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스> (Jules, 2023, 마크 터틀타웁)

영화 '줄스'의 주인공들. 왼쪽부터 까칠한 조이스, 다정다감한 샌디, 무뚝뚝하지만 마음 따뜻한 밀튼, 우주선을 타고 불시착한 외계인 줄스. 
영화 '줄스'의 주인공들. 왼쪽부터 까칠한 조이스, 다정다감한 샌디, 무뚝뚝하지만 마음 따뜻한 밀튼, 우주선을 타고 불시착한 외계인 줄스. 

[고양신문] 노년의 삶을 들여다보거나 고령사회의 고민들을 다룬 영화가 늘고 있다. 관객들의 평균 수명이 점점 길어지고 있으니 당연한 흐름이다. 하지만 외로움, 병고, 치매, 고독사, 존엄사 등을 다뤄야 하니 아무래도 유쾌한 작품이 나오기는 어려운 장르다. 이런 편견을 따뜻한 유머에 버무려 저 먼 우주로 가볍게 날려버린 작품이 <줄스>(Jules, 2023, 마크 터틀타웁)다. 

등장인물은 미국 펜실베니아 주의 작은 마을에 사는 세 노인들이다. 밀튼은 아내가 죽고 텅 빈 저택에서 홀로 살고 있다. 아들은 연락이 안 온 지 오래됐고, 가까이 사는 딸이 가끔 들르지만 대화가 잘 안 통한다. 시의회가 열릴 때마다 시민발언권을 얻어 의견을 내는 걸 좋아하는데, 동일한 제안을 반복하는 걸 보면 초기 치매가 의심된다. 

배려심 넘치는 샌디와 한 성격 하는 조이스도 밀튼처럼 시의회 단골 발언자들인데, 시장과 시의원들은 그들의 말을 매번 영혼 없이 흘려들을 뿐이다. 더 답답한 건 세 명의 노인들도 그저 각자의 말을 할 뿐 서로 소통하지 못하고 겉돈다는 점이다.

위험에 처한 줄스를 집안에 들이고 잘 챙겨주는 밀튼.  
위험에 처한 줄스를 집안에 들이고 잘 챙겨주는 밀튼.  

따로따로 외로운 일상을 살던 세 노인들에게 깜짝 놀랄 사건이 벌어지는데, 밀튼의 집 뒷마당에 팽이 모양의 우주선이 불시착한 것. 밀튼은 우주선 안에서 기어나온 작고 과묵한 외계인을 돌보고, 이 사실을 차례차례 눈치채게 된 샌디와 조이스는 실종된 외계생명체를 찾는 수사당국으로부터 외계인을 지켜내자며 의기투합한다.

이 과정에서 세 노인은 각자의 방식으로 외계인과 관계를 맺으려 노력한다. 샌디는 ‘줄스’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딸이 입던 티셔츠를 입혀주기도 한다. 조이스는 줄스 앞에서 노래를 들려주며 화려했던 과거의 열정을 회고한다. “얘는 그냥 여기 있으니까, 굳이 이름이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밀튼은 줄스가 좋아하는 사과를 챙겨주고, 줄스가 추락한 우주선을 수리하는 일을 응원한다. 겉으로 보면 제각각의 방식으로 줄스와 소통하는 것 같지만, 그 과정에서 겉돌던 세 사람의 관계가 자연스레 무르익는다.

대사 한마디 없는 줄스의 놀라운 능력은 마침내 시큰둥하던 관객들의 마음마저도 슬그머니 자기 편으로 만들어버린다는 점이다. 도대체 뭔 이런 말도 안 되는 얘기를 이렇게 느릿느릿 늘어놓는담, 하면서 보다가 어느새 이야기 속으로 빠져드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이 영화가 단순히 노인과 우주인을 주인공으로 삼은 황당한 SF 코미디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늙음에 대한 진지한 고찰임을 눈치채게 된다.

노인들은 누구나 타인과 소통하기 힘든 저마다의 장벽을 가지고 있다. 의사 전달을 명확하게 못하거나, 고집이 세거나, 애정 결핍으로 갈피를 못 잡곤 한다. 그런데 이런 노인들의 이야기를 아무 편견 없이 들어주는 존재가(사실 들어준다기보다는 그냥 옆에 가만히 있는 것이지만) 바로 외계에서 날아온 줄스인 것이다.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고장난 우주선을 고치는 줄스는 흰 종이에 자꾸만 7마리 고양이 그림을 그려서 노인들에게 건넨다. 처음에는 단순한 그림 선물을 건네는 줄 알고 “고마워~”만 반복하는데, 가만 보니 줄스가 고치려는 우주선의 에너지원을 얻기 위해 죽은 고양이의 시신 7구가 필요해서였다. 이를 눈치챈 세 노인들은 동네 주변을 돌며 죽은 고양이 시신을 모으러 나선다. 가로수 밑에서, 주택가 골목에서, 수풀 속에서 수습되는 고양이 시신들은 우리 사회 어느 구석에서 소리 없이 생을 마감하는 고독사 노인들을 자연스레 연상시킨다. 

그렇게 총 6구의 고양이 시신을 모았지만 마지막 1구가 채워지지 않자, 밀튼과 샌디는 조이스의 반려묘에게 눈길을 준다. 조이스는 처음에는 펄쩍 뛰지만, 노령으로 눈도 보이지 않고 냄새도 못 맡는 자신의 반려묘를 눈물을 머금고 안락사시키는 데 동의하며 마지막 퍼즐을 맞춘다. 말도 안 되는 설정이지만, 고독사와 존엄사와 안락사 문제를 이처럼 유쾌하게 짚어낸 영화가 또 있을까 싶다.  

죽은 고양이 시신 7구를 에너지 삼아 마침내 다시 떠오른 줄스의 우주선. 
죽은 고양이 시신 7구를 에너지 삼아 마침내 다시 떠오른 줄스의 우주선. 

마침내 우주선을 다시 출발시킬 에너지원을 얻게 된 줄스는 지구의 친구 세 노인에게 함께 떠나자고 초청한다. 사랑하는 줄스와 함께 머나먼 미지의 외계 행성으로 여행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지만, 세 노인들은 그냥 이곳에 남기로 결정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외로운 노년의 삶의 근본적 도피처가 있을 리 없다. 외롭고 쓸쓸해도 평생 살아온 공간에서, 어렵고 힘들어도 타인과의 관계를 회복하며 삶을 마감해야 하지 않겠는가. 줄스는 우주선을 타고 돌아오지 못할 먼 세상으로 날아가 버렸지만, 다행히 덩그러니 남은 세 노인이 그다지 안쓰럽지는 않다. 서로를 이해하고 챙기는 끈끈한 유대감을 줄스가 선물로 남겨주고 갔기 때문이다.

"안녕, 줄스... 우리는 그냥 여기 남아서 잘 살아볼게."
"안녕, 줄스... 우리는 그냥 여기 남아서 잘 살아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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