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 광장·공원 공공조형물 산책② 일산문화광장(하)
평화의소녀상, 6·25 전사자명비, 독립운동기념탑
아픈 역사 기억하고 뜻 계승하는 취지 옳지만
지자체장 과도한 홍보 욕구 개입돼 의미 훼손
변화 보여준 세월호 기억나무, BTS RM 포토존
[고양신문] 고양시 광장과 공원 곳곳에 설치된 공공조형물을 찾아보는 두 번째 시간이다. 2010년 7월부터 2018년 6월까지 8년을 재임한 최성 시장은 시정의 공과와는 별개로 도시브랜드 구축에 누구보다도 힘을 쏟은 시장으로 평가받는다. 지금도 뇌리에 각인된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도시’라는 캐치프레이즈와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았던 ‘고양고양이’라는 캐릭터가 최성 시장 시절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공공조형물에서도 최성 시장의 흔적은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곳곳에서 발견된다.
과도한 설명문 붙은 ‘평화의 소녀상’
일산신도시 건설 기념조형물인 ‘바람곶’에서 80m 앞쪽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역사적 아픔을 상징하는 ‘평화의 소녀상’이 설치돼 있다. 2011년 김운성·김서경 작가에 의해 만들어진 평화의 소녀상은 우리나라와 해외 여러 도시에 설치되어 일제의 반인륜적 범죄 행위를 증언하고, 일본 정부의 사죄를 촉구하는 상징물이 됐다.
이 소녀상이 고양시에 처음 세워진 것은 최성 시장의 주도하에 고양시가 ‘고양600년’을 기리는 기념사업을 대대적으로 펼치던 2013년이었다. 처음에는 일산호수공원 내 고양600년 전시관 앞에 설치됐다가, 보다 많은 시민들과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도록 2016년 2월 현재의 일산문화광장으로 이전 설치했다.
평화의 소녀상 조형물은 언론에 워낙 많이 노출된 작품이라 익숙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물에 가까이 다가가 천천히 들여다보면 디테일한 요소마다 담고 있는 메시지가 새롭게 다가온다. 두 손은 무언가를 다짐하듯 꼬옥 쥐고 있고, 아무것도 신지 않은 맨발은 뒤꿈치마저 땅에 딛지 못하고 있고, 어깨에는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주는 의미를 담아 작은 새 한 마리가 앉아있다. 또한 소녀의 뒤편 그림자는 나비를 가슴에 품은 할머니의 형상이고, 소녀의 옆에는 누군가에게 곁아 앉기를 청하듯 빈 의자가 놓여있다. 시민들은 겨울 내내 소녀에게 뜨개목도리와 귀마개를 둘러주고, 따뜻한 양말을 신겨주었다.
평화의 소녀상은 공공기념물로서의 이상적인 크기와 조형성을 갖추고 있다. 문제는 소녀상의 배경에 둘러진 패널 보드가 너무 많은 텍스트들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총 5개의 패널로 구성된 설명문에는 강제징용의 아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8월 14일의 의미, 소녀상 소개, 태극기를 들고 있는 아이들 등이 빼곡하게 적혀있다. 과거 초등학교 학급 게시판처럼 산만한 느낌이다. 설명문을 꼼꼼히 읽어보면 비문도 많고, 느낌표를 연이어 3개나 찍어놓기도 했다. 뒷면 역시 이런저런 구호와 함께 ‘고양시’라는 글씨와 로고가 무려 4개나 찍혀있다. 최성 시장 시절 특유의 ‘메시지 과잉’이 소녀상의 조형미를 오히려 가리고 있다. 적절한 시기에 새롭게 정비됐으면 좋겠다.
6·25 전사자 명비에 끼어든 캐치프레이즈
평화의 소녀상에서 오른쪽 녹지를 바라보면 한쪽이 뻥 뚫린, 검은색과 흰색의 돌덩이로 만든 조형물이 보인다. ‘고양시 6·25 전쟁 전사자 명비’다. 앞면에는 검은돌 위에 전쟁을 치르고 있는 국군의 모습이 희미하게 그려져 있고 ‘국가수호를 위해 헌신하신 그 높고 숭고한 정신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뒷면에는 고양시 출신 6·25전쟁 전사자 742명의 명단이 빼곡히 새겨져 있다.
별도로 설치된 안내판을 읽어보니 국가보훈처 경기북부보훈지청이 고양시의 지원을 받아 2016년 12월에 건립했다고 적혀있는데, 공공기념물로서 적당한 크기와 조형미를 보여준다.
그런데 설명문 중에 ‘6·25전쟁 전사자들의 숭고한 나라사랑 정신이 후손인 “꽃보다 아름다운 고양시민들”에게 이어질 수 있도록’이라는 문장이 등장한다. 당시 고양시가 열심히 밀었던 캐치프레이즈를 쌍따옴표까지 찍어서 설명문에 삽입해달라고 국가보훈처 측에 요구했을 그 시절 담당공무원의 고충이 상상돼 쓴웃음이 지어진다.
광장을 접수한 독립운동기념탑
앞선 기사에서 떡꼬치탑으로 불리는 ‘바람곶’ 조형물이 일산문화광장의 시그니처라고 말했지만, 이제 그 자리는 새로운 공공조형물이 넘겨받고 있는 느낌이다. 광장 전체를 찍은 사진들을 고르다 보면 어김없이 시각적 존재감을 발휘하는 거대한 조형물, 바로 ‘고양 독립운동기념탑’이다. 3·1독립운동을 상징하는 31m 높이로 솟아있는 이 탑은 수평적으로도 좌우 40m, 앞뒤 140m의 드넓은 공간을 자신의 영향권으로 점하고 있다.
기념탑의 영역은 광장 초입에 세워진 ‘고양 독립운동기념탑 이야기’라는 설명문에서부터 시작되는데 진입부를 지나 연결부인 태극마당, 공감부인 부조와 글씨를 차례로 거쳐 비로소 융합부인 기념탑에 도달하도록 공간을 구성했다. 한마디로 물리적으로 일산문화광장의 절반을, 시각적으로는 광장 전체를 기념탑의 영역으로 접수한 셈이다.
3·1독립운동 100주년을 1년 앞둔 2018년 광복회 고양시지회와 고양시가 함께 세운 이 탑은 ‘고양출신 독립운동 유공자들의 공적을 기록하며 조국과 고양을 위한 님들의 희생과 헌신을 오래도록 기억하기 위해 건립했다’고 취지를 밝히고 있다. 탑의 형상은 꽃봉오리와 비상하는 날개와 기도하는 손 등을 좌우 대칭으로 이었다고 설명해 놓았는데, 바꿔 말하면 ‘무슨 형상인지 직관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말로 들린다.
공감부라고 명명된 탑 하단에는 고양지역 출신 항일독립운동가 74인의 일생을 벽면에 새겨놓았다. 또한 전면부 좌우측에는 석재 부조작품이 장식돼 있는데 오른쪽에는 ‘고양 독립운동의 역사’를, 왼쪽에는 ‘행복한 오늘과 평화로운 내일’을 표현해 놓았다.
그런데 미안한 말이지만, 행복한 오늘과 내일을 표현해 놓은 부분이 마치 70년대 바른생활 교과서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촌스럽다. 자세히 살펴보면 달리는 기차에는 ‘경의선’이라는 글씨가, 뒤편의 건물에는 ‘고양킨텍스’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이런 쓸데없는 디테일들이 공공미술작품이 지녀야 할 품격과 상징성을 깎아 먹고 있다.
품격을 갖춘 기념물이란 무엇일까
국가로부터 서훈을 받은 고양 출신 독립운동가들을 74인으로 규정해 놓은 것도 찜찜하다. 일제는 수도로서의 위상을 격하시키기 위해 지금의 서울 땅 중 북서부 6개 면을 고양군에 붙여버렸다. 다시 말해 고양의 독립운동가로 모셔진 74인 중 많은 숫자가 오늘날의 고양 땅이 아닌, 서울 서대문구나 동대문구, 용산구 등을 연고로 하는 이들인 것이다. 고양시가 일제의 강점 통치에 저항한 역사를 기리겠다면서, 일제가 멋대로 주물러놓은 행정구역을 근거로 ‘고양시 출신 독립운동가’의 규모를 늘려잡는 행태를 보인 것이 과연 타당한 일일까.
넘치면 모자라는 것만 못하다 했는데, 고양 독립운동기념탑이 딱 그렇다. 형상은 과도하고 메시지는 과잉됐다. 게다가 부조와 텍스트의 표현마저 세련되지 못했다.
지역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보다 크고 높게 조명하고자 하는 시도가 잘못됐다는 게 아니다. 하지만 부모님의 사진을 최대한 크게 걸어놓는다고 해서 효자가 되는 게 아니듯, 나라사랑과 향토애 역시 커다란 기념탑을 세우고, 더 많은 인물들을 언급한다고 해서 완성될 리 없다. 일산문화광장을 압도하는 거대한 탑 앞에 서서 품격과 깊이와 공동체의 합의를 품은 기념조형물이란 과연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질문해보자.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고양 독립운동기념탑의 기록 어디에도 탑을 세운 고양시장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는 점이다. 시기를 따져보면 그럴 만도 하다. 탑은 2017년 11월에 착공해 2018년 7월에 완성됐는데, 완공 한 달 전에 시장이 바뀌었다. 최성 시장은 물러났으니 이름을 넣을 수 없고, 뒤이어 취임한 이재준 시장은 이 기념탑의 규모와 형태가 썩 내키지 않았던 것 같다. 담당부서 주무관 이름까지 새겨넣은 기념탑의 표지석에 시장 이름이 실종된 이유다.
고양 일산신도시 선사유적 이야기
최성 시장 이후 들어선 3개의 공공조형물도 살펴보자. 2019년에는 6·25전사자 명비 인근에 ‘고양 일산신도시 선사유적 이야기’ 안내간판이 세워졌다. 1990년대 초 일산신도시 개발에 앞서 진행된 유물조사에서 고양가와지볍씨를 비롯해 선사시대의 유물들이 출토된 사실을 사진과 함께 소개하고 있다. 고양시가 30년 전에 만들어진 신도시가 전부가 아니라, 먼 옛날 구석기 시절부터 사람들이 살았던 역사가 깊은 고장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시민들이 조성한 ‘세월호 기억나무’
2021년 4월에는 세월호 참사 7주년을 맞아 광장 한쪽에 세월호 희생자들을 기리는 ‘세월호 기억나무’가 한그루 식재됐다. 나무 주변을 노란 바람개비가 리본 형태로 둘러져 있고, 작은 비석 하나가 놓인 소박한 모습이다. 다른 공공조형물들이 지자체나 공공기관에서 세운 것이라면, 세월호 기억나무는 ‘세월호를 기억하는 일산시민모임’이라는 시민단체가 주도해서 조성한 것이라 더 의미가 크다.
BTS 리더 RM의 ‘일산 사랑’
2021년 9월에는 일산문화광장 전면에 세워진 고양관광정보센터 벽면에 멋진 포토존이 조성됐다. 바로 BTS의 리더 RM(랩 몬스터)이 마이크를 들고 있는 장면인데, 당시 RM의 생일에 맞춰 포토존이 공개돼 팬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기도 했다. 어깨에는 고양고양이도 귀엽게 얹혀져 있다.
일산문화광장의 포토존 주인공으로 RM이 선택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2018년 UN을 방문했을 때 RM은 “저는 대한민국 서울 근교의 ‘일산’이라는 도시에서 태어났다. 그곳은 호수가 있고 축제가 열리는 곳이고, 그곳에서 꿈을 꾸며 자라났다”는 내용의 감동적인 연설을 했다. 지자체 입장에서는 정말 반할 수밖에 없는 콘텐츠를 만들어 준 것이다.
또한 2015년 BTS가 발표한 ‘마이 시티(MA CITY)’라는 곡에서도 RM은 고향 일산에 대한 어마어마한 자부심과 사랑을 노래하기도 했는데, 그 가사는 정발산과 일산문화광장을 연결하는 육교 아래쪽에 적혀있다. 가사를 잠시 들어보자.
“…내게 억만금을 주고 딴 데 살라고? AH NO THANKS. 일산, 내가 죽어도 묻히고픈 곳. IT'S THE CITY OF THE FLOWER...집 같던 라페스타, 또 웨스턴돔 어린 시절 날 키워낸 후곡 학원촌...한강보다 호수공원이 더 좋아 난, 작아도 훨씬 포근히 안아준다고 널…”
앞으로 어떤 공공조형물이 들어설까
2회에 걸쳐 일산문화광장의 공공조형물을 살펴봤다. 총평을 하자면 모든 공공기념물은 나름대로 중요한 의미를 품고 있고, 특정한 시대의 특징들을 담아내고 있다. 하지만 지자체장들이 홍보의 도구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개입되는 순간, 형태가 과도해지고 메시지가 조잡해지기 쉽다.
앞으로는 또 어떤 공공조형물들이 시민들의 공간에 들어서게 될까? 공공조형물에 대한 합의는 어떤 방식으로 이뤄져야 할까? 함께 고민해야 할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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