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개의 키워드로 열어가는 <고양 역사이야기>10

 영역에 대한 개념
   얼마 전, 직장 동료들과 함께 부석사 답사를 다녀오던 길이었다. 귀가 길 버스가 올림픽대로로 접어들자 한강의 멋진 야경이 펼쳐졌다. 일행이 서울의 야경에 취해 있을 때 안내 역할을 하던 J위원이 마이크를 잡았다. 

  “저기가 옛날에 고양시 땅이던 여의도입니다. 그때는 용강면이라고 불렸죠. 서울 4대문 밖은 거의 고양시 땅이었습니다”

  다들 의아해 하며 도대체 고양시 땅이 어디까지 였는지? 언제 서울시로 넘어갔는지? 등에 대해서 질문을 던졌다. 정말 고양시가 거대함을 넘어 위대해지는 순간이었다.  

  가끔 지면을 통해 “고조선의 영역이 지금의 북경 일대까지를 포함하고 있었으며 고구려는 요동을 지배하였고 백제는 요서를 경략(經略)하였다”라는 내용을 접할 때면 왠지 중국대륙을 누빈 우리 선조들의 숨결이 느껴져 가슴 벅찰 때가 있다. 

  역사적으로 민족과 국가, 국경의 개념이 명확히 정립된 시기는 언제일까? 그리 오래 전 일은 아닌 듯하다. 하루하루를 살아가기도 힘든 민중들에게 있어 그러한 개념들이 의미가 있을까? 내가 어느 나라 사람이든 황제(왕)가 누구이든 나 편하고 배부르면 최고가 아니었을까? 영토에 대한 개념은 그저 위정자들의 영역이었을 것이다. 

1914년 당시 지금의 서대문구 충정로 1가에 있던 고양군청사 (『고양시사』에서 발췌
1914년 당시 지금의 서대문구 충정로 1가에 있던 고양군청사 (『고양시사』에서 발췌

 마포와 뚝섬도 고양 땅
  한일합방 이후 일제는 1914년도에 조선의 수도인 경성의 규모를 대폭 축소하는 행정구역 개편을 단행한다. 그때 한양도성 이외의 지역은 대부분이 경기도로 편입되는데 용강면(용산과 서강, 여의도 등), 연희면(서대문 일원), 은평면(은평구 일원), 숭인면(강북구, 동대문구 일원), 뚝도면(잠실, 광진구 일원), 한지면(성동구, 중구 일원)이 고양군이 된다. 고양군의 면적이 경성의 12배에 달했다. 이후 1936년 용강면, 연희면, 뚝도면이 다시 경성부로 되돌아가고 해방 이후인 1949년 행정구역 개편 시에는 나머지 3개 면인 숭인면, 뚝도면, 은평면이 다시 서울시에 편입되었다. 
  
  여기까지는 서울(경성)에서 넘어왔던 지역이 다시 되돌려 진 것이라 별 이의를 제기하고 싶지 않은데 문제는 1973년 7월에 발생하였다. 신도면 소속이었던 구파발리, 진관내․외리가 서울시로 흡수된 것이다. 이들 지역은 고양시의 자부심인 북한산과 인접한 지역이라 시의 랜드마크를 상실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지금도 북한산하면 서울이 연상되는 것은 이때 서부지역 등산로의 주출입구가 서울로 편입된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1945년 고양군과 2008년 고양시의 면적을 비교한 지도. (『경기도 행정구역 변천지도』에서 발췌)
1945년 고양군과 2008년 고양시의 면적을 비교한 지도. (『경기도 행정구역 변천지도』에서 발췌)

 고양(군)시청사는 어디?
  일제강점기와 해방정국을 거치면서 행정구역이 자주 바뀐 탓에 고양(군)시청사의 이전사도 다양하다. 1413년 고양현이 탄생하면서 지금의 덕양구 원당동(서삼릉 인근)에 있었던 청사는 고양동을 거쳐 1914년에는 서대문구 충정로로 옮긴다. 이후 서대문구가 서울로 편입되면서 1936년 동대문 을지로6가로 갔다가 1961년에 다시 고양군으로 돌아온다. 지금의 덕양구 주교동의 시청사는 1963년 고(故) 박용관 선생의 부지 희사(喜捨)가 계기가 되어 건립하게 되었고 오늘에 까지 이르고 있다. 

고 박용관옹 공적비 (고양시청 내 소재) : 고 박용관 옹은 지금의 고양시청사 부지를 희사한 분이다.
고 박용관옹 공적비 (고양시청 내 소재) : 고 박용관 옹은 지금의 고양시청사 부지를 희사한 분이다.

고양시는 1990년대 이후 일산신도시 건설과 다수의 대단위 택지개발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행정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지금의 시청사는 심각한 포화사태를 맞고 있다. 게다가 심각한 노후화로 신청사 건립의 시급성이 여러 차례 대두되었고 실제로 사업이 진행도 되었으나 그때마다 정치적인 문제로 원점 회귀하였다. 지금 3000명이 넘는 고양시청의 직원들은 노후된 건물에서, 불편한 임대건물에서 많은 어려움을 인내하며 근무하고 있다. 최근에도 새로운 청사의 건립과 이전문제로 여론이 크게 양분되어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지혜로운 판단과 결단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도시의 양과 질 
  도시의 가치는 단순한 면적이나 인구 수, 산업구조와 같은 하드웨어로만 결정되어지는 것은 아니다. 전통과 정체성이 바탕이 된 도시발전의 소프트웨어야말로 도시의 가치를 결정짓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 고양시는 해방이후 서울인접과 군사분계선 인근이라는 불리한 지리적 여건으로 인해 도시발전에 많은 규제를 받아왔다. 규제는 역발상하면 보존과 유사한 개념일 수도 있다. 그나마 고양시가 지니고 있던 공동체의식과 전통문화는 파괴되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1990년부터 고양시민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추진된 정부주도의 엄청난 도시개발은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지역의 많은 정체성을 파괴시켰다. 다른 지역이 70년, 50년 걸쳐서 이룩한 도시발전을 30년 만에 추진하다보니 전통과 역사, 문화 보존은 항상 후순위였다. 

  이제는 한 숨 돌릴 시간이 되었다. 비록 급격한 도시개발과 인구의 증가로 ‘고양’이라는 정체성은 흔들리고 있으나 지금부터라도 스토리텔링과 문화콘텐츠 개발로 ‘고양’을 복원해야 한다. 도시계획과 도시경관에 “고양성”이 자연스럽게 녹아져야 한다. 다른 위성도시와는 차별화된 전통의 부활로 고양시의 미래를 열어가야 한다. 

<참고자료>
1. 『고양시사』제4권 자치행정과 교육, 고양시사편찬위원회, 2005년
2. 『경기도 행정구역 변천지도』(1945년 광복과 2008년도 현재), 경기도, 2010년

윤병열 전 고양시 문화유산 관광과장
윤병열 전 고양시 문화유산 관광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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