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현역 외교관 부부 - 90세 이복형 전 중남미대사와 88세 홍갑표 중남미문화원 이사장

건강넷·고양신문 공동진행
건강도시 심층기획 ‘어떻게 나이들어야 할까’ 

‘이 나이에 별 수 없지’ 하지 않고, 마음을 다잡아요
나이 막지는 못하지만, 제 몸은 용을 쓰고 있답니다 


영원한 현역 외교관 부부 
90세 이복형 전 중남미대사와 
88세 홍갑표 중남미문화원 이사장

일어나자마자, 점심과 저녁, 하루 3번 
국내외 주요 신문과 방송 챙겨 보고
외교부 후배들에게 참고자료도 전송
여전히 현역처럼 부지런히 일한다 
식사는 각각 챙기거나 챙겨주거나
설거지와 장보기도 운동 삼아 함께 

[고양신문] 이색적인 정원과 조각품들을 둘러볼 요량으로 약속된 시간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중남미문화원에 도착했다. 정문으로 다가가자 정원에 웅크리고 앉아 잡초를 뽑고 있던 이사장님이 반갑게 맞아주셨다. 환영 인사를 건네는 활기찬 목소리에 압도되어 정원은 둘러볼 생각도 못하고, 이사장님이 이끄는 대로 자리를 옮겼다. 도무지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힘차고 빠른 걸음으로 우리를 안내하고, 활기찬 목소리로 대사님을 소개하는 이사장님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연구실 내 원형테이블에 둘러 앉아 찾아온 이유를 밝혔다. “어떻게 지금까지 건강하게 사시는지 알고 싶어 왔어요.” 그러자 대사님은 울림 좋은 목소리로 거침없이 말씀을 이어가셨다.   

“내가 80세까지 팔팔 뛰었고, 85세까지도 마당일을 했어요. 내 장점이랄까 특징은 부지런한 거예요. 젊은 시절부터 그랬어요. 중남미 네 나라의 대사를 할 때부터 간판 닦는 일도 내가 다 했어요. 이제는 허리가 아파 직원들에게 시키지만.

100살을 바라보는 90살이기는 한데, 지금도 6시 30분이면 눈이 저절로 떠져요. 일어나면 먼저 허리가 뻑뻑해서 허리밴드를 하고, 커피를 갈아서 머신에 넣어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정문까지 100여 미터 걸어가서 신문을 가져오는데, 그때쯤이면 커피가 내려져 있죠. 그러면 커피 한 잔을 여기 이 사람(홍갑표 이사장님)에게 가져다 바치고, 나 한 잔 하면서 신문과 뉴스를 보죠. KBS, NHK, CCTV, CNA 같은 뉴스를 다 챙겨봅니다. 고양신문이 오면 그것도 보고요. 

그리고 10시 반쯤에 20~30분 정도 문화원을 돌아봐요. 눈에 띄면 잡풀도 뽑고요. 그리고 11시부터 한 시간 동안 컴퓨터 인터넷으로 외신을 검색해 봅니다. 일본과 미국의 우파와 좌파 신문, 중국 신문을 모두 보는데, 요즘은 디지털뉴스도 회원가입을 하지 않으면 타이틀만 보여줘서 참 아쉬워요. 그래도 그걸 다 훑어보고, 12시가 되면 세상없어도 ‘12시 뉴스’를 보죠. 

그때쯤이면 출출한데, 이 사람은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어요. 워낙 일이 많은 사람이라서. 식사는 내가 알아서 챙겨 먹어요. 특별히 먹을 게 없을 때에는 있는 재료로 파스타를 만들어 먹어요. 고맙게도 이 사람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맛있는 빵이라든가 반찬들을 많이 가져와요. 그걸 찾아 맛있게 먹고, 과일도 썰어 먹어요. 그리고 나는 그때그때 설거지를 다 해요. 저녁에도 이 사람이 먹을 것을 만들면 맛있게 먹고 설거지는 내가 해요. 그것도 운동으로 생각하고 하죠.“ 

“내가 먼저 가겠지만, 또 그래야겠지만, 만일 혹시라도 이 사람이 먼저 간다면 내가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후회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말 안 해도 부항을 떠줘요. 지압도 해주는데, 내가 일을 많이 해서 손에 힘이 있잖아요.” 이복형 전 대사는 아내 홍갑표 중남미문화원 이사장을 ‘정열의 화신’이라고 표현한다. 문화원의 크고 작은 일정을 챙기느라 새벽에 일어나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는 아내를 보면 마음이 아프다는 그는 바쁜 아내를 위해 커피를 내리고, 잠자리를 정리하고, 점심을 챙기기도 한다.
“내가 먼저 가겠지만, 또 그래야겠지만, 만일 혹시라도 이 사람이 먼저 간다면 내가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후회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말 안 해도 부항을 떠줘요. 지압도 해주는데, 내가 일을 많이 해서 손에 힘이 있잖아요.” 이복형 전 대사는 아내 홍갑표 중남미문화원 이사장을 ‘정열의 화신’이라고 표현한다. 문화원의 크고 작은 일정을 챙기느라 새벽에 일어나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는 아내를 보면 마음이 아프다는 그는 바쁜 아내를 위해 커피를 내리고, 잠자리를 정리하고, 점심을 챙기기도 한다.

▍ 허리가 불편하세요
이복형 : 작년 7월에 사다리에 올라가서 나무전지를 하다가 떨어졌어요. 주위 사람들은 ‘이제 그만 극성 떨지’ 그럴 테지만, 쭉 해오던 일인 걸 어쩌겠어요. 병원에 하루 동안 입원해서 검사해 보니까, 나이가 많아도 골격이 튼튼해서 부러지지는 않았대요, 사이가 좀 벌어지기는 했어도. 수술은 하지 않고 허리밴드와 진통제를 주더군요. 그게 8개월 전인데 작년 말까지는 그런 대로 견뎠는데, 금년 들어와서는 팍팍 쑤시지는 않지만 걷는 데 힘이 들어요. 요새는 언덕 올라갈 때에도 가파른 데에는 돌아서 올라가요.  

요 말씀을 잘 들으세요! 몸이 아프니 ‘에이, 이 나이니까 별 수 없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그럴 때마다 ‘아니야, 그런 생각을 하면 노쇠현상이 자꾸 더 생겨’ 하면서 마음을 다잡아요. 그러니까 막지는 못하지만 기를 쓰고 저지하기 위한 노인의 처참한 투쟁인 거예요. 얼굴은 멀쩡해도 몸은 그렇게 용을 쓰고 있답니다. 

그리고 오후에는 먹거리가 떨어지면 과일 같은 걸 사러 마트까지 20여 분, 1200보 정도를 걸어가요. 눈이 오는 날에도 넘어질까 조심하면서 걸어가죠. 그리고 올 적에는 짐도 있으니까 택시를 타요. 택시 타면 4800원인데, 부르면 1000원 더 줘야 되죠. 

돌아오면 한 시간 정도 딱딱한 침대에 누워 있어요. 그러면 몸이 편해지죠. 그러고 다시 일어나서 『문예춘추』라는 약간 보수적인 일본 월간지를 읽어요. 일본 돌아가는 것을 살펴보고, 대단히 불행하게 꼬이고 엉켜 있는 한일관계에 대해 그쪽 시선으로 적은 걸 보는 거죠. 그러고 나면 가만있질 못하고 청와대나 외교부에 나가 있는 후배들에게 이메일을 보내요. ‘『문예춘추』에 이런 게 나오는데 참고해라’ 하고. 

 ▍이사장님 건강은 어떠신가요
이복형 : 이 사람도 온 몸이 쑤시고 아프지. 그래서 내가 부항을 이틀에 한번 정도를 해줘요. 허리 아픈 다음부터는 그게 힘든데 그래도 꼭 해줘요. 내가 먼저 가겠지만, 또 그래야겠지만, 만일 혹시라도 이 사람이 먼저 간다면 내가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후회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말 안 해도 부항을 떠줘요. 지압도 해주는데, 내가 일을 많이 해서 손에 힘이 있잖아요. 목덜미, 장딴지, 팔, 허리 다 해주는데, 저 나이치고 아직 다리에 살이 붙어있는 게 괜찮아 보여요. 저 사람은 관심 없는 일에는 꼼짝도 안 하지만, 관심 있는 일에는 잠시도 쉴 새 없이 오르락내리락 하죠. 그걸 보면 아직도 저 나이에 컨디션이 괜찮다 싶어요. 이런 이야기는 자주 하지 않았는데, 이야기하는 김에 하는 거예요.

▍ 대사님이 늘 관심을 갖고 이사장님의 건강상태나 그날 컨디션을 지켜보시나 보네요.
이복형 : 아, 물론이죠. 새벽에 눈을 떠보면 이 사람이 없을 때가 있어요. 저쪽 방에 나가 새벽 3시인데도 눈을 껌뻑껌뻑하고 있는 걸 보면 마음이 아파요. 스트레스가 많아서 그런 거죠. 그러면 소화도 안되잖아요. 요즘은 그런 대로 괜찮아 보여요. 이 사람은 크든 작든 무슨 행사가 있으면 하나서부터 끝까지 자기가 다 상관을 해야 해요. 적당히 맡겨놓고 해도 되는데… 

그래서 힘들까봐 아침에 잠자리를 정리하고 저녁에 파자마도 챙겨주고, 먹은 것이나 어질러진 책상 정리도 내가 다 해요. 이 사람도 문화원 일을 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내 먹는 것을 다 해주지는 않지만, 그래도 신경을 써줘요. 그럼 난 그럴 때마다 “걱정마라, 여기 먹을 것 많으니까 내 알아서 먹겠다”고 하죠. 어떨 땐 내가 준비를 하고 “와서 밥 먹어” 해요. 난 이 사람이 매일 신경 써주는 게 싫어요. 문화원 일이 좀 많아요. 거기 신경 쓸 거 많은데 내겐 신경 쓰지 말라고 하죠. 이 사람은 정열의 화신이에요. 여기 이 나무들도 50년 전부터 이 사람이 다 심고 가꾸었잖아요.   
   
저희들 둘은 자기 관리를 자기가 해요. 자식도 있고 직원도 있고 친구들도 있지만, 자기가 자기 건강상태나 정신상태를 관리하는 게 제일 좋죠.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게 마음을 다스리는 거죠. 

▍ 몇시에 주무시나요
이복형 : 1~2년 전까지는 11시까지 안 잤지만, 요새는 좀 일찍 자요. 9시 뉴스를 보고 나면 9시 반쯤? 그러면 새벽 두세 시에 한 번 깨서 화장실에 가고 다시 자요. 그렇지 않으면 뉴스를 보죠.  

그러고는 요즘은 뉴스를 보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른다며, 최근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윤여정 배우,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가수 BTS, 유명 발레리나나 피아니스트들,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한 한국 기업들도 언급하신다. 얼마나 재능 많고 두뇌 좋은 한국인들인지, 자랑스럽다고 거듭 말씀하신다. 그리고 중남미문화원의 근황도 알려주신다. 한국에 온 멕시코 설치조각가 크리스티나 피네다(Cristina Pineda)의 작품 씨코(XICO) 4개 가운데 하나가 이곳에 왔다고 한다. 서울시문화재단이 추천하는 한국의 미술가들이 하나씩 맡아 페인팅을 했는데, 여기 미술관에 온 것은 ‘한복 입은 씨코’라고 한다. 김동조 작가가 한복을 모티브로 페인팅한 것이다. 또 문화재청과 고양시에서 중남미문화원과 향교, 최영장군묘, 행주산성, 킨텍스를 연결하는 문화루트를 만들려고 한단다. 일목요연한 설명도 그렇지만, 더 놀라운 것은 연도와 날짜, 시간까지 다 기억하신다는 사실이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어디론가 총총 사라진 이복형 대사는 거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오늘의 국내외 주요 뉴스를 검색하고 있었다. 하루 3차례 주요 뉴스를 체크하고, 연관된 각국의 반응을 인터넷으로 검색하는 일은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일과다. 홍갑표 이사장은 “우리 대사님은 출근만 안 했다 뿐이지 아직도 외교관”이라며 “요즘도 중남미 18개국 대사들과도 교류하며 민간 외교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자랑을 아끼지 않는다.
인터뷰를 마치고 어디론가 총총 사라진 이복형 대사는 거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오늘의 국내외 주요 뉴스를 검색하고 있었다. 하루 3차례 주요 뉴스를 체크하고, 연관된 각국의 반응을 인터넷으로 검색하는 일은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일과다. 홍갑표 이사장은 “우리 대사님은 출근만 안 했다 뿐이지 아직도 외교관”이라며 “요즘도 중남미 18개국 대사들과도 교류하며 민간 외교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자랑을 아끼지 않는다.

▍ 이사장님은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홍갑표 : 나는 여기서 일하면서 보내죠. 앉으나 서나 문화원, 문화원 운영에 관한 생각뿐이죠. 요즘은 손님이 많이 줄었어요. 하루 두 명도 안 들 때가 많아요. 전에는 단체도 많이 왔는데. 그러니 운영이 되겠어요? 힘든 건 이루 말할 수 없죠. 문화사업을 개인이 한다는 것은 쉽지 않아요. 그래도 이건 사업이 아니라 유업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하고 있어요. 

▍ 일하시는 것 말고 운동을 위해 따로 하시는 게 있나요
홍갑표 : 하나도 없어요. 여기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운동이지. 산책이라는 개념도 없어요. 일하다 보면 수도 없이 왔다 갔다 하게 돼요. 일과 건강이 같이 가는 거죠. 나이 먹은 사람들이 건강을 위해서 아무리 운동을 해도 우리처럼 이렇게 건강할 수가 없어요. 손님 맞으며 이야기 나누는 것도 운동이고 여기저기 안내하는 것도 운동이죠.  

▍ 두 분이 이렇게 정정하신 비결은 계속 일하시는 것이네요.
 홍갑표 : 맞아요. 우리 대사님은 출근만 안 했다 뿐이지 아직도 외교관이에요. 난 우리 대사님만큼 할 사람이 없다고 봐요. 타고난 사람이에요. 지금도 현역에 있을 때와 다름없이 뉴스를 보고 연구를 하고 후배 외교관들과 교류하죠. 중남미 18개국 대사들과도 교류하고. 외교관으로서는 정말 최고예요. 
나는 나대로 여기 일을 보면서 하루하루를 바쁘게 보내죠. 다른 미술관들도 문 닫는데 우리도 문을 닫아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에 펄쩍 뛰었어요. 애정으로 버티고 있어요. 

▍ 요즘 식사는 어떻게 하세요, 특별히 신경 써서 드시는 게 있으신가요 
홍갑표 : 내가 해먹죠. 대사님은 치즈, 스파게티, 햄버거 같은 양식을 좋아해요. 나는 어릴 때 부여에서 살았으니 우유라도 먹어 봤겠어요? 그러니까 무국이나 미역국 같은 것을 여기 식당에서 가져다 먹고, 나머지는 해먹어요. 누가 사다주는 것도 먹고. 음식을 가려서 먹거나 골라서 먹지는 않아요. 어려운 일이 있고 속상한 일이 있으면 소화가 안 되어 소화제를 먹기는 하지만, 이것저것 잘 먹는 편이에요. 건강을 위해 골라서 먹거나 사먹는 건 없어요. 누가 가져다주는 것은 다 먹죠. 

▍ 크게 아프신 적은 없으세요
홍갑표 : 2년 전에 허리 수술 받은 것 말고는 없어요. 일을 많이 하니까 허리가 남아나겠어요. 마을에 봉사하러 가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음식도 나르고 했더니… 그래도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요. 그러면 어려운 일도 풀리고 얼굴도 예뻐져요. 

꽤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는데도 두 분 모두 피곤한 기색 없이 대답을 해주셨다. 그러고도 다음 일정 때문에 우리가 점심을 함께 못하고 가는 것을 몹시 서운해 하면서 정문까지 배웅을 해주셨다. 기 받아가라며 한 사람 한 사람 꼭 안아주는 것도 잊지 않으셨다.  

두 분을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이분들 삶에는 은퇴란 없다”는 것이었다. 사실 그렇다. 은퇴는 직장에나 있는 거지, 삶에는 그런 게 없다. 여전히 현역인 두 분은 90세이고 88세인데도 꿈을 꾸신다고 한다. 중남미문화원에서 어떤 행사를 할지, 어떤 강연을 할지, 또 다른 할 일이 없는지, 늘 생각하신단다. 이렇게 활기 넘치는 어르신들을 만나고 중남미문화원을 나서는 우리는 하교하는 어린 학생처럼 들떠 있었다.   

전지영 건강넷 출판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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