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넷·고양신문 공동진행 건강도시 심층기획➎ ‘어떻게 나이들어야 할까’ 

 

평생 고단하게 일했지만 자식 키우는 재미에 힘든 줄 모르고 살았다는 박정숙 어르신. 평생 병 한번 앓은 적이 없고, 검강검진 한번 안 받았다고 한다. 언제라도 웃음이 쏟아지는 명랑하고 낙천적인 성품의 어르신은 소원을 묻는 질문에, “아들 며느리가 이렇게 잘 하는데 무슨 소원이 있겠냐”고 활짝 웃으신다.
평생 고단하게 일했지만 자식 키우는 재미에 힘든 줄 모르고 살았다는 박정숙 어르신. 평생 병 한번 앓은 적이 없고, 검강검진 한번 안 받았다고 한다. 언제라도 웃음이 쏟아지는 명랑하고 낙천적인 성품의 어르신은 소원을 묻는 질문에, “아들 며느리가 이렇게 잘 하는데 무슨 소원이 있겠냐”고 활짝 웃으신다.

말도 말어, 열여덟 시집오자마자 보리밭부터 맸지
아흔까지 농사, 그저 살다보니 오래 산 거밖에 없어


어르신 인터뷰
아흔에 은퇴한 평생 농부 
96세 박정숙 어르신 

바늘귀에 실 꿸 정도로 눈 밝고
생일 제사 돈… 기억력 아직도 총총 
늘 낙천적이고 명랑하고 흥도 많고 
작년까지 밭에 나가 풀은 뽑았는데
올해부터 부쩍 약해져서 휠체어 의지
아들과 며느리, 가족이 든든한 울타리

[고양신문] “아이고. 일 많이 한 건 말도 말어. 열여덟 살 적 동짓달에 시집오자마자 보리밭부터 맸어. 시어매는 몸이 아퍼 일을 못해. 쭈구려 앉으면 밑이 빠져버리니까 변소 가느라 바빠 일 할 수가 있어야지. 보리 떨고 절구 찧고 콩 심고 나면 밤이 되고 깜깜한데 일꾼들은 마을 가고 나 혼자 뽑아서 쌓아놓고 빨래하고 풀 멕여서 두드리고 바느질하고 해 뜨면 들여와서 콩을 떨고. 그래도 그때가 좋았어. 애들 낳고 키우고 그때가 제일 좋았지.” 
살면서 어느 시절이 가장 좋았냐는 질문에 가장 고단하고 바쁘게 일했던 시절을 회상하며 웃음짓는 박정숙 어르신의 눈가 주름을 따라 순한 살구꽃이 벙글벙글 피어난다.
속살거리는 봄비에 앳된 목련 봉오리가 금세라도 까르륵 웃음을 터뜨릴 듯한 삼월 넷째 주 토요일 오전, 원당의 자택 거실에서 박정숙 어르신(96세)을 만났다. 아직도 바늘귀에 실을 꿸 정도로 눈이 밝은 대신 귀가 어두운 어르신을 위해 아들 강효희(원당농협 조합장)씨와 며느리 최정난씨도 함께 한두 시간은 유쾌했고, 깊고 맑은 우물 맛이 났다. 그래서 조금은 아쉽게 지나갔다. 봄 한철 피는 꽃들이 그러하듯. 


주말을 고대하는 박정숙 어르신에게 오늘처럼 토요일에 내리는 비는 야속하기만 하다. 비는 주말 행사인 농장나들이를 가로막는 훼방꾼이다. 이젠 다리가 불편해 직접 밭을 매지는 못하지만 바라만 보아도 그냥 마음이 푸근해진다. 
어르신에게 흙과 농작물은 한평생을 지탱한 터전이자 보람이다. 결혼 후, 부지런히 농사지으며 한 마지기 두 마지기 늘려간 논밭은 훗날 8000여 평으로 늘어났다. 딸 셋 아들 둘 먹이고 공부시키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촌부의 세월은 이제 듬직하게 자리 잡은 효자, 효녀, 효부라는 훈장으로 돌아왔고 농사가 노역으로 여겨질 나이도 훌쩍 넘겼건만 여전히 흙냄새가 좋다. 6년 전까지 현업으로 농사를 지었고 불과 1~2년 전까지도 텃밭의 풀을 뽑고 채소를 키웠으니 말이다. 
아들 강효희씨는 밀려드는 농사일에 매일 숨돌릴 틈 없이 바빴던 어머니의 고생스러운 일생을 안쓰럽게 기억한다. 술 한잔 걸치고 퇴근한 날에 어머니 손을 잡고 등을 긁어드리노라면 눈물이 핑 돈단다. 
“그럼 어머니 시집살이도 많이 하셨어요?” “하셨겠지요. 할아버지가 저 중학교 2학년 때 중풍으로 돌아가셨고 할머니도 치매가 있어서 그 병 치다꺼리를 다 하느라 힘드셨죠. 그래도 몸은 힘드셨지만 할아버지 할머니가 며느리한테 시집살이를 시킬 정신적인 상황은 아니었어요.” 
강효희씨의 보름달처럼 넉넉하고 흰 얼굴에서 소 풀 뜯기고 멱감기고 꼴 베느라 공차기 한번 제대로 못 해본 어린 소년의 얼굴을 연상하기란 쉽지 않았다. 동갑내기 부부인 강효희씨 내외는 결혼하고 얼마 안 되어 아들이 돌배기였을 때 오토바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 대신 집안일과 농사를 물려받게 되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맡긴 일을 두고 참견하는 성품이 아니었다. 살림의 주도권을 내어주고 못마땅한 것이 없지 않았을 텐데 나이 어린 아들 내외를 믿고 말없이 지켜보며 필요할 때마다 당신의 몸을 아끼지 않았다.
 
어르신, 돌아가신 할아버지 보고 싶지 않으세요.
“별루 안 보고 싶어. 나한테 정이 가게 한 게 있어야지. 밤낮 술만 먹고 그래서 보고 싶지 않어. 우리 영감은 소 끌고 밭만 갈아주고 일은 안 했어. 술 좋아해서 마을에 가. 일할 준비만 해놓고 이거저거 해라 시키고 놀다가 밤늦게 와서 마음에 안 든다고 뭐라 하기만 하고. 일은 내가 다 했어.” 어르신은 할아버지에 대한 서운함을 흙을 만지며 씻어내고 자식 키우며 풀어내셨던 듯하다.

어르신은 아들이 술 먹고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방문을 활짝 열어놓고 기다리신다. 아들 강효희(원당농협 조합장, 사진 오른쪽) 씨는 그런 어머니를 안으면 아직도 눈물이 난단다. 평생 농사일로 고된 삶을 사시면서도 자식에 대해서만큼은 펑펑 아끼지 않으셨던 어머니에 대한 한없는 고마움 때문이다. 어르신이 “세상에 둘도 없는 며느리”라고 자랑한 며느리 최정난(사진 왼쪽) 씨는 “어머니 건강 비결은 누구 하나 나쁘게 이야기하지 않고 늘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성품”인 것 같다고 말한다. 친밀하고 따듯하게 연결된 가족은 어르신의 행복한 노년을 위한 든든한 울타리였다.
어르신은 아들이 술 먹고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방문을 활짝 열어놓고 기다리신다. 아들 강효희(원당농협 조합장, 사진 오른쪽) 씨는 그런 어머니를 안으면 아직도 눈물이 난단다. 평생 농사일로 고된 삶을 사시면서도 자식에 대해서만큼은 펑펑 아끼지 않으셨던 어머니에 대한 한없는 고마움 때문이다. 어르신이 “세상에 둘도 없는 며느리”라고 자랑한 며느리 최정난(사진 왼쪽) 씨는 “어머니 건강 비결은 누구 하나 나쁘게 이야기하지 않고 늘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성품”인 것 같다고 말한다. 친밀하고 따듯하게 연결된 가족은 어르신의 행복한 노년을 위한 든든한 울타리였다.

할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농사랑 집안꾸리기 힘들지 않으셨어요?
“안 힘들었어. 집안일 농사는 아들이 바로 도맡아 오히려 아버지 때보다 더 잘하고 수확이 더 많았어. 86년 2월 24일 오토바이에 동생 하나 뒤에 태우고 가다 경운기에 받혀서 영감은 죽고 시동생은 크게 다쳤어. 시동생 병원비가 170만원, 그다음에 70만 원 나왔다고 조카며느리가 병원비 달래. 돈 주면서 너는 돈만 잃었지만 난 돈 잃고 사람 잃었잖아 서럽게 울었더니 큰어머니 제가 더 잘할게요 그러더니만.” 어르신은 총기가 좋아서 기억력이 남다른데다가 가족들 생일, 제사 날짜, 금액 등 숫자는 유난히 더 잘 기억한다.

 그럼 뭐가 힘드셨어요?
열여덟에 시집와서 스무 살에 애가 섰는데 입덧이 심해서 물만 먹어도 토해. 시어매가 뭘 먹고 싶냐길래 보리밥이 싫어서 하얀 쌀밥에 청어 먹고 싶다고. 시아버지가 녹번에 가서 청어 하나 코를 꿰서 가져오신 걸 세 도막 쳐서 부엌으로 보내주길래 나는 꽁지만 먹고 방에 들여보냈더니 그걸 시어매가 다시 돌려보내서 그거 먹고 안 토했어. 그래서 낳은 첫애는 마마에 걸려 나자마자 죽었어. 시아버지가 동네 나갔다가 마마 옮아와서 우리 영감이 차례로. 그다음에 어린애까지 옮아서. 그러고 나서 낳은 큰딸이 75살이야. 보고 싶은 건 우리 딸들, 막내딸이 보고 싶어.” 멀어서 자주 보지 못하는 자식부터 보고 싶은가 보다. 

 아흔이 되도록 아픈 데 없이 건강하셨는데, 음식이나 특별한 건강관리 비법이 있으셨어요?
“그런 건 별로 없어. 아침 6시30분에 일어나서 하루 세 끼 다 먹는데 곰국에 밥 반 공기 말아먹어. 우리 며느리가 다 해놓고 농사하러 나가면 내가 집에서 챙겨 먹기도 해. 젊은 시절엔 젓갈류, 게장, 나물, 계란찜, 고기 종류 다 좋아했지. 지금은 이가 안 좋아서 김치도 잘 못 씹어. 변비가 있어서 하루 세 번 약을 먹어야 변을 봐. 그게 제일 불편해.” 아들 내외는 틀니가 잘 안 맞아 섬유질 음식을 못 씹어 그렇다며 다시 하자는데 알뜰한 어머니는 이제 살 날이 얼마라고 다시 하냐며 손사래를 친다. 작년에 담석이 생겨 담낭 제거 수술을 했고, 노년에 들어 먹기 시작한 혈압약 이외에 복용하는 약은 없다. 딱히 취미 생활이라 할 만한 것도 건강관리를 위해 한 것도 없다. 그냥 웃으며 편하게 지내는 이웃들이 있을 뿐 특별히 친한 친구를 두고 노는 일도 없이 그저 바쁘게 일하며 살아온 한평생이다. 어르신은 말씀하신다. “나같이 아무것도 없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 그저 살다 보니 오래 살은 거밖에 없는데 뭐 배울 게 있다고 이렇게 찾아와 주었냐”며 고마운 마음을 연신 과일을 권하고 음료수를 권하는 것으로 표현하신다.

 며느리 자랑 좀 해주세요.
“우리 며느리 너무 좋아. 며느리 같은 사람 세상에 없어. 다 씻겨줘 나를.” 며느리 어디가 좋으냐고 다시 여쭤보니 그냥 다 너무 좋으시단다. 며느리 최정난씨에게 어머니 어디가 좋으냐고 물어보니 역시 그 어머니에 그 며느리다. “어머니 좋으시죠. 그날그날이 똑같아요. 규칙적이시고.”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리나』의 첫 문장은 역시 명언이다. 행복한 가정의 모습은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의 이유로 불행하다.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처럼 모양이 소박하고 요란한 소리가 나지 않는다.

 어머니는 성품이 어떤 분이신가요?
“어머니는 절약이 몸에 밴 분이라 본인은 검소하기 이를 데 없지만, 일꾼들 먹을 것이라든가 남들에게는 후하게 베푸셨어요. 농사일이 많아서 일꾼이 한집에 살다 보니 다 챙겨야 하고 늘 일에 쫓기다 보니 성질도 급한 편이지만 바라는 것도 없이 희생적인 삶을 사셨어요. 긍정적이고 모나지 않아서 스트레스받는 성격이 아니셨고 흥이 많아서 마을회관에 행사가 있거나 버스 타고 놀러 가실 때 제일 큰소리로 노래 부르는 분이 어머니였으니까요. 건강 비결이라면 규칙적으로 생활하셨던 것, 근심 걱정할 시간 없이 늘 바쁘게 사셨다는 것, 잘 먹고 잘 자고 그저 평범한 촌부셨어요.”

 어르신,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나 아니면 어떤 소원이 있으신가요?
“나이 많은데 하고 싶은 게 뭐 있겠어. 아들 며느리가 이렇게 잘 하는데 무슨 소원이 있겠어.” 그렇게 말씀하셔도 뜨는 해와 지는 해를 바라보며 우리 아들 잘 되게 해달라고 비는 어머니 뒷모습은 감출 수 없다. 건강하게 살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한 말씀 해달라는 우리의 청을 끝끝내 같은 이야기로 마무리 짓는다. “내가 해 줄 말이 어딨어. 그저 나 살아온 이야기나 했으면 되었지.” 

아이보다 더 아이 같고 스승보다 더 스승 같다. 말없이 많은 말을 전달하는 박정숙 어르신과 이야기를 마치고 돌아서는 길, 잊고 있던 자리를 기억해 냈다. 물처럼 빈 곳 낮은 곳을 채우며 날카로움을 무디게 하고 얽힌 것을 풀어주었던 어머니의 자리. ‘그저 살다 보니 오래 살은 거밖에 없는’ 우리 어머니들의 기도하는 뒷모습을. 어쩌면 우리는 무병장수의 기술과 불로장생의 묘를 구하는데 너무 심취해 모든 생명의 본질인 돌아감의 도와 내려옴의 덕을 잊고 있는 건 아닐까.
도덕경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行不言之敎(행불언지교)
生而不有(생이불유)
爲而不恃(위이불시)
夫唯弗居 是以不去(부유불거 시이불거)
말없이 가르침을 행한다
낳으면서도 소유하지 아니하고
되게 하면서도 기대지 않는다
그 속에 거하지 않으니 사라지지 아니하리라
홍유경 건강넷·약사 


평생 고단하게 일했지만 자식 키우는 재미에 힘든 줄 모르고 살았다는 박정숙 어르신. 병 한번 앓은 적이 없고, 건강검진 한번 안 받았다고 한다. 언제라도 웃음이 쏟아지는 명랑하고 낙천적인 성품의 어르신은 소원을 묻는 질문에, “아들 며느리가 이렇게 잘 하는데 무슨 소원이 있겠냐”고 활짝 웃으신다. 

어르신은 아들이 술 먹고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방문을 활짝 열어놓고 기다리신다. 아들 강효희(원당농협 조합장, 사진 오른쪽)씨는 그런 어머니를 안으면 아직도 눈물이 난단다. 평생 농사일을 하며 고되고 검소한 삶을 사시면서도 자식에게는  펑펑 아끼지 않으셨던 어머니에 대한 한없는 고마움 때문이다. 어르신이 “세상에 둘도 없는 며느리”라고 자랑한 며느리 최정난(사진 왼쪽)씨는 “어머니 건강 비결은 누구 하나 나쁘게 이야기하지 않고 늘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성품”인 것 같다고 말한다. 친밀하고 따듯하게 연결된 가족은 어르신의 행복한 노년을 위한 든든한 울타리였다.

홍유경 건강넷·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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