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고양 1989~1990⑦ 문화욕구와 소비풍조 동반 성장

최초 공연, 소극장 개관, 스포츠 경기 이어져
지상파TV ‘고양군’ 소개되며 지역 인지도 상승
도심마다 유흥업소 확산… 불법행위 단속 숨차

글쓰기에도 관성의 법칙이 작용하나보다. ‘응답하라 고양 1989~1990’ 연재를 6회차까지 매주 이어갈 때는 글쓰기에 일정한 속도감이 유지됐는데, 어찌하다가 한 주를 건너뛰었더니, 다시 시동을 거는 데 한 달 넘게 걸려버렸다. 35년 전과 오늘날의 정서적 거리를 넘나들려면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실감한다.

오늘의 소재는 문화·풍속 이야기다. 초창기 고양신문 지면에서 단신으로 자리를 차지하는 장르지만, 당대 사람들의 정서와 욕구가 행간에 숨어있어 들여다볼수록 재미가 쏠쏠하다.

최초 순수공연 <꿈먹고 물마시고>

고양군 7개 지역에 대한 대규모 택지개발 계획이 발표되고, 지방자치제도 도입 준비작업이 활발히 전개되던 89~90년을 기점으로 ‘고양군의 자생적 지역문화’에 대한 열망도 다양하게 표출됐다. 이를 뒷받침했던 공공인프라는 다름 아닌 1989년에 개관한 고양군 문예회관이었고, 지역언론인 고양신문의 창간 역시 홍보와 평가의 순기능을 담당하며 지역문화 태동에 활력소로 작용했다. 

1990년 1월 문예회관에서는 ‘고양군 청소년 문학의밤’이 고양문화원 주최로 열렸다. 문학작품 발표와 함께 연주와 합창, 공연 등이 어우러진 종합예술제에 가까운 행사였는데, 당시에는 이런 성격의 예술발표회를 대개 ‘문학의밤’이라는 명칭으로 부르곤 했다. 

고양군에서 최초로 공연된 순수공연 '꿈먹고 물마시고' 홍보 지면.
고양군에서 최초로 공연된 순수공연 '꿈먹고 물마시고' 홍보 지면.

행사에서는 주인공인 청소년들은 물론, 대학생 선배들과 어머니합창단의 찬조공연이 어우러졌고, 2부에서는 당대의 명문 공연단체였던 극단 민예의 뮤지컬공연 <꿈먹고 물마시고>가 무대에 올려졌다. 비록 기타 연주로 무대효과음을 대체한 공연이었지만, 당시 고양신문 기사는 “고양군에서 최초로 공연된 순수공연무대로, 고양군 문화계에 발전적 영향을 줄 것”이라며 의미를 평가했다.      

고양신문이 개최한 ‘고양예술제’

연초 고양군 역사상 최초의 순수 무대공연이 올려진 여세를 몰아 1990년 5월에는 고양신문이 창간 1주년을 기념해 ‘제1회 고양예술제’를 직접 개최했다. 5일간 이어진 예술제에서는 교육아동극과 판토마임(유진규) 공연에 이어 당대 최고의 인기 공연이었던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극단 대중)을 문예회관 무대에 올려 4회 공연에 1500명의 관객이 몰리는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그밖에도 예선을 거쳐 공연자를 선정한 기악발표회, 유명작가 초대전시회, 지역주민들이 참여하는 서예·도예·사진·시화전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풍성하게 진행돼 문화예술 향유에 목말랐던 이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고양신문이 주최한 제1회 고양예술제 프로그램 소개.
고양신문이 주최한 제1회 고양예술제 프로그램 소개.

고양군 첫 공연전문 소극장 개관

민간에서의 자발적 문화시도도 활발했다. 원일장로교회 장준환 목사는 북한산 일출 등 지역 명소의 아름다운 풍광과 야생화들을 찍은 사진들을 모아 원당농협에서 사진전을 개최했고, 고양군어머니합창단은 전국 규모 합창대회인 난파음악제에 참가해 우수상을 수상하는 낭보를 전했다. 당시 고양군어머니합창단을 지도했던 청년 하인근 지휘자는 3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고양을 대표하는 순수민간합창단인 고양시남성합창단을 지휘하며 음악에 대한 변치않는 열정을 과시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1990년 4월 고양신문에는 고양군 최초 무대전용 소극장인 ‘원당소극장’(대표 양승흡)이 개관을 앞두고 있다는 기사가 등장한다. “수지타산이 안 맞는 일이지만, 태어나고 자란 고향에 꼭 필요한 일이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아낌없이 투자를 하고 있다”는 대표의 말에서 자부심과 기대감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고양시 최초 연극 전용 소극장 개관을 소개한 기사. 
고양시 최초 연극 전용 소극장 개관을 소개한 기사. 

같은 해 5월 뮤지컬 총체연극 <달려라! 꼬꼬꼬>를 개막작으로 선보인 원당소극장은 <귀여운 벌레들의 합창>, <피노키오>, <톰소여의 모험> 등 소규모 아동극을 꾸준히 올리며 지역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오랜 세월 고군분투했다.  

5일 연속 방영 ‘전국일주 고양군’ 

1990년 2월에는 ‘고양군’이라는 지명을 전국적으로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KBS TV ‘전국일주’ 고양군 편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5일 연속 아침방송을 탄 것이다. 

전국일주는 1983년 시작돼 10년 넘게 방영되다가 비슷한 콘셉트인 저녁방송 ‘6시 내고향’에 바통을 넘겨주고 종영된 KBS의 간판 지역탐방 프로그램이었다. 지금이야 고양시가 대한민국 10대 도시로서의 당당한 위상을 자랑하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타 지역 사람들 중에는 고양군이 어디에 붙어있는 동네인지도 모르는 이들이 태반이었다. 심지어 1989년 일산신도시 발표 이후에도 ‘고양’이라는 지명은 ‘일산’이라는 이름에 가려져 여전히 존재감이 미미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군민들에게는 우리 고장 고양군이 일주일 내내 지상파 방송에 소개된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반가웠다. 프로그램의 촬영과 방영 일정을 상세히 소개한 고양신문 기사가 이러한 정서를 방증한다.   

종마목장, 경찰견훈련소, 비둘기사육장

그렇다면 1990년 ‘KBS 전국일주’ 카메라는 고양군의 어떤 모습을 담았을까. 우선 대표적인 역사유적으로 임진왜란의 자랑스런 승전지 행주산성이 소개됐다. 서민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현장으로는 일산시장 5일장과 원당 상업지역, 아침저녁 주민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일산약수터(현 중산마을약수터로 추정), 대규모 복지기관인 홀트아동복지회, 원당화훼단지의 비닐하우스 풍경이 방송을 탔다. 

이어 흥미로운 목록이 더해진다. 원당읍의 한국마사회 종마목장, 벽제읍 내유리의 경찰견훈련소, 그리고 산황산 인근의 비둘기사육장이 연이어 소개돼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서울 근교의 그린벨트 지역에서 ‘특수한 목적의 동물들을 사육하고 훈련시키는 시설이 모여있는 동네’가 방송국 사람들이 찾아낸 당시 고양군의 특징적인 요소였던 것이다.   

물론 ‘KBS 전국일주’는 일산신시가지 개발현장 풍경을 소개하며 “정부의 1기신도시 사업이 차질 없이 추진되고 있다”는 사실을 전 국민에게 홍보하는, 공영방송의 의무를 다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고양시향토문화재 제41호로 지정돼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정발산 도당굿. 
 고양시향토문화재 제41호로 지정돼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정발산 도당굿. 

신도시 개발 전 마지막 '정발산 도당굿'

1990년 4월에는 MBC가 고양군에서 펼쳐진 행사에 주목했다. 노루메기, 닥밭, 낙민마을, 강촌마을, 설촌마을 등 일산읍 마두리와 장항리의 5개 자연마을 주민들이 정성을 모아 3년에 한 번씩 열고 있는 ‘정발산 도당굿’의 전 과정을 녹화해 그 가치를 조명하는 프로그램을 제작한 것이다. 

음력 3월 초하룻날, 마을 주민들이 함께 모여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했던 정발산 도당굿은 한국전쟁의 혼란기에도 명맥이 끊기지 않았을 만큼 토박이 주민들이 소중하게 계승해 온 전통문화였다. 고양신문 기사는 “봄비가 내리는 중에도 마두리 주민 김수영씨를 당주로 해서 도당굿이 열렸다”며 “일산신도시 개발지역으로 지정돼 마을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질지도 모를 이 시점에서 마을의 어떠한 안녕을 위해 기원을 하였는가 자못 궁금하다”는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졌다. 

이후 정발산 도당굿은 고양시향토문화재 제41호로 지정됐고, 정발산 도당굿 민속보존위원회 주관으로 오늘날까지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연이어 개최된 프로복싱경기 

89년과 90년 고양군에서 열린 행사가 지상파 TV 전파를 몇 차례 더 탔다. 바로 당시 인기 스포츠였던 프로복싱경기 중계였다. 

관심 있던 독자들은 기억하겠지만, 70년대와 80년대는 한국 프로복싱의 전성기였다. 프로레슬링으로부터 국민스포츠의 바통을 이어받은 프로복싱은 홍수환, 김태식, 장정구 등 걸출한 스타들을 배출하며 팬들의 뜨거운 성원을 받았고, 도시마다 굵직한 시합을 서로 유치하기 위한 경쟁이 펼쳐지곤 했다. 하지만 고양군은 그 경쟁에 명함을 내밀 수 없었다. 많은 청중을 수용할 만한 실내 체육시설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1989년 문예회관 체육관이 완공되며 드디어 프로복싱 경기가 고양에서도 열릴 수 있게 됐다. 1990년 2월에 열린 고양군 첫 프로복싱경기는 88올림픽에서 편파판정의 희생양이 되며 전 국민의 주목을 받았던 변정일 선수의 프로데뷔전이었다. 고양신문 기사는 “1000여 명의 관객이 몰려들어 관전한 경기에서 변정일 선수가 필리핀 선수를 상대로 KO승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아쉬운 판정승을 거뒀다”고 보도했다. 훗날 IBF 챔피언벨트를 차지하는 변정일 선수는 원마운트에 복싱클럽을 운영하며 고양과의 인연을 오래도록 이어갔다.  

같은 해 5월에는 당대 최고 인기복서 중 한 명인 황준석 선수가 WBA주니어미들급 챔피언 도전을 앞두고 필리핀 선수와 세계타이틀매치 전초전을 고양문예회관 체육관 특설링에서 가졌고, 이어 6월에도 WBC슈퍼라이트급 세계 1위 안경덕 선수가 같은 장소에서 세계타이틀매치 전초전을 펼쳤다. 두 경기는 각각 MBC, KBS를 통해 중계됐다.   

포스터를 보면 복싱시합 관람료가 특석 3만5000원, A석 1만5000원, B석 7000원이었다. 34년 전 물가를 감안해 보면 만만찮은 가격이다. 백성운 고양군수는 물론 이교성 국회의원, 이국헌 위원장 등 유력 정치인들이 경기장에 얼굴을 비췄고, 고양에서 활동하는 각종 기관과 기업 종교단체 등이 시합 후원과 협찬으로 빼곡히 이름을 올린 것을 보면 당대 프로복싱의 존재감이 어땠는지 짐작이 간다.    

불법 유통과 단속의 숨바꼭질  

사실 문화와 유흥은 한끗 차이다. 둘 다 먹고 사는 문제를 초월해 삶을 더 행복하고 즐겁게 영위하기 위한 ‘욕구’를 바탕으로 한 행위들이기 때문이다. 고양신문을 통해 고양의 근과거사를 살펴보면 80년대 후반 향락문화의 폭발적 성장기가 있었음이 감지된다. 이런 류의 기사들은 대개는 퇴폐, 불법, 단속, 적발 등의 부정적 단어들을 동반하며 등장한다.

먼저 대중문화가 유통되던 풍경을 살펴보자. 1990년 5월 고양군은 내무부장관 특별지시를 근거로 ‘퇴폐 저질문화 유발업소 지도단속’을 집중적으로 실시한다. 해당 업종은 음반매장, 비디오대여점, 극장 등이다. 지금처럼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앞선 3개의 매장은 대중문화 유통시장의 최전선이었다. 필자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90년대 고양군에는 원당 중심가 캐롤라인음반사를 비롯해 다수의 음반매장이 있었고, 비디오가게는 동네 골목마다 흔했고,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은 원당읍에 아카데미극장과 원당극장, 일산읍에 일산극장이 있었다. 

원당 아카데미국장의 상영작 광고.
원당 아카데미국장의 상영작 광고.

업종별로 구체적인 단속 내용을 살펴보면 △음반매장-불법 복제음반 판매 △비디오대여점-음란비디오 대여 △극장-성인영화 미성년자 입장 등으로, 당대의 열악한 대중문화 환경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리스쇼핑 빌딩에 자리하고 있었던 아카데미극장은 1989년 7월 여름방학특선영화 <우뢰매6>를 시작으로 고양신문 지면에 상영작 광고를 꾸준히 실었는데, 주로 동시상영 영화 두 편을 나란히 소개하곤 했다. 동시상영작 매칭의 패턴을 살펴보면 한 편은 홍콩이나 대만의 무술영화가 단골이었고, 또 한 편은 에로물이나 멜로물 조합이 가장 많았다. 관람료는 성인 2000원, 미성년자 1500원이었고, 매주 토요일에는 심야상영을 하며 올빼미족들을 불러들였다.  

유흥업소만 무려 1400여 개 

이번에는 같은 해 7월에 실린 ‘유흥업소 불법영업행위 지도단속’ 기사를 보자. 군청 위생계가 경찰서와 합동으로 단속반을 편성해 고양군 관내 1400개가 넘는 유흥업소를 6개월간 집중 단속한 결과 105개 업소가 적발돼 허가 취소, 영업정지, 시정명령 및 경고 등의 조치를 내렸다는 기사다. 적발 사유는 △심야 영업 △음란 퇴폐영업 △변태 영업 등이다. 이어 7월에는 도시환경의 미관을 해치는 불법, 불량, 퇴폐 옥외광고물에 대해서도 대대적인 정비에 착수했다. 

나아가 8월에는 불법행위가 반복되는 이른바 ‘문제업소’에 대해 책임공무원을 지정하고, 수시로 관할업소를 방문해 불법행위를 적발해내는 ‘맨투맨 단속 작전’을 펼치기도 했다. 

이처럼 초기 고양신문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유흥업소 불법 단속’ 단신기사들은 오늘날의 독자들에게 많은 정보를 제공해준다. 우선은 서울 변두리 도시에 불과했던 고양군에 유흥업소가 무려 1400개에 이르렀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단속 대상이 된 업종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무도유흥음식점(캬바레, 디스코장), 대중음식점(카페, 주점), 일반유흥음식점(룸싸롱, 스탠드바, 비어홀), 다방, 특수목욕장(안마시술소, 사우나), 이·미용업소, 전자유기장업(성인게임장), 심야극장, 만화카페 등이다. 

1980년대부터 유흥업소가 밀집됐던 성사동 상업지역.
1980년대부터 유흥업소가 밀집됐던 성사동 상업지역.

1980년대 내내 지속됐던 호경기와 경제성장을 배경으로 다양한 분야에 걸쳐 소비문화의 시장이 활짝 열렸지만, 고양군에서는 주로 음주와 연결되는 향락문화가 비정상적으로 성장했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그 흔적은 원당 주교동과 성사동, 일산동, 능곡 토당동 등 당시 상업지역이 급격히 발달했던 구도심의 쇠락한 골목 풍경 속에 지금까지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저 많은 유흥업소들이 도대체 언제부터 생겨나기 시작했고, 어느 시절에 가장 성업했었고, 언제부터 쇠락했을까를 상상해보는 일은 고양 구도심의 급격하고도 기형적이었던 성쇠의 과정을 되짚어보는 일과 궤를 같이한다.

탈법행위 난무했던 사적지 주변

앞서 나열한 매장들과 함께, 고양군의 행정력과 경찰력이 동원돼 지속적인 단속이 진행됐던 곳이 또 있다. 바로 북한산성, 행주산성, 서오릉 등 고양을 대표하는 사적지 주변이었다. 신문기사에서 확인되는 단속 항목들을 살펴보면 퇴폐 커피 판매행위, 윤락행위, 무허가 식품판매, 혐오식품 취급 등이다. 
역사의 숨결을 간직한 사적지들은 오늘날 문화재청과 자치단체 관할로 엄격히 관리되고 있다. 하지만 1990년대까지만 해도 마땅한 나들이 장소가 부족했던 관광객을 불러모으는 유원지 역할을 했고, 이들을 상대로 한 탈법행위들이 자행되는 흑역사의 현장이었던 셈이다.  
    
담배 피우는 게 고향 사랑 실천? 

마지막으로 지금과는 전혀 다른 35년 전 일상감각 하나를 들춰내 보자. 현재의 기준으로는 도저히 상상하기 힘든 민폐 수준의 행위들이 과거에는 공공장소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용인되던 분야가 있다. 바로 흡연문화다. 80년대에는 기차나 버스 좌석 등받이에 재떨이가 달려 있었고, 90년대까지도 다방과 카페 탁자에는 담뱃불을 붙이기 위한 통성냥이 필수품으로 비치돼 있었다. 하지만 흡연의 위해성에 대한 인식이 점차 확산됐고, 2009년이 되어서야 공공장소 실내 흡연이 순차적으로 규제되기 시작했다.

고양군청이 진행한 고양담배 소비 포어, 포스터 공모전 수상작. 
고양군청이 진행한 고양담배 소비 포어, 포스터 공모전 수상작. 

이러한 일상감각의 차이를 실감할 수 있는 기사가 1990년 5월 고양신문에 실린 ‘내고장 담배사기 표어·포스터 공모전’ 기사다. 배경은 이렇다. 당시에도 고양군민들 다수는 서울로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의 숫자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무심코 타지역에서 구입하는 담배 한 갑으로 인해 매년 수억원의 세외수입이 빠져나가 고양군 발전이 저해되는” 안타까운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 다시 말해 담배를 살 때 붙는 세금이 고양군 재정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우리 고장에서 담배사기’ 캠페인의 일환으로 표어와 포스터 공모전을 고양군 재무과 주관으로 대대적으로 벌인 것이다.

문화·안락 깃든 전원도시의 꿈

공모를 통해 엄선된 최우수 당선작에는 당시로서는 적지 않은 50만원의 상금도 주어졌는데, 표어들을 살펴보면 저절로 실소가 터진다. 초등학생 당선자는 ‘우리 아빠 고양 담배 우리들은 국산 연필’을 외쳤고, 중학생 당선자는 ‘담배는 국산 담배 이왕이면 고양 담배’를 주장했다. 그런가 하면 일반부에 입상한 한 주부는 ‘고양 담배 미리 사서 타지 출근 아빠에게’ 챙겨주는 야무진 센스를 자랑했고 ‘고양 담배의 맛은 내 고장 발전의 맛’이라는, 심사위원의 마음에 쏙 들었을 입상작도 눈에 띈다. 물론 당시 지역재정이 워낙 열악했다고는 하지만, 흡연을 지역 사랑을 실천하는 행위로 적극 권장하는 정서가 오늘날의 기준으로는 참 신기하기만 하다. 

고양담배 구매 캠페인은 단발성으로 그치지 않고, 이후 고양신문의 박스광고 등을 통해 수시로 노출·활용됐다. 

공모전 표어와 표어와 함께 ‘고양담배 한 갑이 큰 일을 하고 있다’는 제목의 고양군 공공광고가 실리기도 했다. ‘담배 한 갑 소비세 360원이 모여 84억원의 세수가 확보된다. 고양담배 소비가 문화와 안락이 깃든 전원도시의 밝은 내일을 기약한다’는 거창하기 그지없는 내용이다. 이 표어를 통해 당시 고양군이 장차 거대도시로 성장할 고양의 미래를 어떤 모습으로 상상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참고자료 : 고양신문 15호(90.01.04)~63호(90.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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