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 광장·공원 공공조형물 산책① 일산문화광장(상)

미관광장, 문화공원, 문화광장… 명칭 오락가락
도시건설 기념, 자전거 캠페인, 애국심 고취 등 
역사성·정체성 제고 앞세워 다양한 조형물 조성  

일산신도시의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는 일산문화광장. 
일산신도시의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는 일산문화광장. 

[고양신문] ‘광장(廣場)’은 많은 사람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만든 공간을 말하고, ‘공원(公園)’ 역시 여러 사람이 쉬면서 여가를 즐길 수 있도록 꾸며놓은 장소를 말한다. 둘 다 물리적으로 넓게 트여 있어야 하고,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개방돼야 한다. 
하지만 광장과 공원을 다른 측면에서 바라볼 수도 있다. 구석구석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많은 상징물과 기념물들이 다양한 크기와 형태로 배치돼 있음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형물들은 같은 도시에서, 또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구성원들에게 끊임없이 무언가 말을 건넨다. 과거의 특정 사건을 잊지 말자 말하기도 하고, 특정한 가치관을 권유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러한 목소리는 대개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가는 국가, 혹은 도시에 대해 단단한 소속감과 뿌듯한 자부심을 공유하자”는 요청으로 귀결되곤 한다. 지자체장이나 단체장들이 공공 기념물, 조형물을 하나라도 더 세우고 싶어하는 까닭을 이해할 만도 하다.

고양시의 광장과 공원에는 어떤 공공조형물들이 있고, 어떤 배경에서 만들어졌고,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있을까. 대표적인 광장과 공원 등을 차례차례 산책하며 살펴보려고 한다. 참고로, 일반적으로 공공조형물이라고 하면 ‘공공장소에 설치된 미술작품’으로 뜻을 한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연재에서는 탑, 기념비, 미술작품, 안내 간판, 기념식수 등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으로 사용할 생각이다.

최근 새롭게 만들어진 '일산문화광장' 글자 조형물.
최근 새롭게 만들어진 '일산문화광장' 글자 조형물.

‘미관광장’이라는 무미건조한 이름 각인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정발산역과 일산호수공원 사이, 일산신도시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일산문화광장이다. 명칭의 변화부터 정리해보자. 이곳은 오래도록 ‘미관광장’이라는 무미건조한 이름으로 불렸다. 신도시 설계 단계에서 부여된 ‘미관광장 5호’라는 이름을 행정 편의적으로 차용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강현석 시장(2002~2010) 시절인 2004년 시민 공모를 통해 ‘일산문화광장’이라는 이름을 새로 채택했다가, 2009년 도시관리계획을 변경해 ‘일산문화공원’으로 바꾼다. 

그러다가 이동환 시장 취임 이후 다시 ‘일산문화광장’으로 공식 명칭을 바꾸고 광장 초입에 커다란 글자 조형물도 새로 설치했다. 이름이 오락가락하다보니 공공 안내판에도 여전히 ‘일산문화공원’과 ‘일산문화광장’이라는 이름이 자주 혼용되고, 고양에 오래 거주한 시민들 중에서는 여전히 ‘미관광장’이 입에 붙은 이들도 많다. 

한국토지주택공사가 1995년에 세운 '일산문화광장'  표지석.
한국토지주택공사가 1995년에 세운 '일산문화광장'  표지석.

애초부터 ‘일산문화광장’ 명명했던 증거 

그런데 놀랍게도 이곳의 공식 명칭이 조성 당시부터 ‘일산문화광장’이었음을 정확히 증명하는 조형물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고양관광정보센터 뒤편, 회양목 생울타리가 둘러진 녹지 안에 대리석으로 만든 작은 원통형 표지석이 서 있고, 상단과 정면에는 일산신도시 조성 시행자인 한국토지개발공사가 ‘일산문화광장’이라는 명패와 함께 조성 취지를 밝혀놓은 청동 글씨판이 새겨져 있다. 

상부 동판에는 광장을 만든 취지가 간략히 기술돼 있다. 
상부 동판에는 광장을 만든 취지가 간략히 기술돼 있다. 

내용을 살펴보면 ‘이 광장은 일산신도시 입주민께 쾌적한 주거환경을 제공하기 위하여 한국토지개발공사에서 정성을 기울여 조성한 여러분의 광장입니다’라는 설명과 함께 착공일(1994. 12. 23.)과 준공일(1995. 12. 22)을 적어넣었다. 30년 가까이 이름이 오락가락하는 소모전을 왜 치렀나 싶다. 보일 듯 말 듯 아담한 표지석은 공공조형물로서 적당한 사이즈로 느껴진다.      

뒤늦게 ‘바람곶’ 이름 얻은 떡꼬치탑 

일산문화광장 조성 초기부터 광장 전체의 시그니처 역할을 했던 조형물은 ‘바람곶’이라는 이름을 가진, 30m 높이의 공공미술작품이다. 광장의 서남쪽, 호수공원으로 넘어가는 육교 앞에 서 있는 이 조형작품은 9개의 커다란 스테인리스 원통을 세로로 꽂아 놓은 모양을 하고 있어서 일명 ‘떡꼬치탑’ 또는 ‘어묵탑’으로 불리곤 한다. 

'바람곶'이라는 공식 명칭보다는 떡꼬치탑 등의 별명으로 더 많이 불리는 일산신도시 조성 기념 조형물.
'바람곶'이라는 공식 명칭보다는 떡꼬치탑 등의 별명으로 더 많이 불리는 일산신도시 조성 기념 조형물.

조형물 앞에 별도로 설치된 설명비에는 ‘일산신도시 건설 사업의 성공적 완수를 기념하고 입주민의 애향심과 자긍심을 고취시키고자 한국토지공사에서 제작 설치했다’고 밝히며 ‘전통 풍수와 음양의 조화, 천지의 중간자, 우주의 기, 재생의 기운, 일신신도시의 끊임없는 번영’ 등의 거창한 의미를 가득 부여해 놓았다. 앞선 광장 표지석(1995)과 바람곶(1997)의 조성 시기를 비교해 보면, 한국토지주택공사가 한국토지공사로 명칭이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작품을 만든 이는 윤동구, 이형우의 공동작품으로 표기돼 있는데, 윤동구 작가는 윤보선 대통령의 아들이기도 하다. 

기념조형물을 세우게 된 취지를 밝힌 설명문 비석. 
기념조형물을 세우게 된 취지를 밝힌 설명문 비석. 

설명문 하단에는 ‘일산신도시 건설 사업 내력’을 상세히 정리해놓았다. 수도권 주택가격 폭등, 서울 주택난 해소, 북서부 균형개발, 통일 대비 중심도시 등의 표현이 등장하고, 일산선 전철과 자유로, 낮은 인구밀도, 자족 직주근접, 인간과 자연의 조화, 쾌적한 환경 전원도시 등 일산을 통해 구현하고자 했던 희망사항들을 장황하게 나열한 후 "새로운 도시 건설의 본보기를 제시하였다"는 자화자찬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여러 모로 꽤 재밌는 설명문이다. 

그런데 설명문 어디에도 ‘바람곶’이라는 작품명은 찾아볼 수 없다. ‘바람곶’이 2003년에 명칭 공모를 통해 뒤늦게 붙여진 이름이기 때문이다. 별도의 작품명 표기가 없어서인지 다들 여전히 각자 편한 별명으로 부르고 있다. 새 이름을 정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이름을 시민들에게 각인시키는 데는 실패한 듯 보인다. 

자전거 천국 기원점을 알리는 '자전거 타는 모자상' 조형물. 
자전거 천국 기원점을 알리는 '자전거 타는 모자상' 조형물. 

공공이 주도한 ‘자전거 도시’ 캠페인 

앞의 두 공공조형물이 한국토지공사에서 만든 것이라면, 광장이 완성된 이후에는 고양시, 또는 시의 협력을 얻은 특정 단체에 의해 ‘우리 고장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제고한다’는 목적을 내걸고 다채로운 조형물들이 곳곳에 지속적으로 세워졌다.

고양시가 가장 먼저 만든 기념조형물은 1997년에 세운 ‘자전거를 타는 모자상(母子象)’이다. 첫 민선 시장인 신동영 시장(1995~1999) 시절에 만든 이 조형물은 자전거바퀴와 모자상을 단순한 구도로 형상화한 석재 조각작품이다. 아울러 조형물이 서 있는 지점을 ‘자전거천국 기원점(起源點)’이라고 명명했다. 자전거 타기를 통해 ‘교통난과 주차난을 해소하고 주민의 건강증진과 쾌적한 도시환경을 조성하겠다’는 선언이다.

측면 설명문에는 ‘자전거 이용을 통한 시민의 건강과 화목을 기원하고, 온 시민이 한마음으로 「자전거천국 만들기」에 참여함을 의미한다’고 밝히고 있다. 의도에는 동의하지만, 시민이라면 당연히 시가 벌이는 공공 캠페인에 일사불란하게 참여해야 한다고 규정하는 말투는 좀 거슬린다.

뒷면에는 '본 사업에 기여한 분들'의 명단을 기록했는데 신동영 시장의 이름을 비롯해 국회의원 이택석, 내무부장관 강운대 경기도지사 이인제, 시의회의장 나훈, 도의회의원 황교선 등 익숙한 이름들이 나열돼 있다.

잠깐 고양시와 자전거의 인연을 살펴보면,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사이클 도로경기가 고양시(통일로)에서 열린 것을 계기로 고양시는 ‘자전거 타기’를 도시의 브랜드로 만들려는 노력을 한 것 같다. 90년대 초에는 성사동에 조성된 체육공원을 처음에는 ‘고양 자전거 공원’이라 명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공원이름에 자전거를 붙이고, 광장 한가운데에 자전거 조형물을 만든다고 해서 자전거문화가 저절로 확산될 리 없다. ‘자전거천국 기원점’이라는 조형물의 존재를 아는 이가 몇이나 될지 모르겠다.  

30m가 넘는 커다란 국기게양대 위에서 펄럭이고 있는 태극기. 
30m가 넘는 커다란 국기게양대 위에서 펄럭이고 있는 태극기. 

시선 독점하는 초대형 국기게양대

강현석 시장이 재선 임기를 지내던 2009년에는 광장의 입구인 남동쪽 전면에 거대한 태극기가 게양됐다. 국기도 국기지만, 건너편 바람곶 조형물과 맞먹는 높이로 우뚝 올라간 스테인리스 국기봉의 크기가 풍경을 압도했다. 바라보고 있노라면, 공공조형물은 사이즈 자체가 메시지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초대형 태극기 게양대는 ‘(재)관정 이종환 교육재단’이 기증했다. 삼영화학 창업자의 이름을 딴 이 재단은 ‘국가 발전과 인재 양성을 위해’ 설립한 국내 최대 장학재단이다. 주로 장학사업을 펼치는데, 2000년대 후반부터는 공공장소에 대형 국기게양대를 제작·기증하는 사업을 활발히 펼쳤다. 칠곡군 다부동, 오두산 통일전망대 등의 국기게양대가 일산문화광장과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게양대를 건립한 취지를 간단히 밝혀놓은 기단석. 
게양대를 건립한 취지를 간단히 밝혀놓은 기단석. 

게양대 받침석에는 “국민들의 국가에 대한 존경심과 애국심을 태극기에 담아 늘 우리 곁에 두고자 합니다”라고 적고 있다. 하지만 앞서 말한 칠곡 다부동은 한국전쟁 최대 격전지이고, 오두산 통일전망대는 국가기관이 운영하는 통일교육기관 성격을 갖고 있다. 반면 일산문화광장은 시민들에게 편안한 휴식을 선사하는 게 공간의 첫 번째 목적인 만큼 초대형 국기게양대가 광장의 시선을 독점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에 대한 논란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이어지는 두 번째 연재에서는 일산문화광장 경관에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온 최성 시장(2010~2018) 시절의 공공조형물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아래 링크를 클릭하셔서 관련 동영상을 시청하세요

⧫ 이 탑의 이름은? 떡꼬치탑? 오뎅탑? / 일산문화광장? 문화공원? 미관광장? 뭐가 맞는거야? / 고양시 공공조형물 산책 ① ⧫ 《고양신문 뉴스택배 ep.350》 - YouTube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