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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공예 한길 50년… 혼으로 일군 ‘명장’ 반열<고양사람들> 박성규 칠기공예 명장
  • 박영선 기자
  • 승인 2017.08.30 18:00
  • 호수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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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신문] “전통공예 작업은 오롯이 혼을 담는 행위 그 자체입니다.”

고양시에는 다양한 분야에서 ‘대한민국 명장’이라 일컬을 만한 사람들이 적잖이 있다. 그 중에 한 사람인 박성규(64세·칠기부문 제06-9호) 칠기 명장은 전통공예의 의미를 이처럼 말했다. 박 명장이 일하는 공방은 대자동 벽제역 맞은편, 초록 빛깔의 벼들을 보면서 한적한 자연부락을 20여 분 걸어가면 만나게 된다.

박 명장은 “50여 년 전 10대 중반 시절, 고향인 전북 익산에서 동네 아주머니의 소개로 처음 공예의 길을 걷기 시작해 지금까지 왔다”며 옛 이야기를 꺼냈다. 그 당시 아주머니를 따라간 곳은 장롱을 짜는 공방(나전칠기 공방)이었다. 박 명장은 당시 농에 붙일 자개를 자르고 붙이는 나전반과 칠반 중에서 나전반에서 일하며 월등한 솜씨로 두각을 나타냈다. 20대 무렵에는 서울 종로의 상패를 제작하는 곳으로 진출해 나전문양과 글씨가 들어간 상패를 제작했다. 이때 본격적으로 나전을 붙여서 칠로 완성해 가구를 만드는 나전칠기에 몰두했다. 그 당시 나전칠기로 멋을 낸 가구는 결혼 필수품이었고, 또한 고가품이어서 나전칠기를 다루며 꽤 좋은 수입을 얻을 수 있었다.

박 명장은 1980년대 중반부터 양, 소, 상어 등의 가죽에 옻칠해 기물을 만드는, 이른바 ‘칠피공예’로 전환하면서 명장의 길을 뚜벅뚜벅 걷기 시작했다. '칠'은 옻칠을 뜻하고, '피'는 가죽을 뜻해서 칠피공예라 함은 가죽에 옻칠을 입히는 공예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모피공예가 활발히 발달했으나 근세에 서양문명이 들어오면서 점차 사라지는 경향이었는데, 박 명장이 이를 안타깝게 여겼고 명맥을 이은 것이 바로 칠피공예다. 칠피는 가죽에 옻칠을 하므로 맨살에 옻을 입히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옻칠의 주성분인 우루시올은 방부, 방습, 방열에 효과적이기 때문에 수명연장으로 오랫동안 문화재 유물로서 위상을 간직하게 한다. 그는 박물관에서 가죽 관련 유물들을 본 후 떠오른 아이디어를 칠피공예에 접목시켰다. 1992년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에 처음으로 칠피공예품을 출품해 그 당시 문화부장관상을 받았고, 이것이 칠피공예를 알린 계기가 됐다.

이후 우리나라 최고 공예대전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에서 10여 년 동안 문화재국장상부터 문화재진흥원장상까지 상을 혼자서 휩쓸었다. 이때부터 서울시에서 사라져가는 문화재잇기작업(현재도 진행) 초창기 멤버로 활약했고, 1999년에는 대한민국 기능전승자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또한 한 계단 한 계단 발돋움한 결과로 2006년 칠기 부문에서 대한민국 명장 반열에 올랐다. 가죽에 옻칠을 하는 칠피공예와 달리 칠기공예는 나무나 종이에 천연재료인 옻칠을 겹겹이 칠해 만드는 공예다.

서울에서 고양시 대자동공방으로 옮겨온 지 17년이 지난 지금도 박 명장은 또 다른 칠피와 칠기공예에 혼을 쏟으며 문화재 재현을 하고 있다. 박 명장의 작품 목록에는 인장함-어피(덕수궁유물전시관 소장, 재현작), 황칠문서함(서독 함부르크박물관 소장, 재현작) 등을 비롯해 칠피탁자, 과기세트 등 수상작들이 수두룩하다.

박 명장이 칠피기능 전승자(1999~2004년)였을 때, 아내 김용순씨는 계승자였고, 딸 박선영씨는 문화재보존처리 이수자로 석사를 받고 대학원 졸업 후 현재는 박 명장과 함께 공방에서 작업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고양시 공예사업협동조합 조합장을 맡은 박성규 명장은 “공예인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작업도 하고 상설 전시도 가능한 공간이 생겼으면 한다”는 소망을 밝혔다.
 

 

 

박영선 기자  ysun6504@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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