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준혁 대화동 루피너스 대표

대학진학 대신 일본 건너가
타카노 스승으로부터 배운
'1부터 다시 시작하는 용기'
내 손으로 만드는 것에 만족

양준혁 루피너스 대표가 운영하는 대화동 수제 구두 공방에 놓인 미완성 신발들
양준혁 루피너스 대표가 운영하는 대화동 수제 구두 공방에 놓인 미완성 신발들

[고양신문] AI 기술이 각광받는 시대에 시간을 역행하듯 옛 장인 정신을 추구하는 청년이 있다. 양준혁(39세) 루피너스 대표는 대화동 성저마을 상가에서 ‘남성 수제 가죽 구두’ 공방을 운영한다. 클래식 패션을 선호하는 남성들에겐 일본 가죽 수제화를 빼놓을 수 없다. 양 대표는 일본 수제 구두 장인 ‘타카노 케이타로(이하 타카노)’의 수제자로 현재 대한민국의 젊은 수제 구두 장인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유년기부터 그의 아버지인 양태우(미캄 코리아 대표)씨가 운영하는 구두공장을 집처럼 드나들면서 수제화를 자연스럽게 접했다. 언뜻 보면 공장을 운영하며 구두를 판매해온 아버지로부터 가업을 승계 받은 것 같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양준혁 대표는 기성품 구두를 파는 사람이 아니라 그의 스승 타카노가 직접 지어준 ‘루피너스’라는 자신의 브랜드를 론칭해 ‘남성 구두만 만드는 구두 장인’이다.

양준혁 대표가 자신이 만들고 있는 구두를 들어보이고 있다.
양준혁 대표가 자신이 만들고 있는 구두를 들어보이고 있다.

대학교 진학에 흥미가 없던 그는 스무 살 되던 해부터 구두 매장에서 아버지를 도와 구두를 판매했다. 군 제대 후 매장에 진열된 수제화를 보며 그는 ‘우리나라 구두는 공장에서 다 비슷하게 찍어내다 보니 전문성이 많이 떨어진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서점에서 ‘LAST’(일본 남성 구두 잡지)에 소개된 일본 구두 장인 ‘타카노 케이타로(이하 타카노)’를 우연히 알게 됐다. 타카노는 고 ‘세키 노부요시’(일본의 전설적 제화 장인)에게 실력을 인정받은 제자로 현재 일본의 유명 제화공이다. 타카노가 만든 아름다운 구두를 보면서 언젠가 그를 직접 만나 수제 기술을 배우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그는 유튜브 등 각종 SNS를 통해 타카노의 신발뿐만 아니라 세계 각 곳의 가죽 수제화를 보며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구두를 만드는 사람이 많은데 한국에는 이런 구두가 없어 아쉽다. 내가 이탈리아까지는 가지 못하더라도 반드시 가까운 일본은 가겠다’라는 다짐을 했다고 한다. 

 일본으로 떠나기로 마음먹은 그는 가장 먼저 타카노와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일본어를 공부했다. 일본어 시험 ‘JLPT’ 자격증 중 가장 난도가 높은 'N1'을 2017년 독학으로 취득한 후 타카노를 만나기 위해 2020년 일본으로 떠났다. 이미 잡지와 SNS 등을 통해 타카노의 구두매장을 수없이 봤기 때문에 사전 연락 없이도 그를 찾을 수 있었다.

타카노의 구두 판매 매장에는 매장과 분리된 작은 작업 공간(공방)이 있었다. 일본에 간 그는 타카노에게 정식으로 인사를 드리고 작은 공방에서 함께 구두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그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구두를 만드는 과정에서 실수로 들고 있던 송곳으로 자신의 눈을 찔러 실명 위기에 처했다. 급하게 한국으로 귀국한 그는 일산 백병원에서 인공 수정체를 넣는 수술을 통해 실명 위기를 넘겼다. 이를 지켜본 그의 아버지는 “네가 크게 다치는 걸 보니 네 길이 아닌 것 같다”라고 걱정의 말을 건넸다. 하지만 그는 제화공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사고를 겪은 그는 “앞으로도 송곳을 들고 똑같은 작업을 수없이 해야 하기 때문에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을지 두려웠다”라고 당시 마음을 표현했다. 그러면서도 “수술을 마친 후 일본으로 가서 다시 송곳을 잡고 배움에 도전한 것에 대해 스스로 자부심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왼쪽부터) 양준혁, 타카노 케이타로가 일본에서 함께 찍은 사진.  스승 타카노로부터 수제화 기술을 배울 당시 '1부터 다시 시작하는 용기'에 대한 정신이 그에게 가장 큰 배움이었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양준혁, 타카노 케이타로가 일본에서 함께 찍은 사진.  스승 타카노로부터 수제화 기술을 배울 당시 '1부터 다시 시작하는 용기'에 대한 정신이 그에게 가장 큰 배움이었다고 말했다.

그의 스승인 타카노로부터 3년 동안 가장 크게 배운 정신은 바로 “1부터 다시 시작하는 용기”라고 양 대표는 거듭 강조했다. 타카노 정신은 ‘고객이 만족해할지언정 나만 알 수 있는 나의 작은 실수를 발견했을 때 비용이 발생하더라도 과감하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수제 구두를 만드는 젊은 사람을 보기 힘든 시대. 이런 점에서 일산서구 대화동에 수제화 공방을 연 양 대표의 도전은 꽤나 신선해보인다. 양 대표는 현재 작은 공방에서 혼자 일하고 있지만 앞으로 가죽 수제 구두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에겐 기술을 알려주려고 한다. 유튜브 '루피너스 구두'를 운영하는 이유도 그래서다. 양 대표는 “유튜브에 제가 수제화를 만드는 모든 과정이 영상으로 담겨있다”라고 말했다. 

양 대표는 구두 제작을 위해 방문하는 사람들의 발을 직접 그리고 모든 특이사항을 묻고 기재한다. 고객과 함께 가죽 종류와 디자인을 정하고 가봉 과정을 거쳐 상당 시간 공을 들여 신발을 만든다. 양 대표는 “5초면 할 수 있는 스티치 머신(박음질 기계)으로 작업한 신발과 손으로 직접 작업한 신발의 차이는 분명하다. 핸드 스티치의 경우 구두의 아름다운 곡선이 살아 전체적인 실루엣에서 흔한 말로 ’간지’가 난다”라고 표현했다. 또한 “함께 기획한 구두가 내 손으로 만들어지는 것을 보며 느끼는 만족감이 크다”라고 덧붙였다.

일본 타카노 공방에서 만들었던 양 대표의 수제화.
일본 타카노 공방에서 만들었던 양 대표의 수제화.
양 대표가 운영하는 공방.  그는 "사람들이 수제 지갑 공방에 관심을 갖듯 만약 수제화 제작에 관심있는 사람이 있다면 충분히 가르쳐 주겠다"고 말했다. 공방 주소는 '고양시 일산서구 강성로 268'이다.
양 대표가 운영하는 공방.  그는 "사람들이 수제 지갑 공방에 관심을 갖듯 만약 수제화 제작에 관심있는 사람이 있다면 충분히 가르쳐 주겠다"고 말했다. 공방 주소는 '고양시 일산서구 강성로 268'이다.
양 대표는 가장 오른쪽 액자는 타카노로부터 수여받은 제화공 수료증라고 밝혔다. 양 대표는 "비록 민간 자격증 개념이지만 타카노 스승에게 받은 의미있는 증서"라고 말했고 현재 대화동 공방에  전시했다.
양 대표는 가장 오른쪽 액자는 타카노로부터 수여받은 제화공 수료증라고 밝혔다. 양 대표는 "비록 민간 자격증 개념이지만 타카노 스승에게 받은 의미있는 증서"라고 말했고 현재 대화동 공방에  전시했다.
타카노 케이타로(왼쪽)는 제자 양준혁(가운데)에게 루피너스(꽃 이름)라는 이름의 브랜드로 한국에서 활동하기를 희망했다고 한다. 타카노 케이타로 역시 일본에서 출시하는 구두의 브랜드 이름은 꽃의 종류인 클레마티스(Clematis)라고 한다.
타카노 케이타로(왼쪽)는 제자 양준혁(가운데)에게 루피너스(꽃 이름)라는 이름의 브랜드로 한국에서 활동하기를 희망했다고 한다. 타카노 케이타로 역시 일본에서 출시하는 구두의 브랜드 이름은 꽃의 종류인 클레마티스(Clematis)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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