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환 시장 취임 100일 진단③ 도시재생, 주민자치·공동체 분야

이동환 시장 취임 후 가장 변화된 정책 기조 중 하나는 주민거점공간에 대한 '사용료 징수 의무화'다. 시는 예산부담을 줄이기 위한 방편이라고 설명하지만 정작 해당 시설의 가장 큰 목적인 '주민커뮤니티 활성화'를 도외시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은 원당도시재생 내 설립된 배다리
이동환 시장 취임 후 가장 변화된 정책 기조 중 하나는 주민거점공간에 대한 '사용료 징수 의무화'와 '민간사업자 입주추진'이다. 시는 예산부담을 줄이기 위한 방편이라고 설명하지만 정작 해당 시설의 가장 큰 목적인 '주민커뮤니티 활성화'를 도외시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은 원당도시재생 내 지어진 '배다리사랑나눔터'.

 

커뮤니티 활성화 거점공간
민선8기 “비용절감 최우선”
주민세환원·전담공무원 철회
공동체센터예산 40% 삭감


[고양신문] 지난 12년간 이어진 고양시정을 요약하면 ‘협치 표방 시정부’라고 정의할 수 있다. 기존 관료중심으로 운영되던 시정에 대한 비판과 반성을 거치면서 출범했던 2010년 당시 민선5기 고양시는 시민사회의 참여와 협치, 그리고 주민자치에 기반을 둔 새로운 지방정부 모델을 구축하고자 했다. 시정참여위원회 등 협치기구와 다양한 주민자치사업들이 이러한 고민 속에서 출발했으며 이재준 전 시장 당시 주력했던 도시재생사업 또한 주민조직 스스로 거점시설을 운영하고 동네문제 해결에 나서게 한다는 측면에서 비슷한 맥락으로 바라볼 수 있다. 

하지만 민선8기 이동환 시장 취임 이후 이러한 협치 기조에 균열이 일고 있다. 취임 후 현재까지 나타나는 이 시장의 시정운영방향은 거칠게 요약하면 ‘참여와 협치의 대폭 축소’ ‘행정서비스형 관치’ ‘민간자본 중심의 개발정책’ 등으로 말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나타나는 모습이 바로 주민거점공간 운영에 대한 전면 재검토, 주민자치 분야 예산삭감 등이다. 취임사를 통해 “오직 고양시민만 바라보고 가겠다”고 선언했지만 정작 시민들의 자치활동과 관련된 예산사업들은 축소되거나 사라질 위기에 놓인 상황이다. 

본지는 이동환 시장 취임 100일을 진단하는 세 번째 기획으로 협치 분야를 다룬다. 구체적으로 도시재생사업 전면철회에 따른 여파와 주민자치회 관련 예산 감축, 자치공동체 활동 지원 축소 등의 문제점을 살펴본다.
 

공간운영 주민 맡긴다더니…
시장 바뀌자 민간업체 모색

일산도시재생 핵심사업 중 하나인 일산역 인근 ‘복합문화예술창작소’. 50년 된 일산농협창고를 리모델링 공사를 통해 예술공연장, 주민주도 마을카페, 청소년공간 등 지역의 문화거점공간으로 조성하는 것이 당초 목표였다. 하지만 다음 달 준공 예정이었던 ‘복합문화예술창작소’는 현재 지붕만 휑하니 뜯어놓은 채 공사가 멈춰진 상태다. 이동환 시장 취임 후 농협창고 활용방안에 대한 재검토 지시가 내려지면서 기존 계획을 중단하고 설계변경절차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시는 이곳에 복합문화공간이 아닌 민간업체가 운영하는 대형 카페를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시 관계자는 “당초 목표는 도시재생사업과 연계해 특색 있는 문화공간을 조성하는 것이었지만 이동환 시장 부임 후 예산부담 없이 돈을 벌 수 있는 운영방안을 마련하라는 지시가 내려오면서 사업계획이 변경됐다”라며 “한 달 전 담당자들이 타 지역 답사도 다녀왔고 설계변경안에 따라 공사가 끝나면 운영할 민간업체를 선정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처럼 갑작스러운 사업변경에 가장 큰 곤경을 겪은 이들은 다름 아닌 지역주민이다. 당초 계획에 따르면 고양시는 이곳 농협창고 리모델링 시설의 일부 공간을 마을카페로 조성해 주민들로 구성된 협동조합에 맡겨 운영하려고 했다. 이 때문에 시 담당부서와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는 지속적으로 주민교육을 진행해왔으며 올해 4월 ‘일산 와야지 마을관리협동조합’을 창립하고 마을카페 사업모델까지 구상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지방선거 이후 시장이 바뀌고 부서의 방침이 180도 변화하면서 주민들은 그야말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고 말았다. 

도시재생에 참여해온 한 주민은 “일부 공간이라도 살려서 주민들에게 맡겨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오지만 이미 공간성격도 바뀌고 운영방침도 변경된 상황이라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며 “그동안 동네를 위해 좋은 일 해보겠다고 열심히 나섰는데 이렇게 되고나니 정도 떨어지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커뮤니티 활성화는 뒷전
수익창출에만 ‘골몰’

주민거점공간 운영을 둘러싼 갈등은 비단 일산도시재생 지역만의 일이 아니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동환 시장은 취임 직후 확대간부회의 자리에서 주민거점공간 운영과 관련해 “시 예산이 계속적으로 투입되지 않는 방향으로 운영관리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으며 이러한 메시지를 전달받은 담당부서는 더 나아가 ‘돈을 버는 방향’으로 운영계획을 전면 재검토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다보니 현재 도시재생 지역 내 지어졌거나 완공 예정인 주민거점공간 모두 기존 마을관리협동조합 등 주민자생조직에게 ‘사용료’를 받거나 민간사업자를 유치해 운영하는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다. 

 

이로 인해 원당 도시재생 거점공간인 ‘배다리 행복나눔터’와 ‘배다리 사랑나눔터’의 경우 현재 입주 중인 ‘배다리 마을관리 사회적협동조합’이 철수를 고민하고 있으며 얼마 전 완공된 능곡 토당어울림센터 또한 3~4층이 비어있는 상태로 남겨져 있다. 능곡 도시재생 관계자는 “공유재산 조례에 따라 임대료를 감면해도 한 달에 60만원이 나가는 공간인데 이제 막 시작한 마을관리협동조합(이하 마관협) 입장에선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며 “주민들이 쫓겨나는 것도 문제지만 비어있는 공간에 민간 사업자를 제대로 유치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화전 도시재생 지역 또한 당초 지역주민들에게 운영을 맡기려고 했던 드론센터 옥상 루프탑 공간 조성계획이 철회됐으며 센터 1층 주민커뮤니티 공간운영 또한 불투명한 상태다.  

문제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이 주민거점공간의 기본적인 사업목적인 ‘커뮤니티 활성화’와도 맞지 않다는 점이다. 한 도시재생 전문가는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통해 조성된 주민거점공간은 일종의 ‘주민공동시설’로서 주민편의를 위해 운영되는 것이지 행정에서 수익을 내는 게 일차 목적은 아니다”라며 “타 지역 도시재생의 경우 마을관리협동조합이 아예 거점공간 건물 전체에 대한 운영관리를 맡으면서 수익도 내고 성장하는 모범사례가 나오고 있는데 고양시는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주민자치 예산삭감 항의하자 
“일 안하면 되지 않나” 적반하장  

주민자치 분야에서 나타나는 갈등도 심각하다. 먼저 작년 걸음마를 뗀 44개 동 주민자치회 지원과 관련해 내년 사업비가 일률적으로 3500만원씩 책정됐다. 올해 사업비 3000만원에 비해 500만원 늘었지만 그전까지 별도로 책정됐던 마을신문(소식지)예산과 축제예산을 통합한 금액이기 때문에 사실상 삭감된 예산이라고 볼 수 있다. 

 

일산의 한 주민자치위원은 “우리 동의 경우 축제예산과 소식지 등을 포함하면 올해 예산이 5000만원이었는데 내년에 3500만원으로 줄어들면 앞으로 창의적이고 자율적인 마을사업은 엄두도 내지 말라는 것 아니냐”라며 “하도 답답해서 담당부서에 항의했더니 ‘예산이 없으면 일을 안하면 되지 않느냐’는 식으로 대응하는데 이게 공무원이 주민들에게 할 소리인가”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사업비 삭감뿐이 아니다. 현장에서 가장 필요로 했던 ‘자치지원 전담공무원’ 배치계획의 경우 이동환 시장 취임 후 없었던 일이 됐으며 주민자치회 전면전환 이후 가장 관심을 모았던 ‘주민세(개인분) 주민자치회 환원’정책 또한 당초 내년 2023년부터 도입될 예정이었지만 아직까지 행정에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는 상태다. 특히 주민세 환원의 경우 2023년 1월까지 전년도 개인분 주민세 징수분(약 40억원)의 상당액을 지원한다는 내용이 ‘고양시 주민자치회 조례’에 명시되어 있는 만큼 시행되지 않을 경우 조례위반 논란까지 제기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같은 예산사업 축소 움직임뿐만 아니라 주민자치에 대한 행정의 태도변화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한 주민자치회장은 “시장이 바뀐 뒤 주민자치회 사업에 대한 간섭이 심해졌다. 좋게 보면 시민세금에 대한 관리감독을 철저히 한다고도 볼 수 있지만 주민활동이라는 게 어느정도 시행착오를 고려해야 하는 건데 마치 ‘잠재적 세금도둑’인 것인양 대하는 건 아니지 않나. 자치회 내에서도 이런 식이면 왜 우리가 자치활동을 해야 하느냐고 불만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12년 민관협치 물거품되나
‘제도화 실패’ 반성도

공동체 활동 지원도 대폭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 고양시 등에 따르면 자치공동체 사업을 지원하는 중간지원조직인 고양시 자치공동체지원센터의 내년 예산이 올해 대비 무려 40% 축소될 전망(15억→9억원)이다. 센터예산의 절반 정도가 운영비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사실상 사업예산 대부분이 날아간 셈이다. 이로 인해 센터 사업비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주민공모 공동체사업비, 마을공동체 및 주민자치 활동지원비 등 주민 공모 마을공동체 사업규모가 큰 폭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게 됐다.  

올해 고양시자치공동체지원센터에서 진행한 44개동 주민자치회 간사 워크숍. 센터예산의 대폭 삭감이 예상됨에 따라 내년부터는 이러한 교육프로그램조차 불투명해질 전망이다.  
올해 고양시자치공동체지원센터에서 진행한 동 주민자치회 간사 워크숍. 센터예산의 대폭 삭감이 예상됨에 따라 내년부터는 이러한 교육프로그램조차 불투명해질 전망이다.  

 

고양시 한 마을꿈활동가는 “센터예산이 삭감되면 가장 먼저 우리 같은 활동가 채용을 위해 배정된 예산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라며 “그동안 마을꿈활동가들이 공동체 사업 활성화를 위해 많은 역할을 해왔는데 내년부터는 운영이 어려워질 것 같아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윤석열 정부의 ‘중간지원조직 통폐합’ 정책기조에 따라 고양시가 센터 자체를 없앨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려오는 등 전반적으로 뒤숭숭한 분위기다. 

이처럼 이동환 시장 취임 후 주민자치 분야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퇴행적인 행보에 대해 시민사회의 반발이 일고 있다. 고양시민사회연대회의 등 지역 시민단체들은 21일 입장문을 통해 “‘오직 고양시민만 바라보고 가겠다’는 이동환 시장의 선언과 달리 현재까지 내년 예산편성지침을 보면 시민 참여와 협치는 대폭 축소하고 관치형 행정서비스를 강화하겠다는 시정방향이 엿보인다”며 “이 시장이 말하는 시민이 한낱 행정서비스 대상자일 뿐인지 의심스럽다”고 비판했다. 이어 해당 입장문은 “시민들의 자발적 에너지를 끌어낼 가장 좋은 방법은 시민들에게 기회와 권한을 주는 것”이라며 “주민자치와 지방자치의 발전에 역행하는 정책을 펼칠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시민들에게 참여의 기회를 주고 이를 제도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으로 이동환 시장의 시정방향은 어떻게 될까. 앞서 서울시에서 ‘오세훈 시장 1년’에 대한 평가 작업을 진행했던 김상철 서울시민재정네트워크 운영위원은 “지난 1년간 서울시는 모든 사업부서에서 민관 협치 혹은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는 예산사업들을 찾아내고 이를 정리해나가는 작업을 진행했다”라며 “이 과정에서 그동안 시민사회가 파트너로 여겨왔던 관료조직이 오세훈 시장 쪽으로 완전히 돌아서버리는 바람에 초기 대응이 어려웠던 부분이 있었다”고 전했다.

고양시 또한 비슷한 형태로 기존 협치 사업들에 대한 정리가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여기에는 담당부서가 해당 예산사업에 대한 부정적 평가기준을 마련하는 것부터 감사기구 활용, 조례폐지안 발의 등 다양한 방식이 동원될 수 있다. 

이춘열 고양풀뿌리공동체 정책위원장은 “지난 10년 동안 구축해온 주민참여 정책들이 이렇게 하루아침에 쉽게 무너질 줄은 몰랐다”라며 “너무 개별사업에만 의존했던 나머지 본래 목적인 아래로부터의 주민자치활동을 튼튼하게 하는 데 소홀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해봐야 할 것 같다”는 견해를 내놨다. 

김상철 위원 또한 “그동안 시민사회와 행정의 파트너십이라는 게 결국 공무원들의 선의에만 의존한 나머지 정작 관료시스템을 바꾸거나 높은 수준의 협치 제도를 정착시키는 데 실패한 것 같다”며 “근본적인 제도변화를 논의해야 할 시점”이라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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