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온 미래’, 조이빌리지 - 1인 1실 장애인 거주시설
발달장애 지원은 그림의 떡일 뿐
시설퇴소가 사형선고인 보호자들
성인중증장애인 위한 시설 절실
시설·탈시설 선택할 기회 줘야
[고양신문] 지난 5월 발달 장애가 있는 딸을 수면제를 먹여 살해한 후 자신도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던 어머니의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안겼다. 돌이 막 지날 무렵 뇌병변에 지적장애 1급 진단을 받은 딸이 올해 초 급기야 대장암 진단까지 받자 38살이 된 딸과 함께 세상을 떠나겠다고 작심한 나머지 벌어진 사건이었다. 꽃다운 나이인 스물여섯 이후 40년 가까이 딸을 지켜오며 어느새 60대 중반에 접어든 어머니가 어쩔 수 없이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최후의 수단이었던 셈이다.
장애 자녀 평생 홀로 짊어진 부모
며칠 전엔 그 긴 세월 동안 딸을 돌보아 오면서 느꼈을 고통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어머니의 간호일지가 한 방송사의 뉴스를 통해 공개됐다. ‘2020년 5월 1일 날 밤새고 5월 22일 낮에도 안 잠’ 등 딸의 증상이 시간 단위로 기록돼 있었고, 딸의 장애를 공부하려고 만든 노트에는 ‘장애 자녀를 둔 부모의 스트레스’도 적혀 있었다. ‘상호 작용의 어려움, 육체적 고통, 절대적 시간 부족, 전체 가족관계의 갈등 초래, 장애에 대한 근심, 경제적 어려움, 장애인 부모의 욕구···.’ 소식을 전한 방송 뉴스의 자막은 ‘발달장애에 대한 지원은 그림의 떡··· 엄마 홀로 감당했다’였다.
“대장암 진단을 받고 항암까지 중단되어 죽을 날을 앞둔 딸을 본인 손으로 죽인 이유는 부모가 되어봐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일 것 같다. 발달 장애라도 한 몸처럼 여기고 키웠던 딸이 죽음을 앞두고 왜 고통을 받는지 모른 채 극한의 고통을 받는 모습을 본다는 건, 매일 매 순간 매초 자신의 처지를 바득바득 이겨 내며 살아왔던 어머니에게 진짜 지옥이었을 테니까. 그 고통을 끊어 주고 싶었을 것이다. 꽃 같은 스물여섯, 40년 가까이 되는 긴 세월을 버텨낸 어머님께 ‘나무와 꽃과 하늘을 볼 시간’을 드렸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해당 기사에 달린 이 위로와 추모 댓글에는 안타까움과 슬픔에 빠진 수많은 사람이 공감을 표했다.
격렬하게 이어지는 탈시설 찬반 논쟁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지난해 8월 정부가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 지원 로드맵’을 발표한 이후 장애인의 탈시설에 대한 찬반 논쟁이 여전히 격렬하게 이어지고 있다. ▲장애인 거주시설 신규 설치 금지 ▲독립된 주거 생활을 위해 편의시설이 설치된 공공임대주택 공급 ▲전체 공공임대주택 공급량의 5% 정도를 장애인에게 우선 공급하면서, 기존 시설에 대해서는 ▲주거 서비스 공간으로 변경 ▲24시간 전문 서비스가 필요한 장애인으로 이용자 기준 강화 ▲시설 환경은 인원·설비 기준을 독립생활공간 단위로 개선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정부의 종합대책이 실현된다면 과연 장애인의 탈시설이라는 로드맵이 현실화될 수 있을까.
“누구를 위한 탈시설입니까? 무책임한 탈시설 정책이 지금도 어렵고 힘든 장애인 가족을 위기가정으로 만들고 그 부모를 예비살인자로 만들고 있습니다. 저는 탈시설을 부르짖는 이들에게 먼저, ‘중증 발달장애인과 하루만 살아 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그들도 장애인 거주시설의 필요성과 그곳에 자녀를 맡길 수밖에 없는 부모의 절박한 심정과 안타까운 마음을 이해할 것입니다.”
지난해 7월 13일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코너에 ‘시설퇴소는 우리에게 사형선고다’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청원 글에는 단 하루 만에 만 명 가까운 사람이 동의했다. “장애 자녀를 둔 부모님의 소원은 자식보다 하루 더 살다 죽는 것”이라는 하소연이 가슴에 와 닿았기 때문일 테다. 탈시설 정책대상에서 후 순위가 되기 쉬운, 또 그 과정에서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는 집단이나 사람들의 목소리를 과연 얼마나 경청하고 정책에 반영하고 있는지 의문을 갖게 되는 지점이다.
일방적 탈시설 정책, 그 자체가 공포
“자기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없고, 경제관념이나 자신을 돌볼 수 있는 능력도 부족해서 장애인 내에서도 돌봄의 사각지대에 머물기 쉬운 중증발달장애인과 그 가족들에게는 세심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채 진행되는 탈시설 정책은 공포 그 자체로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덧 성인이 된 아이들을 위해서 저희에게 정말 꼭 필요한 것은 시설이었어요. 오늘의 ‘조이빌리지’가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은 오랫동안 함께해온 발달 장애 아동의 부모님들이 본인의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더 크게 느끼게 되는 절박함이었습니다.”
한동안 당연시 여겼던 ‘탈시설’ 정책에 대해 머릿속이 복잡해진 것은 지난해 봄 만났던 김미경 조이빌리지 원장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부터였다. 17일 조이빌리지 축복식(개원식)을 열게 됐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주말 아침 파주시 광탄면을 찾았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문을 연 지 3년 반 만에 정식으로 열리는 개원식이었다. 개원 후 정부 지원 없이 자부담만으로 운영해 온 시설의 재정적 어려움을 공감하고 장애 특성에 맞는 전문 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도록 파주시가 자체 예산을 우선 지원하기로 했고, 국·도비 보조금 또한 앞당겨 지원될 예정이라는 반가운 소식도 더해졌다.
축사를 위해 마이크를 잡은 김경일 파주시장은 “국비 지원에 애써준 모든 분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며 “장애인 여러분의 의견과 말씀을 적극적으로 경청해 장애인 여러분의 의견이 현실과 정책에 반영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해 참석자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
장애인과 보호자 인권이 중심 돼야
사실 조이빌리지에 대한 지원이 이루어지는 과정에는 김경희 전 경기도의원의 역할이 컸다. 도의원 임기 마지막 날인 6월 30일 ‘경기도 장애인 탈시설 지원 체계 구축’을 위한 토론회를 열었던 김 의원이 토론회 후 찾았던 곳은 조이빌리지였다. 김미경 원장의 설명을 들으며 시설이든 탈시설이든 장애인과 보호자의 인권이 그 중심을 차지해야 한다고 보고, 조이빌리지가 있는 파주시를 찾아 예산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11월 7일 김경일 파주시장의 조이빌리지 방문, 그리고 파주지역 국회의원인 박정·윤후덕 의원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인 고영인 의원의 관심과 도움 덕분에 마침내 12월부터는 국비 지원이 결정됐다. 김경희 전 도의원은 “공동체가 애초에 지향하던 모습으로 다가갈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기를 바라는 여러 사람의 마음이 통하면서 마침내 기적 같은 일이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2019년 5월 개원한 조이빌리지는 천주교 의정부교구 사회복지법인 대건카리타스(회장 도현우 안토니오 신부)에서 운영하는 중증장애인 거주시설이다. 최 중증 성인 발달장애인들이 주거지 내에서 편하게 복지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30인 정원에 1인 1실 구조로 다섯 개 개별 아파트 형식 유닛으로 구성돼 있다.
일반 아파트 구조에 더해 집마다 상담실, 장애인 화장실, 도움을 받아 샤워가 가능한 크기의 샤워실, 독립적인 세탁실 등 공동생활을 위한 편의시설을 추가했다. 주거 유닛 외 일상생활, 재활 및 직업프로그램, 심리 치료와 의료 지원을 위한 지원 공간이 있다.
1인 1실 거주시설 지역사회와 교류도
조이빌리지는 주거와 돌봄, 의료서비스 그리고 직업까지 결합한 사회주택을 지향한다. 진입로를 같이 쓸 정도로 가까운 곳에 있는 광탄성당이 지역사회를 연결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고, 감각과 지적 능력에 어려움이 있는 최 중증 발달장애인 개인에 맞는 구조화된 환경과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시도하고 있다.
조이빌리지의 출발점은 1998년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의 기도 모임인 ‘기쁨터’에서 시작됐다. 기도 모임부터 고양시에서 주간보호센터, 그룹홈 등을 운영해오면서 성인 발달장애인 주거공동체를 꿈꿔왔던 이들의 20여 년 눈물이 결실로 맺힌 것이 조이빌리지였다.
그 결실에 더해 국비 지원이라는 선물까지 더해진 개원식은 봉헌미사와 함께 열렸고, 천주교 의정부교구장 이기헌(베드로) 주교, 도현우 신부와 교구 관계자, 김경일 파주시장, 이성철 파주시의회 의장, 촉탁의로 봉사하는 유용우한의원, 양규현 의사, 이근형 다움종합건설 대표, 김희수 지우건축사무소 대표, 염명훈 키움증권 이사 등 오늘의 조이빌리지가 있기까지 도와온 관련 기관과 후원자들, 시설 거주 장애인과 그 가족, 지역주민 등 약 150여 명이 참석해 조이빌리지 정식 개원과 더불어 조이빌리지 지하에 마련된 상설갤러리 오픈을 축하했다.
이기헌 주교는 기념사에서 “단발머리 여고생 때부터 보아온 김미경 루시아 원장님이 이렇게 훌륭한 시설을 만들어 운영하는 걸 보니 의지의 한국인이라는 말이야말로 바로 김 원장을 두고 하는 말 아닌가 싶다”고 말해 참석자들의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김미경 원장은 “조이빌리지를 베이스캠프 삼아 장애인과 직원, 봉사자, 지역주민, 장애인 가족들이 어우러지는 환경을 만들어 지역사회 내 활발한 인적, 물적 교류를 통해 적극적으로 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일상을 만들어 가고 있다”며 “조이빌리지는 서구 복지선진국의 과거가 아닌 현재 주거 모델을 벤치마킹해서 만들었어요.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장애인들에게 발생할지 모르는 위험은 줄이고 함께 살고 함께 돌보는 안전한 시스템이 가능함을 보여주고자 만들어진 ‘먼저 온 미래’ 조이빌리지에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한다”고 당부의 말을 전했다.
지역사회와 어우러지는 새로운 모델
개원식 행사 후 식사 자리에서 만난 김지우(28세) 군의 아버지 김광진 씨도 기쁨터부터 시작해 20년 넘게 함께 염원해온 가족 중 하나였고, “조이빌리지 덕분에 ‘나무와 꽃과 하늘을 볼 시간’을 충분히 누리고 있다”고 했다.
“우리 아이는 주중에는 조이빌리지에서 주말에는 집에 와서 함께 지내고 있는데 지우는 양쪽 모두를 자신의 집이라며 좋아합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이제 부모가 세상에 없는 날이 오더라도 우리 아이를 안전하게 돌봐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 너무나 안심되고 행복하죠. 시설이든 탈시설이든 모두 인권 때문이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장애인 당사자와 보호자가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 진정으로 장애인의 인권을 위한 길 아닐까요. 조이빌리지는 정부의 일방적 탈시설 정책이 가진 문제점을 보완해주는 시설이자 장애인들이 돌봄을 더 잘 받으면서 동시에 지역사회와도 잘 어우러지는 새로운 모델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