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을까

건강도시를 위한 심층기획 / 어떻게하면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을까

<4>음식이 약이 되게 하라

잘 먹고 잘 싸는 생명활동 ‘음식이 좌우’
한국사람 건강장수음식은 ‘미생물 가득한 된장’

[고양신문] 오늘도 산에 갑니다. 봄기운이 시작된 요즘 같은 시절에는 도시락을 쌉니다. 보온병에 따뜻한 물을 받고, 보온도시락에 현미밥을 담습니다. 우엉조림과 고추멸치볶음, 물김치를 챙깁니다. 백운대의 평평한 바위틈이나 북한산 대피소에서 점심 먹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군침이 돕니다. 병원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도 먼저 챙기는 음식이 있습니다. 현미밥과 김치, 나물반찬입니다. 그 다음 고기든 생선이든 먹고 싶은 대로 담습니다. 간헐적 단식의 형태로 아침을 건너뛴 저에게 매일 매일의 소박한 점심은 어느 호텔 뷔페도 부럽지 않은 성찬입니다. 당연히 건강에도 좋겠지요.
 
인간은 아주 오래 전부터 건강에 좋은 음식, 장수를 위한 음식을 찾고자 했습니다. 5000년 전 서구 유럽의 설화엔 영웅 길가메쉬가 찾았던 ‘젊음의 샘’이 등장하고, 동양에선 불로초를 찾고자 했던 진시황의 이야기가 유명합니다. 장수를 위한 양생법은 우리나라의 의학서인 『동의보감』에서도 중요하게 다룬 주제 중 하나입니다. 

민족마다 지역마다 다른 고유의 장수음식이 있다
오늘날에도 ‘장수음식’이라 주장하는 수많은 식단이 있습니다. 지중해식 식단이 대표적일 겁니다. 지중해식 식단은 채식을 위주로 한 여러 음식에 올리브유, 요거트와 와인을 떠오르게 합니다. 요거트에 대한 관심은 1907년 노벨상 수상자이자 우리나라 요구르트 광고에도 등장했던 러시아 과학자 메치니코프부터 비롯됐고, 지중해식 식단 전체에 대한 관심은 1980년대 미국에서 시작됐습니다. 그리스나 이태리 등 지중해 부근에 사는 사람들이 미국인들이 가장 겁내는 심혈관질환에 걸리는 경우가 적다는 사실을 발견한 연구자들이 이들의 식단을 관심 있게 들여다 본 겁니다.
 
이후, 지중해식 식단에 대한 수많은 연구와 실험이 쏟아졌지요. 와인에 들어있는 레스베라트롤(Resveratrol) 이란 물질이 장수에 좋다는 주장도 등장했구요. 최근엔 60~70대 노인들에게 지중해식 식단을 1년 동안 드시게 해 보니, 장내에 우리 몸에 유익하다고 알려진 세균이 증가하고, 만성염증이 개선됐다는 임상연구가 발표되기도 했습니다.(Ghosh, Rampelli et al. 2020) 저의 북한산 점심이나 점심식판처럼 채식과 생선류, 콩 등이 주류를 이루는 지중해식 식단 역시 당연히 건강에 좋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중해식 식단이 유명해진 것을 보면서, 객관적일 듯한 ‘과학적’ 연구에서도 돈과 힘의 편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느끼곤 합니다. 지금은 패스트푸드가 진출해 여러 만성질환이 대폭 증가하고 있다는 일본의 오키나와도 20세기 후반까지 세계에서 손꼽히는 장수촌이었습니다. 하지만 오키나와 식단은 지중해식 식단만큼 유명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지리적으로나 유전적으로나 우리나라와 가까워 우리의 건강과 장수에 참조하기가 더 적합할 것 같은데 말입니다.(Sho 2001)
 
최근에는 우리나라 음식에 대한 국제적 관심도 높아가고 있는데, 아마도 음식 자체 보다는 세계 각 분야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쨌거나, 우리나라 음식에 케이팝 다이어트, 수퍼푸드란 찬사가 붙어가는 것은 기분 좋은 일입니다.

지중해식단, 이누이트식단 보다 한국의 전통식단이 좋다
제가 들어 본 것 중 저와 가장 거리가 멀다고 느꼈던 식단은 이누이트 식단이었습니다. 북극지방에 사는 이누이트들에겐 당연히 채식을 할 만한 식재료를 구할 길이 마땅찮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로 물개나 순록 고기로 육식을 합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미국인들에 비해 심혈관질환에 훨씬 덜 걸립니다.
 
1955년 한 연구진이 당시엔 에스키모라고 불리던 성인 이누이트 117명의 혈압을 재어보니, 고혈압을 가진 사람이 단 한 명에 불과했습니다.(DiNicolantonio and O’Keefe 2018) 비슷한 연령대의 미국인들과 비교해 보니 고혈압 환자 비율이 10분의 1 수준이었던 겁니다. 이들을 엑스레이로 진단해 봐도 동맥경화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고, 2년 동안 지속적 관찰을 해도 심혈관 문제가 거의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의 걱정거리인 심혈관질환을 일으키는 원인이 지방이라는 하나의 정식을 가지고 있는 미국인들로서는 이누이트 식단의 비밀이 아무래도 이해가 안 갔을 겁니다. 그래서 이누이트 패러독스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이런 지중해식 식단, 오키나와 식단, 이누이트 식단, 혹은 케이팝 다이어트의 공통점은 분명합니다. 각자의 지역과 인종, 민족에 따라 특수하게 진화해온 음식이라는 거죠. 다시 말해 음식, 그중에서도 특히 건강음식이나 장수음식은 그 민족이나 지리적 특성, 심지어 유전자에까지 뿌리를 내리고 있을 거라는 사실입니다. 

말하자면 민족적 장수음식이란 건데,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장수연구를 해 온 박상철 교수의 주장이기도 합니다.(Park 2016) 세계의 모든 음식, 장수음식들은 각자의 오래된 문화와 전통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식단이니, 우리 역시 남의 것만 보지 말로 우리 식단을 좀 더 들여다보자는 조언이지요. 

된장 고초균,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낮추고 골다공증 완화
미생물을 연구하는 저의 입장에서 보면 이 조언은 상당히 타당해 보입니다. 세균 중에 고초균이란게 있습니다. ‘Bacillus subtilis’라는 학명으로 불리는 세균인데, 다름 아닌 우리 된장을 만드는 세균입니다. 일본의 청국장인 낫또도 이 세균의 작용으로 만들어집니다. 콩을 삶아서 볏짚(고초) 위에 올려놓거나 그냥 공기 중에 두어도 고초균이 콩에 붙어 증식합니다. 오랫동안 우리나라나 일본의 민족적 음식이었을 겁니다.

고초균의 건강증진 효과는 매우 좋습니다.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을 낮추고 골다공증도 어느 정도 극복하게 해 줍니다.(Takimoto, Hatanaka et al. 2018) 현대인의 생활습관병인 만성질환의 방어하는데 제격인 셈입니다. 심지어 고초균은 노화연구의 실험모델로 많이 쓰는 예쁜꼬마선충(C. elegans)의 수명을 50% 넘게 연장시키는 효과도 보여줍니다.(Donato, Ayala et al. 2017) 우리나 일본의 식생활에 오랫동안 쓰여 왔던 이유가 있는 거겠죠.

어쩌면 우리의 고초균은 유럽의 유산균과 비슷하다는 느낌입니다. 낙농을 많이 하는 유럽에서 유제품을 보관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유제품을 해체해 산을 만드는 락토바실러스나 비피도박테리움 같은 유산균들이 식생활에 쓰여 왔다면, 콩을 가까이 할 수 있었던 우리나라에는 자연스럽게 콩을 대사하는 고초균이 자리를 잡아왔다는 것이지요. 대륙과 인종은 다르지만, 유산균이나 고초균은 인간에게 유익한 대표적인 프로바이오틱스인데 그중에서도 고초균은 우리의 민족적 프로바이오틱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글에서는 일본의 낫또를 식물성치즈라 표현하던데(Ayala, Bauman et al. 2017), 저 같으면 치즈를 동물성된장이라 쓸 것 같습니다. 

우리의 고초균, 혹은 고초균으로 만든 된장·청국장은 우리 몸에 맞습니다. 제가 고기 먹을 때 쌈을 싸서 먹는 이유이기도 하구요. 지중해의 요거트, 이누이트족의 동물성지방산, 오키나와 식단이 각자의 민족에 맞는 것처럼 말입니다. 실제 박상철 교수님 팀이 순창과 구례 등 우리나라 장수벨트라고 알려진 곳에 살고 있는 장수인들을 만나보니, 된장을 포함한 발효음식을 많이 먹더라는 보고가 있습니다. 이런 전통발효음식이 채식만으로 자칫 부족해지기 쉬운 비타민 B12의 보충원이었다고 합니다.(Kwak, Lee et al. 2010) 

장내 미생물 공격하는 위산억제제 장기복용은 면역력 저하 
그러더라도, 음식은 자주 저를 괴롭힙니다. 실은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며칠 전 술 한 잔 먹고 집에 들어갔는데 딸내미가 시켜놓은 매운 떡볶이가 보여 내친김에 먹었더니, 너무 매워서 속이 뒤집어진 상태입니다. 오후가 되면 위산이 계속 분비되는지 속쓰림이 있습니다. 며칠째 자극적 음식을 피하고 생감자 요구르트와 쑥차로 달래고 있고, 심해지면 일본여행 중 사온 카베진도 먹으면서 말입니다. 음식에 대해 늘 주의하는 저도 세상의 맛있고 자극적인 음식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소화와 관련해 가능한 피하고 싶은 것은 약을 먹는 것입니다. 속이 쓰릴 때 제일 많이 먹는 약이 양성자펌프억제제(PPI)라는 건데요, 이 약은 위장세포에서 만드는 산을 아예 만들지 못하게 차단하는 약입니다. 1980년대에 개발된 후 강력한 효과 덕분에 엄청난 속도로 판매량이 늘고 있고, 내과에서 가장 많이 처방되는 약 중 하나이기도합니다.

이 약은 위산 생성을 강력히 억제하기 때문에 곧바로 속 쓰림이 없어지긴 하지만, 오래 먹으면 당연히 문제가 커집니다. 위산이란 게 음식을 통해 내 몸에 들어오는 미생물을 검색해서 병적 미생물을 죽이는 역할을 하기도 하는데, 그 역할이 없어지니 외부 미생물이 더 쉽게 내 몸을 침투합니다. 감염에 더 취약해지는 것이지요.(Trifan, Stanciu et al. 2017) 또한 위장 내부의 환경이 교란되다 보니 이 약을 오랫동안 먹은 환자들은 위암의 발생이 높습니다.(Cheung and Leung 2019) ‘약은 급할 때 최소로’라는 원칙이 이 약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내 몸의 생명활동 재료인 음식, 살아있는 다른 생명이어야 
그래서 속이 더부룩하거나 속쓰림이 있을 때, 바로 약을 찾기보다는 스스로 먹는 것을 점검하고 체크해야 합니다. 또 마음을 편안하게 해서 스트레스를 줄여야 합니다. 소화관의 대부분의 문제는 기름지고 너무 자극적인 음식을 아무 때나, 특히 저녁 늦게 야식으로 먹어서 발생합니다. 또한 그것을 천천히 편안하게 씹어가면서 즐기기보다는 후다닥 허기를 채우기에 급급한 음식문화에서 오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음식은 우리 몸의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생화학 과정의 재료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 몸 안에서는 수많은 생화학 과정이 일어납니다. 그 과정이 없으면 나라는 생명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 생화학 과정을 만드는 기본 재료는 다름 아닌, 내가 먹는 음식, 물, 공기, 햇빛입니다. 나뿐 아니라 지구상 모든 생명이 필요로 하는 것들이지요. 특히 음식은 내가 내 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생화학적 재료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음식이 내 몸에서 일어나는 생명활동의 재료라면, 당연히 음식은 다른 생명이어야 합니다. 고기든 생선이든, 나물이나 야채, 해산물, 심지어 김치를 만드는 유산균마저도 모두 생명들입니다. 유전자를 만드는데 DNA라는 화학물질을 쓰고, 단백질을 만드는데도 아미노산이라는 재료를 쓰며, 에너지도 ATP라는 물질로 보관하고, 탄수화물을 가장 중요한 에너지원으로 쓴다는 것 모두 나와 동일합니다. 이처럼 나와 모든 생명들이 긴 진화의 과정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음식의 재료들이 생명활동으로 호환되며 사용되는 것이지요.

식품첨가물과 트랜스지방 가득한 가공식품은 조심
그런데 오늘날에는 생명이 아닌 것들이 내가 먹은 음식에 너무 많이 들어갑니다. 가공식품의 맛과 질감을 내는 데 쓰이는 식품첨가물, 그리고 고소하고 바삭한 맛을 내는 트랜스지방이 대표적입니다. 이들은 자연의 생명들이 아니라, 실험실과 공장에서 공학적 과정을 거쳐 만들어집니다. 여러 법규가 일정한 분량까지는 괜찮다며 섭취의 안정성을 보장한다지만, 먹어 보면 우리 몸이 바로 압니다. 

우선 소화가 잘 안 되죠. 늘 음식을 주의하는 저만 해도 점심 후에 직원들이 슬쩍 내미는 케이크 한 조각을 참지 못하고 먹곤 하는데, 그때마다 속이 더부룩한 오후를 보내곤 합니다. 내 몸이 소화 흡수를 못하는 겁니다. 생명의 재료들로 만든 것이 아니니까요. 그에 비해 산행 때 집에서 싸간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은 날이면, 산에 내려와 얼마 후면 바로 배가 고픕니다. 소화흡수가 빨리 진행됐다는 신호지요. 속이 더부룩한 음식과 얼른 배고프게 하는 음식. 무엇이 나에게 맞는, 나의 생화학반응의 재료가 되는 음식인지는 너무도 분명합니다.

글과 그림 최원집 구심한의원 원장. 최원집 원장은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한컷 그림과 글에 담는 작업을 꾸준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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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우리는 좋은 음식을 잘 먹고 잘 싸는 것이 절대 쉬운 일이 아닌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1998년과 2009년 우리나라 식습관을 비교해 보았습니다. 가장 많이 늘어난 것은 소주와 맥주 같은 술 종류입니다. 다음은 커피와 차, 케이크와 쿠키, 파이 같은 달달한 음료와 디저트 음식들이고요. 가공 탄수화물이 많이 섞여 있을 여러 소스류도 많이 늘었습니다.(Lee, Duffey et al. 2012) 이러한 추세는 세계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50년 전에 비해 맥도널드 햄버거 1인분의 크기가 4배 커졌다는 소식은 제게 충격적이었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미국인들의 평균 체중이 7kg 늘었다는 소식 역시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21세기 들어 마치 전염병처럼 커져가는 고혈압과 당뇨, 고지혈증 같은 만성질환을 만든 근본원인이 바로 이런 식생활변화에 있음은 물론입니다. 이런 음식문화와 식습관을 교정하지 않고 고혈압과 당뇨, 고지혈증같은 질환을 막아내기란 불가능하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하나만 기억합시다. 잘 먹고 잘 싸는 출발은 좋은 음식을 고르는 것이라고. 소화가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소화가 안 될 음식을 허겁지겁 먹어서라고.

글 / 김혜성 사과나무의료재단 이사장

필진 소개

김혜성 이사장은 사과나무의료재단의 치과의사이자, 미생물 연구자이다. 구강미생물에서 시작해 장내 미생물, 발효 음식의 미생물까지 폭넓게 공부하며 몇 권의 책을 펴냈다. 『미생물과의 공존』 등 그간 펴낸 미생물 관련 3권의 책 모두 우수과학도서로 선정됐다. 
우리의 몸 안팎의 생명체들이 서로 균형과 조화를 이룰 때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다는 ‘통생명 삶’이란 화두에 집중하고 있다. 이번 기획보도에서는 건강에 대한 개념과 건강한 삶을 위한 습관, 건강한 노년을 위한 준비, 새로운 삶의 가치에 대한 선택의 문제까지 포괄적으로 다루게 된다. 총 6회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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