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취재] 공릉천 하구 하천정비공사, 시민 힘으로 막아내자 (5)

인터뷰 - 헤이리마을 이웃 걷기모임 ‘공릉천 친구들’

10년 동안 공릉천 둑방길 함께 산책
봄날 새들의 합창, 여름 저녁 말똥게…
아름다운 순간들 가장 먼저 만났지만 
공사로 망가지는 모습 지켜보며 ‘먹먹’

[사진제공=공릉천 친구들]
[사진제공=공릉천 친구들]

[고양신문] 공릉천 하구에서 생태적 고려 없이 진행되는 하천정비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한 기획보도를 시작한 후 공릉천을 즐겨 찾는 이들, 공릉천 하구를 마음 깊이 아끼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됐다. 누군가는 새를 보러, 누군가는 들꽃 사진을 찍으러, 누군가는 그저 탁 트인 강 하구의 풍광이 좋아서 공릉천을 정기적으로 찾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오랜 시간 공릉천변을 함께 걷고 있는 ‘공릉천 친구들’이라는 모임이다. 공릉천 하구 인근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에 거주하는 10명의 이웃들로 꾸려진 공릉천 친구들의 구성원들은 60~70대의 문화·예술 분야, 또는 전문직 출신 원로들이다. 애초 국선도 수련모임으로 시작해 10여 년 전부터 공릉천변 걷기를 병행했고, 코로나19의 유행으로 실내 모임이 어려워진 이후에는 거의 매일 공릉천 하구 둑방길을 함께 걷고 있다. 


자주 찾다 보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모르던 것들을 알게 되고, 보이고 알게 되면 결국 사랑하게 되는가보다. 공릉천 친구들 역시 처음에는 건강과 힐링을 위한 목적으로 공릉천을 걸었지만 점차 공릉천 하구의 내밀한 모습들을 보게 됐고, 알게 됐고, 사랑하게 됐다고 고백한다. 그런 만큼 현재 진행중인 하천정비공사로 인해 순식간에 망가져버린 공릉천 하구 생태계를 무기력하게 바라봐야만 하는 현실에 대해서도 누구보다도 깊은 안타까움을 표했다. 

공릉천 친구들 중심 멤버인 김언호 한길사 대표, 박관순 도예작가(한길책박물관 관장), 정옥환 퇴직교사, 박종일 번역작가를 헤이리마을의 작은 북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이들 외에도 이경형 전 서울신문 주필, 김윤섭 의사, 김정재 조각작가, 이정규 공예작가, 김미란 회화작가, 박경탁 퇴직 외교관이 공릉천 친구들 모임을 함께 하고 있다. 

(※이하 인터뷰 참가자들의 답변을 종합하여 질의·응답 형식으로 재구성함)  
 

(왼쪽부터) 박종일 번역작가, 정옥환 퇴직교사, 박관순 도예작가, 김언호 한길사 대표. 
(왼쪽부터) 박종일 번역작가, 정옥환 퇴직교사, 박관순 도예작가, 김언호 한길사 대표. 

❚거의 매일 공릉천 하구를 걷는다고 들었다. 

회원들이 대부분 회화, 번역, 출판 등 문화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이들이다. 공릉천 하구의 풍요로운 환경이 회원들의 창작과 지적 활동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아침마다 공릉천 하구의 신선한 풍경을 만나고 돌아와 하루를 시작하는 활기와 영감을 얻곤 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하다 보니 이제는 공릉천과 우리의 삶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다. 행복한 시간이 오래도록 이어질 줄만 알았는데, 공사가 시작된 이후로는 걱정이 쌓여간다. 

❚공릉천 하구의 매력을 꼽아달라. 
물길이 들고 나는 하천이 있고, 흙으로 된 둑방길이 있고, 사방이 농경지로 둘러싸여 있어서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탁 트인 풍경을 사시사철 감상할 수 있다. 멀리 북한산 너머 동쪽 하늘로 아침 해가 떠오르는 장면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새벽의 물안개와 저녁의 노을도 정말 아름답다. 어느 한 시절, 어느 한 장소를 꼽을 수 없을 만큼 매일매일 새로운 모습을 만날 수 있다는 게 공릉천 하구의 가장 큰 매력이다.

[사진제공=공릉천 친구들]
[사진제공=공릉천 친구들]

❚생태 환경도 풍경만큼 뛰어난가.
말해 무엇하겠나. 특히 봄철에는 여기저기서 생명의 잔치가 펼쳐진다. 수많은 새들이 찾아와 이곳에서 번식을 하고, 모내기를 위해 트랙터가 논바닥을 갈며 지나가면 스무 마리가 넘는 백로들이 트랙터 뒤를 쫓아가며 헤집어진 논바닥에서 먹이를 찾아먹느라 정신이 없다. 물새들이 풀섶에서 새끼들 비행 연습을 시키는 장면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너무너무 귀엽고 예쁘다. 
여름철에는 땡볕을 피해 아침저녁으로 말똥게들이 둑방길을 넘어다니는데, 조금 과장해서 새까맣게 길을 뒤덮곤 했었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특별한 경관인데, 공사가 시작된 후 거의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사진제공=공릉천 친구들]
[사진제공=공릉천 친구들]

❚식물다양성도 무척 풍부한 곳이라던데.           
둑방길을 따라가다 보면 이름 모를 들풀과 들꽃들이 우리를 반긴다. 특히 토종민들레와 같이 다른 곳에서는 점차 사라져가는 고유종들이 많은 것 같다. 넓게 펼쳐진 강 둔치에는 갈대들이 가득한데, 연둣빛 새순이 죽은 줄기들을 밀어내며 올라오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그런 장면을 만날 때면 우리가 축복받은 사람들이구나, 매번 감탄사를 내뱉곤 했다. 
공릉천 하구를 찾으며 모두가 시인이 됐고, 사진작가가 됐다. 새소리가 들려오면 발걸음을 멈춰 세웠고, 하늘이 아름다운 날에는 저절로 노래가 튀어나왔고, 자연스레 폰카에 손이 가기도 했다. 아마 각자의 스마트폰 사진첩에 공릉천 하구 풍경을 포착한 사진들이 어마어마하게 저장돼 있을 것이다.   

[사진제공=공릉천 친구들]
[사진제공=공릉천 친구들]

❚공사를 인지한 건 언제부터인가.
공사가 시작될거라는 얘기는 일찍부터 들었지만,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된 건 1년 전부터다. 둑방길 주변과 농경지 여기저기에 붉은색과 노란색 깃발이 꽂히기 시작하면서 걱정이 밀려왔는데, 불안한 예감이 틀리지 않았다. 커다란 괴물 같은 중장비가 오가더니, 수풀로 뒤덮힌 둑방을 죄다 긁어내버렸다. 새로 지어지는 교각 아래 갈대숲에는 잉어들이 산란하는 웅덩이가 있었다. 산란철이 되면 수많은 잉어들이 몰려와 물이 요동칠 정도로 몸부림을 치곤 했다. 그런데 새로 놓이는 교각 공사를 하며 잉어들의 산란터가 다 메워졌다. 이제 잉어들은 어디에서 알을 낳아야 하나, 생각하면 마음이 먹먹해진다.  

❚환경훼손을 지켜보며 누구보다도 마음 아파하는 것 같다.
회원들 모두 생태를 전공하거나 따로 공부한 사람은 없지만, 모두가 생태적 미감을 갖게 됐다. 공릉천 하구에서 우리가 깨달은 자연의 법칙은 바로 어우러짐이다. 그 안에는 귀한 것과 천한 것의 구분이 없다. 둑방에서 많이 자랐던 아카시아나무만 하더라도 흔하고 가치 없는 나무라 여기기 쉽지만, 거기에 새들이 깃들어 살고 늦봄에 화사하고 향기로운 꽃잔치를 선사하기도 한다.
그냥 놓아두면 자연은 자기들끼리 정말 잘 어우러지며 사는데, 사람들은 그걸 어떻게든 건드리지 못해서 안달을 하는 것 같다. 할 수 있다면 우리도 자연의 일부가 되어 공릉천과 영원히 함께하고 싶어서 모임 이름도 자연스레 ‘공릉천 친구들’이라 부르게 됐는데, 씁쓸하게도 공릉천의 망가져가는 모습을 목도한 증인들이 돼 버렸다.  

[사진제공=공릉천 친구들]
[사진제공=공릉천 친구들]

❚사업 주체인 한강유역환경청은 하천정비사업의 불가피성을 이야기하는데. 
정비사업이 필요하다면 생태적 방식으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환경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 후 일부러 시멘트 포장을 걷어내고 자연스러운 흙길을 되살리는 사례가 많아졌다고 들었다. 현대인들이 정말 만나고 싶은 풍경은 그런 것이니까. 그런데 풍성한 자연이 살아있는 둑방을 밀어내고, 꼭 필요하지도 않은 포장도로를 까는게 과연 시대 정신에 부합하는 일인지 묻고 싶다. 

❚이 문제를 관심 있게 주목하는 독자들이 적지 않다. 한마디씩 부탁드린다. 

▶박종일 : 공릉천 갈대 숲 안에는 엄청난 생명들이 살고 있다. 우리가 목격자다. 거창한 이론은 잘 모르겠지만, 남아있는 것이나마 손대지 말고 그대로 두자. 나무와 풀들과 새들이 사라져가는 환경에서 사람들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박관순 : 공릉천은 밀물과 썰물이 드나드는 하천이다. 아침에 차에서 내리자마자 물이 쏴아~ 소리를 내며 그야말로 물밀 듯이 밀려오는 모습을 보고 감동한 적도 있다. 공사가 진행되고부터는 오늘은 또 어떤 모습을 보게 될까 하루하루가 걱정이다. 흙으로 된 둑방길, 그리고 들꽃과 나무들을 지켜달라. 

▶정옥환 : 공릉천에서 자연과 계절의 변화를 접하며, 우리 삶도 늘 변한다는 사실을 새삼 생각했다. 삶의 2막을 어떻게 준비할까 생각을 던져 준 곳도 공릉천 둑방길이었다. 얼마 전에는 고라니가 절룩거리며 갈대숲으로 몸을 숨기는 모습을 목격했는데, 저 녀석들이 살 수 없으면 우리도 살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언호 : 우리나라 국토는 원래 어느 곳이나 다 아름다웠다. 우리들은 다행히도 아직까지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한강 하구, 공릉천 언저리에 터를 잡고 살게 됐다. 지금까지 보아온 풍요로운 풍경들을 앞으로도 누리고 싶다. 다행히 고양신문에서 이 문제를 다뤄줘서 고맙게 생각한다. 많은 이들이 관심을 보인다는 소식도 반갑다. 공릉천 친구들도 어떤 모양으로든 힘을 보태려 한다.

[사진제공=공릉천 친구들]
[사진제공=공릉천 친구들]
[사진제공=공릉천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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