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인터뷰 - ‘100세인 연구’ 진행한 박상철 전남대 석좌교수
내 몸이 잘 기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해요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그것은 생명이 아닙니다
건강넷·고양신문 공동진행 건강도시 심층기획
‘어떻게 나이들어야 할까’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핵심은
스스로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
혼자 잘 살아야 관계도 잘 형성
50세 이후 제2기 의무교육 필요
‘노인독립운동’ 선언해야 한다
[고양신문] 암세포 연구를 하던 생화학자 박상철(72세) 전남대 석좌교수는 노화연구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다. 우리나라 백세인의 실태를 종합 분석한 ‘100세인 연구’를 통해 노화와 장수 연구자로, 더 나아가 노인들을 위한 춤과 요리 교실을 열고 향거(鄕居) 장수를 제안하는 노인복지 현장 활동가로 누구보다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세계적으로 빠른 노령화 속도로 인해 고령층에 대한 정보와 연구가 부족한 1990년대 말, 한국인의 장수비결 ‘100세인 연구’는 노화와 장수 연구와 관련하여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노화연구소를 만들어서 소장이 되었는데 고민이 많았어요. 어느 날 종로에서 점심 먹고 나오다가 처음으로 파고다 공원 안에 들어가 봤어요. ‘구경이나 한번 해보자’하는 마음으로. 마침 밥시간이었는데, 밥 차가 오고 노인분들이 쭉 줄서서 있더라고요. 거기서 내가 충격을 받았어요. 이게 노인의 모습이구나. 할아버지들이 대부분이고 할머니는 몇 분 보이지 않았어요. 할머니들은 스스로 밥을 해 먹을 줄 아니까. 그런데 할아버지들은 돈 있으면 사 먹고, 없으면 공짜 밥을 받아먹는 거예요. 삶이 초라해지고, 그러면 오래 못 살지. 노화 연구자로서 이런 현실을 바꿔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겼어요.”
▍ ‘100세인 연구’ 이야기 좀 들려주세요.
처음으로 간 곳이 경상북도 예천이었어요. 그런데 여기서 모든 방향이 바뀌었어요. 102세 할머니와 78세 아들 인터뷰였지요. 인터뷰 도중 아들이 어머니를 ‘작은어머니, 작은어머니’하고 부르는 거예요. 이상해서 아들에게 물었어요. “어머니 아니시냐? 아까 작은어머니라고 하시는 것 같은데”. 그랬더니 아들이 “할머니가 첩이세요”라는 거예요. 당시 첩은 호적이 없어서 본부인 것을 그대로 쓰고 있더라고요. 2001년인데. 실제 나이는 94세인 거죠. 그래서 내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 양반이 100세인가를 확인하는 것이었어요. 방법은 띠와 연도가 맞냐. 다들 띠는 알고 있잖아요. 두 번째는 자식검증, 살았든 죽었든 80세 넘는 자식 있는가 확인하는 거.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이 뒷집에 물어봐야 해요. 저 할머니가 몇 살 위냐 아래냐 이런 식으로. 식품 하는 교수들은 부엌을 뒤져보고, 인류학 하는 교수는 동네를 돌고. 메디컬 조사에서 토탈 조사를 하게 된 거죠. 우리만의 독특한.
▍ 한국인만의 독특한 장수 비결이 있나요.
외국과는 다른 한국인만의 장수 비결이 있습니다. 일단 먹는 것이 다릅니다. 나는 대한민국 식단이 제일 장수하는 식단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지중해식 식단처럼)한국에서도 채소를 많이 먹습니다. 그런데 그 채소를 전부 데쳐서 먹어요. 생채소보다 많은 양을 먹을 수 있어요. 또 발효식품도 많이 먹습니다. 다양한 재료와 조리방법도 다르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나는 건강기능식품을 믿지 않아요. 여러 영양소를 골고루 균형있게 섭취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조리방법 또한 마찬가지예요.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보다 더 중요한 건 ‘언제, 얼마만큼’ 먹느냐예요. 백세인의 공통점은 식사시간이 매우 규칙적이고, 하루 세끼 제 양에 맞게 먹는다는 점입니다. 소식보다는 자신의 양만큼 절제해서 먹습니다. 좋은 음식을 챙겨 먹으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생활방식을 꾸준히 지키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보여줍니다.
▍ 음식 외에 장수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무엇일까요.
무엇을 먹느냐는 의외로 큰 영향이 없는 것 같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는 음식을 같이 먹는다는 것입니다. 가족하고도 먹었지만, 이웃과도 같이 먹습니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이 같이 먹었습니다. 잔칫날이나 제삿날이면 온 마을 사람들이 음식을 나누어 먹는 풍습이 있는데, 부자가 가난한 사람들의 영양을 보충해 주는 것이라고 봐도 뵙니다.
▍ ‘마을 정자가 장수를 만드는 환경’이라고 하셨는데요. 자세한 설명 좀 부탁드려요.
호남지역에 장수인이 많은 이유는 ‘마을 정자’ 때문입니다. 경상도 강원도는 정자가 산속에 있어요. 전라도는 마을 입구에 있습니다. 정자가 쉬는 곳이자 동네 사람들과 인사하고 소통하는 자리예요. 노인들이 정자에 앉아있으면 사람들이 다 인사를 하고 지나가요. 노인들의 고독감을 없애주기도 하고 자존감을 세워주기도 하고. 한국인의 독특한 장수 비결입니다.
▍ 도시에 정자를 대신해서 이런 소통이 가능한 방법은 없을까요.
도시는 폐쇄적인 거주환경 자체가 문제예요. 또 양로시설이나 비싼 노인시설 보면 여전히 장관님, 사장님 행세를 하고 있어요. 밥 한끼 먹으려고 내려와도 정장 차림으로 나와야 하고, 그것은 공동체가 아니에요. 공동체는 사람들이 서로 뒹굴어야 하는데…. 장수인들은 나이에 상관없이 주위 사람들과 교류하는 게 공통된 특징입니다. 원만한 성격이 필수입니다. 어울림이죠. 부부관계가 좋으면 최선이겠지만, 백세인 중 그런 분은 많지 않아요. 2018년 혼자 사는 비율이 25% 정도예요. 그런데 이분들이 진짜 혼자 사느냐 하면 또 그건 아니에요. 하나같이 친구 또는 이웃과 교류하며 사는 거예요. 그 두 가지가 같은 말인 게, 혼자 잘 살 수 있는 사람이 좋은 관계도 맺을 수 있는 거예요.
▍ ‘혼자 잘 살 수 있는 사람이 좋은 관계도 맺을 수 있다’ 재미있는 이야기네요.
계속 기대고 의지하는 사람 옆에 누가 있으려고 하겠어요. 나이 들어도 내가 할 일은 스스로 ‘하고’, 내가 가진 것을 주위 사람한테 나눠 ‘주고’, 새로운 지식을 계속 ‘배워야!’ 친구가 생기죠. 그래서 내가 중년 이후 남성을 대상으로 하는 ‘골드 쿡’ 프로그램도 개발했어요. (남성)노인 문제를 들여다보면서 가장 큰 문제는 집에서 밥조차도 제대로 못 해먹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아내, 며느리, 딸에 의지하게 되고. 밥은 혼자서 해먹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요리를 배운 남성들이 하나같이 ‘생각보다 쉽다’라고 해요. 막상 하면 어려울 게 하나도 없는데 안 해서 못하는 겁니다. 나도 나이들어 요리를 배웠어요.
▍교수님이 강조하시는 ‘하자’ ‘주자’ ‘배우자’에는 많은 의미가 들어 있는 것 같아요.
늙었다는 것이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생명체는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서 움직여야 한다고 봅니다. 모든 성분이 풀(full)로 작동해야 생명이 유지되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그것은 생명이 아닙니다. 100세인들은 텃밭에 일하든지, 뭔가 하려고 끊임없이 움직이고 노력하시는 분들입니다.
하고 싶은 거 하자. 그동안 못했던 것, 내가 할 수 있는 거 하자. 그리고 함께 하자. 나이가 든 사람이 하려면 반드시 누구랑 같이해야 오래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주자는 것입니다. 배우자는 나이가 아무리 들어도 새로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육을 받든지 훈련을 받든지. 나이 먹었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한다는 이유는 없습니다. ‘스스로 최선을 다해라.’ 100세 어르신들께 배운 것이 그것입니다.
박 교수는 노인들이 새로운 지식을 계속 습득하며 현실에 발맞춰 살아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제3기 인생대학’을 만들었다. 제1기(교육기)는 10~20대, 제2기(직장 생활기)는 30~50대, 제3기는 은퇴를 맞게 되는 삶의 새로운 시기를 뜻한다.
▍ 은퇴기를 맞는 제3기에 가장 핵심적인 교육내용은 무엇일까요.
나는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회봉사라는 측면에서, 생의 완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람 찾기 교육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늙는다는 것은 정말 거룩한 일입니다. 생명과학을 하는 태도에서 보면 굉장한 일이에요. 나이 든 사람들이 밀려나고, 본인 스스로 좌절하고, 그러지 말자는 거예요. 6살부터 18살까지 의무교육을 받듯이 50세 넘는 사람들 대상으로 제2기 의무교육을 받았으면 합니다. 교수하고 장관하고 사장이면 뭐합니까? 새로운 조건에 맞게 함께 사회공동체에서 역할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공동체의 일원이 되려면 반드시 주어야 합니다. 주어야 보람이 있는 거예요.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동네에 집안에 국가에 주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노인을 받는 사람, 돌봐주어야 하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합니다. 사람에게는 권리와 의무가 있습니다. 주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박 교수에 따르면 노화는 죽어가는 과정이 아니라 생명체가 보여주는 진지한 노력의 과정이며, 노화를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삶의 질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수명연장을 위한 실험보다는 노화를 수용하고 새로운 장수문화를 정립하는 것이 더 중요한 시점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은퇴 후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하는 것이 좋은 걸까요.
은퇴 후 돈 버는 일 말고 자원봉사를 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요새는 본래의 자원봉사라는 개념이 많이 없어지고. 이제는 다 돈으로 계산하는 것 같아 안타깝긴 합니다. 제가 65세 이상을 (춤 체조) 지도자로 해서 훈련 시켜서 전국 노인복지관에 보냈습니다. 처음에는 복지관에서 젊은 사람들로 보내 달라고 했는데, 제가 설득했습니다. 나이 든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보람이고 자부심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원봉사로 가야 한다고. (춤 체조) 지도자들이 정부가 제공하는 유료 프로그램으로 가서 직업으로 하는 경우도 생겼는데…. 자원봉사가 본래 갖는 의미를 잃고 죽어버려 아쉬움이 있긴 합니다. 돈으로 계산하면 안 됩니다. 노인들이 가질 수 있는 자존감을 세울 방법이 무엇보다도 필요합니다.
▍ 교수님의 노년 건강관리나 생활은 어떠한지 궁금합니다.
저는 하루에 1만2000보 정도 걷습니다. 간격 워킹이라고 하는데, 천천히 걷다가 빨리 걷다가 합니다. ‘하루에 2시간씩 걸어라’라고 주위에 이야기합니다, 몸무게도 줄고 좋습니다. 체육시설에 가서 운동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똑같은 것을 되풀이하는 것도 재미없고요.
아버지 계실 때, 일 년에 구정, 추석 두 번 내려갔어요. 한 해는 고속도로 빠져나가는데 한 3시간 걸이 걸리니까 오지 말라고 하셔서 안 내려갔습니다. 한참 뒤에 아버지께서 집에 오셔서 벽 쳐다보고 한숨 쉬시면서, “내 새끼는 어디가 못나서 (추석 귀성객)2000만 명에도 못 낀다냐.” 내가 그 말을 잊을 수가 없어요. 그 뒤로 무조건 갔습니다.
어머니와도 대화다운 대화를 한 적이 없었어요. 내가 큰아들이라 아버지하고 잠깐만 이야기하고 올라오고. 아버지 돌아가시고 어머니 상태 안 좋아지시니 생각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서울과 지방을 오가면 어머니와 살고 있습니다. 어머니와 살면서 원칙은 딱 한 가지입니다. 어떻게 하면 어머니랑 더 가까이 있을까? 어머니와 같이 있는 거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더라고요. 옛날에는 프랑스 미국이 이혼 많이 한다고 흉봤습니다. 자식들과의 관계도 너무 개인주의라고 생각했고요. 그 사람들은 지금 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요즘은 더 심합니다. 부모님 계시는 요양시설에도 덜 찾아갑니다. 우리가 왜 이렇게 됐을까? 자꾸 옛날식 사고에 매달리고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내년이면 여러 가지 일들이 끝납니다. 나도 지역사회에서 이런저런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동네에 정년퇴직한 사람들이 많은데 누군가 헌신적으로 깃발 들고 나가면 보람 있는 일들이 있을 겁니다.
박상철 교수는 ‘장수 집짓기모델’로 유명하다. 장수를 집짓기와 같은 개념으로 보고, 유전자 성별 성격 사회문화 환경생태를 집의 토대로, 운동 영양 관계 참여를 집의 기둥으로, 사회안전망 의료시혜 사회적 보호를 지붕으로 하는 모델이다. 건강한 몸과 마음을 위한 ‘운동’, 규칙적이고 균형 잡힌 ‘영양’, 풍성하고 질 좋은 ‘관계’, 끊임없이 배우는 과정을 통해 나누는 ‘참여’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더불어 모든 생명현상은 어떤 것 하나도 어긋남이 없이 최선을 다해 작동한다고 한다. 종의 기원은 머리가 좋은 것도, 힘센 것도 아닌 가장 잘 적응하는 생명체가 살아남는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준다고 한다. 따라서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핵심은 자신에 대한 책임은 스스로가 지는 것. ‘노인 독립운동’이라고 정의한다.
“내 몸이 잘 기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 스스로 생활할 수 있는 것, 먹는 것에 더 노력해야 합니다. 생명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걸 망설일 필요가 없습니다. 내 건강은 내 책임이에요. 과거 묻지 말아야 해요. 지금부터 하면 됩니다. 지금을 포기하면 내일은 없습니다. 생명의 핵심은 지금이고 지금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노미화 건강넷 심리상담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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