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용의 호수공원통신>

 

김윤용 『호수공원 나무 산책』 저자.

[고양신문] 자의반 타의반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50살 이른 나이였습니다. 앞날에 대한 어떤 준비도 없이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을 입에 달고 사는 출판동네를 떠났습니다. 추락하는 책 시장 속에서 몸도 맘도 망가져갈 때였습니다. 오로지 성과와 실적을 위해 앞만 보고 달리던 때였습니다.

이때 아주 우연히 프랑스 은퇴기자 베르나르 올리비에를 알았습니다. 그가 쓴 『나는 걷는다』를 통해서였습니다. 처음에는 책에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조금씩 읽기 시작하자 베르나르가 걸으며 생각하는 것까지 눈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읽기에 속도가 붙더니 금세 모두 읽을 수 있었습니다. 사진 한 장 싣지 않은 두꺼운 책 세 권. 베르나르가 터키 이스탄불에서 중국 시안까지 비단길 1만2000킬로미터를 걸은 이야기였습니다. 1만2000킬로미터를 걸었으니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담겼을까요. 책에 담지 못한 이야기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요.

우리나라를 걷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이른바 국토 도보순례. ‘어떤 코스를 따라 걸을까’를 고민하며 참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잡념도 사라지고 온전히 걸을 길을 상상하는 시간이 즐거웠습니다. 일산에서 출발, 1번 국도를 따라 땅끝 해남까지 갔습니다. 땅끝에서 시작해 부산 해운대까지 해안길과 2번 국도를 따라 걸었습니다. 지금은 800킬로미터 해파랑길로 유명해진 해운대부터 강원도 고성까지 해안길을 따라 올라갔습니다. 강원도 고성에서 DMZ 도시들을 따라 일산에 도착했습니다.

처음부터 무작정 걸은 건 아닙니다. 일산에서 천안까지는 연습구간이었습니다. 출퇴근하는 걷기 구간이었지요. 일산~연대앞, 연대앞~용산…. 이런 방식으로 이어걷기를 계속했습니다. 어느 정도 다리에 힘이 오르면서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이때부터 길 위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길 위에서 ‘걷고 먹고 자고’ 하는 삶이 즐거웠습니다. 근육에 힘이 생기면서 내 생각과 의지에도 끈기가 생기는 게 느껴졌습니다. 몸이 힘들수록 생각은 맑아졌습니다. 그럴수록 더욱 기분이 좋았습니다.

도시마다 결은 달랐지만 같은 게 하나 있었습니다. 도시 입구에 세워진 ‘바르게 살자’ 비석이었습니다. 커다란 화강암 돌에 새겨진 ‘바르게 살자’ 비석을 우리나라 곳곳에서 만났습니다. 크고 작은 멋진 돌에 새겨진 ‘바르게 살자’ 비석 가운데 가장 재미있었던 장면을 경남 고성에서 보았습니다. 고성은 공룡발자국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공룡 모형을 곳곳에 세워 ‘공룡의 도시 고성’을 홍보하고 있었습니다. 한 작은 공원 앞에 커다란 공룡 모형을 세워놓았습니다. 그런데 거대한 공룡 모형 앞에 ‘바르게 살자’ 비석을 함께 설치해 놓았더군요. 걸으며 힘들던 저를 빵 터지게 만들었습니다. 한참동안 웃었습니다. ‘공룡아, 바르게 살아라! 그렇지 않으면 멸망한다.’ 도시 입구마다 세워진 ‘바르게 살자’ 비석은 제 마음을 참으로 불편하게 합니다. 다른 분들에게는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까 궁금합니다. 호수교 위쪽 일산 들입에도 ‘바르게 살자’ 비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어떻게 사는 게 바르게 사는 것일까요? 비석을 세운 이들은 바르게 사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에 세워놓았을까요? 참 여러 생각을 했습니다. 심지어 전국 지자체마다 비석을 세웠다면 그 비용이 얼마나 될까를 계산해보기도 했습니다. 곧 있으면 2017년을 보내고 다시 새해를 맞이합니다. 아무튼 새해에도 호수공원을 걸으며 ‘바르게’ 살겠습니다. 상식만큼만이요.
 

겨울 호수공원(2016년 1월 촬영) <사진=김윤용>
겨울 호수공원(2016년 1월 촬영) <사진=김윤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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