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북부 석조 예배당 순례 ① 나들이를 시작하며

포천 의정부 파주 김포 고양… 인접 5개 도시
한국전쟁 직후 군 도움받아 지은 종교 건축물 
배경-형태 비슷해도  서로 다른 이야기 품어 
 

[고양신문] 시작은 고양시 덕양구 지축동 언덕을 70년째 지키고 있는 신도제일교회 구성전을 소개하는 기사를 써보려는 것이었다. 신도제일교회 구성전은 한국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1954년에 지어진 석조 건물이다. 당시 초가지붕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던 교우들이 한국전쟁 참전 후 인근에 주둔하던 미 공병부대의 도움을 받아 창릉천 수변에 뒹굴던 호박돌을 날라 지은 유서 깊은 예배당이다.   

그런데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 경기 북부지역에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방식으로 지어진 예배당 건물이 여러 곳에 산재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시대 순으로 나열해 보자면 1953년에 완공된 의정부성당, 1955년에 지어진 포천성당과 파주 갈곡리성당, 1956년에 지어진 김포성당이다. 

1955년에 지어진 포천성당 옛건물. 1990년 큰 화재를 겪었지만 화강암으로 축조된 튼튼한 벽체는 무너지지 않았다.  
1955년에 지어진 포천성당 옛건물. 1990년 큰 화재를 겪었지만 화강암으로 축조된 튼튼한 벽체는 무너지지 않았다.  

든든한 성채 연상되는 화강암 건물

본격적인 나들이에 앞서, 경기북부 석조 예배당들의 가장 큰 공통점 세 가지를 살펴보자. 우선 화강암 돌덩이를 주재료로 삼은 콘크리트조 건물들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두 번째는 이 건물들을 짓는 과정에서 하나같이 인근 군부대의 커다란 도움이 있었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이 건물들 바로 옆에 규모가 큰 새 예배당 건물이 지어졌고, 석조 예배당은 상징성을 품은 문화재 건물로 보전되고 있다는 점도 유사하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유사점은 한국전쟁 직후의 시대적·지리적 환경이 고스란히 반영된 특징들이다. 전쟁으로 모든 것이 파괴된 상황에서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건축자재가 바로 우리나라 암석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화강암 돌덩이였다. 앞으로 살펴볼 4곳 성당들은 하나같이 커다란 화강암을 네모난 벽돌덩이처럼 다듬은 후, 시멘트를 이용해 벽채를 쌓아 올렸다. 이를 건축용어로 석재 조적식구조(石材 組積式構造)라 부른다. 

사실 화강암은 우리 민족에게 가장 친숙한 건축재료 중 하나다. 북한산성, 한양도성처럼 한반도 곳곳의 산성과 읍성들은 오래전부터 화강암 돌덩이로 만들어졌다. 이러한 전통을 새로운 방식으로 계승한 석조 예배당들은 전후의 시대 정서와 맞물려 ‘외부의 공격에도 끄떡없는 든든한 성채’를 연상시켰고, 파괴의 참상을 겪은 당대 사람들에게 뿌듯한 안정감을 안겨줬다. 

김포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자리한, 1956년에 지어진 김포성당 옛건물.
김포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자리한, 1956년에 지어진 김포성당 옛건물.

도시 복구 큰 원동력, 군부대

이러한 건물들이 경기북부에 밀집돼 있다는 점은 두 번째 공통점인 ‘군부대’와 관련해 설명할 수 있다. 집중적인 전쟁 피해를 겪은 경기북부 지역에서 도시를 복구할 수 있는 가장 큰 원동력은 곳곳에 주둔하고 있는 군부대가 거의 유일했다. 그리고 군부대 지휘관 중에는 종교적 신심이 깊은 이들도 있었고, 선교적 비전을 펼치려는 미군 군종장교도 있었다. 이러한 이들의 공식적, 또는 비공식적 조력을 받아 석조 예배당들이 경기북부 주요 도시마다 하나씩 들어서게 된 것이다. 사실 한국전쟁 이후 군 공병부대는 종교건축 외에도 화강암 석재를 다양하게 사용했다. 경기북부의 오래된 군부대 본관이나 위병소 정문, 축대 등을 살펴보면 이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양주시를 지나다가 만난, 화강암으로 만든 군부대의 정문.
양주시를 지나다가 만난, 화강암으로 만든 군부대의 정문.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자면 “군부대의 도움으로 성당, 또는 교회를 지었다”는 사실이 뭐 그리 내세울 만한 일이겠냐 싶겠지만, 당대의 시선으로 생각해보면 이는 매우 자랑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전쟁에서 우리 목숨을 지켜 준 국군, 또는 미군부대가 철근과 시멘트를 지원하고, 중장비를 동원하고, 장병들이 땀을 흘려 우리 마을 신앙공동체의 터전을 세워줬으니 얼마나 고맙고 감격스러웠을지 상상이 간다. 각각의 성당·교회마다 도움을 준 군부대는 물론, 당시 지휘관의 구체적인 이름까지 자세히 기록으로 남겨놓았다는 점이 이를 잘 보여준다. 

휴전 직후인 1953년에 지어진 의정부성당 옛건물. 
휴전 직후인 1953년에 지어진 의정부성당 옛건물. 

공유기억 이어주는 정서적 자산

건축 미학적 측면에서 석조 예배당들은 전통적 종교건축이 추구했던 고도의 상징성을 내려놓고, 최소한의 기능만을 추구한 ‘양식 변형 양옥성당’으로 분류된다. 실제로 명동성당, 약현성당 등 앞선 시기에 지어진 성당들과 비교해보면, 경기북부 석조 성당들은 규모가 작아지고, 각종 장식이 간소화되고, 마감이 투박해지고, 내부 양 측면의 열주가 사라지고, 실용성을 살린 강당형으로 지어졌다. 무너진 터전 위에 하루빨리 새 성당을 신축하려는 교우들의 열망과 효용성과 속도전에 익숙한 군 공병대의 도움이 보태졌으니, 석조 예배당 건축은 말 그대로 속전속결로 진행됐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일부 전문가들은 종교건축 미학의 퇴보로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기자의 눈에는 오히려 시대의 한계에 적응하며 탄생한 검박한 아름다움의 창조로 보인다. 

긴 세월이 지나며 각 성당과 교회들은 규모가 협소하고 구조가 단순한 옛 건물을 대체할 새 건물을 제각각 신축했다. 그 과정에서 각각의 신앙공동체들이 경제적 부담 증가에도 불구하고 오래된 건물을 파괴하지 않고 보전을 선택한 것은 참으로 다행이라 할 수 있다. 이들 석조 예배당들이 단순한 기능적 건물이 아니라, 시간을 뛰어넘어 지역의 공유 기억을 이어주는 정서적 자산이라는 점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의정부성당의 미니 버전 격인 파주 갈곡리성당. 1956년에 준공됐다. 
의정부성당의 미니 버전 격인 파주 갈곡리성당. 1956년에 준공됐다. 

색다른 테마의 가을여행 ‘출발’ 

앞서 짚어본 것처럼 경기북부 5개 도시에 산재해 있는 종교 건축물들에는 건축사적 유사성은 물론, 지역과 공존하는 종교공동체의 다채로운 모습과 전후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하나의 맥락으로 묶을 수 있는 특징적인 종교 건축물들이 가까운 거리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는 사실이 호기심 많은 나들이꾼에게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행정구역은 5개 도시에 흩어져 있지만, 고양과 인접한 곳들이라 주말 오후에 한두 곳씩 들러도 좋고, 아예 휴일을 잡아 동선을 잘 짠다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동안에도 전부 둘러볼 만한 거리다. 서로 다른 다섯 색깔 이야기를 품고 있는 경기북부 석조 예배당을 찾아 색다른 가을 순례길을 떠나보자.  

※ 이어지는 연재 
② 포천성당 · 김포성당  ③ 의정부성당 · 파주 갈곡리성당  ④ 고양 신도제일교회 구성전

​1954년에 지어진, 고양시 덕양구 지축동에 자리하고 있는 신도제일교회 구성전. 석재를 사용했고, 군부대의 도움을 받아 지었다는 점에서는 앞선 석조성당들과 유사하지만, 건축적으로 가톨릭 성당과는 다른 개신교 교회의 특징을 보여준다. ​연재 마지막 순서에 소개될 예정이다. 
​1954년에 지어진, 고양시 덕양구 지축동에 자리하고 있는 신도제일교회 구성전. 석재를 사용했고, 군부대의 도움을 받아 지었다는 점에서는 앞선 석조성당들과 유사하지만, 건축적으로 가톨릭 성당과는 다른 개신교 교회의 특징을 보여준다. ​연재 마지막 순서에 소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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