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신문] 요즘 젊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대표적인 먹을거리 중의 하나가 카페에서 파는 ‘라떼’라는 말이 있지요. 기성세대가 자신들에게 말을 건네는 대표적인 방식 즉 “나 때는 말이야”를 비꼬고 풍자하고 거부하는 몸짓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물론 일부 젊은이들의 나름 재치 있는 표현을 지나치게 일반화해서 전체로 확대시키는 일반화의 오류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꽤 많은 젊은이들의 공감을 얻고 있기는 한가 봅니다.

저는 이러한 ‘라떼’에 대한 거부 표현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수긍이 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당혹스럽기도 합니다. 수긍이 된다는 것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젊은 세대는 기성 세대의 논리와 의지를 반박하고 거부하고 저항하면서 새로이 자기들의 시대를 만들어 왔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것이 인류 역사의 진보를 만들어낸 가장 기본적인 동력이라는 점 때문이지요. 기성세대에 순순히 복종하고 따르는 젊은 세대는 역사상 존재한 적도 없었고 설사 존재한다고 해도 그것은 매우 비극적인 일이겠지요. 
 
그러나 또한 당혹스럽기도 합니다. 나이 든 세대가 젊은 세대에게 해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것이 사실상 “나 때는 말이야”의 반복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나 때는 말이야”는 나이 든 이들의 역사를 의미하지요. 자신이 살아온 삶의 궤적과 그 과정에서 겪어온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체험과 그 속에서 얻은 깨달음들을 젊은 세대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의지를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말이 바로 “나 때는 말이야”입니다. 그런데 젊은이들이 ‘라떼’를 싫어하고 거부한다는 것은 나이든 자들의 역사를 거부하는 것이며 거기에서 배울 게 없다는 선언이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참 씁쓸합니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자문해 봅니다. 나의 삶의 역사에서 과연 나는 젊은 세대에게 줄 가치 있는 무엇이 있는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혹시 오만이나 착각이 아닐까? 없다고 생각하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등등의 생각이 꼬리를 뭅니다.  

저는 30년에 걸친 직장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이제 곧 닥치게 될 노년기를 준비하는 입장이기도 합니다. 나름 열심히 살았다고 자위하기도 하지만 가슴 한 켠에서 묘한 무력감 같은 것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것을 어찌할 수는 없습니다. 오랜 노동의 결과로 만들어진 약간의 물질적 자산, 함께 늙어가는 마누라와 얼마 있으면 떨어져 나갈 두 딸들 외에는 없지요.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곧 60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내 손으로 직접 지은 집도 없고, 내 손으로 만든 옷도 없으며, 내 손으로 길러낸 농작물로 나의 몸을 채우지도 않았고, 내 손과 머리로 좋은 책도 쓴 적이 없습니다. 즉 나는 나의 삶과 나를 둘러싼 인간과 사물들에 직접적으로 관계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나로부터 소외되어 있고 나를 둘러싼 인간과 사물들은 나와 직접적으로 친교와 우정을 맺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삶이 사실상 매개적으로만 구성되어 있는, 즉 삶의 직접성이 사라진 존재는 사실 타인에게 줄 것이 거의 없을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비어 있는데 남을 어찌 채우겠습니까. 그 비어 있음이 지혜로운 비어있음이 아니라 내게 낯설은 잡동사니들로 가득한 비어있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러니 젊은 사람들이 “라떼는 싫어”라고 외칠 때 그 앞에서 느끼는 당혹감은 사실상 내 삶의 역사의 빈 공간이 드러나는 느낌일 것입니다.

하지만 크게 슬퍼하거나 절망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현재 그 비어 있는 내 삶의 공간을 채우기 위한 일들을 조금씩 또박또박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작은 땅에서 주말농사도 짓고, 두 발로 우리의 산과 들을 오랫동안 꾸준히 걷고 있으며, 집에서 여러 음식도 직접 만들기도 하며, 혼자서 혹은 여러 사람들과 좋은 책들을 읽고 보고 토론하며 지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그동안 부족했거나 결여되어 있던 내 삶의 직접성을 회복시키려는 노력이지요. 이러한 노력이 어느 정도나 결실을 맺을지는 모르지만 일정 시간이 흐른 후에 내 앞에 있는 젊은이들에게 아주 당당히 그러나 그윽한 눈길과 부드러운 목소리로 당혹감 없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 때는 말이야!”                          

 이규상 / 건강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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