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넷·고양신문 공동진행 건강도시 심층기획➐ ‘어떻게 나이들어야 할까’
어르신 인터뷰
꼿꼿한 독거, 97세 김동수 어르신
80대까지 목수 일 거뜬하게
함께 살자는 자식들 설득 마다
직접 지은 집에서 독거 선택
전쟁세대의 고된 삶 성실하게
음식 등 일상의 절제력 강해
[고양신문] 호기심을 참을 수 없다는 듯 내밀어 나오는 연초록 새순들과 통통 튀는 노랑 개나리들, 머리 위로 온통 쏟아지듯 재잘대며 무리진 벚꽃들과 살랑 살랑 눈을 맞추며, 삼송역 근처의 나지막한 동네로 김동수(97세) 어르신을 뵈러 갔다.
“건강하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씀 듣고 싶어 왔어요.” 첫인사 겸 찾아뵌 이유를 말씀드리자 담백한 한마디가 돌아온다. “글쎄요. 고마운 말씀인데… 지가 사는 것도 참 뭣하고, 나이가 좀 많은 것뿐이지 아무것도 없어요.” 가진 것을 꾸며 말하거나 구구하게 설명하는 분은 아니구나 싶어서, 인터뷰에 대한 긴장감이 돌았다. 그리고 중간쯤 지나서는 인터뷰 목적을 좀 내려놓고, 97세에 홀로 삶을 살아가는 온건하고 성실한 한 어르신을 마주하고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의미를 담을 수 있었다. 어르신은 자식들의 권유와 설득에도 불구하고 홀로 사는 삶을 선택했다. 자신이 직접 지은 집에서, 떠날 수 없는 작디작은 고향에서 여생을 마무리하시겠다는 의지는 누구도 바꿀 수 없어 보였다. 집은 오래돼 낡았지만 허술하지 않고 탄탄했다. 방과 부엌의 문이며, 방과 거실, 부엌의 위치가 단아했다. 어르신이 60대 초반에 지었다고 하시니, 40여 년 전 지은 집으로는 참 견고하고 아름다운 모양이다.
셋방살이를 마치고 온 가족이 살 수 있는 집을 지었던 어르신의 옛 마음과 평생 목수 일을 하시며 다져진 기술, 누구도 제대로 알아주지 못했을 미적 감각이 함께 배어있는 집이다. 인터뷰를 마치는 순간 집이 곧 어르신의 모든 것을 설명해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시 찬찬히 집 구석구석을 뜯어보았다. 군더더기 없이 성실한 삶, 온화하면서도 꼿꼿해서 휘둘리지 않은 삶이 질서정연하게 놓여있었다.
▍혼자 계시면 식사가 제일 어려우실 텐테, 식사는 어떻게 하시나요.
식사는 고양시 복지관이 있잖아요, 거기서 일주일에 2, 3번 도시락을 보내줘요. 그리고 주엽동에 사는 딸애가 와서 챙겨줘요. 뭐 먹는 것이 빈약하긴 하지만 그래도 괜찮아요.
▍97세이신데, 귀도 밝으시고, 정정하세요. 어떻게 이렇게 건강하신가요.
건강하다기보다는 아픈 데가 없으니까 그렇지. 뭐 말도 못 해요. 신체에 별 이상은 없는데, 근력이 쇠약해져서, 걸음걸이도 시원찮고, 나이가 들고 보니까 다르데요.
주위 분들에 의하면 어르신은 자립정신이 대단하다고 하신다. 혼자 생활하시면서 집안 정리도 손수 하신다고 한다. 코로나19 이전에는 복지관도 다니시고, 동네에서 걷기를 아주 많이 하셨는데, 코로나 이후로는 바깥 운동이며 나들이를 안 하게 되니 부쩍 근력이 쇠약해지신 것 같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와 전쟁기를 보내셨는데, 어떻게 사셨나요.
고향에서 소학교를 마친 후, 일본 군수공장에서 2년 정도 일했어요. 군수공장에서 일하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왔지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가정환경은 정말로 험악했지요. 일할 줄 모르는 내가 일한다고 뭐 나아지겠어요. 살림이 좋지 않았어요. 난시(亂時)이고 전쟁 중이고….
그러다가 징집되어 만주의 일본군으로 파병을 앞두고 있었는데, 훈련 중에 해방이 됐어요. 결혼하고 가정을 꾸렸는데, 얼마 가지 않아 6·25 전쟁이 일어나서 참전하고. 전쟁 후에 하사관 학교를 마친 후, 육군 중사로 제대했어요. 군대에 계속 있었으면 월급도 많이 받고 괜찮았을 텐데, 제대를 해서….
▍군대에 계속 계시지 왜 나오셨나요, 제대 후에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군에 있을 때 장기복무를 할지 말지, 지원하라고 했는데, 장기복무를 포기하고 고향에서 농사도 짓고 이런저런 생업을 했어요. 그러다가 먹고살기 힘들어서 고모님 딸이 살고 있는 여기(삼송동)로 왔어요. 여기 와서는 노동일을 했지요. 목공 일을 주로 하고, 잡부 일도 하고…. 일이 생기는 대로 했지요.
▍언제까지 일을 하셨나요.
80대까지도 일을 계속 했어요. 이 집도 20여 년 전에 지은 거고요. (어르신이 직접 집은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거실 역할을 하는 작은 마루를 가운데 두고 주방과 방들이 다정하게 배치되어 있어 단아하고 예쁘다. 정성을 들인 집이다. 어르신과 긴 세월을 함께 한 오래된 친구처럼 느껴진다.)
▍80대까지 일을 하셨다니 대단하셔요. 체력이 좋았다는 말씀이시네요.
70대까지는 체력이 좋았지요. (친하게 지내시는 삼송리 노인정 회장님 말씀으로는 80대까지도 목공 일을 하셨는데, 체력이 좋으시고, 나이 드셨어도 꼼꼼하게 일을 잘 하셔서 동네에서 평판이 좋으셨다고 한다.)
▍음식은 어떻게 드셨나요, 젊었을 때나 지금 좋아하는 음식이나 잘 드시던 음식은요.
음식은 다 잘 먹고, 그런 것 보다도 그냥 난시에 태어나서 좋고 나쁜 게 없었어요. 배고프면 그냥 먹는 거지 가리고 그러지 않았어요. (따님 말씀을 들어보면, 어르신은 소식을 하고, 된장찌개와 생선을 즐겨 드신다. 매끼 한 공기 정량을 드시고,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정량을 넘어 드시는 적은 없단다. 음료수는 아예 드시지 않는다. 자신이 정한 것을 지키려는 의지와 고집이 아주 강하시다고 한다.)
▍ 술이나 담배는 하셨어요.
술은 먹고, 담배는 안 하고, 군에 있을 때는 담배 때문에 아주 힘들었어요. 내가 그냥 아주 몸이 당기지 않으면 무리하게 먹거나 그러지 않고, 술도 먹다가 나이가 들면 자동적으로 그만두게 되는 거지요. 주량이라는 것도 그냥 술이 생기면 먹고, 안 생기면 안 먹고.
▍드시는 약은 있으세요.
동네 병원에서 처방받아서 먹는 혈압약 하나 먹어요, 감기가 걸리면 처방받아서 먹고 그러죠. 집안에서 나이도 많고 오래 사니까, 애들이 이것저것 사 오고, 손님들이 사 오고 그래요. (거실 한편 안방 문가에는 누군가 챙겨준 건강보조약병이 정갈하게 한 줄로 놓여있었다.)
▍운동은 따로 하시나요.
80대까지 일을 했으니 따로 운동은 많이 안 했고, 일을 그만둔 후에는 주로 동네 걷는 일이 운동이었지요, 뭐 따로 한 게 없어요.(어르신은 코로나가 퍼지기 전까지만도 매일매일 동네를 걸으셨는데, 코로나 이후 집 밖으로 나가기가 어려워지면서 근력이 급격히 약해지셨다고 한다.)
▍ 할머니 이야기도 좀 듣고 싶어요. 어떤 분이셨고, 언제 돌아가셨나요.
저처럼 충남 서천사람인데 24살 무렵 중매로 만났지요. 남자 성질 닮아서(할머님은 활발한 분이셨다고 한다) 아마 63세인가, 그때쯤 돌아갔을 거예요. 그 사람도 장사한다고 고생 많았지요. 그냥 그때는 다 어려웠으니까 애들 출가할 때까지는 이것저것 다했죠.
김동수 어르신 부부는 무척 사이가 좋으셨다고 한다. 할머니는 명랑하고 쾌활하셨고, 어르신은 주관이 뚜렷하지만 온화한 성품이셔서, 두 분이 싸우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늦게까지 일하시고, 고된 삶을 참 성실하게 사셨는데,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면 들려주세요.
그런 거 없어요. 난시니까, 결국에는 사는 것이 오죽했겠어요? 서로 원망하고 탓하고 할 그런 형편도 못되고 처지도 안 되고, 목숨이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일은 뭐 가족을 위해서, 가족을 보고서 산 거지요. 뭐, 없어서 못 해준 게 많지만 노력은 많이 했어요.
▍앞으로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싶으신지, 바라시는 바가 있으시다면.
이제는 뭐, 백세가 낼모레인데… 바라고 그럴 게 뭐 있겠어요. 자식들이 건강하면 되지요.
▍살아오시면서 제일 행복하고 좋았던 때는 언제였는지요.
한마디로 난시에 태어나서 편안하게 살지는 못했지요? 학교 다닐 적에는 내 자유가 있었지만, 그다음에는 전쟁 속에서 살았으니까요. 애들 키우고 여기 와서 정착해서 살 때가 좋았겠지요. 근데 그게 좋은지 아닌지를 생각도 못하고 그냥 먹고 살았던 것 같아요. 후회되는 것도 있고 그랬는데, 이제 후회는 안 해요.
▍이렇게 오래도록 건강을 지키신 비결이 궁금해요.
비결이라는 것 보다는 뭐 있겠어요. 어떻게 살았나… 뭐 특별한 게 없어요, 어머니도 오래 사셨어요.(어르신의 어머니도 100세 까지 사셨다고 한다.)
김동수 어르신은 100세 가까이 사셨지만 아직 몸이 꼿꼿하시다. 코로나로 바깥 활동을 못하시면서 근력이 많이 약해지셨지만 마르신 몸에 비해 골격은 여전히 꼿꼿하시다. 정신 역시 꼿꼿하시다. 하고 싶은 말씀과 안 하고 싶은 말씀 사이의 간격이 분명했고, 단 한마디에도 군더더기가 없었다. 아마, 아무리 힘들어도 마지막 순간까지 홀로 주도적인 삶을 사실 것이다. 97년 고된 삶을 지탱해온 어르신의 건강비결은 이 꼿꼿함이 아닐까 싶다.
꼿꼿함은 곧 안팎으로 성실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자신의 선택에 최선을 다하고, 절제하며 노력하는 삶의 모습에서 무언의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인터뷰 내내 거실의 흔들의자에 앉아 흐트러짐 없이 짤막짤막하게 응답했던 어르신은 대문 앞 골목까지 배웅 나오시면서 환한 웃음을 선사해 주셨다. 어르신의 근력이 더 약해지기 전에 코로나가 깨끗이 물러나 주길 기원해본다.
어르신의 인터뷰 중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있다. ‘난시여서 힘들게 살았다’, 그리고 ‘군에 남아있었으면 그래도 좀 편하게 살았을 텐데’ 거의 모든 질문은 이 두 가지 이야기로 이어졌다. 기억이 희미해진 97세 어르신의 기억에 또렷이 남아있는 생각은 어르신의 삶에 대한 스스로의 해석이었다. 일제강점기와 전쟁, 전쟁 직후의 고된 시기에 인생의 절정을 보내야 했던 어르신은 스스로의 삶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고됐다’고 기억한다. 군더더기 없는 어르신의 표현력을 감안하면, 그 삶의 고됨이 어느 정도였을지, 마음이 아리기만 하다. 난시는 선택할 수 없는 시간이었고, 가난 역시 쉽게 떨쳐버릴 수 없는 굴레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0대까지 일 하시면서 성실하게 살아온 어르신이 던진 말씀 한마디가 마음 깊이 박혀있다.
“없는 게 많았지만, 노력은 많이 했어요. 이제 후회는 안 해요”
조성주 건강넷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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