고한다.
얇은 두께에 비해 생각거리가 꽤나 빡빡한 밀도 높은 책이다. 화학을 전공해 미국에서 문화인류학 박사과정을 마치고 현재 경희대 한의대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는 사회문화와 의료의 상호 관계, 의료에 내재한 존재론 및 인식론 연구자로서 철학, 예술, 인류학의 거울에 비친 의료의 다양한 얼굴을 묘사하고 은유한다.
예컨대, 대상과 거리를 두고 세계를 그리는 사실주의 화풍을 기준으로 화가와 세계 사이의 상호 작용과 흐름에 주목하는 고흐와 같은 후기 인상주의를 사실적이지 않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 순간의 현상을 표현하기 위해 선행하는 원근법과 기하학이라는 고정된 시선의 틀에 매몰되지 않고 세계와 생명의 흐름에 관심을 갖는 후기 인상주의는 동아시아 의학과 '흐름' 을 공유한다.
의학적 현상을 드러내는 주체와 대상이 관계 맺는 방식이 다른 상황에서 서양의학과 동아시아 의학의 언어는 다를 수밖에 없으므로 한쪽을 객관적이지 않다고 평가하는 것은 맥락을 자른 비난이라는 것이다.
유통되는 언어를 얻기 힘들어 비과학적이라 폄하당하는 한의학의 누명을 벗겨내고 그 위치를 회복시키고자 하는 과정이 퍽 담담하고 간혹 쌀쌀하여 오히려 미더웠다. 그의 주된 관심은 다른 이야기, 다양한 의료‘들’, 복수의 세계‘들’ 이 부여하는 가능성에 있어 보였기에.
말은 권력관계의 산물이다. 언어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사회적 약자가 참여할 자리는 없다. 근대화 곧 서구화의 길을 걸어온 의료의 언어도 예외 없이 통용되는 말로 생각하고 표현되었기에, 서양 의학의 진단과 치료가 정(正)답 아닌 정(定)답으로 고정되었다.
수많은 다름과 차이의 광장에 놓여 있는 우리 삶에 고정된 답(정답)이란 과연 어느 항목에서 존재하는걸까. 지구 환경은 물론 정치·경제·사회 모든 영역에서 막다른 골목에 닿은 지금,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식의 사유에 갈증을 느끼고 다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사실 “뉴노멀은 특정 위기 시기에만 요구되는 덕목이 아니라 끊임없이 갱신되어야 하는 생명의 본성이다. 삶에는 正常, 노멀한 상태가 없는 법(정희진)”이니까. 아픔을 느끼며 치유를 간절히 원하는 실존적인 몸은 하나이므로, 양의와 한의가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말을 얻게 되었으면 좋겠다.
홍유경 건강넷 / 약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