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북부 석조 예배당 순례 ② 포천성당 · 김포성당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아 옛 도심 한눈에
소박한 포천성당, 웅장하고 세련된 김포성당
화재와 재개발 고비 이겨내고 온전히 보존
우리나라 전통 건물들은 동산이나 언덕을 배경 삼아 아래쪽에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서양에서 건너온 종교 건축물들은 달랐다. 명동성당, 성공회강화성당, 행주성당 등에서 보듯,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예배당을 지었다. 경기북부 석조예배당 중에서도 그러한 곳이 두 곳 있다.
포천 시내 한눈에 보이는 언덕
첫 번째 찾아간 곳은 포천성당이다. 일산동구청을 출발해 한 시간 남짓 달려 포천시청 인근 옛 도심으로 접어드니 멀리 붉은 빛 지붕의 고풍스러운 석조 성당이 눈에 들어온다. 고층 건물들이 없었던 시절에는 포천 시내 곳곳에서 성당 건물이 잘 올려다보였을 것 같다.
성당 진입로로 올라가면 새로 지은 신축 성당과 사제관이 나타난다. 마당가 나무마다 울긋불긋 가을빛이 완연하다. 옛 석조성당은 마당에서 언덕길을 한번 더 올라간, 동산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위로 올라갈수록 포천 구도심의 시내 풍경이 더 넓게 시야에 들어온다.
벽체 떠받치는 듬직한 기둥벽
키 큰 전나무들의 호위를 받으며 긴 세월 동산 마루를 지키고 서 있는 성당의 첫인상은 아담하면서도 단단하다. 위치 자체로 언덕 아래 사람들의 마을과 하늘 위 신성한 세계를 연결해주는 듯하다.
정면 상단에는 높지 않은 종탑 위로 삼각지붕이 솟아있고, 아래쪽이 넓은 마름모꼴을 이루고 있어 안정적인 느낌을 준다. 측면에는 다섯 개의 아치형 창이 있고, 제대 측면과 통하는 부출입구 문이 돌출돼 있어 위에서 내려다보면 성당의 평면도가 라틴 십자가 형상을 나타내도록 했다.
외형적으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서양 종교건축의 특징 중 하나인 버트레스(buttress)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는 점이다. 버트레스는 벽면이 옆으로 무너지지 않게 받쳐주는 외부로 돌출된 기둥(부벽, 扶壁)을 말하는데, 세어보니 양쪽 측면에 각각 5개, 종탑 하단에 4개, 도합 14개의 듬직한 버트레스가 60여 평 성당건물을 튼튼하게 떠받치고 있다. 사실 단층으로 지어진 건물이라 벽면 하중이 그리 크지 않을 것 같은데, 시각적 요소를 고려한 설계가 아닐까 싶다.
군단장 세례명 딴 ‘가브리엘 성당’
정면 종탑창 아래 돌간판에는 ‘성 가브리엘 성당’이라는 이름이 적혀있다. 이 성당의 건축을 주도한 이한림 장군의 세례명이 바로 성 가브리엘이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이 장군은 당시 포천 6군단의 군단장으로 있으면서 포천의 명문가 후손들로부터 부지를 기증받고, 언덕 꼭대기에 126공병대대의 인력과 장비를 동원해 5개월의 공사 끝에 60여 평 석조성당을 완공한다. 포천 지역 최초로 지어진 성당은 이후 수십 년간 지역 사람들의 안식처 역할을 해왔다.
아찔한 위기의 순간도 있었다. 1990년 어느 여름밤, 한 취객의 실화로 성당 건물이 불길에 휩싸이는 사고를 겪은 것이다. 순식간에 번진 화재로 마룻바닥과 지붕 등 목재로 만든 부분은 몽땅 잿더미가 됐지만, 워낙에 튼튼하게 지은 화강암 벽체만은 원형 그대로 남을 수 있었다. 성당을 설계하며 여러 개의 버트레스를 붙인 이름 모를 공병대대 장교의 판단이 건물을 살린 것인지도 모른다.
불에 그을린 자국 그대로 남겨
이후 가톨릭 교구와 포천교회 교우들은 언덕 아래쪽에 신축 성당을 지었고, 벽체만 남은 옛 건물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고민했다. 다행히 철거가 아닌 보존으로 결론을 내렸다. 전쟁 직후 석조성당의 특징을 고스란히 담은 역사적 건축물이라는 평가 덕분이다. 이후 외형을 깔끔하게 복원했지만, 내부는 여전히 불에 그을린 자국이 선명한 돌벽 그대로를 남겨 놓아 건물이 감당했던 아찔했던 역사를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건물은 2006년 문화재청으로부터 등록문화재 제271호로 지정됐다. 문화재의 공식 명칭은 ‘구 천주교 포천성당’이다. 성당 앞마당 문화재 표지판 옆에는 이한림 장군과 성당 대지를 희사한 지역 어르신들을 기리는 공적비가 포천시민과 포천시장의 이름으로 세워져 있다.
돌계단 올라가 만나는 김포성당
이번에는 한강을 건너 김포성당을 찾아가보자. 일산동구청을 출발해 김포대교를 건너 15분이면 김포 구도심 마을 북변동에 닿는다. 새로 조성한 진입로를 따라 언덕을 올라가면 붉은 벽돌로 지은 김포성당 새 건물이 눈에 들어오고, 화강암 판돌로 단단히 쌓아올린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수직으로 높게 솟은 옛 김포성당 건물이 나타난다. 언덕 중턱에 새 성당을 짓고, 옛 성당은 언덕 위에 보존해놓은 구조가 앞서 찾아간 포천성당과 그대로 닮았다.
교우들의 헌신과 해병대의 지원
김포성당은 자그마한 걸포리 공소에서 시작됐다. 당시 공소의 본당은 바로 한강 건너편 고양 땅의 행주성당이었다. 광복 후 교세가 확장돼 본당으로 승격되며 성당 신축을 시작했지만 한국전쟁이 터져 공사가 중단됐다. 휴전 이후 교우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마송에 주둔하고 있던 해병부대의 지원이 더해져 1956년 99평의 아름다운 화강암 성당을 완공했다.
앞선 포천성당이 단아하고 소박하다면, 김포성당은 상대적으로 장식적 요소도 많고 규모도 웅장하다. 화강암을 큰 덩어리로 다듬어 쌓아올린 건축기법, 단일홀로 구성된 강단식 내부, 고딕양식의 종탑과 입구, 뾰족한 아치 창호 등은 한국전쟁 직후 석조성당의 전형적인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지만, 독특하게도 종탑 위에 르네상스 양식의 돔을 얹어 인상적인 외양을 완성했다. 측면 모습도 정면 못잖게 아름답다. 긴 직사각형 창을 세로로 분할해 상승감을 더했고, 돌출된 부출입구 상단은 삼각지붕으로 디자인해 변화를 줬다.
한마음 되어 재개발 고비 이겨내
앞서 포천성당이 화재로 인한 고비를 겪었다면, 김포성당은 재개발이라는 또 다른 형태의 고비를 겪어냈다. 수년 전 주변에 대규모 정비사업이 계획되며 김포성당 부지도 상당부분 수용될 위기를 맞은 것이다. 하지만 교우들이 한마음이 됐고, 마침내 조합 측과 쉽지 않은 합의를 이뤄내며 옛 성당을 온전히 지켜낼 수 있었다. 구 김포성당은 국가 등록문화재 제542호로 지정되어 있다.
솔밭 사이로 이어진 호젓한 묵상길
성당 언덕에서는 근경과 중경, 원경이 서로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성당을 둘러싼 주변은 대규모 아파트단지를 짓는 공사현장의 황량한 모습이고, 그 너머로는 고만고만한 건물들로 복잡하게 채워진 김포 구도심의 경관이 내려다보인다. 마지막으로 눈을 들어 먼 곳을 바라보면 한강 너머 고양시 풍경이 수평으로 펼쳐져 있다.
성당 뒤편으로는 제법 넓은 솔밭이 펼쳐져 있고 ‘십자가의 길’과 ‘묵주기도의 길’이라는 오솔길이 조성돼 있다.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신앙과 묵상의 길이고, 마을 주민들에게는 호젓한 산책로다. 느긋한 속도로 명상길을 따라 걸으며 오래된 석조성당 벽면의 소박하면서도 단단한 돌무늬 풍경들을 마음 속에 저장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