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욱의 시민생태이야기 에코톡]
장항습지 람사르습지 발판삼아
한강하구가 남북 공동 람사르습지
등록될 수 있도록 민관협치 기대
[고양신문] 디지털 노마드가 뜨고 있다. 한 직장에 속하지 않고 디지털기기를 이용해 밖에서 자율적으로 일하는 현대판 유목민들을 일컫는 신조어다. 같은 맥락으로 장항습지가 람사르습지에 등록된 즈음에, 람사르습지를 찾아다니며 습지와 함께 살아가는 ‘람사르 노마드’의 삶을 소개한다. 람사르총회는 3년마다 대륙을 돌아가며 개최된다. 우리나라에서는 2010년 창원에서 10차 총회가 개최됐었고, 올해는 중국 우한에서 14차 총회가 개최될 예정이다.
총회는 다양한 이슈로 일정이 빠듯하지만 그 와중에 개최국의 람사르습지를 방문할 기회가 공식적으로 제공되는 생태투어가 백미로 꼽는다. 대개 람사르습지가 오지에 있거나 접근하기 어렵다보니 공식적으로 방문하는 기회가 오면 무조건 잡아야 한다. 그렇게 람사르총회도 참석하고, 다른 나라의 람사르습지를 보는 일석이조의 생태탐방객들을 ‘람사르 노마드’라 할 만하다.
람사르(Ramsar)가 무엇인가. 이란의 카스피해 연안에 위도가 고양시와 거의 같은 소도시 이름이다. 딱 50년 전인 1971년 이곳에서 ‘국제적으로 중요한 물새서식지로서 습지에 관한 협약’이 맺어졌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협약을 ‘람사르협약’이라 부른다. 현재는 습지의 보전과 현명한 이용에 관한 협약, 즉 ‘습지에 관한 협약(Convention on Wetlands)’으로 진화했다.
람사르협약이 특이한 점은 유엔협약이 아니고 정부 간 협약이란 것이다. 말하자면 유엔의 협약처럼 강대국인 상임이사국들이 패권을 휘두르거나 가입을 승인하는 것이 아니라, 가입국은 누구든 평등한 자유협정이자 신사협정이다. 이 협약을 탄생시킨 장본인들은 바로 NGO인 IWRB(현 국제습지보호연합, Wetland International)와 네덜란드정부, 유네스코 등이다. 그래서 지금도 람사르협약은 정부당사국들과 함께 국제NGO파트너들(IOPs)이 과학기술패널, 인식증진기구에 참여해 전문성을 뒷받침한다. 한마디로 말해 민관협치협약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의 람사르 노마드적 삶은 2005년 11월 우간다 총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환경부장관이 ‘한강하구 장항습지’를 콕 찍어서 람사르습지에 등록하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우리나라에 람사르습지는 3개 등록되어 있을 때였다.
그로부터 16년 동안 여러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장항습지는 올해 24번째로 등록되었다. 아프리카대륙에서 열린 총회 덕분에 나는 우간다 캄팔라의 빅토리아호수와 케냐 주변의 람사르습지를 둘러 볼 수 있었다. 습지를 하얗게 덮은 홍학(플라밍고)과 펠리칸, 얼룩말과 임팔라들이 눈앞에 뛰노는 장관에 한동안 말문을 잃었었다. 이때부터 람사르 노마드가 됐다. 우리나라 람사르습지는 물론이고, 일본의 북쪽 홋카이도 쿠시로습원에서 남쪽 끝 오키나와의 이시가키 산호초습지까지, 그리고 중국 치치하얼의 자룽습지에서 홍콩의 마이포습지까지, 러시아의 바이칼호수, 루마니아의 다뉴브델타, 북해의 와덴해까지 나의 습지 목록에 포함됐다. 물론 아직 나의 버킷 리스트는 무궁무진하다. 장항습지가 2448번째 람사르습지이니 말이다.
이렇게 람사르습지를 섭렵하는 사람들은 서로 국적과 인종을 잊는다. 하물며 적대국이라도 각자의 정황은 내려놓고 습지에서는 하나가 된다. 그래서 람사르총회 자리에서는 수십 년간 친분을 맺은 사람들끼리는 ‘람사리안(Ramsarian)’이라는 동질감있는 새로운 인류가 탄생하기도 한다. 습지는 그렇게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이 하나가 되는 평화의 생태계이다.
그러나 한강하구는 하나의 생태계가 남과 북으로 그리고 지자체별로 쪼개져서 여전히 위태롭다. 북한도 3년 전 람사르협약에 가입해 문덕습지와 나선습지를 등록했으니 이제 람사르습지로 생태적 통합을 이룰 때다.
2021년 5월 21일, 장항습지는 갯물숲이라는 독특함과 2만 마리 이상 도래하는 철새 수, 멸종위기종과 어류 서식처로서 중요성으로 람사르습지에 등록됐다.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 목록(Ramsar list)에 장항습지가 등록됐다는 뜻은 앞으로 장항습지의 위상이 지금보다 높아진다는 것이며, 관리수준을 국제화해야 한다는 뜻이다. 당연히 기존보다 강한 민관협치도 요구된다. 그동안 묵묵히 기록하고 봉사해온 시민과학자들, 고양시와 환경부 관계자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며 한강하구 전체가 람사르습지로 등록될 때까지 함께 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