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고양시 국회의원·총선 톺아보기➆ ▶2008년 제18대 총선

손범규(덕양갑) 김태원(덕양을) 백성운(일산동구) 김영선(일산서구)  
  
지선과 대선 이어 총선까지 보수진영 ‘3연승’
여당은 공천파동 야당은 이합집산, 투표율 최저 
여기도 저기도 ‘뉴타운’… 재개발 기대감 들썩

2008년 6월에 실시된 18대 총선은 넉달 전인 2007년 12월 치러진 대선의 연장전이었다. (사진 위)대선에서 뉴타운 사업을 비롯해 다양한 개발공약을 약속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참여정부 심판론에서 벗어나지 못한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에게 압승을 거뒀다.
2008년 6월에 실시된 18대 총선은 넉달 전인 2007년 12월 치러진 대선의 연장전이었다. (사진 위)대선에서 뉴타운 사업을 비롯해 다양한 개발공약을 약속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참여정부 심판론에서 벗어나지 못한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에게 압승을 거뒀다.

[고양신문] 2008년 4월에 치러진 18대 총선은 이명박 대통령 취임 43일 만에 치러졌다. 사실상 대선의 후반전, 또는 연장전이었던 셈이다. 2007년 12월 치러진 17대 대선부터 짚어보자. 

5년 전 출범한 노무현 참여정부의 여정은 내내 순탄치 못했다. 기득권 정치세력의 무리한 탄핵이 역풍을 일으키며 정권 초기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제1당에 등극하기도 했지만, 이후 시도했던 개혁 드라이브가 여러 가지 이유로 관철되지 못하며 지지세력의 실망과 이탈이 가시화됐다. 여기에 부동산정책 실패가 더해졌고, 임기 말에는 대통령 지지율이 10%대로 급락하는 레임덕에 빠져들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치개혁의 기치를 내걸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던 핵심 세력들마저 앞서거니 뒤서거니 탈당하더니, 복잡한 이합집산을 거쳐 ‘대통합민주신당’으로 진영을 추스렀다. ‘도로 민주당’이라는 비난에도 딱히 반박하기 힘든 상황이 된 것이다. 

대통합민주신당은 정동영을 대선 후보로 결정했지만, 유권자들의 기대를 유발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전통적 지지층 다수가 투표 자체에 의욕을 상실하는 최악의 분위기로 대선을 맞았다.

8년 만에 야당이 된 민주당 진영은 총선을 두 달 앞둔 2008년 2월 손학규 대표를 선출하고 통합민주당을 창당했지만, 기울어진 흐름을 돌리지 못하고 크게 패했다.
8년 만에 야당이 된 민주당 진영은 총선을 두 달 앞둔 2008년 2월 손학규 대표를 선출하고 통합민주당을 창당했지만, 기울어진 흐름을 돌리지 못하고 크게 패했다.

본선보다 치열했던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야당인 한나라당은 이명박과 박근혜라는 투톱이 본선보다 훨씬 치열한 경선 전쟁을 치렀다.  당내 장악력에서는 박근혜 후보가 앞섰지만, 대중적 인기에서는 현대건설 신화와 ‘청계천 서울시장’ 이미지를 등에 업은 이명박 후보가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결국 유례없는 내부 네거티브 폭로전을 양측이 주고받은 끝에 ‘경제우선주의’를 내건 이명박 후보가 대선 출전권을 거머쥐었다. 

본선에는 정동영, 이명박을 비롯해 권영길(민주노동당), 문국현(창조한국당), 이인제(민주당), 이회창(무소속) 등 여러 후보가 난립했다. 하지만 이변 없이 이명박 후보가 2위 정동영 후보를 압도적 표차로 누르고 대통령에 선출됐다.  

‘대선 연장전’ 분위기로 치러진 총선

대통령 취임 허니문 기간에 치러진 18대 총선은 보수진영의 절대 강세였다. 물론 구도가 단순하지는 않았다. 친이계는 친박세력을 겨냥한 대대적 공천학살을 실행했고, 친박들은 당명 자체도 기발한 ‘친박연대(서청원, 홍사덕 등)’와 무소속, 한나라당 잔류파로 찢어져 박근혜 수장의 “살아서 돌아오라”는 비장한 명령을 수행했다. 여기에 한때 한나라당의 중심이었던 이회창도 ‘자유선진당’을 창당해 독자세력화를 꾀했다.    

복잡하기는 진보진영도 마찬가지였다. 민주당은 한나라당에서 이동해온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에게 지휘권을 맡기고 ‘통합민주당’이라는 새로운 간판으로 총선에 나섰고, 4년 전 10석을 획득하며 진보정치 바람을 일으켰던 민주노동당은 대선 과정에서부터 뿌리 깊은 노선 차이가 다시금 불거지며 권영길을 중심으로 한 민주노동당과 심상정·노회찬을 중심으로 한 진보신당으로 쪼개져 총선에 임했다. 여기에 중도진영의 대안카드로 잠시 주목을 받았던 문국현 대표의 창조한국당도 대진표에 이름을 올렸다.

제18대 총선에서 경쟁을 펼친 주요 정당들. 이들 외에도 친박연대, 평화통일가
제18대 총선에서 경쟁을 펼친 주요 정당들. 이들 외에도 친박연대, 평화통일가정당, 한국사회당도 있었다. 

뉴타운 열풍 앞세운 ‘MB마케팅’

이처럼 정당들의 구도는 복잡했지만, 18대 총선을 휩쓴 이슈는 한마디로 ‘경제’였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부동산 자산가치의 증식이었고, 이러한 기대감이 전국적인 ‘뉴타운 열망’으로 표출됐다. 선거구마다 뉴타운 재개발의 장밋빛 비전이 바람몰이를 해댔고, 여당 후보들은 저마다 ‘MB(이명박) 마케팅’에 열을 올렸다. 

결과는 역시나 보수진영의 완승. 한나라당-무소속-친박연대-자유선진당 등을 합쳐 무려 200석이 넘는 의석을 보수진영이 가져갔다. 특히 서울에서 단 5석만을 내주는 등 수도권을 완전히 석권했다. 특히 미래권력을 꿈꾸는 친박세력은 대대적 공천학살에도 불구하고 이래저래 당 안팎에서 40석이 살아남는 놀라운 생존력을 증명했다. 내심 교섭단체(20석 이상)을 꿈꿨던 자유선진당은 충청권에서 강세를 보이며 18석을 차지했다.   

반면 통합민주당은 겨우 81석을 건지며 “개헌저지선인 100석만은 만들어달라”는 간절한 호소조차 실현하지 못했다. 수도권에서 111석 중 고작 26석만을 건지는 대참패였다. 지선과 대선에서 보여준 실망감, 그리고 정부의 지원사격과 지역별 각개전투가 결합된 ‘뉴타운 총공세’에 속수무책이었던 것이다.  

민주노동당도 5석에 그쳐 의석수가 반토막났고, 진보신당은 아예 한 석도 못 얻었다. 창조한국당도 문국현 후보만이 은평에서 이재오 의원을 꺾는 선전을 펼쳤을 뿐, 총 3석이라는 미미한 성적을 기록하는데 그쳤다. 

야권 현역의원 4명 모두 낙선

고양시 역시 18대 총선의 보수 바람이 극명하게 표출됐다. 덕양갑 손범규, 덕양을 김태원, 일산동구 백성운, 일산서구 김영선 등 4개 선거구가 일제히 한나라당으로 당선자 명단을 채운 것. 이중 김영선은 4선 고지에 올랐고, 나머지 세 사람은 첫 국회 입성의 꿈을 이뤘다. 

반면 넷 모두 현역 국회의원인 통합민주당(최성, 한명숙, 김현미)과 진보신당(심상정) 후보들은 하나같이 연임에 실패했다. 앞선 두 번의 총선에서 8석 중 7석을 민주당이 석권하며 얻었던 ‘새롭게 등장한 경기 북부 진보의 중심’이라는 평가가 무색한 결과였다. 고양시 최종 투표율은 45.95%로 사상 최저를 기록한 전국 평균 투표율 46.0%과 비슷한 수준을 보였다.  

덕양갑 손범규, 유능한 여당 신인 내세워

덕양갑에선 한나라당 변호사 출신인 손범규 후보가 일찌감치 지역 표밭을 닦으며 선거 4개월 전 지역구로 덕양갑을 택한 진보신당 심상정 현역의원과 일전을 펼쳤다. 통합민주당에선 통일문제 전문가인 한평석 후보를 내세웠지만, 기대감이 낮았다.  

여당 바람을 등에 업은 손 후보와 전국적 지명도에서 앞서는 심 후보와의 접전이 예상됐지만, 결과는 득표율 5.8% 차이로 손범규 후보의 낙승이었다. 하지만 심상정 역시 소수정당 후보라는 한계를 뛰어넘어 37.67%라는 높은 득표력을 과시해 재기의 기반을 마련했다.

한평석 후보는 선거기간 중 심상정 후보에게 ‘단일화’를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과 논의되지 않은 독단적 행동’으로 귀결되며 논의가 흐지부지돼 버렸다. 

1966년 서울 출생인 손범규 후보의 캐치프레이즈는 “덕양의 가치를 올리는 일, 누구에게 맡기시겠습니까?”였다. 변호사이자 변리사인 그는 박근혜 대표 법률특보를 지냈고 대선후보 경선에서 박 후보를 지지한 친박계로 꼽혔지만, 총선 홍보물에서는 이명박 대통령 사진을 내세우며 “집권여당이 부른 유능한 청년정치인”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공약으로는 △수도권 역차별 5대 악법 철폐 △지하철9호선 김포공항역~대곡역 연장 △백석~신사도로 화정구간 지하화 등을 내세웠다. 특히 재개발 열풍을 반영해 ‘원당뉴타운’을 고양시 대표 뉴타운 사업으로 강력히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뉴타운 사업은 기대만큼 진도를 뽑지 못했고, 손 의원은 2012년과 2016년 새누리당 후보로 총선에 나서지만 심상정 후보에게 내리 패배하며 낙선한다.

이후 손범규 전 의원이 다시 한번 언론의 조명을 받는 일이 벌어진다.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후, 이를 방어하기 위한 4명의 변호인단 중 한 명으로 손범규 전 의원이 이름을 올린 것. 그렇지만 특별한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이듬해 4월 박 전 대통령측으로부터 변호인단 일방 해임을 통보받는다. 현재는 정치권을 떠나 본업(변호사)으로 돌아간 것으로 알려졌다.         

덕양을 김태원, 고양시 보수진영의 중심

덕양을에선 최성 현역의원(통합민주당)에게 국민의힘 김태원 당협위원장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지역개발과 규제철폐에 대한 욕구가 유난히 높았던 지역답게 양측의 공약 경쟁도 치열했지만 ‘능곡 뉴타운의 성공적 추진’에는 한목소리였다. 이는 당연히 여당 후보에게 유리한 국면으로 작용했다. 개표 결과 김태원 후보의 여유 있는 승리였다. 김 후보는 당선 소감에서 “우리 캠프의 공약들이 지역주민의 요구를 더 정확히 짚었기 때문에 이길 수 있었다”고 자평했다. 

김태원 후보도 공보물에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의 사진을 연이어 실었다. 아울러 ‘북한에 퍼주기, 삼백만 백수시대, 세금폭탄’ 등을 나열하며 노무현 정부의 실정을 강하게 공격하면서 “대통령과 여당이 국정에 발목이 잡히지 않도록, 이제는 국회를 바꿔야 한다”고 호소했다.    

1951년 대전 출생인 김태원 의원은 삼십대 초반에 민주정의당 사무처 공채에 합격한 후 민주자유당, 신한국당, 한나라당을 차례로 거친 정통 당직자 출신이다. 당선 후에는 정치권에서 축적한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의원직을 수행해 각종 의정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김태원 의원은 4년 후인 2012년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송두영 후보를 초접전 끝에 누르고 당당히 재선 고지에 오른다. 고양시 4개 선거구 중 새누리당이 가져간 유일한 승리였다. 당시 고양시장 선거도 민주당(최성)이 가져가며 김태원 의원은 한동안 고양시 보수진영을 지키는 중심으로서의 역할을 한다.  

하지만 2016년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재호 후보에게 근소한 표차로 밀리며 3선에 실패하고, 이후 2020년 총선에서도 공천을 신청했지만 도전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일산동구 백성운, 고양군수 출신 ‘실세 초선’

3선에 도전하는 통합민주당 한명숙 현역의원에게 한나라당 백성운 후보가 도전장을 낸 일산동구의 대결도 관심을 모았다. 두 후보의 격차는 3.2%로 고양시 4개 선거구 중 가장 접전양상을 보였지만, 결과는 역시 한나라당 후보의 승리였다. 통합민주당 지지자들의 투표 참여 열기가 낮았던 반면, 적극적 투표층을 효율적으로 공략한 백성운 후보가 인지도의 열세를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승리 후 백성운 후보는 “일꾼론으로 인물론을 이겼다”는 말로 소감을 요약했다. 

반면 한명숙 후보는 ‘품격있는 명품도시 일산, 일산의 자존심 한명숙’ 등의 구호를 내걸었지만,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

1949년 경북 경산 출신인 백성운 후보는 행정고시를 거쳐 내무부와 경기도(행정부지사)에서 일했다. 무엇보다도 마흔 살의 젊은 나이에 고양군수(1988~1991)로 부임하며 고양과의 인연을 쌓았다. 당시 고양은 일산신도시 발표에 이어 개발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던 시기였기에, 백성운 군수의 활약도 주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백성운 후보 자신도 이를 선거전에서 적극 활용해 “호수공원을 만들고, 정발산을 지킨 백성운이 일산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호소했다. 

덕양에 출마한 한나라당의 두 후보가 친박계로 분류된 반면, 백성운 후보는 확실한 친이계였다. 1990년 한강제방이 붕괴됐을 때 이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이명박 당시 현대그룹 회장과 인연을 맺었고, 이후 2005년 이명박 서울시장의 부름을 받아 전국시도지사협의화 초대 사무총장을 백 후보가 맡기도 했다. 당선 후에는 초선임에도 당내에서 존재감을 발휘하는 인사로 입소문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2012년 19대 총선에서는 여당이 박근혜 차기 대선후보를 중심으로 ‘새누리당’으로 재편되었고, 백성운 의원은 당의 공천을 받지 못했다. 이후 2016년 20대 총선에서 다시 한번 고양병에 도전 기회를 얻지만, 더불어민주당 유은혜 의원에게 패배하며 정치 여정을 마무리한다. 

일산서구 김영선, 현역 맞대결 이기며 4선

일산서구는 유일한 현역의원들의 대결이었지만, 대부분 한나라당 김영선 현역의원의 우세를 예상하는 분위기였다. 17대 총선에서 통합민주당 비례대표로 입성한 김현미 의원도 나름 성실한 의정활동을 평가받았지만,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을 지내며 어느새 4선에 도전하며 보수진영 대표 여성정치인으로 위상이 올라간 김영선 의원 쪽으로 무게가 실린 것. 결과 역시 득표율이 12% 가까이 벌어지는 김영선 의원의 완승이었다.  

김영선 의원은 의정활동기간 전기통신사업법, 통신비밀보호법 등을 발의하며 주목을 받았다. 공약으로는 △경의선 복선화 △자유로 첨단교통관리시스템 구축 △킨텍스2단계 예산 확보 등을 내세웠다. 아울러 보수진영이지만 녹색소비자연대, 아름다운가게 등 시민소비자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반면 새천년민주당-열린우리당-대통합민주신당에서 연이어 대변인을 역임한 김현미 의원은 △한반도 대재앙 대운하 저지 △사교육비 조장하는 교육정책 개선 등을 약속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김영선 대 김현미’는 이후에도 두 번이나 리턴매치가 성사된다. 잘 아는 대로 19대와 20대에서는 김현미 의원이 연이어 당선되며 2008년의 패배를 되갚아준다. 

하지만 김영선 의원은 5선 고지를 깜짝 달성하고야 만다. 2022년 실시된 창원시 의창구 재보궐선거에 국민의힘 후보로 공천을 받아 당선된 것. 삼십대 중반인 1996년 신한국당에서 초선 배지를 달았으니, 21대 국회 한나라당의 최다선·최고참 의원이 된 것이다. 김 의원은 22대 총선에도 김해 갑 선거구로 지역구를 옮기며 출마 의지를 굽히지 않았지만, 당의 공천에서 배제되며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번만큼은…” 대 “이번에도…”

2008년 18대 총선은 고양시 보수진영에게 ‘마지막 화려했던 추억’으로 남았다. 이후 치러진 3번의 총선에서는 총 12석 중 보수진영이 단 1석(2012년 고양을 김태원)만 차지하고, 나머지 11개의 의석을 모두 민주당과 정의당에게 내어주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한 달도 채 안 남은 22대 총선에서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이번만큼은 다른 결과가 나오기를” 염원하고 있고, 반대로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은 “진보진영 아성이 이번에도 굳건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어느 쪽의 바람이 이뤄질지, 궁금함이 풀릴 시간이 그리 멀지 않았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