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가쫑긋' 166회, 홍완석 교수 역사 강연

[고양신문] 한때, 나라의 군주가 제 발로 궁궐을 떠나 이국 공사관으로 향했던 슬픈 역사가 있다. 100여 년 전 힘없는 조선이 마주했던 국제 정세는, 놀랍게도 오늘날 우리가 처한 현실과 닮아있다. 어린 세자와 함께 위태로운 가마에 몸을 실었던 그 길은 단순한 도피가 아닌, 격랑의 시대 속에서 민족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자 힘없는 나라의 고뇌가 고스란히 담긴 선택이었다.

홍완석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의 '아관파천'에 대한 21세기적 해석 강의. 
홍완석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의 '아관파천'에 대한 21세기적 해석 강의. 

지난 7일 저녁, 일산 주엽동 한양문고 한강홀에서는 인문학 모임 '귀가쫑긋'의 166번째 이야기가 펼쳐졌다. 이날의 주인공은 100여 년 전의 그날, '아관파천'이었다. 홍완석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아관파천의 21세기적 해석'이라는 묵직한 주제로, 잊혀가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현재의 시선으로 다시 불러냈다. 그는 강연을 통해 과거의 아픈 역사가 현재 우리에게 던지는 중요한 메시지를 강조했다.

홍 교수는 러시아가 처했던 당시의 국제 정세와 칼날 위에 선 듯 위태로웠던 조선의 상황이 맞물려 아관파천은 필연적인 선택이었음을 강조했다. 명성황후 시해라는 충격적인 사건과 잇따른 정치적 혼란 속에서, 궁궐은 더 이상 왕을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결국 고종은 낯선 타국 공사관을 임시 거처로 삼는 고통스러운 외교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홍 교수는 이를 "한 나라가 생존을 위해 택한, 아픈 외교의 한 형식"이라고 설명하며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이날 강연이 더욱 의미 있었던 것은, 아관파천을 단순한 과거의 사건으로만 머무르게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홍 교수는 역사적 사건 속에 담긴 '21세기의 교훈'을 섬세하게 풀어냈다. 그는 "100여 년 전 조선이 마주했던 국제 질서와, 오늘날 우리가 처한 국제 정세가 놀랍도록 닮아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홍 교수는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충돌하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현실 속에서, 독립적인 길을 모색하기 위한 과거의 외교적 노력들을 '북방정책 1.0'으로 규정했다. 이어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 박근혜 정부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문재인 정부의 신북방정책으로 이어져 온 현대 외교 정책의 뿌리가 바로 이때부터 시작됐다고 강조하며 깊이를 더했다.

"아관파천은 스스로를 지킬 힘, 즉 자강력 없는 균형 외교의 한계를 명확히 보여준 사례다. 외교의 지혜와 함께, 우리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힘이야말로 아관파천이 21세기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다." 홍 교수의 말은 참석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강연에 참여한 시민들은 "익숙하게 들어왔던 아관파천이라는 사건을 전혀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며 "과거의 역사가 현재 우리에게 던지는 살아있는 질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한편, 시민들의 뜨거운 호응 속에 진행되는 인문학 모임 '귀가쫑긋'은 매달 첫째 주 수요일 저녁, 다채로운 주제의 강연을 통해 시민들과 함께 생각하고 소통하는 의미 있는 시간을 꾸준히 만들어가고 있다.

이날 강의에 참석한 귀가쫑긋 회원들.
이날 강의에 참석한 귀가쫑긋 회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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