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고양 1989~1990⑥ 88올림픽과 자전거도시 고양

성황봉송 고양시 통과하며 올림픽 열기 고조 
통일로에선 사이클, 원당목장에선 승마 열려 
올림픽 자부심 계승한 ‘자전거 체육공원’ 조성 

국가와 국민의 역량을 총동원해 치러낸 88서울올림픽 개막식.
국가와 국민의 역량을 총동원해 치러낸 88서울올림픽 개막식.

[고양신문] 멀리 프랑스 파리에서 들려오는 시원한 메달 소식이 길고 지루한 무더위를 잠시나마 잊게 해 주는 요즘이다. 올림픽을 치른 경험은 개최국 국민들에게 다양한 기억과 영향을 남긴다. 지금으로부터 36년 전인 1988년, 개발도상국에서 한 단계 도약하고자 몸부림치던 시절에 국가와 국민들의 에너지 총량을 짜내며 서울올림픽을 치러낸 우리에게는 더더욱 그러했다. 

토박이들 중에서는 기억하는 분들이 많겠지만, 고양군에서도 올림픽이 2종목이나 치러졌다. 아쉽게도 1988년은 고양신문이 창간하기 1년 전이라 그날의 생생한 현장들을 기사를 통해 찾아볼 수는 없지만, 이 지면이 고양의 근과거를 정리하는 시리즈이니 고양에서 치러진 올림픽 얘기를 다른 자료들을 통해 잠시 살펴보고 가자. 일종의 올림픽 시즌 특집이다.  

올림픽 성화를 들고 통일로를 달리는 임춘애 선수. [사진출처=경향신문 오픈아카이브]
올림픽 성화를 들고 통일로를 달리는 임춘애 선수. [사진출처=경향신문 오픈아카이브]

성화봉송 맞으며 민속축제 열어 

개막일이 다가오며 달아오르기 시작한 올림픽 열기는 전 국토를 릴레이하며 이어진 성화봉송을 통해 절정에 다다랐다. 임진각을 찍고 내려온 성화는 남북을 잇는 국도1호선 통일로를 따라 고양군을 통과했다. 통일로를 달리는 성화봉송 주자 중에는 86아시안게임에서 일약 스타로 떠오른 임춘애 선수도 있어 커다란 관심을 모았다.  

통일로에서 열린 사이클 도로경기 남자 개인전 시상식 장면. 동독 선수가 금메달을, 서독 선수들이 은메달과 동메달을 차지했다. 
통일로에서 열린 사이클 도로경기 남자 개인전 시상식 장면. 동독 선수가 금메달을, 서독 선수들이 은메달과 동메달을 차지했다. 

성화가 지나는 날, 당시 고양군의 대표적 공공행사 장소였던 벽제읍 건전체육공원(현 관산동 공릉천체육공원)에서는 흥겨운 농악이 울려퍼지고, 그네타기와 활쏘기 등 주민들이 참여하는 민속축제가 열렸다. 이에 성화봉송주자도 규정된 노선(통일로)을 잠시 벗어나 체육공원 주민 축제장으로 내려오는 깜짝이벤트를 연출했다. 글로벌과 로컬이 만나는 신명나는 풍경이었다. 

드디어 본격적인 올림픽의 막이 올랐다. 고양군에서는 통일로 일원에서 사이클 도로경기(개인전과 단체전)가 진행됐고, 서삼릉 옆에 자리한 한국마사회 원당목장(현 렛츠런팜 원당)에서는 승마 마장마술(장애물) 종목이 순조롭게 진행됐다.  

개목걸이 나눠주며 “단속 부탁”

훗날 일산에서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한 백성운 당시 고양군수가 쓴 『백성운이 발로 쓴 일산이야기』라는 회고록을 펼쳐보면 88올림픽과 관련된 재밌는 에피소드들이 나온다. 우선 선수단과 취재진 등 많은 외국인들이 찾아온 통일로 사이클경기장 주변에서 고양군 여러 단체 부녀회원들이 정성들여 만든 잔치국수와 밥, 탕을 대접해 감사 인사를 받았다고 한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원당에서 열린 마장마술 경기 지원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 군수가 직접 ‘개 감시령’을 내렸다는 회고다. 경기장 주변 민가에서 기르는 개 숫자를 정확히 파악하고, 공무원들이 일일이 개목걸이까지 사주면서 경기 당일 철저한 단속을 당부했다는 것, 혹여라도 목걸이 풀린 개가 승마 경기장에 난입해 말들을 놀라게 하는 불상사가 벌어지지 않도록 대비한 것이었다. 올림픽을 무탈하게 치러내기 위해 행정과 주민들이 얼마나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 썼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통일로휴게소 공원(관산동 태극기공원) 입구에 우뚝 서 있는 '제24회 서울올림픽기념비'. 
통일로휴게소 공원(관산동 태극기공원) 입구에 우뚝 서 있는 '제24회 서울올림픽기념비'. 

통일로변 우뚝 선 올림픽기념비 

고양군에서 진행된 88올림픽의 흔적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도시화석이 하나 있다. 바로 공릉천변 필리핀군참전비 바로 옆 통일로휴게소 공원(지금은 관산동 태극기공원으로 불린다)에 세워진 ‘제24회 서울올림픽 기념비’다. 묵직한 화강암 비석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 앞뒤로는 서울올림픽 엠블렘과 귀여운 호돌이 마스코트가 새겨져 있고, 그 아래 팔각으로 제작된 기단부에는 각 면마다 당시 출전했던 종목별 국가와 순위, 메달수상자들의 이름이 꼼꼼히 기록돼 있다.  

기념비의 기록을 읽어보니 사이클 도로경기에는 31개국이 참가했고, 승마 마장마술 경기에는 15개 국이 참가해 실력을 겨뤘다. 참가국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GDR(동독), FRG(서독), URS(소련) 등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국가명도 찾아볼 수 있다. 

기념비 기둥 앞면에는 88올림픽 엠브렘이, 뒷면에는 마스코트 호돌이가 새겨져 있다.
기념비 하단에는 종목별 참가국과 순위, 수상자 명단이 상세히 새겨져 있다. 
기념비 하단에는 종목별 참가국과 순위, 수상자 명단이 상세히 새겨져 있다. 

체전 손님들께 일산열무국수 대접 

올림픽의 여파는 폐막 후에도 오래도록 이어졌다. 89년 고양신문을 보면 전국체전, 군민체육대회, 행주문학제 등의 행사마다 ‘88서울올림픽 1주년 기념’이라는 수식어가 빠짐없이 따라붙는다. 전국민이 총동원되어 뻑적지근하게 올림픽을 치러낸 자부심, 또는 피로감이 동시에 느껴진달까. 

어쨌든 올림픽을 치르며 고양시는 ‘사이클’의 도시가 됐다. 올림픽 이듬해, 경기도 주최로 열린 ‘제70회 전국체전’에서도 사이클 경기가 같은 장소에서 열렸다. 이때도 고양군민들이 마련한 정겨운 이벤트가 진행됐다. 이번에는 고양의 특산품 일산열무로 만든 시원한 열무국수를 고양군을 찾아온 선수단, 임원진, 관중들에게 무료로 대접한 것. 고양신문 기사를 보면 열무국수 이벤트를 위해 체전을 앞두고 군청 공무원들이 구내식당에서 미리 시식회를 갖기도 했고, 올림픽 때처럼 다수의 여성단체 회원들이 봉사의 손길을 보탰음을 알 수 있다. 

지금도 일산열무는 350개 농가에서 연간 2만 톤을 생산하는, 전국적 인지도를 자랑하는 고양시 대표 농산물이다. 지난 5월에는 국립농관원에 의해 지리적표시 제115호 농산물로 지정돼 명성과 품질을 공인받았다. 스토리텔링을 통한 지역 농산물의 브랜드화가 점점 중요해지는 오늘날, 35년 전 전국체전에서 마련됐던 ‘일산열무국수 이벤트’를 기억해보는 것도 괜찮은 아이템이 아닐까.

올림픽의 감동이 채 가시지 않은 89년 여름에 열린 고양군 지역별 체육대회 모습. 
올림픽의 감동이 채 가시지 않은 89년 여름에 열린 고양군 지역별 체육대회 모습. 

고양군 최초 복합체육공원 건립

‘사이클’은 또 하나의 선물을 고양군에 남겼다. 바로 고양군 최초 대규모 복합체육공원인 ‘자전거공원’이 계획된 것. 물론 벽제읍 건전체육공원, 원당읍 원당체육공원 등이 있었지만 공터에 운동기구 몇 개가 설치된 수준이었다. 

반면 자전거체육공원은 올림픽 사이클경기를 치러낸 도시의 자부심에 걸맞게 군유림 9만 7000평의 너른 부지에 40억 원이 넘는 예산이 투입돼 1km의 자전거주행코스, 휴게소, 주차장, 잔디광장, 롤러스케이트장, 어린이놀이터 등이 들어서는 모습으로 설계돼 군민들의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관 주도로 기획된 ‘자전거도시 고양’이라는 슬로건은 주민들에게까지 뿌리를 내리지는 못했다. 도시 전체의 자전거 이용 인프라가 뒤따라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경사진 구릉지를 따라 자전거 트랙을 설계했다는 것도 어딘지 어색해 보인다. 오늘날 ‘성사체육공원’으로 이름을 바꾼 자전거체육공원에는 테니스장과 다목적체육관 등이 새롭게 들어섰고, 과거 자전거코스로 설계됐던 숲길에는 아침저녁으로 산책과 달리기, 체조를 즐기는 인근 주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자전거공원으로 설계됐던 성사체육공원의 현재 모습. 자전거코스는 현재 산책로로 이용되고 있다.
자전거공원으로 설계됐던 성사체육공원의 현재 모습. 자전거코스는 현재 산책로로 이용되고 있다.

피서 인파 몰렸던 야외수영장들 

이야기가 나온 김에 35년 전 고양군이 메리트를 가졌던 레저 인프라를 하나 소개해보자. 바로 야외수영장이다. 서울과 인접해 있고, 넓은 녹지를 보유한 덕분에 고양군에는 여름철이 되면 고양은 물론 서울에서 찾아오는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이름난 야외수영장들이 곳곳에 자리했다. 

90년 7월 고양신문에는 고양군 관내 대표 야외수영장으로 북한산풀장(신도읍 효자리), 훼릭스풀장(원당읍 성사리), 한양컨트리수영장(원당읍 원당리) 등 3곳을 소개하고 있다. 입장료는 소인 1400원 성인 2100원의 균일한 요금을 받았다. 

지금도 성업중인 훼릭스 야외수영장 모습. [사진출처=네이버블로그 햄양]
지금도 성업중인 훼릭스 야외수영장 모습. [사진출처=네이버블로그 햄양]

당시 세 곳 모두를 가 본 기자의 기억을 소환하자면, 주변 환경은 역시나 웅장한 산자락에 둘러싸인 북한산풀장이 으뜸이었다. 하지만 차가운 계곡물을 그대로 수영장물로 사용하는 바람에 조금 놀다 보면 몸이 달달 떨리고 입술이 파래지곤 했었다.

세 곳 수영장 중 훼릭스풀장은 오래된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레트로 감성의 야외수영장으로 입소문을 타며 지금까지도 성업 중이다. 

※ 참고자료 : 고양신문 1호(89.06.01)~31호(90.04.26) / 『백성운의 발로 쓴 일산이야기』 (백성운,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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