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용 『호수공원 나무 산책』 저자

[고양신문] 서울에 있는 한 초등학교에 들렀습니다. 학교를 옮겨 신축한 지 10년이 넘은 학교였습니다. 어떤 나무를 심어 놓았는지 나무 특성은 어떠한지에 대해 안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나무 이름표를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쉬운 말로 써 주어서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나무의 세계, 자연의 세계에 다가가기를 원해서였습니다. 특별한 일 없이 목표한 대로 일을 마쳤습니다.

일을 마치면 마음이 개운해야 하는데도 찜찜했습니다. 둥치가 끈으로 졸린 느티나무를 보아서였습니다. 나무를 심을 때 삼발이 지주대를 나무에 덧대고 압박붕대 같은 성분의 천으로 단단하게 고정해놓은 장면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10년이 지나면서 지주대는 쓰러지고 압박 천만 남았습니다. 나무는 몸통을 키우며 위로 자라야 하는데 천에 묶인 자리는 자랄 수 없었습니다. 압박천을 떼어놓고 보니 몸통 일부가 깊게 패어 있었습니다. 교정에 이십 살 느티나무를 심었다면 30년이 됐을 그 나무는 끈으로 묶인 자리가 졸려 있었던 것입니다. 한창 청춘일 느티나무를 보고 사람들이 참 무심하구나, 생각했습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요.

지금은 가로수 수종이 다양하지만 예전에는 양버즘나무, 은행나무, 느티나무 등 몇몇 나무에 치우쳐 있었습니다. 마두동 주민센터 앞길 가로수는 은행나무입니다. 가을이면 은행열매 똥냄새 때문에 사람들이 밟지 않으려고 조심스레 걷습니다. 그만큼 은행나무 암나무를 싫어해 전국에서 은행나무 수나무만 심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외국인들도 은행열매 똥냄새를 한국의 불쾌한 느낌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의 무관심과 이기심 때문에 거리, 또는 공원에서 학대당하고 있는 나무들의 모습.


가로수 은행나무는 겨울철 그로테스크하게 나뭇가지가 잘려나가지만 잘 버티며 자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상가 쪽 은행나무는 몸통 윗부분이, 심하게 표현하면 목이 댕강 잘린 채 비실대고 있습니다. 아마도 상호를 가린다고 판단한 사람들이 잘라낸 것이겠지요. 아니면 가을 똥냄새 때문이었을까요. 온전히 베어 버리든지, 다른 수종으로 갈아 심든지 했으면 제 눈에 쌍심지가 켜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느 대규모 아파트 외곽을 돌아 산책을 합니다. 아파트 외곽을 철조망으로 쳐 놓았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 철조망이 나무에 못을 박고 단단하게 조여 놓고 해서 20여 년이 지나는 사이 철조망이 나무 몸통에 거의 파묻혀 있는 지경이었습니다. 다행히도 이 아파트는 외곽을 펜스로 조성하여 나무 몸통이 졸리는 장면을 벗어났습니다. 그런 곳이 꽤 많습니다.

일산에서는 가로수와 공원 조경수 수종이 다양합니다. 지금도 새로운 나무를 발견할 때마다 깜짝 놀랍니다. 회양목으로 알고 심어 놓았을 꽝꽝나무 몇 그루를 얼마 전 마두공원에서 우연히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하나 알아가는 재미가 점점 더 나무 세계에 푹 빠지게 합니다.

사람들이 나무를 어떻게 대하든 나무는 여전히 꽃 피고 열매 맸습니다. 여름에 꽃 피는 나무가 드물기는 합니다만, 여름꽃 나무 대명사는 배롱나무가 아닌가 싶습니다. 연분홍, 주홍, 흰색 등 다양한 색깔로 변주하는 배롱나무 꽃은 백일 동안 핀다고 해서 배롱나무란 이름이 왔습니다. 흰색 꽃이 피는 배롱나무는 흰배롱나무로 종 구분을 달리 합니다. 백일홍이 배기롱으로, 줄여서 배롱나무란 이름을 얻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나무 백일홍이라고도 부릅니다. 꽃이 100일 동안 피어 있는 게 아니라 피고 지기를 반복합니다. 우리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나무여서 모두가 잘 알고 있는 나무입니다. 나무껍질이 매끄럽습니다. 수피가 없는 것처럼 맨살을 드러내 일부 지방에서는 간지럼나무, 일본에서는 원숭이미끄럼나무라고도 한답니다. 가을까지 피는 배롱나무 꽃을 두고두고 감상하시길 바랍니다.

배롱나무 꽃. 연분홍, 또는 주홍색의 화사한 꽃이 여러 차례 피고 지며 여름을 난다.
배롱나무 수피. 속살을 드러낸 듯 표면이 매끄럽다.
호수공원에 자리 잡고 있는 배롱나무.

<사진제공=김윤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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