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 광장·공원 공공조형물 산책③ 일산호수공원(상)

고인돌 형상을 닮은 공원과 광장의 표지석들 
신도시 초기 입주민들에게 인상적 풍경 각인
한 시절 미의식·메시지 담은 소중한 도시화석 

[고양신문] 일산문화광장에 이어 고양시민이 가장 사랑하는 명소, 1996년에 개장한 일산호수공원의 공공조형물을 찾아가보자. 요즘에는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택 거주가 일반화되며 보기 힘들어졌지만, 과거 단독주택 거주인구가 많던 시절에는 집집마다 대문 기둥에 집주인의 이름을 적은 문패를 달곤 했었다. 가정집의 문패, 사무실의 현판, 빌딩의 간판처럼 공원과 광장에도 이름을 공식적으로 표기하는 조형물이 있다. 바로 표지석이다. 일산호수공원 역시 주요 지점마다 인상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표지석들이 다양한 정보를 전해주고 있다. 

북방식 고인돌을 닮은 '일산호수공원'  표지석.
북방식 고인돌을 닮은 '일산호수공원'  표지석.

서로 다른 개성의 자연석 ‘문패’

가장 먼저, 공원 전체의 문패라 할 수 있는 ‘일산호수공원’ 표지석은 MBC드림센터 건너편 녹지 초입에서 만날 수 있다. 가로로 길게 누운 묵직한 자연석의 전면에는 ‘일산호수공원’ 6글자가 힘있고 간결하게 적혀 있고, 뒷면에는 ‘국토사랑 나라사랑’이라는 슬로건과 함께 일산신도시 조성을 주관한 한국토지공사 로고가 선명하게 새겨졌다. 굵은 세로형 받침돌이 넓은 가로형 상부를 받치고 있는 구조는 북방식 고인돌을 만들었던 선사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상징조형물의 기본 형태라 할 수 있다.   

메인 표지석에서 호수 방향으로 걸어가면 둥근 광장이 나오는데, 바로 옆 녹지에 ‘주제광장’이라는 표지석이 이곳의 이름을 알려준다. 앞선 표지석이 북방식 고인돌을 닮았다면, 이번 것은 받침돌 없이 육중한 바위가 땅 위에 그대로 얹힌, 남방식 고인돌과 닮은꼴이다. 아까와는 달리 검은 바탕돌에 흰색으로 앞면에 ‘주제광장’ 4글자만 적어놓았다.  

남방식 고인돌을 닮은 '주제광장' 표지석. 
남방식 고인돌을 닮은 '주제광장' 표지석. 

정보 가득 담은 한울광장 표지석

가장 많은 정보를 담고 있는 표지석은 일산호수공원의 중심인 ‘한울광장’에 자리를 잡고 있다. 일단 돌의 크기가 가장 크고, 형태도 보는 각도에 따라 돌고래, 또는 물개처럼 보이는 독특한 모양의 자연석이다. 호수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앞면에는 한울광장 4글자가 적혀 있고, 뒷면에는 한울광장의 넓이(9710평)와 구성과 함께 상징적 의미를 상세히 기술해 놓았는데, 내용이 가히 웅장하다. 

요점을 정리하면 ‘정발산의 정기가 폭포로 흘러내리고, 일산을 상징하는 석계산이 지각변동으로 양분되고, 협곡을 흐르다가 수변광장에서 확산돼, 호수의 분수로 치솟아 올라 신도시 전역으로 퍼져나간다’는 의미를 담아 광장의 구조와 시설을 설계했다는 얘기다. 30여 년 전, 우리나라 최초의 거대 신도시와 인공호수를 만들었던 시절의 기대와 감격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것 같아 꽤 재미있다. 

뒷면에 다양한 정보를 담고 있는 '한울광장' 표지석. 
뒷면에 다양한 정보를 담고 있는 '한울광장' 표지석. 

물론 한울광장 일대는 수년 전 대대적인 일산호수공원 리뉴얼 과정에서 모양이 크게 달라졌다. 일산문화광장에서 넘어오는 대형육교가 만들어지며 석계산을 아예 없애고 문화광장~육교~한울광장~호수를 탁 트인 경관으로 연결했다. 기자는 그 과정에서 ‘한울광장’ 표지석이 철거되면 어쩌나 걱정했었는데, 다행히 그대로 남아서 과거의 모습을 말해주는 도시화석이 됐다. 
 
일산호에 새긴 ‘수질목표 3급수’

호수공원 조성 초기에 만든 표지석은 몇 개가 더 있다. 하나는 자연호수 북쪽 끝부분에 조성된 ‘자연학습원’ 표지석이다. 다른 것들과 달리 가로형 기단에 세로형 바윗돌이 쐐기처럼 박혀져 있는 형태다. 표지석 자체에는 아무런 설명을 첨가하지 않았는데, 최근 옆쪽에 자연학습원을 설명하는 별도의 안내보드를 설치했다.

한울광장과 호수가 만나는 수변에는 호수 이름을 명기한 ‘일산호’ 표지석을 볼 수 있다. 한때 고양시에서는 호수공원이 일산구민만의 것이 아니라, 고양시민 전체의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고양호수공원’과 ‘고양호’라는 이름으로 명칭을 바꾸려는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의도가 좋다 하더라도 30년 가까이 고유명사로 각인된 이름을 인위적으로 바꾸는 것은 쉽지 않았고, 결국 일산호수공원라는 이름이 유지됐다. 이름이나 상징물은 세월이 흐를수록 시민들의 지지를 획득한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실감한다.

호수의 규모와 목표수질을 기록해 놓은 '일산호' 표지석. 
호수의 규모와 목표수질을 기록해 놓은 '일산호' 표지석. 

일산호 표지석 옆면에는 호수의 면적과 용량, 수심 등을 명기해 놓았는데, 눈에 띄는 항목은 ‘목표수질 : 3급수’라고 못박아 놓은 대목이다. 사실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은 대형 인공호수를 만든다고 했을 때, 처음에는 반대 여론이 들끓었었다. 그 땅에 아파트나 더 지으라는 실용적 요구도 있었고, 수질관리가 안돼 애물단지로 전락할 거라는 환경적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일산호수공원은 타 지자체의 후발주자들이 수질관리에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에서도, 보란 듯이 목표수질 유지에 성공했다. 원수 자체를 깨끗한 한강물로 공급받고, 다양한 수질관리 노하우를 스스로 찾아낸 덕분이다. 일산호 표지석에 적힌 목표수질을 보며 ‘일부심(일산 사는 자부심)’에 잠시 바람을 넣어보자.

일산호수공원이 아름다운 하천? 

일산호 표지석 바로 옆에도 작은 크기의 또다른 표지석 하나가 놓여있다. 평소에는 몰랐던 것이라, 가까이 다가가 눈여겨 보니 ‘한국의 아름다운 하천 100선’ 인증 청동명판이 박혀있다. 일산호가 아름답긴 하지만 하천이라니, 무슨 뜬금없는 소리일까? 찾아보니 ‘한국의 아름다운 하천 100선’은 2009년 국토해양부(이명박 대통령 시절에 존재했던 정부 부서)가 선정한 목록이다. 4대강 공사로 전국의 하천을 들쑤셔놓은 시절에 이런 사업을 벌였다는 게 어이없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어쨌든 일산호수공원의 위상이 전국적으로도 인정받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 선정된 '한국의 아름다운 하천 100선' 표지석. 
이명박 정부 시절에 선정된 '한국의 아름다운 하천 100선' 표지석. 

100선에는 예천 회룡포, 옥천 부소담악, 청송 주왕산계곡, 양평 두물머리, 연천 한탄강 등 이름처럼 전국의 아름다운 하천들이 망라돼 있다. 선정 분야는 경관, 생태, 문화, 역사, 복원 등으로 구분돼 있는데, 일산호수공원은 청계천과 함께 ‘친수’ 분야의 명소로 선정됐다. 인공 친수공간도 ‘아름다운 하천’이라는 범주에 넣고자 했던 당시 정부의 의도가 읽히는 대목이다.   

외국인 방문자 환영하는 만국기봉 

이번에는 일산호수공원의 국제적 면모를 보여주는 상징조형물들을 만나보자. 중앙육교를 건너오며 처음 마주하는 풍경 중 하나는 하늘로 뻗은 메타세쿼이아와 평행선을 그리며 도열한 만국기다. 일정한 간격으로 치솟은 스테인리스 국기봉마다 세계 여러 나라의 국기가 게양돼 있고, 하단에는 나라명과 위치, 수도, 면적 등의 정보가 표기됐다. 

국기봉은 처음에 70개가 있었다. 이중 6·25 참전 16개국과 역대 고양국제꽃박람회 참여한 30여 개 국가의 국기가 상시 내걸렸고, 나머지 국기봉에는 기타 나라 국기가 순환 게양됐었다. 그러다가 이동환 시장 취임 후 게양대 53개를 추가로 설치해 현재는 총 123개 국가(한국대사관 주재국)의 국기가 상시 펄럭이고 있다. “호수공원이 고양국제꽃박람회, 고양호수예술축제 등 대규모 국제 행사의 무대이기 때문에, 이곳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을 환영한다는 의미를 담았다”는 게 시 관계자의 설명이다.

메타세쿼이아 나무와 나란히 도열한 만국기 게양대. 
메타세쿼이아 나무와 나란히 도열한 만국기 게양대. 

호수공원에서 손잡은 세계의 어린이들 

만국기봉에서 멀지 않은 곳에 또하나의 글로벌 기념조형물이 자리하고 있다. 바로 한일월드컵 직전인 2002년 5월에 열린 세계평화아동축제(World Festval for Children) 기념조형물 ‘평화와 어깨동무’다. 조형물 앞에 설치된 표지석을 읽어보니 ‘문화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보이스카우트연맹과 유니세프 한국위원회가 공동 주관한 행사에 전세계 48개국 240명의 어린이들이 참가했다’고 적혀있다. 국제적 규모의 뜻깊은 행사가 일산호수공원에서 열렸던 것이다. 

조형물은 함께 손을 잡고 인간띠를 만든 어린이들이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모양새다. ‘국가·인종·종교·문화의 차이를 넘어 지구촌 어린이들이 우정의 교류를 펼치며 평화를 기원하는 뜻으로 건립했다’는 취지문을 읽으며, 국내외를 막론하고 갈등이 갈수록 격해지는 세태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세계평화아동축제를 기념해 세워진 '평화와 어깨동무' 조형물.
세계평화아동축제를 기념해 세워진 '평화와 어깨동무' 조형물.

최근 표지석, 개성 오히려 사라져

일산호수공원 상징조형물을 살펴보는 첫 순서로 조성 초기에 만든 표지석들을 살펴봤다. 육중한 자연석과 커다란 글씨가 결합된 표지석들은 투박하고 권위적인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30년 전 공공조형물의 보편적 미의식과 메시지 욕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소중한 도시화석이라는 생각이 든다. 앞서도 말했지만, 초창기에 일산에 입주한 주민들에게는 오랜 세월 익숙하게 보아온 것들이 친밀감을 확인시켜주는 요소들이기도 하다. 2000년대 이전, 나무그늘이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미완성의 호수공원을 걷다가 만나는 육중한 표지석들은 신도시가 선물하는 참신한 경관을 방문자들에게 각인시켜 줬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최근에 만들어지는 표지석들은 어딘지 어설퍼 보인다. 예를 들어, 2022년 중앙육교를 완성한 후 세운 ‘일산호수공원~일산문화공원 녹지축 연결사업’ 준공표지석을 보면, 석재도 공장에서 다듬어진 기성품처럼 보이고, 글자체도 한글프로그램 폰트를 그대로 가져와 별다른 감흥을 전하지 못한다. 표지석이 지녀야 할 일종의 아우라가 없다고나 할까. 물론 이는 기자의 지극히 주관적인 평가일 뿐이고, 세월이 흐르다 보면 자연스레 또 다른 친숙함이 만들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2022년에 세워진 일산호수공원~일산문화광장 녹지축 연결사업 준공 표지석. 
2022년에 세워진 일산호수공원~일산문화광장 녹지축 연결사업 준공 표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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