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고양시 국회의원·총선 톺아보기⑥
▶2004년 제17대 총선

유시민(덕양갑) 최성(덕양을) 한명숙(일산갑) 김영선(일산을) 

노무현 탄핵이 불러온 역풍, 열린우리당 압승 
진보정치·여성정치의 새로운 메카로 떠오른 고양 
한나라당 3선 김영선, 보수진영 중심으로 부상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저항하는 열린우리당 국회의원들.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한 탄핵정국은 민심의 역풍을 불러일으켰고, 17대 총선에서의 열린우리당 압승으로 이어졌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저항하는 열린우리당 국회의원들.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한 탄핵정국은 민심의 역풍을 불러일으켰고, 17대 총선에서의 열린우리당 압승으로 이어졌다. 

[고양신문]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치인생 전체가 파란이었다. 지연·학연도 기댈 곳 없고, 정치적 계보도 주류에 속하지 못했던 그는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특유의 대중정치력을 무기로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대세로 여겨졌던 이인제 후보를 꺾더니, 본선에서마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에게 극적인 승리를 거두고 2003년 2월 제16대 대통령에 취임한다. 대한민국 정치지형을 구성하는 기본값 중 하나가 지역주의였음을 감안할 때, 경남 출신임에도 호남 유권자들의 전폭적인 선택을 디딤돌 삼아 얻어낸 결과라 정치권에 안겨준 충격은 더욱 컸다.

하지만 대통령 당선이 곧바로 국정과 당권 장악으로 연결되진 못했다. 여당 내 주류세력과 대통령 간의 갈등이 반복되자 소장파인 영남세력과 호남 초선 중심의 신주류를 중심으로 새천년민주당 쇄신요구가 대두됐고, 결국에는 ‘지역주의 타파’를 명분으로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대통령 취임 9개월 만에 여당이 둘로 쪼개지는 전무후무한 상황을 맞은 것이다. 유시민의 개혁국민정당과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이 열린우리당에 합류했지만 의원수 47명, 원내 3당의 자리에서 2004년 4월 17대 총선을 준비해야 했다. 

열린우리당 급부상, 한나라당 기사회생

총선이 다가오며 새천년민주당은 대북송금 특검으로, 한나라당은 불법선거자금 비리사건으로 주춤거리는 사이에 신당인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은 빠르게 올라갔다. 비상이 걸린 새천년민주당은 ‘대통령의 선거중립 위반’을 명분으로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을 추진했고, 한나라당과 자유민주연합이 이에 동조하며 탄핵안을 전격적으로 가결시켰다. 

하지만 3당의 기대와 달리 탄핵 추진은 엄청난 역풍을 불러왔다. 소수의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탄핵안 저지를 위해 몸부림치는 장면이 TV로 생중계되면서 커다란 충격을 안겨줬고,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설득력 없는 명분으로 탄핵하려는 기득권 정치를 총선에서 심판하자는 여론이 들불처럼 번졌다. 총선 판세가 완전히 열린우리당으로 기울어진 것이다. 개표 결과 열린우리당이 152석을 얻었다. 무려 108명의 초선의원을 국회에 입성시키며 순식간에 제1당으로 부상했다. 

신임 박근혜 당대표를 중심으로 천막당사에서 진영을 재정비하며 탄핵 역풍의 위기를 돌파한 한나라당. 
신임 박근혜 당대표를 중심으로 천막당사에서 진영을 재정비하며 탄핵 역풍의 위기를 돌파한 한나라당. 

탄핵 역풍이 절정에 달할 당시 80석도 못 얻을 거라는 위기감에 내몰렸던 한나라당은 121석을 얻는 저력을 발휘했다. 새로 추대된 박근혜 당대표를 중심으로 천막당사에서 새출발을 다짐하는 비장한 모습을 보여주며 보수 유권자들의 마음을 되돌렸다. 
반면 새천년민주당과 자민련은 각각 9석과 4석을 얻는 대참패를 면하지 못했다. 결국 민주당 계열의 적통은 자연스레 열린우리당으로 승계됐고, 자민련을 이끌던 김종필이 정계 은퇴하며 수십년간 한국 정치를 주름잡았던 ‘3김 시대’가 공식 마감됐다.   

1인2표제 도입과 민주노동당의 약진

탄핵 역풍이 태풍급이었지만, 민주노동당의 등장도 돌풍이었다. 무려 10석(지역구 2석, 비례대표 8석)의 의석을 얻으며 진보정당 최초로, 그것도 순식간에 원내 3당으로 국회 입성에 성공한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다수 의석 획득은 17대 총선부터 한 표는 지역구 후보에게, 한 표는 정당에 투표하는 1인 2표, 정당명부제 비례대표제가 실시된 덕분이기도 했다. 적잖은 유권자들이 새로운 정치에 대한 기대를 소수정당에 흔쾌히 던졌던 것이다. 이때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1번이 심상정, 8번에 턱걸이한 인물이 “오래된 불판 좀 갈자”는 말로 인기를 끌었던 노회찬이었다.

고양시 당선인 4명 모두 ‘지역 새 인물’

여권 정치지형의 재편과 탄핵 소용돌이의 여파는 새로운 수도권 전략지로 부상한 고양시에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앞선 16대 총선에서 고양시민들의 선택을 받았던 4명의 의원들이 서로 다른 이유로 하나같이 재공천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면 17대 총선에서는 이후 저마다의 행보로 대한민국과 고양시 정치사에 커다란 흔적을 남기게 되는 4명의 정치인이 새롭게 등장한다. 그중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3명(유시민·최성·한명숙)이었고, 야당인 한나라당에서는 1명(김영선)의 당선자를 냈다. 16대 총선부터 시작된 민주당계 우세가 17대에서도 이어진 것이다.  

덕양갑 유시민, 파란만장 행보 출발점은 ‘고양’

덕양갑에서는 유시민 의원이 재선에 성공했다. 앞서 선거법위반으로 당선무효된 곽치영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실시된 2003년 보궐선거에서 본인이 창당한 개혁국민정당 소속으로 당선된 유시민은 열린우리당 창당의 주역으로 합류한 후,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에 가장 강력히 저항하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유시민은 정치권 입성 이전부터 대표적인 대학가 민주화운동 출신 인사로서,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유명세를 얻고 있었다. 17대 총선에서 내건 간결한 구호 “믿으니까”에서도 압도적 지명도에 근거한 자신감이 엿보인다. 그런가하면 문장가 특유의 필력을 발휘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옵니다’로 시작하는 서술형 선거공보를 작성하기도 했다. 공약으로는 △정치부패와 지역주의 혁파 △장애인·노인·여성·어린이를 위한 입법활동을 내세웠다. 반면 지역관련 공약은 △사람의 향기가 나는 고양시라는 다소 추상적인 약속에 그쳤다.    

유시민 의원은 이후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했고, 친노 그룹의 중심을 담당했으며, 국민참여당과 통합진보당으로 이어지는 진보정당 재편의 복잡한 소용돌이의 한 축을 주도하다가 2013년 정계 은퇴를 한다. 장외에서도 작가로서, 정치평론가로서 여전히 나름의 명성을 유지하고 있지만, 정치적 출발점이었던 덕양갑에 남긴 존재감은 미미한 편이다.  

한나라당에서는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 출신의 35세 조희천 후보를 내세웠다. 당이 천막당사의 배수진을 친 것처럼, 조 후보 역시 “견제받지 않는 권력의 위험을 상상해 보십시오”라는 절박한 문장을 백지에 박아넣은 공보물을 유권자들에게 제시했다. 

덕양을 최성, 의원으로 시작해 고양시장 연임

덕양을에서 초선 배지를 단 인물은 이후 고양시장을 두 번 지내게 되는 최성이었다. 김대중 정부 청와대 정무수석실 행정관으로 이력을 시작한 그는 열린우리당 정동영 초대 당의장 특보로 활동하며 공천을 받았다. 

최성 후보는 젊은 개혁성에 청와대에서 쌓은 풍부한 경험을 더했다는 점을 내세웠다. 또한 통일전문가로서의 전문성을 살려 ‘아이러브 경의선 프로젝트’를 통해 덕양을 통일전진기지로 만들겠다는 비전을 밝혔다. 구체적인 공약으로는 △행신역사를 경부고속전철의 출발역으로 △남북IT교류협력센터 △통일정보대학·국제평화공원 조성 △공공보육시설 확충 등을 제시했다. 

최성 의원의 이후 행보에 대해서는 설명이 필요할까 싶지만, 간단히 정리해보자. 재선을 노리며 출마한 18대 총선(2008년)에서 낙선했지만, 2년 뒤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고양시장에 당선되며 화려하게 재기한 후 2014년에도 또다시 강현석 후보를 꺾고 연임에 성공한다. 이후 지방선거와 총선에서 연거푸 더불어민주당의 공천을 받지 못했지만, 여전히 활로를 모색하며 오는 4월에 치러질 총선을 준비하고 있다.   

한나라당에서는 16대에 이어 김용수 후보가 재도전했다. 김 후보 역시 공보물에 박근혜 대표가 눈물을 흘리며 대국민 사과를 하는 사진을 크케 싣고 “일하고 싶습니다. 한번 더 기회를 주십시오”라고 호소했다. 한편으로는 자신들이 관여하지 않은 탄핵의 유탄을 맞아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할 형편이라며, 수도권 원외 위원장들의 억울한 처지를 한탄하기도 했다. 

일산갑 한명숙, 여성 최초 국무총리까지 올라 

일산갑에서는 16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입성한 한명숙 의원이 지역구로 일산을 선택해 재선에 성공했다. 재야 민주화운동, 여성운동을 대표하는 인사였던 그를 정계로 불러들인 이는 김대중 대통령이었다. 이후 활발한 입법활동을 통해 호주제 폐지, 여성쿼터제,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보장, 성매매특별법 제정에 앞장섰다. 김대중 정부 때 창설된 여성부의 초대 장관을 역임하며 여권의 대표적 여성 정치인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를 반영하듯 한명숙의 총선 캐치프레이즈는 “세상을 움직이는 부드러운 힘”이었다. 공약을 살펴보면 국회의원 지역구와 비례대표 비율을 1대 1로 하자는 파격적인 내용도 있다(물론 다른 의원들이 이 제안에 동의했을 리 없다). 그밖에 지역공약으로는 △주민대토론회 개최 △백석동 나이트클럽을 청소년 국제교류센터로 전환 △신개념 바이오클러스터 조성 △클린주거지역 총량규제법 제정 등의 색다른 내용들이 눈길을 끈다. 

한명숙은 여성부장관에 이어 환경부장관도 역임하고,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국무총리도 지낸다. 18대에서는 동일한 선거구에서 3선 도전에 실패하지만, 2010년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해 오세훈 시장에게 0.6%의 근소한 차로 패배하며 깊은 인상을 남기기도 한다. 하지만 오늘날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는 불법정치자금 수수 사건으로 실형을 살며 정치행보를 마감한다.  

한나라당이 내세운 한명숙의 대항마도 거물급이었다. 11대 총선에서 민한당 후보로 당선되며 30대에 일찌감치 정계에 발을 들인 후 고향인 경북 영주와 서울 강남에서 4선을 하며 정무1장관, 국회 부의장까지 지낸 중진 홍사덕이 그 주인공이었다. 한명숙과 홍사덕이 일산에서 펼치는 맞대결은 17대 총선의 손꼽히는 빅매치로 전국적 관심을 받기도 했다.

홍사덕의 캐치프레이즈는 절박함이 묻어나던 여타 한나라당 후보들의 그것과는 결이 달랐다. “대통령이 달라져야 대한민국이 살아납니다”라는 구호에서 탄핵 정국에 대한 국민적 저항을 정면돌파하겠다는 결기가 느껴진다. 

일산을 김영선, 보수진영이 얻은 유일한 승전보

노란색(열린우리당)의 공세에 맞서 유일하게 파란색(한나라당)을 당선인 명부에 채색한 주인공은 일산을 선거구의 김영선 의원이었다. 부산 출신 변호사로 경실련·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며 명성을 얻은 그는 15대 총선(1996년)에서 35살의 젊은 나이로 신한국당 전국구 의원 배지를 달며 향후 길게 이어지는 국회와의 인연을 시작한다. 16대에서도 전국구로 재선 경력을 쌓고, 세 번째 도전에선 일산을을 지역구로 선택해 당당히 3선에 성공한다. 완전히 불리한 판세에서, 그것도 새로운 진보의 아성으로 부각하던 일산에서 거둔 승리라 보수진영의 찬사가 쏟아졌다.  

김영선 의원의 공약을 살펴보면 △복합문화관광단지 조성 △합리적인 경의선 지하화 단일안 추진 △다양한 특성화고 설립 △고봉산 자연습지 생태체험학습장 지정 △국공립 보육시설 확충 등 나름 구체적인 내용들을 담고 있다. 

3선 고지에 오르며 한나라당의 대표 여성정치인으로 부각한 김영선 의원은 당 최고위원을 거쳐 2006년 경기도지사에도 도전하지만, 당내 공천 경쟁에서 김문수 지사에게 밀린다. 일산에서 한번 더 배지를 달기 때문에 18대 이후의 행보에 대해서는 다음 회에서 정리하도록 하자.

일산을의 열린우리당 주자는 국민통합개혁신당 출신의 김두수(경남지사를 지낸 김두관 국회의원의 동생) 후보였다. 시민사회운동 이력에 어울리게 공약 역시 △국민소환제당원소환제 도입 △시민참여 정책평가제도 도입 △고봉산 생태축 보존하는 환경친화적 개발 추진 등 진보적인 내용을 담아냈지만, 고양시 4개 선거구 중 1위와의 표차(2264표)를 최소로 줄이는 데 만족해야 했다.       

17대 총선 고양시 4개 선거구의 차점자들. 왼쪽부터 조희천, 김용수, 홍사덕(이상 한나라당), 김두수(열린우리당) 후보.
17대 총선 고양시 4개 선거구의 차점자들. 왼쪽부터 조희천, 김용수, 홍사덕(이상 한나라당), 김두수(열린우리당) 후보.

고양시, 여성 정치인의 시대 활짝 열려

17대 국회는 열린우리당의 화려한 부상과 함께 시작됐다. 하지만 무려 108명에 이르는 초선의원들이 실용과 개혁 사이에서 갈등 양상을 표출하며 집권 여당으로서의 국정 장악력이 수시로 갈짓자를 걸었다. 결과적으로 새로운 정치를 요청했던 유권자들의 기대에 부응하기에는 역량이 미숙했다. 

2004년 총선이 고양에 남긴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여성 정치인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시발점이 됐다는 점이다. 앞서 살펴본 한명숙, 김영선 의원과 함께 비례대표로 국회에 첫 입성한 정의당 심상정 의원과 열린우리당 김현미 의원도 향후 고양 정치사에 한 획을 긋는 여성정치인으로 성장하기 때문이다.

17대 총선은 고양시 여성정치인의 물꼬를 튼 선거였다. 지역구 김영선(한나라당), 한명숙(열린우리당) 의원을 비롯해 이후 고양시 지역구에 터를 잡는 비례대표 김현미(열린우리당), 심상정(민주노동당) 의원이 당선의 기쁨을 안았다. 이후 고양시 여성정치인 계보에 유은혜, 홍정민 의원의 이름이 추가된다. 
17대 총선은 고양시 여성정치인의 물꼬를 튼 선거였다. 지역구 김영선(한나라당), 한명숙(열린우리당) 의원을 비롯해 이후 고양시 지역구에 터를 잡는 비례대표 김현미(열린우리당), 심상정(민주노동당) 의원이 당선의 기쁨을 안았다. 이후 고양시 여성정치인 계보에 유은혜, 홍정민 의원의 이름이 추가된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