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수록 소중해지는 것들  95세 마술사, 조용서 어르신

건강넷·고양신문 공동진행 건강도시 심층기획
❷ ‘어떻게 나이들어야 할까’ 

80대에 배운 마술이 직업이자 봉사
90대엔 영화 배워서 출품 상도 받아 
노인일자리 합격 서울대 합격보다 좋아 
돈보다 건강장수유전자 물려주고 싶다

[고양신문] 용서한다는 것은 가슴에 맺힌 지난날의 상처를 치유하고 현재 삶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열어 행복으로 가는 디딤돌이다. 지난 2월 만난 조용서 어르신은 이름처럼 고단하고 힘들었던 긴 세월의 상처를 치유하고 건강하고 행복한 노년의 삶을 살아가는 ‘할아버지 마술사’이다. 마술사, 영화감독, 구연동화가, DJ 등등 조용서 어르신 앞에 붙여진 이름은 많지만 ‘할아버지 마술사’로 불리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점심시간이 지난 오후 방문이라 조금 피곤하거나 나른해 하시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와는 달리 빨간 조끼와 황금색 모자 위 반짝이들처럼 활기차고 환한 웃음으로 우리를 맞아주셨다. 

▍요즘 하루는 어떻게 지내세요.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일절 공연 활동(꿈 전파문화공연단)을 못해요. 복지관도 문을 딱 닫았어요. 거기서 어르신들 만나고 인사하고 식사하고 즐거운 하루였는데. 그걸 1년 동안 못했어요. 그나마 한 달에 열흘 정도 공원 운동기구 청소하러 나가요. 출근이지요. 9시에 가서 12시까지…. 젊은 시절 직장에 나가는 듯 기분이 좋고 건강에도 좋고…. 백세시대에 오래 사는 사람은 많지만 저처럼 건강하게 사는 사람은 드물어요. 김형석 교수님이나 송해 선생님을 보면서 건강하게 살려고 해요. 공연도 조만간 할 수 있을 거라 희망도 가져 보고요.

▍건강을 위해 특별히 하시는 게 있으세요. 

걷기지요. 예전에는 호수공원까지 걸어서 복지관에 가고 했는데 지금은 나이가 많아서 걷고 싶어도 걷지 못해요. 대신 요기 아파트 뒷길이 있어요. 공원길이지요. 할머니(87세)하고 둘이서 1시간 정도 나가서 걷지요. 햇빛도 받고. 걷기는 아팠던 배도 싹~ 낫게 하고 입맛도 돌고. 그렇게 좋아요. 담배는 전혀 안 했고요. 술은 조금은 했는데 80이 넘으면서 넘어가지 않아요. 하루 세끼는 꼭 먹어요. 아침은 할머니가 주섬주섬해서 만들어 줘요. 나는 그릇을 챙기고 반찬 놓고, 점심은 고구마나 떡 먹고 저녁은 밥을 먹어요. 요구르트나 치즈 같은 것을 챙겨 먹어요. 고기를 좋아하는데 막 고기를 사다가 잘 먹어요.   

95세 마술사 조용서 어르신. 가만히 계시는데도 웃는 얼굴이시다.
95세 마술사 조용서 어르신. 가만히 계시는데도 웃는 얼굴이시다.

활기차고 명랑한 지금의 모습과는 달리 조용서 어르신의 구십 인생은 7전8기였다. 1912년 평양에서 출생한 그는 23살에 홀어머니를 고향에 남겨두고 홀로 월남하여 6·25 전쟁에 참전해 힘든 시간을 보냈다. 전쟁이 끝나고 군에서 제대한 30살 청년은 23살 예쁘고 노래도 잘하는 처녀를 중매로 만나 결혼하고 아들 3명을 두었다. 운송회사에서 근무하며 푼푼이 모은 돈으로 한강 변에 모래사업을 시작했지만, 그해 대홍수로 무일푼이 되고 월남전이 한창인 베트남 다낭 항에 근로자로 나가 일했다. 양돈사업을 시작했지만 돼지 파동으로 ‘사업은 내가 잘 알고, 할 수 있는 전문분야’여야 한다는 쓰디쓴 경험만을 남기고 파산했다. 당시 중동 건설 붐이 일어 사우디아라비아 항만 하역근로자로 7년 넘게 일하고 쉰다섯 살이 되어서 귀국했다. 할아버지 마술사가 뜨거운 사막 한가운데서 버틸 수 있었던 힘은 ‘월급날이면 온 집안 식구가 먹을 수 있는 짜장면 한 그릇’ 때문이었다고 한다. 회사에서 은퇴하고, 우연히 본 일본 통역사 모집에 지원하면서 76세까지 일본어 번역을 하였다. “팔십을 살면 팔천 번의 우여곡절이 있다고 해요. 저는 구십을 살았으니 구천 번의 우여곡절이 있지 않았겠어요. 그래도 곁눈질 안 하고 열심히 할머니랑 같이 살아왔어요”라고 담담히 이야기를 이어가신다. 
 
▍다른 분들과 달리 건강하게 활동하실 수 있는 특별한 비법이 있으세요.

할머니가 있다는 거. 가장 자랑스럽고 또 행복하게 느끼는 게 이거예요. 다른 어떤 부자보다도 할머니가 있다는 것이 제일 좋고요. 할머니가 노래를 잘해요. 나는 마술로 박수받지만, 할머니는 노래로 박수받아요. 할머니에게 고마운 게, 다 망했을 때 수차례 굴러 떨어지고 떨어질 때, 불평하지 않고 따라와 준 게 그게 고맙네요. 내가 절벽에 있었을 때 나하고 똑같은 입장이었을 텐데…. 아무것도 없는 맨손으로 결혼했는데. 요즘은 결혼하지 않겠다는 분들도 많지만 내게는 축복이 아닌가 생각해요.

할아버지 마술사와 할머니는 결혼 53년 차 노부부이다. 할머니는 3년 전 허리를 다쳐 보행보조기에 의지해 조심조심 걸음을 옮기실 수 있는 정도이다. 손님맞이가 번거롭고 힘들 수 있으련만 할아버지 옆에 꼿꼿이 앉아 자리를 지키신다. 요구르트라도 마시며 하라고 손님들 챙기시는 걸 잊지 않으신다. 사업이 망하고 10년 넘는 해외 근무 동안 어떻게 지내셨냐고 물으니 “우리 때는 그냥 사는 거야. 버티고 사는 거”라며 별거 아니라는 듯 답하시고는 힘들 때마다 불렀다는 노래 한자락을 구성지게 불러 주신다.
 
▍은퇴 후 마술을 하시게 된 계기가 있으셨어요. 

복지관에 가니 그림이랑 마술이 있어요. 그때 ‘아! 나는 요거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게는 코스가 맞은 거지요. 마술공부를 했어요. 취미가 맞아요. 고양시 ‘꿈 전파문화공연단 마술팀’의 한 사람으로 노인 일자리 사업을 하게 되었어요. 어린이박물관이나 도서관, 요양원 어르신들 앞에서 공연도 하고. 고양시 일촌 맺기 하면서 봉사도 하고 영화도 찍고. 제가 마술팀으로 신청해서 길거리 공연도 하고요.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지냈어요. 금방금방 세월이 흐른 것 같아요. 

▍ 무엇인가를 배우고 활동하시는 것이 힘들지는 않으세요.

복지관을 똑같이 다녀도 다른 사람들은 배우는 것에 무관심하지요. 저는 복지관을 가면 게시판을 봅니다. 올해는 무슨 교육이 있나? 배우는 것은 세상과 소통하는 것이지요. 내가 왜 살아있는지 알려주는, 그런 거예요. 마술은 2008년부터 빠지지 않고 교육받았어요. 한 해에 30명 정도 받는데 10년이면 300명 되잖아요. 그런데 저처럼 계속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요. 마술에 대한 애로점이 뭐냐면, 마술 도구는 200가지가 넘지요. 제가 실제로 쓰는 것은 30~40가지인데. 한번 본 마술은 다시는 보지 않으려고 해요. ‘아~ 나 저거 안다.’ 하거든요. 그래서 끊임없이 새로운 마술 도구를 사야 하고. 계속 배워야 해요.

어린이들에게 마술을 보여주시는 모습.
어린이들에게 마술을 보여주시는 모습.

조용서 할아버지의 배움은 마술에만 멈추어 있지 않다. 2009년 서울노인복지센터에서 영화제작반 수업을 들은 후 매년 노인영화제에 작품을 출품하고 수상도 여러 번 했다. 인터뷰 중간 건넌방에서 들고나오신 커다란 패널 위에는 ‘제3회 고양 스마트영화제 남우주연상’이라는 문구와 함께 할아버지의 환한 얼굴이 새겨져 있다. 영화감독 겸 배우인 셈이다. “유튜브 보면 내가 마술했던 거, 내가 만든 영화 그것이 나와요. 애들하고 가족들만 조회하지만. 말로는 안 하지만 깜짝 놀라지요. ‘ 야! 할아버지는 이렇구나’. 힘이 나지요.” 
올해는 비대면 교육에 필요한 온라인 교육을 받았고, 방과 후 아동지도사 교육도 신청했다고 한다. 온라인 교육이 어렵지 않냐고 물으니 복지관 선생님들이 수준에 맞게 따라가게끔 가르쳐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신다. 

▍ 자손들에게 무엇을 남겨주고 싶으신가요. 

손자 손녀가 ‘우리는 장수 집안이다’ 하는 것을 느끼는 것 같아요. 돈을 주는 것보다 좋은 DNA를 물려주는 자랑스러운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지 않겠나 해요. 암이나 치매 안 걸려서 너무나 다행이지요. 노인 되면 약으로 사는 거예요. 일산병원도 다니고 내과도 다니고 허리 아프니까 정형외과도 다니고 약을 받지요. 그래도 내가 약을 챙겨 먹을 수 있고 치매도 안 오고 이게 행복이구나. 어려운 고비마다 어떻게 넘었나? 숟가락 하나 없는데. 생각해보면 건강한 유전자가 있고 가족이 있고 믿거나 말거나지만 조상님의 은덕이 나를 일어나게 해준 게 아닐까 생각해요. 친구나 동료 주변 사람은 몽땅 없어지고 있는데. 아이코! 나 같은 노인은 없는 드문 것 같아요. 이것도 고맙게 생각되고. 

인터뷰 내내 조용서 할아버지가 가장 많이 한 이야기는 ‘이 정도만 해도 다행이다’, ‘감사하다’, ‘행복하다’이다. 6·25전쟁 경험은 참전용사이자 호국원에 묻힐 수 있는 자랑스러운 아버지와 할아버지로, 항만하역 근로자 경험은 한국 경제부흥을 일으킨 산업일꾼의 모습으로, 늙고 아프고 병들어 힘든 경험도 요양원에 누워있지 않는 건강한 노인으로 오히려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 되어 있다. 94년 일산에 들어오면서 부동산값은 오르지 않았지만 좋은 공기, 촌사람처럼 소박한 느낌, 말하자면 인심이 좋은 곳에서 살게 되어 건강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복지관에 다니면서 공부도 하고 상도 받고 좋은 일이 계속 생기니 살기에는 너무 좋은 곳이라고 한다. 

▍어르신들을 위해 더 필요한 것은 무엇 일까요. 

노인 일자리에 관해서 이야기 하고 싶은데. 해마다 늘고는 있어요. 사람이 많아지니까. 이번 해에 내가 다니는 복지관에서 노인 일자리를 신청했는데 발표가 1월 28일이에요. 걱정을 많이 했어요. 내가 여기서 떨어지면 팍~삭 주저앉고 이제 말하면 완전히 별 볼 일 없는 노인이 되는 것은 아닌가? 며칠 설쳤어요. 합격통지서를 받으니까 ‘야! 됐다. 내가 박수를 받고 기운을 받을 수 있구나’. 서울대학교 입학한 그것보다 더 좋은 기분이에요. 

▍ 앞으로 어떤 계획이나 바람이 있으세요. 

육십이 넘어 복지관에 다니면 이것저것 뭘 해보겠다. 생각이 많지만, 이제는 마술 한 가지라도 무대에 서고 싶다는 거예요. 예전처럼 봉사하러 다니지는 못하지만, 무대에 서서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고, 칭찬해주고, 따뜻하게 위로해주고…. 복지관에서 한 스님이 말씀하시는데 ‘이제는 자식 걱정, 돈 걱정 털어내고 그러려니’ 하고 살라고. 그런데 그게 딱 와 닿아요. 더 욕심내지 않는….

조용서 어르신이 세상에서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시는 아내 정민영(87세) 어르신.
조용서 어르신이 세상에서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시는 아내 정민영(87세) 어르신.

“참 어렵게 살았어요.” 이 한마디에서 전쟁, 가난, 타향살이, 밑바닥까지 내려갔다 온 조용서 어르신의 고단한 삶이 느껴졌다. 그러나 “내가 살아보니 용기를 잃지 않으면 기회는 와요.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면 되고”라는 말 속에서는 어르신들의 위로와 용기 그리고 삶의 지혜가 보인다. 오래 사는 사람들은 많지만, 자신만큼 공부하고 봉사하고 건강하게 활동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말에서는 자긍심이 묻어 나온다. “오늘 고양신문에서 취재 나온다는 것도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 일이에요? 아이들한테도 자랑스럽고.” 우리의 인터뷰도 행복하고 기쁜 하루의 일이 된다. 해외여행과 코로나 1년을 주제로 영화를 구상 중이라는 말에서는 건강한 삶 혹은 행복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구십 인생을 한마디로 표현해 달라고 하니 ‘긴 세월 멋있게 살았다네’라고 하신다. 

할아버지 마술사님!  또 다른 마술, 인생 마술을 계속 보여주시길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건강넷, 심리상담 전문가 노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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