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고양시 국회의원총선 톺아보기④
▶1996년 제15대 총선

일산 이택석, 야당세 예상됐던 신도시서 ‘3선’
덕양 이국헌, 세 번째 도전 만에 감격의 당선 
국가안보 vs 북방개발, 최우선 공약 제각각 
유력 대권후보 김대중, 일산 주민으로 투표

15대 총선을 한해 앞두고 김영삼의 신한국당, 김대중의 새정치국민회의, 김종필의 자유민주연합이 나란히 새롭게 깃발을 올렸다. 3년 만에 3김 대결이 재현된 것이다.  
15대 총선을 한해 앞두고 김영삼의 신한국당, 김대중의 새정치국민회의, 김종필의 자유민주연합이 나란히 새롭게 깃발을 올렸다. 3년 만에 3김 대결이 재현된 것이다.  

[고양신문] 14대와 15대 사이에도 정치구도에 큰 변화가 있었다. 1992년 대선에서 낙선한 후 정계은퇴를 선언했던 김대중은 3년 만에 복귀해 ‘새정치국민회의’라는 새로운 당을 창당하며 새로운 제1야당이 됐다. 김 총재를 따라가지 않은 민주당 잔류파는 통합민주당을 꾸렸다. 정주영의 통일민주당은 대선 패배 후 해체돼 일부는 민자당에 합류했고, 남아있는 이들도 이후 김종필이 자신의 지지세력을 이끌고 민자당에서 뛰쳐나와 창당한 자유민주연합에 흡수됐다. 자민련 세력과 결별한 민자당은 진보당 출신 등 새로운 인사들을 영입한 후 ‘신한국당’으로 당의 간판을 갈았다. 

이처럼 1996년 4월 실시된 15대 총선은 여당인 신한국당과 야당인 새정치국민회의, 통합민주당, 자유민주연합이 맞서는 1여3야 구도로 치러졌다. 혼란스러운 정계구도 속에서 명분을 팽개치고 이해득실을 따라 당적을 이동하는 행태가 여·야 모두 속출했고, 유권자들은 정치에 대한 실망감과 피로감을 60% 초반이라는 낮은 투표율로 표출했다.   

임기 중반에 치러지는 총선의 승리가 절실했던 김영삼 대통령은 자신과 맞서다 조기 사퇴한 이회창 전 감사원장을 영입하는 승부수를 던지며 선거 채비를 했지만, 결과는 신한국당이 193석을 얻어 목표했던 과반의석 달성에 실패했다. 

야권에서는 호남을 석권한 국민회의가 79석, 충청과 대구에서 선전한 자민련이 50석을 얻으며 덩치를 대등하게 키웠다. 둘이 합쳐 129석, 1년 후 대선을 앞두고 일명 ‘DJP연합’을 추진할 수 있는 외형적 조건이 갖춰진 셈이었다. 반면 30석으로 총선에 임한 통합민주당은 비호남계 민주진영의 명분을 견지한 후보들이 여러 선거구에서 선전했지만, 거대양당에 밀려 의석 절반이 날아가며 소수정당의 한계를 맛봐야 했다. 

고양시의 15대 총선은 앞선 선거와 비교해 획기적으로 달라진 환경에서 치러졌다. 일산신도시 입주에 가속도가 붙으며 4년 전에 비해 인구가 36만명이나 늘어 62만명이 됐고, 이로 인해 선거구도 덕양과 일산 2개로 늘었다. 순식간에 고양 표심의 주류로 등장한 신도시 입주민들은 이전과는 다른, 야당에 유리한 투표 성향을 보일 것으로 예측됐다. 1년 전 치러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야당인 민주당 신동영 후보가 민선 고양시장으로 당선돼 이를 증명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총선 표심은 달랐다. 개표 결과, 덕양에서는 이국헌 후보가, 일산에서는 이택석 현역의원이 당선의 기쁨을 안았다. 둘 다 여당인 신한국당이었다. 무엇보다도 신도시 입주민들이 대다수인 일산의 경우 야권이 유리할 것이라는 예측을 깨고 오히려 2위(새정치국민회의 김덕배 후보)와의 표차가 덕양보다 훨씬 크게 벌어졌다. 3선 도전 중견으로 자리매김한 이택석 의원이 여당 현역이라는 기반을 잘 활용해 아파트지역 유권자들의 표심을 효과적으로 공략한 결과였다. 

더군다나 야권의 가장 강력한 차기 대권주자인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가 일산4동 주민으로 투표권을 행사했음에도 패배를 피하지 못했다.

신한국당의 승리에는 야권표 분산 덕을 본 측면도 컸다. 국민회의에서는 고양 출신으로 한국JC중앙회장을 지내며 지역사회의 기대를 모았던 김덕배 후보가, 민주당에서는 평민당 창당멤버로 전남 화순에서 재선의원을 지낸 홍기훈 후보가 도전장을 냈지만 이택석 의원을 넘어서지 못했다.   

덕양에서 당선된 대검찰청 특별수사부 부장검사 출신 이국헌 후보는 3번의 도전 끝에 금배지를 다는 감격을 누렸다. ‘5공도 꺾지 못한 민주판사’를 자처한 국민회의 이영복 후보를 불과 900여 표차로 누른 신승이었다. 덕양에서도 통합민주당은 일산과 마찬가지로 3위(이근진 후보)에 만족해야 했다. 4위 서유석 후보는 유명가수 출신이라 관심을 모았지만 무소속의 한계를 절감해야 했다. 

같은 신한국당 소속으로 동반 당선됐지만, 이택석 의원과 이국헌 의원의 ‘당선소감’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었다. 이택석 후보는 선거를 앞두고 비무장지대에서 발생한 북한의 군사도발을 언급하며 “국가안보에 만전을 기하는 데 의정활동의 우선순위를 두겠다”고 말했다. 반면 이국헌 후보는 “북방개발정책 추진과 군사시설보호지역 완화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입법해 새시대에 걸맞은 새 정치의 주인공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고양이라는 지역 자체가 접경지역의 불안과 기대가 공존할 수밖에 없는 곳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15대 총선에서 언급된 후보들의 공약에는 신도시 초창기 고양의 정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신도시 일산부터 살펴보면, 김덕배 후보는 ‘탈출하고 싶은 일산에서 살고 싶은 일산으로’라는 구호를 앞세워 자족시설 하나 없이 베드타운으로 전락한 고양의 처지를 일찌감치 지적했다. 일산에 출마한 자민련 김용수 후보도 ‘국제회의장, 출판단지, 외교단지는 어디로 갔는가?’를 질문했고, 반면 이택석 후보는 경의선 복선전철화, 일산역 민자복합역사, 공장형아파트, 농수산물도매시장 건립 등 다양한 개발 청사진을 제시했다. 

일산 개발로 상대적 박탈감이 있었던 덕양에서는 행신동에 들어설 예정인 ‘고속철도기지창’를 백지화하겠다는 공약을 여·야 후보 공히 내걸었다. 이와 함께 국민회의 이영복 후보는 장기적인 교통난 해소를 위한 수도권광역교통위원회 설립을 약속했고, 민주당 이근진 후보는 ‘경기북부 통일전진기지’를 만들겠다고 했다. 후보들의 공약 중에는 경의선 행신역 신설, 종합병원 유치, 화정도서관 건립 등 이미 계획이 잡혀있는 사안에 숟가락을 얹은 항목들도 눈에 띈다. 

이처럼 두 명의 신한국당 의원들이 20세기 마지막 국회의원 임기를 나란히 시작했고, 주소지인 일산에서 총선에 패배한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는 일년 후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에서의 설욕을 다짐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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