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처럼 해맑은 82세 현역, 고순자 간호사 님
건강넷·고양신문 공동진행 건강도시 심층기획
‘어떻게 나이들어야 할까’
잘 먹고 자고, 잘 움직이고
하루 한 번씩 설거지하듯이
머릿속 안 좋은 생각 비운다
나이 들어 딴 자격증 수십 개
카톡 유튜브 젊은이만큼 척척
요즘은 워킹수업, 더 건강해져
[고양신문] 82세에 요양병원에서 현역 간호사로 일하시는 분이 이번 인터뷰 대상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처음 떠오른 느낌은 ‘놀라움’이었다. 보통의 상식으로 생각하자면 82세는 요양병원에서 다른 사람의 돌봄을 받을 나이가 아닌가. 일반 직장이면 20~30년 전에 벌써 은퇴했을 나이에 이렇게 젊고 활기차게 사시는 분의 삶은 어떨까 궁금했다. 물어보고 싶은 것, 듣고 싶은 이야기도 많아서 질문할 내용을 간단히 정리해 고순자 간호사님께 카톡으로 보냈다.
다음날 고순자 님은 ‘성실하게 답변하겠다’는 답장과 함께 요양병원에서 일하는 사진과 요즘 배우고 있다는 시니어 모델 사진 몇 장을 보내오셨다. 그 후에도 답변을 준비하는 내용을 계속 보내오시고, ‘코로나 백신 접종을 했는데, 아무 증상이 없어 너무 행복하다’는 말씀도 하셨다. 고순자 님은 답장을 할 때 항상 하트를 붙여 보내셨다. 그냥 평범한 하트 한 개를 붙일 때도 있고, 빨간 하트 세 개를 붙일 때도 있었다. 그런 답장을 받으면 ‘정말 밝고 쾌활하신 분이구나’라는 생각에 카톡을 읽는 내 얼굴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데도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던 분처럼 느껴졌다. 일요일에 인터뷰하러 가는데, 오랫동안 뵙지 못한 친척 어른을 만나러 가는 기분이었다.
‘애천건강연구회’라는 팻말이 붙은 오피스텔 문을 열고 들어가니, 현관에 화사한 후리지아 조화가 놓여 있었다. 오피스텔 창밖으로는 화정동 성당 건물과 작은 공원이 내려다보였다. 고순자 님은 우리가 오는 시간에 맞춰서 맛있는 만주와 VIP 손님에게만 대접한다는 체리를 준비해 놓으셨고 따끈한 생강차를 내오셨다. 손님을 맞이하는 것이 익숙하게 몸에 밴 모습이었다. 화기애애하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 어떻게 간호사를 하게 되셨나요.
친정집이 해방 전에 만석꾼 집안이었어요. 어머니는 자식을 열두 명 낳으셨는데, 여섯 명이 전염병으로 죽고 아들 둘과 딸 4명만 살아남았어요. 형제들은 모두 고등교육을 받았고, 내가 막내딸이었어요. 큰오빠는 나와 20살 차이가 났는데 서울 약대를 나오고 화학 연구소에서 근무했어요. 1957년에 연희전문과 세브란스가 합쳐지면서 연세대학교가 탄생할 때, 큰오빠가 저보고 간호학과를 가라고 했어요. 1958년에 간호대학에 56명이 입학했는데 40명이 졸업했죠. 지금 생각하면 그때 간호대학 가기를 참 잘한 것 같아요. 약대, 가정대 나온 애들도 모두들 지금까지 일하는 나를 부러워한다니까요.
▍ 대학 졸업 후에는 어떻게 사셨나요.
간호대학을 나와서 보건소와 보건복지부에도 근무하고, 경희대학교에서 ‘보건 간호’와 ‘간호 윤리’를 강의하기도 했어요. 그렇게 10년을 일했는데 나도 애를 넷 낳아서 키우니까 집에서 할 일도 너무 많고, 사업하는 남편 뒷바라지도 해야 해서 10년 직장생활을 그만뒀죠. 그러다가 1980년대에 남편 사업이 부도가 나서 다시 직업 전선에 나가게 되었어요. 그때 남편 부도 막느라 정말 힘들었어요. 아들이 군대를 장교로 가고 싶어 했는데 아버지가 빨간 줄이 있으면 장교를 못 하잖아요. 친구들 도움도 받고 열심히 일해서 빚 다 갚고 다시 일어섰어요. 남편 부도났을 때가 내가 45살이었는데 빚이 너무 많고 매일 빚 독촉 전화가 오고 그러니까 내가 연탄가스를 먹고 자살하려고 했어요. 그러다가 ‘아이고, 내가 죽으면 애 넷은 누가 키우나’ 하는 생각이 드니까 죽을 수도 없더라구요. 내가 그때 남편 부도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지, 지금도 ‘부도 강의’하라면 할 수 있다니까요. (웃음)
▍내가 남들보다 건강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첫째가 나는 긍정적 마인드로 살아요. 그리고 몸이 건강한 편이에요. 오복의 하나가 치아가 튼튼한 거라고 하는데, 나는 이 치아가 다 내 꺼에요. 음식을 잘 먹고 장기가 음식을 다 잘 소화시켜요. 기운이 딸리면 추어탕, 갈비탕도 막 먹구요. 아들이 한 달에 한 번씩 추어탕을 사주는데, 그거 먹으면 기운이 나요. 지금껏 살면서 큰 병치레 한 적은 없어요.
▍건강을 위해 드시는 음식이 있으세요.
내가 작년부터 황창연 신부님의 유튜브 강의를 듣고 있어요. 황 신부님은 ‘행복한 노년’, ‘행복 특강’, ‘자신 껴안기’ 같은 강의를 하시는데 강의가 정말 좋아요. ‘살아 있을 때 여행 많이 다니고 돈 번 거 다 쓰고 가라’고 하세요. 신부님이 평창 성필립보 생태 마을에서 만들어서 파시는 청국장 콩, 청국장 가루가 있어요. 작년 5월부터 청국장 가루를 하루에 2봉씩 먹고 있어요. 청국장을 먹으면 장이 튼튼해지고 면역력이 높아져서 병에 잘 안 걸려요. 아침 식사 대용으로 먹고 있구요. 점심은 내가 모임도 많고 약속도 많거든요. 주로 사람들 만나서 외식하는데 맛있는 거로 잘 먹죠. 오늘도 미사 끝나고 교우들과 보리밥에 칼국수를 먹고 왔어요. 저녁은 내가 요양병원 야간 근무를 하는데, 간호사실에 빵이나 과일이 있어서 그걸 먹죠. 집에서는 생활비가 거의 안 들어가요. (하하)
▍ 요즘 새롭게 배우시는 게 있으신가요.
내가 몸도 건강하고 다른 데는 다 좋은데, 걷는 자세가 안 좋아요. 종종걸음으로 구부리고 걷나 봐요. 언니도 ‘너 왜 그렇게 걷느냐’고 하고, 성당 신부님도 나만 보면 ‘허리 펴고 오세요’하고 자꾸 흉을 보시더라구요. 놀림 받는 게 싫어서 안 좋은 걸음걸이를 고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한만희 한국유머웃음전략연구소장님이 양재역에 있는 워킹 교실을 소개해 줬어요. 거기 가면 2시간씩 워킹을 배우는데 자세를 교정해 줘요. 걸음만 잘 걸어도 자세가 좋아지고 고관절, 허리 통증이 다 사라졌어요. 화정역에서 집까지 걸어오는데, 예전에는 한두 번씩 쉬었는데, 지금은 한 번에 걸어와요. 워킹 끝나면 포토 수업이라고 예쁜 옷 입고 사진 찍는데 시니어 모델 같은 거에요. 너무너무 재미있어요.^^
▍ 평소에 어떤 마음으로 생활하시나요.
제 생활신조는요. 잘 먹고, 잘 자고, 잘 배설하고, 많이 움직이고, 마음 비우고 내려놓기, 명상하기, 자세 똑바로 하고 운동하기에요. 하루에 한 번씩 설거지하듯이 머리 속에 안 좋은 생각을 비워요. 자기 전에 누워서 잠이 안 오는 20~30분 동안 마음을 비워요.
내가 이런 걸 어디서 배웠냐 하면요, 어렸을 때 어머니가 절에 다니셨어요. 한번은 어머니께 간식 가져다 드리러 절에 갔는데, 주지 스님이 저를 부르시더니 ‘네가 원하는 게 뭐냐’고 물으셨어요. 내가 ‘공부하고 싶어요’ 이렇게 대답하니까, 자기 소원을 이루는 3가지 방법을 가르쳐 줬어요. ‘아침에 눈 뜨면 5분간 아무 생각하지 말고 명상해라. 아침 첫발을 힘차게 내디뎌라. 아침 첫마디를 좋은 말로 시작해라’는 거였어요. 유명하신 어른들은 많은 말을 하지 않아요. 딱 한 마디라도 인상 깊게 기억나게 하시죠.
▍원래 성격이 이렇게 밝고 명랑하셨나요.
원래는 내성적이어서 질문도 안 하고 소극적이었어요. 그런데 60세 때부터 호르몬이 뒤바뀌는지 활발해 지더라구요. 동창회 회장직을 맡으면서 남 앞에서 말할 기회가 많았는데, 처음에는 잘 안되더니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잘 말하게 되더라구요. 주변에 80살 넘어서 일하는 사람이 없어요. 나도 내가 이렇게 늦게까지 일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요. 남들은 늦은 나이에 공부하고, 자격증 따고, 일하고 힘들지 않냐고 하는데, 일이 있으니까 더 좋아요. 몸이 안 아프니까 일을 해야 하고, 내가 봉사하니까 더 보람 있고 즐겁죠. 그리고 내가 일을 해서 당당히 돈을 버니까 자식들에게 용돈이나 생활비를 안 받고 살아요. 자녀들에게도 신세 안 지고 남들에게도 폐 안 끼치고 사니까 얼마나 좋아요. 머릿속에 근심 걱정도 없고, ‘나같이 행복한 여자는 없다’고 자부해요.
▍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해주실 말씀 있으면 해주세요.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공부하고 배워야 한다는 얘기를 항상 해요. 즐거운 일에 대한 호기심을 가져야 하구요. 그림이든, 노래든, 운동이든 죽을 때까지 배우고 공부해야 해요. 나는 여행 갔다 오면 사진 찍어서 밴드에 다 올려요. 유튜브에서 새로운 정보도 많이 접하니까, 내가 아는 걸 후배들에게 가르쳐 줘요.
고순자 님을 만나고 오는 길에 윌리엄 워즈워스의 ‘무지개’라는 시가 떠올랐다.
하늘의 무지개를 보면
내 가슴은 뛰누나
나 어렸을 때도 그랬고
어른이 된 지금에도 그렇고
늙어서도 그러기를 바라노니
그렇지 않다면 죽음이나 다름없으리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바라노니, 내 생애의 하루하루가
자연에 대한 경건한 마음으로 이어지기를.
새로운 것을 배울 때마다 ‘얼마나 신나고 재미있을까’를 생각하는 고순자님은 무지개를 보면 가슴이 뛰는 아이였다. 80대에도 아이 같으신 분. 호기심 많은 아이의 마음으로 고순자님은 인생을 살고 있었다. 건강한 삶의 비밀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꿈꾸는 그대, ‘하늘의 무지개를 보면 가슴이 뛰는가!’
강영임 (건강넷/국어교사)
관련기사
- 학교에서 몇 발짝만 나오면 숲에 머물 수 있다니요… 아이들 환한 웃음이 마스크 밖으로 줄줄 새어 나오고
- ‘이 나이에 별 수 없지’ 하지 않고, 마음을 다잡아요
- 70대 80대 신중년, 복지수혜자 아닌 당당한 소비자
- 나이들수록 점점 동안, 구운 마늘과 쑥뜸 덕분
- 고단한 일상 위로하는 내곁의 다정한 숲 ‘성저공원’
- “없는 게 많았지만, 노력은 많이 했어요. 후회는 안 해”
- “좋은 물을 마시는 것만으로 치매도 암도 예방할 수 있습니다”
- 아흔까지 농사, 그저 살다보니 오래 산 거밖에 없어
- 연두빛 고운 숲으로, 당신과 단둘이 봄 맞으러 가야지
- 바느질 소품 만들어 나눠주는 ‘왕언니’ 96세 장광복 어르신
- 밥을 바꾸면 몸이 바뀌고, 마음이 바껴요... 음식과 몸과 마음은 하나입니다
- 나이 들면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해져요... 배움은 세상과의 소통이자 살아있는 이유
- 생명의 존엄성을 지키며, 마지막까지 정성껏 사는 길
- 내 몸이 잘 기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해요
- 건강해지려는 모든 노력은 ‘피 맑게 하는 것’... 부항 하고, 좋은 물 먹고, 마음 편하게 해주세요
- 의사도 못 고친 피부병, 몸 두드리며 6개월 만에 회복... 만병의 원인 노폐물, 매일매일 두드리면 떨어져 나가요
- 노인 시기는 끝이 아니라 더 영글어지는 시기... 몸은 줄어들지만, 마음은 더 자랄 수 있어요
- 어르신 인터뷰 -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한 나만의 지혜
- 5개월의 건강기획을 마무리하며 - 늙어도 살맛은 여전하단다, 재밌게 사는 비밀
- 어떻게 나이 들어야 할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화두를 던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