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개의 키워드로 열어가는 고양역사이야기2

고봉산 동쪽 전망대에서 바라 본 북한산의 일출
고봉산 동쪽 전망대에서 바라 본 북한산의 일출

한씨 미녀와 안장왕 설화
때는 고구려와 백제, 신라의 삼국이 군사적 요충지인 한강 하구를 빼앗기 위해 피 튀는 각축전을 벌이고 있던 5세기 말에서 6세기 초이다. 고구려 제21대 문자명왕의 태자 흥안(興安)은 국경지대의 정세를 엿보기 위해 지금의 고양시 일원인 백제의 개백현에 상인으로 가장하여 잠입한다. 어느 날 백제 국경수비대에 쫓기게 된 흥안은 지역의 유지인 한씨(韓氏)의 집으로 숨어든다. 그 집에는 주(珠)라는 딸이 있는데 절세가인이었다. 젊은 두 사람은 처음 보는 순간 서로 한눈에 반해 정을 통하고 부부가 될 것을 굳게 약속한다. 

고구려로 돌아갈 때가 된 흥안은 한주(韓珠)에게 자신이 적국인 고구려의 태자라는 사실을 고백한 뒤 반드시 다시 돌아와 정식으로 결혼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다. 고구려로 돌아온 흥안은 서기 519년 부친인 문자명왕에 이어 고구려 제22대 안장왕으로 즉위한다. 안장왕은 서둘러 한주와의 약속을 지키고자 여러 차례 군사를 이끌고 백제를 침공하지만 그때마다 강력한 백제군에 패하고 만다. 이즈음 개백현에는 새로운 태수가 부임하는데 한주가 절세미인이라는 소문을 듣고 직접 찾아가 청혼을 한다. 그러자 한주는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는 지금은 멀리 떠나 있지만 이미 정혼한 남자가 있어 태수의 청을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화가 난 태수는 그 남자가 누구냐고 다그쳤으나 대답이 없자 이는 필시 고구려의 첩자가 분명하다며 한주를 옥에 가두고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회유하려 하였다. 그러면 그럴수록 한주의 다짐은 더욱 굳어졌고 흥안에 대한 사랑을 단심가(丹心歌)로 표현하였다.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야 있건 없건 / 임 향한 일편단심 가실 줄이 있으랴”

한주의 마음을 돌릴 수 없음을 알게 된 태수는 그녀를 죽일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일단 옥에 가둔다. 

 한편 개백현의 태수가 한주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소문을 들은 안장왕은 마음이 몹시 급해져 신하들을 불러 모았다.

“개백현을 되찾아 한주를 구하는 사람에게는 천금과 만호후(萬戶侯)의 상을 내리겠다”

이때 장군 을밀이 선뜻 나선다. 

“소인은 천금과 만호후를 얻는 것보다도 안학공주와 결혼하는 것이 소원입니다. 제가 안학공주를 사랑하는 것은 왕께서 한주를 사랑하는 것과 같습니다. 안학공주와의 결혼을 허락해 주신다면 한주를 구해오겠습니다.”

안학공주는 안장왕의 누이동생이다. 왕은 을밀의 청을 허락하였다. 을밀은 병사 5천을 거느리고 수로를 통해 지금의 강화도를 거쳐 개백현으로 쳐들어가기로 하고 왕은 대군을 이끌고 육로로 이동하기로 했다. 개백현에 도착한 을밀은 우선 결사대 20명을 선발하여 자신과 함께 잠입하고 본대는 정박한 배에 대기시켰다.  

개백현의 태수는 마침 자신의 생일을 맞아 성대한 잔치를 열고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한주의 마음을 돌려보기로 하였다. 

“네가 마음을 돌리면 목숨을 살려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오늘이 네 생일이 될 것이다.” 

마지막 기회였음에도 불구하고 안장왕을 향한 한주의 마음은 결코 변함이 없었다. 졸개로부터 한주의 마음을 전해들은 태수는 크게 분노하며 빨리 처형하라고 명을 내렸다. 이런 절체절명의 순간, 광대패로 위장하고 태수의 생일잔치에 숨어든 을밀과 20명의 결사대가 갑자기 칼을 빼어들고 백제의 군사들을 공격하며 이렇게 소리쳤다.

“지금 고구려 10만 대군이 공격해 오고 있다. 너희들은 완전 포위되었으니 항복하라.”

이때 을밀은 혼란을 틈타 옥으로 달려가 한주를 구한 뒤 지금 왕이 구하러 오고 있으니 산에 올라 봉화를 올리라고 말했다. 한주는 고봉산(高峰山) 봉화대에 올라 불을 올렸다. 봉화대에서 올라오는 연기를 본 안장왕의 고구려군과 한강에 정박 중인 을밀의 본대는 일제히 총공세를 가해 개백현을 빼앗고 왕과 한주는 다시 재회한다.

고봉산 서쪽 전망대에서 바라 본 고양시 일원. 삼국이 치열하게 전쟁을 펼치던 들판에는 이제 거대한 아파트의 숲이 들어섰다.
고봉산 서쪽 전망대에서 바라 본 고양시 일원. 삼국이 치열하게 전쟁을 펼치던 들판에는 이제 거대한 아파트의 숲이 들어섰다.


춘향전과 단심가의 원조는 고양
위의 설화는 『삼국사기』 잡지(雜志) 지리편에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고 구한말 단재 신채호 선생이 『조선상고사』에서 옛 문헌인 『해상잡록(海上雜錄)』을 인용하여 자세히 기록하고 있는 「한씨 미녀와 안장왕」이다. 설화 내용의 어디까지가 역사적인 사실인지는 알 수 없으나 『삼국사기』에도 기록이 남아 있고 고양시 중산동과 성석동에 걸쳐있는 고봉산에 고구려 시대의 성터와 봉수대의 흔적이 남아 있어 어느 정도의 신빙성은 인정할 수 있다 하겠다. 다만 등장인물이나 스토리 전개 등에 있어서는 일부 소설적 픽션이 가미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런데 이 설화를 읽다보면 어딘지 많이 들어본 듯한, 아니 너무 익숙한 이야기가 하나 떠오른다. 조선 중기 한글소설로 알려진 『춘향전』이다. 소설, 판소리, 영화, 드라마 등 문예장르 전반에 걸쳐 한국인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내용이다. 전체적인 전개가 너무 유사하지 않은가? 삼국시대 경기도 고양시에서 조선시대 전남 남원시로 타임머신을 타고 간 듯한 느낌이다. 또한 한주가 읊었다는 단심가(丹心歌)도 고려 말 충신 정몽주가 이방원의 「하여가」에 대응하여 읊은 시구와 거의 동일하다. 이쯤에서는 원조가 어떤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당연히 시대적으로 앞서 있고 역사적 근거도 있는 「한씨 미녀와 안장왕」이 원조라고 본다. 정몽주의 「단심가」 역시 같은 해석이 가능하지 않을까? 『춘향전』은 고양시의 설화인 「한씨 미녀와 안장왕」을 조선후기라는 시대적 배경에 맞춰 재구성한 스토리로 봐야할 것이다. 결국 『춘향전』의 원조는 고양시에 있었던 것이다. 

고봉누리길에서 만난 이무기 바위. 고봉누리길에는 이처럼 소소한 스토리텔링이 아기자기하게 펼쳐져 있다.
고봉누리길에서 만난 이무기 바위. 고봉누리길에는 이처럼 소소한 스토리텔링이 아기자기하게 펼쳐져 있다.

‘일산’ 브랜드 만든 고봉산 
고양지역은 삼국 형성기인 1세기 이후 줄곧 백제의 영토였으나 5세기 후반 고구려 장수왕의 남하정책에 밀려 80여년간 고구려에 편입된다. 이후 백제와 신라는 연합군을 편성하여 551년 고양이 속한 한강 하류지역은 백제가, 상류지역은 신라가 회복하였으나 553년 신라 진흥왕의 배신으로 한강유역 전체가 신라에 귀속된다. 「한씨 미녀와 안장왕」 이야기는 이러한 삼국의 숨막히는 접전을 시대적 배경으로 탄생하였다. 고양시 지역에 대한 최초의 기록인 『삼국사기』에 의하면 당시의 명칭은 개백현(皆伯縣), 달을성현(達乙省縣), 왕봉현(王逢縣) 등이다. 이 설화에도 등장하는 고봉산은 ‘일산’이라는 지명의 기원이 될 정도로 지역에서는 유일하게 우뚝 솟아있다. 과거에는 크고 신성한 산이라는 의미의 ‘한뫼’로도 불리며 아직도 학교, 도서관 등 여러 명칭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한뫼’가 ‘일산’으로 바뀐 계기는 일제의 침탈이 시작되던 1907년 경의선이 개설되고 고양지역에 설치된 역 이름을 읽기 편하게 ‘일산역’으로 붙인 데서 기인하였다. 지금은 1기 신도시인 ‘일산신도시’가 건설되어 고양시를 대표하는 브랜드로 자리 잡고 있는 지명이다. 

근래에 고봉산에는 인근 황룡산과 연계한 ‘고봉누리길’이 잘 조성되어 많은 시민들이 애용하고 있다. 군사시설인 철탑 설치로 인해 오랫동안 민간인의 접근을 가로막았던 정상 부분도 최근에 전망대가 설치되어 날씨가 맑으면 고양시 전역은 물론 북한산과 인근 파주, 김포까지 바라볼 수 있어 관광 명소가 되고 있다. 주말에 시간을 내어 고봉누리길을 걸으며 한껏 무르익은 가을의 정취를 맛보길 권한다. 내친김에 고봉산 전망대에도 올라 그 옛날 한씨 미녀와 안장왕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펼쳐지고 삼국이 한강을 두고 치열하게 싸웠던 현장을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가 될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고층 아파트의 위용 때문에….)

본일산역의 모습. 1907년 경의선이 개통되고 1937년 지어진 목조구조의 일산역사. 경의(중앙)선이 전철로 새롭게 개통되면서 신역사가 지어지고 지금은 전시관과 장난감도서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등록문화재 제294호) 사진제공=고양시 문화예술과
본일산역의 모습. 1907년 경의선이 개통되고 1937년 지어진 목조구조의 일산역사. 경의(중앙)선이 전철로 새롭게 개통되면서 신역사가 지어지고 지금은 전시관과 장난감도서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등록문화재 제294호) 사진제공=고양시 문화예술과

<참고자료>
1. 『고양시사이버역사박물관』 (고양역사이야기, www.goyang.go.kr/ghistory) 
2. 『조선상고사』 (신채호 원저, 박기봉 옮김, 비봉출판사, 2006년)
3. 『생동하는 고구려사』 (엄광용, 역사산책, 2019년)

윤병열  고양시 일산동구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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