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신문] 휴대전화 알람 소리에 잠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아침잠의 달콤함을 즐기는 가족이 깨지 않도록 조용히 옷을 챙겨 입는다. 헬스장으로 가는 길에는 벌써 갈 길 바쁜 사람들로 분주하다. 헬스와 골프 연습과 샤워를 끝내는 데 2시간 넘게 필요했다.

그는 아무것도 안 해도 운동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내와 자녀들이 출근한 집은 한가롭다. 딸이 키우는 라라(고양이) 만이 집안을 어슬렁거린다. 한바탕 출근으로 어질러진 집안 정리를 마치는 데 또 한 시간은 소비되었다. 그리고 차 한 잔 마시면, 그만의 시간이 시작된다. 지금 그의 직업은 가사다.

그는 오래전부터 퇴직을 꿈꿨다. 하지만 정년이 되어서야 그 꿈을 이뤘다. 그는 35년 동안 직장인이었다. 지금 그는 가사라는 직업에 만족한다. 지난 많은 세월 그 누군가를 위해 일했다. 그리고 그 대가로 경제적 필요를 해소했다. 그러나 가사는 온전히 자신과 가족을 위하는 일이라 믿고 있다. 그래서 그 일이 아름답고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가끔 지인들이 그에게 안부를 물으면, “운동하고, 독서하고, 여행하고, 친구 만나며 소일하고 있어”라고 답한다. 그의 주변에는 노동이 필요 없는 상황에서도 열심히 일하는 이들도 많다. 어떤 이들은 쓰지도 못할 돈을 버느라 힘겨운 노동을 해내는 이도 있다. 물론 좋은 일이다. 가계를 더 부유하게 하고 국가경제에도 도움이 된다. 그러나 열심히 일해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했다면, 이제 노동으로부터 해방돼도 좋다고 생각하는 그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노동을 경멸했다. 노동은 노예들이 하는 일이었다. 노동을 많이 하면 신체와 정신이 망가진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노동은 신성하고 존엄한 것이 되었다. 프로테스탄트가 그랬고, 자본가들이 그랬고, 공산주의자들이 그랬다. 자본주의는 일하지 않는 자들을 부끄럽게 만들고 있다. 철학자 니체는 “현대인들은 노동의 존엄이라는 체면에 빠져 본인이 노예라는 사실을 잊고 살아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근면한 사람은 존경받는다. 그 대가로 시력과 건강을 해치고 정신의 독창성과 참신함까지 상실해 버렸다. 사회가 노동하지 않을 수 없게 내몰면서, 노동을 자유로운 선택의 결과인 양 떠드는 것은 사기다. 우리는 노예를 수치스러운 존재로 알면서도 사실상 임금 노예인 나 자신을 인식하지 못하고, 노동을 찬미하는 일에 동참한다. 사실 현대인은 노예이면서 노예라는 사실을 잊은 지 오래다. 

살아있는 생명체는 모두 생존하기 위해 노동해야 한다. 그러나 먹고사는 영역 밖의 노동은 다시 생각해 볼 문제다.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된다면,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 노동을 줄이고 여가를 늘리고, 봉사활동 등 돈이 안 되는 활동을 늘려가야 한다. 니체의 말대로  노동은 숭고한 것도 신성한 것도 아니다. 그저 피할 수 없는 선택일 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은퇴 전후에 있는 사람들은 은퇴 후 어떤 삶을 사느냐의 문제로 함정에 빠지곤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누구도 살아보지 못한 전인미답의 삶을 살아야하기 때문이다. 삶에 대한 철학이 필요하듯, 은퇴 후의 삶에 대한 철학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그는 은퇴 생활 3원칙을 정했다. 그것은 첫째, 돈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 둘째, 내가 내 시간을 온전히 통제하며 산다. 셋째, 끊임없이 배운다.

 만일 노동으로부터 자유롭게 될 상황이 왔다면, 모든 강박에서 벗어나 은퇴를 즐길 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은퇴 생활의 즐거움을 자녀나 타인에게 빼앗기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인간은 노동하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존재다. 어차피 인간이 하던 일의 대부분은 기계나 로봇이 대신하는 미래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하지 않는 시대가 도래한다. 노동하지 않고도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방법을 얼마든지 있다.

심군섭 건강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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