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사가 오랜기간 장애인들 학대·폭행

복지사가 오랜기간 장애인들 학대·폭행
시설 폐쇄될까 속앓이하는 피해자 부모
장애인시설 부족에 항의도 못 해 ‘비참’

학대 억울함보다. 갈곳 없는 게 더 두려워
반성도, 항의도 없이 사건 조용히 묻힐 뻔
“시설 폐쇄 막아달라” 청와대 국민청원


[고양신문] ‘정인이 사건’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홀트아동복지회가 이번엔 성인 발달장애인에 대한 학대 정황이 포착돼 경찰수사를 받고 있다.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은 지난해 말 고양시 홀트장애인주간보호센터에서 교사로 일하는 사회복지사가 입소 장애인들을 장기간 학대·폭행하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 기관은 2개월간의 자체조사를 마친 뒤 사안이 중대하다고 판단해 지난 3월 교사와 함께 법인(홀트아동복지회)을 경찰에 고발했다. 고발장에는 피해자를 입소자 전원인 12명으로 명시했다.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의 최초 조사는 작년 12월에 시작됐고 경찰수사는 현재 마무리 단계다. 홀트는 가해 교사를 1월 해임했다.

가해자로 지목된 교사(사회복지사)는 중증장애인을 상대로 언어폭력과 신체적 폭행을 장기간 가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조사기관과 피해자 가족들에 따르면 해당 교사는 주로 CCTV가 없는 사각지대에서 멍자국이 남지 않는 방법으로 지속적인 학대를 발달장애인 여러 명에게 가했던 것으로 보인다. 교사는 정강이를 가격하기도 했고, ‘엄마가 널 싫어해서 여기 보낸 거야’라는 식의 언어폭력도 행사했다.

장애인권익옹호기관 관계자는 “조사한 바로는 학대행위가 명확하고 학대 지속기간도 꽤 길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가해자와 함께 홀트아동복지회를 함께 고발한 이유는 지속적인 학대행위를 알아채지 못한 법인의 관리책임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홀트일산복지타운 내에 위치한 홀트장애인주간보호센터. 이곳 시설장(센터장)은 주간보호센터와 함께 요양원과 그룹홈 등 무려 6개 시설장을 겸직하고 있어 관리에 허점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홀트일산복지타운 내에 위치한 홀트장애인주간보호센터. 이곳 시설장(센터장)은 주간보호센터와 함께 요양원과 그룹홈 등 무려 6개 시설장을 겸직하고 있어 관리에 허점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부모들에게 사건 설명조차 없어

장애인 폭행도 문제지만 사건이 조사되는 과정에서 홀트는 국내 대표적인 사회복지법인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조치를 취했다. 조사가 시작되고 6개월이 지나도록 입소자와 입소자의 부모들에게 공식적인 사과는 물론 사건을 제대로 설명하는 자리를 만들거나 공지를 띄운 적이 단 한 차례도 없었던 것.

홀트장애인주간보호센터는 올해 1월 발달장애인 입소자 12명 중 4명의 보호자에게만 개별적으로 폭행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사과했을 뿐 나머지 보호자들에게는 지금까지도 이번 일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한 장애인 가족은 “최근 형사로부터 전화를 받고서야 시설 내에서 학대가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내 자식도 피해자라는 것을 알게 됐다”며 “이런 내용을 홀트 담당자가 아닌 형사로부터 직접 들었다는 것이 너무나 큰 충격이다. 경찰로부터 이런 사실을 전해 듣고 홀트에 항의전화를 했는데, 아직까지도 전체 보호자들에게 학대가 있었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알리지 않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홀트 시설장은 취재가 시작되자 “보호자 전원에게 사건 내용을 공지하지 못한 것은 제 불찰이 맞다. 잘못을 인정한다”며 “오늘이라도 당장 부모들에게 설명하고 사과하겠다”라고 말했다.

홀트장애인주간보호센터 내부 모습.
홀트장애인주간보호센터 내부 모습.

학대 확인돼도 시설 떠날 수 없어

학대신고가 있었다는 사실을 제대로 전달받지 못한 학부모의 비통함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학부모들 사이에서 이 같은 사실이 적극적으로 공유되지 못하고 외부에 알려지기까지 6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린 데는 이유가 있다.

학대와 폭행을 누구보다 가슴 아파해야 할 장애인 부모들은 가해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분노보다도, 사건 공론화로 인해 시설이 폐쇄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더 크게 작용했다. 부족한 중증장애인 시설이 폐쇄되는 일은 그들에게는 학대보다도 가혹한 일종의 사회적 폭력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한 부모는 “학대가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 시설을 떠날 수 없는 현실에 놓인 장애인 가족들도 존재한다”며 “이런 사실을 털어놓는 것 자체가 우리 장애인 가족들에게는 참으로 비참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피해 부모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홀트가 시설을 폐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며 “폭행에 대해서는 깊이 반성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겠지만, 이를 핑계로 시설을 폐쇄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말했다.

고양시 관계자는 “홀트 쪽에선 시설이 노후화됐고 관리하기 힘들다는 이유를 들어 지속적으로 시설폐쇄 의견을 내왔는데, 이번에 정리했으면 하는 눈치다”라며 “7월 홀트 이사회에서 이에 대한 결정이 있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달 홀트장애인주간보호센터 부모들은 청와대 국민청원에 ‘홀트 책임자를 처벌하라’는 내용 대신 ‘장애인주간보호센터 폐쇄를 막아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 글을 올렸다. 글에는 ‘중증 성인장애인은 몇 년을 대기해야 시설에 입소할 수 있다. 시설이 턱없이 부족해 시설 내에서 인권문제가 발생해도 아무 말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폐쇄를 반드시 막아달라. 눈물로 호소한다’라는 내용이 담겼다.

홀트 관계자는 “관리책임을 소홀히 한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하지만 사건으로 시설 폐쇄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폐쇄는 이번 일과 별개로 이사회에서 결정할 사안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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