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매일 찾을 수 있는 가까운 치유숲 - 마을숲 산책➍ 고봉산

건강넷·고양신문 공동진행 건강도시 심층기획 ‘어떻게 나이들어야 할까’ 

해발 208m, 누구에겐 낮은 산, 누구에겐 높은 산 
느슨해진 몸과 마음에 활력 충전해주는 고마운 산 

매일매일 찾을 수 있는 가까운 치유숲
마을숲 산책➍ 고봉산 

척추수술 미루고 자연치유 공부
등산 1년 만에 디스크 증세 호전 
야간산행 인연으로 만난 고봉산 
추우나 더우나 4년째 밤길걷기 

 

고봉산은 높지 않은 마을 뒷산이지만, 숲의 에너지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습지와 소나무 군락, 오르내리막이 경쾌한 산길, 그리고 사찰도 두 곳이나 있다. 고요하고 아늑한 고봉산 계단길. 
고봉산은 높지 않은 마을 뒷산이지만, 숲의 에너지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습지와 소나무 군락, 오르내리막이 경쾌한 산길, 그리고 사찰도 두 곳이나 있다. 고요하고 아늑한 고봉산 계단길. 안곡습지공원에서 5분 정도 올라가면 208개 계단길이 나온다. 

퇴행성척추디스크, 죽도록 아파도 1년만 참자 
[고양신문] 고양시 주민이 된지 23년 만에 고봉산을 처음 오르게 되었습니다. 차로 10분 안에 도착할 수 있는 가까운 이 산을 나는 왜 그렇게 긴 세월 멀고 먼 길을 돌아 도착할 수 있었을까요? 저는 마흔 한 살에 퇴행성 척추디스크 진단을 받았습니다.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아 배를 열어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수술 후 몸이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보다 인공디스크를 삽입하고 내 척추 어딘가에 평생 철심을 박고 살아야 한다는 이물감이 더욱 더 공포스러웠죠. 의사 말만 듣고는 쉽게 수술을 결정할 수 없었기에 고통을 참아가면서 척추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대형서점에 가서 척추나 허리, 디스크라는 단어가 들어간 책을 모두 골랐는데 무려 27권이나 되었어요. 저는 그 책들을 정성스럽게 정독하면서 “아! 수술하지 않고도 자연치유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구나, 자연치유에 희망을 걸고 죽도록 아파도 1년만 참아보자, 1년 동안 스스로 노력해 보고 안 되면 그때 가서 수술을 결정하자” 저는 이렇게 나름대로의 ‘퇴행성 디스크 자연치유 솔루션’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척추디스크에 걸려본 사람은 다 압니다. 척추디스크에 걸리면 허리가 아픈 것이 아니라 탈출된 추간판이 하체로 내려가는 신경을 압박하여 다리가 저리고 보행 장애가 온다는 것을요. 허리는 우리 몸의 중심에서 직립보행을 할 수 있도록 지탱하는 중요한 지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것을 지탱하는 것 또한 다름 아닌 복근과 허리 뒤쪽에 있는 기립근이죠. 나는 그동안 즐겨왔던 마라톤이 뛸 때마다 허리에 적잖은 충격을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중단하고 복근과 기립근, 대퇴근 강화에 도움이 되는 기구운동과 등산으로 전환하게 되었습니다. 

산이 아름답다는 것을 실감하는 계기가 찾아왔습니다. 치료를 목적으로 시작한 등산이 점차 건강이 회복되어지면서 100대산 종주로 발전하였고 시작한 지 꼭 1년 만에 디스크 증세도 호전되어 나중에는 북한산 인수봉을 오르내리는 암벽클라이머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기를 15년이 지난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목요일마다 안곡습지공원에서 별밤걷기를 하는 멤버(다음카페:고양들메길)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고봉산 순환로 시작점에서 보이는 숲. 숲 뒤로 철탑이 보인다.
고봉산 순환로 시작점에서 보이는 숲. 숲 뒤로 철탑이 보인다.

 12월 그믐밤 별밤걷기에서 만난 고봉산 
처음 만나는 사람들을 불도 없는 암흑천지에서 만난다는 상상을 해 본적도 없는데 그날은 12월의 어느 그믐밤이었습니다. 미팅장소가 공원 화장실 옆으로 되어 있어서 저는 공원길 걷는 정도의 가벼운 트레킹으로 생각하고 편안한 운동화에 손전등 하나만 가지고 나가는 실수를 범했습니다. 미팅시간은 저녁 7시 30분, 달이 없는 그믐밤, 영하 10도의 기온, 인원 6명 중 4명이 여성이었고 리더 또한 여성이었습니다. 

고봉산 정상에 세워진 철탑은 북한산 정상 백운대에서 가장 많이 보아왔습니다. 내가 사는 동네 일산을 보려고 고봉산 철탑을 애써 찾아 낸 이후 북한산만 오르면 고봉산 철탑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었죠. 북한산에서 본 고봉산은 작은 야산에 불과했기에 주말 등산을 위한 가벼운 워밍업 정도로 생각하고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좌측으로 길게 철조망이 처져 있는 길을 비교적 빠른 속도로 이동해 갔으나 평탄한 길이라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평탄한 길도 5분 남짓, 긴 나무계단 오르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가파르다 할 만큼 제법 경사도가 있었으나 학습된 일행들은 걷는 속도를 유지한 채 말없이 올라갔고, 나 또한 대열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같은 속도를 유지하며 따라갔습니다. 그러나 얼마 못가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왼쪽 둘째 발가락이 운동화 끝에 닿는 불편감도 생겼으나 내색하지 않고 올라갔습니다. 계단 끝에는 차량 운행이 가능한 포장도로가 나 있었고 빨간불이 반짝거리는 고봉산 철탑이 북한산에서 본 것과는 다르게 내 머리 바로 위에서 나를 장악하고 있는 거대함에 매우 놀랐습니다.

사전준비 없이 참석했던 그날의 야간산행은 악몽 자체였습니다. 2시간 동안 무려 8㎞를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는데, 운동화 끝에 닿은 발가락은 불편함을 넘어 시간이 갈수록 통증으로 변질되었고 남모르게 절뚝거리며 따라 가느라 고통이 수반되었습니다. 헉헉대며 숨을 몰아 쉰 탓에 갈증은 심했고 흥건히 베인 땀이 몸 밖에서 얼기도 해 한기도 느꼈습니다. 두 번 다시 올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발가락 통증이 하루하루 나아감에 따라 야간산행의 그 오묘하고도 깊은 맛에 영하10도, 영상30도의 간극에도 불구하고 나는 4년째 이 산행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고봉산의 밤은 가로등이 없어 스산한 분위기입니다. 그러나 고봉산을 다녀온 날은 뿌듯한 기분이 들어 좋습니다. 숙면을 취해서 좋고, 땀을 흘려서 좋고, 건강한 담력을 가진 것 같아서 좋고, 아무리 추운 날씨에도 웅크리지 않고 나를 이겨냈다는 성취감이 들어서 좋고, 무엇보다 같은 취미를 가진 동료들과 함께 한다는 것이 좋았습니다.

고봉산 산책의 재미를 더해주는 영천사 풍경
고봉산 산책의 재미를 더해주는 영천사 풍경.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참 예쁜 계단길
고봉산에는 참 예쁜 걸음을 걸을 수 있도록 배열된 나무계단이 있습니다. 그 계단을 내려올 때면 레드카펫을 밟고 내려오는 여우주연상 수상자가 된 듯한 착각에 빠집니다. 계단을 내려오면 똑똑 떨어지는 약숫물이 길 잃은 나그네의 처량한 바짓가랑이를 잡은 듯 놓지를 않습니다.

보기만 해도 지어진지 꽤 오래되어 보이는 약수터, 더 오랜 세월을 적합으로 살아왔을 약수터는 오고 갔던 많은 사람들의 애환을 약숫물 한잔으로 달래가며 어쩌면 사람들의 삶과 닮아갔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 산은 비교적 묘지가 많은 산입니다. 그만큼 풍수지리적으로 명산이었음을 말해 주고 있지만 묘지 옆을 지나가면 왠지 스산한 기운이 내 목덜미를 쥐어짭니다. 

 별이 총총한 밤하늘 아래서의 시낭송회 
묘지를 지나 내리막길을 내려가다 보면 인접해 있는 인가에서 여러 마리의 큰 개들이 동시에 숨넘어가게 짖어대는 곳이 있습니다. 한 울타리 안에서 튼튼한 목줄에 매여 나올 수도 없을 것 같은 개들이 사람의 인기척에 거세게 반응을 하는 곳이죠. 처음에는 공격성이 느껴져 무섭기도 했지만 수년 동안 한결같이 듣다보면 고봉산 자락의 일부가 된 듯합니다. 

출발한지 4㎞를 걸어 장사바위 광장에 도착했습니다. 휘영청 밝은 달이 큰 나무 꼭대기에 하얀 풍선처럼 걸려 있었습니다. 손전등을 끄고 한참동안 하늘을 우러러 봤습니다. 별들이 총총히 박혀 있는 하늘을 모든 시름 풀어놓고 의미 있게 본때가 언제였을까요? 나는 이외수의 ‘가끔씩 그대마음 흔들릴 때에는’ 이라는 시가 떠올라 유튜브에서 명상 음악을 찾아 틀고 작은 소리로 낭송했습니다. 

내가 처음 야간산행에 합류했던 날 한편의 시를 낭송해 준 것이 계기가 되어 멤버 대부분이 나의 시낭송강좌를 수강했습니다. 그래서 장사바위에 도착하면 우리는 돌아가면서 한편의 시를 조곤히 낭송하곤 합니다. 리더의 출발신호가 떨어지면 저마다의 가슴속에 짓누르고 있던 무언가는 별이 흐르는 방향으로 유유히 표류해 가고 우리는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왔던 길을 되돌아갑니다.

숲 속에 친절하게 놓인 운동기구들.
숲 속에 친절하게 놓인 운동기구들.

 

 고양누리길의 제9코스 고봉산누리길 
고양시에는 모두 14개 코스의 누리길이 있습니다. 그 중 고봉산은 제9코스인 고봉누리길에 해당됩니다. 고봉누리길을 그림으로 보면 안경모양을 하고 있는데 왼쪽은 황룡산순환코스요, 오른쪽은 고봉산순환코스입니다.

고봉산의 높이는 208m이고, 등산로 초입에 설치된 긴 나무계단도 대략208개쯤 됩니다. 고봉산순환코스를 가려면 안곡습지공원에서 208계단을 딛고 고봉산철탑이 보이는 포장도로까지 약1㎞를 올라가야 합니다. 고봉산은 흙이 주산인 육산에 속해 비교적 걷기가 수월한 편입니다. 포장도로까지 올라가는 길 중간 중간에 운동기구가 설치되어 있고 고봉산의 역사를 알려주는 안내판들도 설치되어 있어 하나하나 읽으며 올라가다 보면 어느새 찔레꽃 군락지에 다다르지요. 장미과에 속하는 찔레꽃은 5월에 백색꽃이 피어 만발하다가 9월이 되면 새빨간 열매를 맺어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곳입니다.

고봉산은 역사적으로도 깊은 유래가 있어요. 고봉이라는 이름은 삼국시대부터 사용되어 왔다는 삼국유사 기록이 있고, 고봉산 정상 군부대 안에는 옛날 봉화를 올렸던 봉수대가 있는데 일반에게 공개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이 봉수대는 파주시 교하 검단산 봉수대에서 신호를 받아 은평구의 봉현봉수로 전달하였다는 기록이 세종실록지리지에 문헌으로 남아 있다고 합니다.

또한 고봉산에는 두 개의 사찰이 있는데 그 중 만경사는 옛날 조선중기의 관료였던 모당 홍이상 선생이 학문을 닦고 조상을 모시던 원당이었다고 하며, 그 외에도 ‘천명도설’을 지은 조선의 학자 추만 정지운 선생의 묘와 조선 숙종대에 왕비로 지냈던 장희빈의 가족묘가 있습니다. 그리고 파주~고양~구파발 지역은 6.25때 치열한 전투가 이루어졌던 곳인데 육군은 2009년부터 유해발굴 작업을 해 오면서 전사자의 넋을 기리도록 산중턱에 ‘평화의 쉼터’를 만들었어요. 이 쉼터는 많은 시민들이 경사진 곳을 오르느라 숨이 턱 밑까지 찼을 때 적당히 쉬어가기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안곡습지 원점회귀 산행 6.5㎞, 2시간 30분 
고봉산순환코스는 208계단을 딛고 1㎞쯤 올라가 군부대 앞에 섰을 때부터 시작됩니다. 왼쪽은 영천사, 오른쪽은 만경사가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만경사 쪽에서 시작하여 수연약수터~진밭~장사바위~영천사로 회전하는 반시계방향코스를 주로 이용합니다. 그리고 안곡습지공원까지 원점회귀하는 산행 총거리는 6.5㎞, 약 2시간 정도 소요됩니다.

고봉산의 기점이라고 볼 수 있는 장사바위는 운동기구가 설치된 공원입니다. 장사바위는 큰 바위가 둘로 갈라진 모양을 하고 있는데 힘센 장사가 쪼갰을 것이라는 추설로 붙여졌다고 하나 근원이 명확치는 않습니다. 장사바위에서는 하산길을 골라서 내려갈 수 있습니다. 순환로 시작점까지 5분 만에 내려갈 수 있는 짧은 길도 있고, 수연약수터를 경유해서 좀 더 길게 내려갈 수 있는 길도 있고, 순환 완주코스인 영천사나 만경사로 되돌아가는 길도 있습니다.

영천사에 다다를 즈음엔 소나무가 하늘로 곧게 뻗은 솔밭길이 나옵니다. 이곳은 바람도 자취 없이 쉬어가는 곳인 듯 고요 속에 냉기가 흐르는 곳입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나무 하나에 등을 기대고 눈 감아보세요. 땀으로 체온이 상승된 온몸에 시원한 냉기가 훑고 지나가는 느낌이 듭니다. 저는 이곳에서 잠시 머무를 때면 무아지경에 빠져 축 늘어져가는 내 몸 어딘가에서 새로운 에너지가 분출되어 심장을 자극하는 것을 느낍니다.

다시 208계단을 딛고 내려와 안곡습지공원에 도착하면 내 몸은 어느새 태엽이 바싹 감긴 인형처럼 통통거리며 활력이 넘칩니다. 누구에게는 높은 산일 수 있고 누구에게서는 낮은 산일 수도 있지만 나에게 있어 고봉산은 결코 멀리 할 수 없는 ‘에너지 충전소’ 같은 곳이기에 오늘도 나는 느슨해진 태엽을 되감으러 수많은 별들이 아름답게 빛나는 고봉산에 오르고 또 오릅니다.

서금희 일산서부경찰서 청문감사관 
건강넷. 시낭송지도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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