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경종 기자의 하루여행] 고양누리길④ 행주누리길

원당역에서 출발해 행주산성까지 11.9km
선인들의 삶의 자취 전하는 별아산·지렁산
오늘날은 원당·화정 주민들의 소중한 휴식처

조선시대 봉화 올렸던 봉대산의 으뜸 전망 
아름다운 돌다리가 품은 옛사람들의 솜씨
버드나무 그늘따라 이어진 한가로운 꽃길 

[고양신문] 무더위가 한풀 꺾였나 싶었는데, 때아닌 가을장마다. 이런 날씨에는 출발 전에 비옷이나 여벌옷 등을 잘 챙겨야 한다. 조금 일찍 가을을 마중한다는 설레임을 안고 고양누리길 4코스 행주누리길 나들이를 시작하자.

원당역에서 행주산성을 잇는 행주누리길의 거리는 11.9km로 꽤 길다. 고양누리길 전체를 봐도 14코스 바람누리길(15.5km)에 이어 두 번째로 긴 코스다. 

코스는 3개 구간으로 나눌 수 있다. ▲전반부는 원당역에서 화정 뒷산인 성라산, 지렁산을 지나 장미란체육관까지 잇는 숲길이고 ▲중반부는 농경지와 배다골테마파크를 거쳐 성사천을 따라가며 경의중앙선 강매역까지 닿는 들길·물길이다. ▲마지막 후반부는 봉대산 산길을 넘어 창릉천 물길을 만나 강고산마을 코스모스밭을 지나 행주산성에서 마무리된다. 

전체 코스를 한 번에 걸어도 좋고, 형편에 따라 원당역에서 출발해 별아산·지렁산 숲길만 걷거나, 강매역에서 출발해 봉대산과 창릉천 구간, 또는 반대쪽 성사천 구간만 따로 걷는 것도 괜찮다.

성라공원에 자리한 고양누리길 탐방객 지원센터. 
성라공원에 자리한 고양누리길 탐방객 지원센터. 

원당·화정 주민들이 사랑하는 별아산 

원당역 3번 출구를 내려와 조금만 걸으면 성라공원이 나타난다. 일산을 대표하는 도심공원이 정발산공원이라면, 원당과 화정은 별아산 성라공원이다. 수목이 울창한 성라공원에는 사방으로 산책로가 뻗어 있고 쉼터와 운동시설 등이 잘 정비돼 있다. 공원 초입에는 누리길에 관한 안내와 관련 자료를 얻을 수 있는 고양누리길 탐방객 지원센터가 자리하고 있고, 약수터와 화장실도 가까이에 있다.  

성라산은 별(星)이 그물(羅)처럼 펼쳐졌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옛사람들이 시야가 트인 언덕에 올라 달구경, 별구경하기 딱 좋았던 곳이었나보다. 

별아산, 베라산이라 부르기도 하는 성라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는 백성의 평안을 기원하는 제사를 올렸다 해서 국사봉(國祀峰)이라고 부르는데, 그래봐야 110m가 채 안된다. 국사봉뿐만 아니라 이어 만나게 될 지렁산과 봉대산도 높이가 100m도 채 안되는 고만고만한 언덕들이다. 그렇다고 산길 걷는 즐거움이 덜한 것은 아니다. 상쾌한 기운 가득한 오솔길이 가까이에 있다면, 거기가 바로 나만의 명산이다.

고양누리길 완주를 인증하는 행주누리길 스탬프 부스. 
고양누리길 완주를 인증하는 행주누리길 스탬프 부스. 

아기장수 전설과 지렁산 고인돌

별아산에는 어려서부터 기운이 남달라 별아산 바윗돌을 공기놀이하듯 가지고 놀았다는 아기장수 전설이 전해온다. 하지만 아기장수의 힘이 재앙을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어른들의 두려움, 또는 왜놈의 간계에 의해 힘의 원천인 겨드랑이 날개를 잃는다는 얘기다. 세상 질서를 뒤바꿀 인물에 대한 민초들의 열망, 그리고 꺾여진 꿈에 대한 애도가 동시에 담긴 설화는 전국 곳곳에서 유사한 형태로 전해온다. 별아산과 지렁산에서는 선사시대의 고인돌, 그리고 청동기시대 유물도 발견됐다.  

국사봉약수터 지나 나타나는 북카페 쉼터는 아주 쾌적하다. 귀여운 포토존 조형물도 있고, 산림욕 베드와 책을 읽기 편한 의자도 놓여졌다. 
별아산을 내려오는 곳에 토지신(土地之神, 땅을 관장하는 신령)에게 제를 올리는 작은 제단이 보인다. 매끄러운 돌비석의 모양새가 최근에 만든 것으로 보이지만, 토지신을 섬겼던 마을 사람들의 정성이 오래도록 이어져온 흔적이다.

국사봉약수터 인근의 북카페 쉼터.
국사봉약수터 인근의 북카페 쉼터.

지렁산은 지렁이처럼 나지막하게 길게 누워 있어서 붙여진 이름인 듯하다. 누리길에서 만나는 지렁산 지석묘는 낮고 평평해서 선사시대 유물이라는 안내표지가 없었다면 걸터앉아 쉬었다 가기에 딱 좋은 모양새다. 
별아산과 지렁산 인근에는 화수촌(골머리) 냉정(찬우물) 백양동(뱅골) 등 자연마을들이 있었는데 1990년대 초 화정신시가지가 들어서며 사라졌다. 그나마 산기슭의 넓은 배밭만이 옛 흔적을 보여준다. 

낮고 아담한 크기의 지렁산 고인돌. 
낮고 아담한 크기의 지렁산 고인돌. 

장미꽃 놓인 농산물 무인판매대

장미란체육관을 지나 마을길로 들어서면 농경지와 비닐하우스가 섞여있는 대도시 근교 그린벨트 지역의 전형적인 풍경들이 펼쳐진다. 한가롭게 밭둑길을 걷다 보면 멀리 북한산이 조망된다. 북한산은 고양누리길 어느 구간에서든 한두번은 불쑥 등장해 멋진 실루엣을 구경시켜준다. 고양누리길 각 코스마다 북한산 전망포인트만을 모아 ‘나만의 고양누리길 완주앨범’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길가의 꽃들이 반겨주는 한가로운 아스팔트길을 지나다 보니 다육이 화분과 장미꽃 등을 펼쳐놓은 농산물 직거래 무인판매대가 나타난다. 반갑게도 농장이 소개된 고양신문 기사를 코팅해서 걸어놓았다. 다른 농가에서는 농산물 가격을 적어놓은 보드판도 길가에 내걸었다. 마을 농부들과 걷는 이들이 고양누리길에서 만나는 셈이다. 

행주누리길 들녘에서 만난 북한산 전망. 
행주누리길 들녘에서 만난 북한산 전망. 

서정마을 가로지르는 성사천 산책로

행주누리길과 성사천이 만나는 배다골테마파크는 창릉신도시 개발부지에 포함돼 수용 절차를 기다리고 있다. 주말이면 차들로 붐볐던 주차장이 텅 비어있고, 구호가 적힌 현수막들이 빼곡하다. 고양시민들의 추억의 장소가 또 하나 사라진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별아산에서 발원해 서정마을을 지나 강고산마을에서 창릉천과 합류하는 성사천은 인근 주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소하천이다. 천변에는 자전거길이, 둑방 위로는 나무그늘 시원한 산책로가 이어진다. 하지만 산책로 옆 높은 생울타리가 시야를 가리고 있어서 아쉽다. 성사천 자전거길은 창릉천과 이어지고, 행주산성을 지나 한강 자전거길, 그리고 평화누리 자전거길과도 연결된다.
깔끔하게 정비된 성사천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드디어 강매역에 도착한다. 행주누리길의 전반부와 중반부까지 걸어온 셈이다. 

산책로와 자전거길이 잘 조성된 성사천 구간.  
산책로와 자전거길이 잘 조성된 성사천 구간.  

한강 하구 조망되는 봉대산 전망 

행주누리길 후반부를 마저 걷기 위해 강매고가도로를 오른다. 강매고가는 경의중앙선과 KTX 철길, 그리고 방화대교로 향하는 권율대로 지하차도 위를 넘어가는 높다란 하늘길이다. 고가 위에서 바라보는 북한산 경관도 일품이다.  
육교에서 내려와 이름도 예쁜 매화정(梅花亭) 마을에서 왼쪽 산길을 따라 봉대산을 오른다. 초장부터 가파른 계단길이 이어지지만 곧 한가로운 쉼터와 운동시설, 군사시설 등이 차례로 나타난다. 한갓진 숲길을 잠시 걷다 보면 금세 정상에 닿는다. 

한가롭게 이어진 봉대산 오솔길.
한가롭게 이어진 봉대산 오솔길.

봉대산 정상에는 넓은 팔각정자가 나들이꾼을 반겨준다. 한강의 도도한 물줄기와 함께 행주산성이 있는 덕양산이 가장 가까이에 보이고, 그 너머 인천 계양산도 머리를 내밀고 있다. 시선을 남쪽으로 돌리면 강서구 궁산, 그리고 멀리 서울 남쪽 끝 관악산까지 시야에 들어온다. 가히 행주누리길 최고의 전망 포인트다. 봉대산(烽臺山)이라는 이름이 이를 증명해준다. 봉수대야말로 사방으로 전망이 트인 곳에 있게 마련이다. 조선시대 이곳에 있었던 해포봉수(醢浦烽燧)는 일산 고봉봉수(高峰烽燧)의 신호를 전달받아 서울 안산 봉수로 전달했다고 한다.

봉대산 정상에서 조망하는 경관. 
봉대산 정상에서 조망하는 경관. 

고양 유일의 옛 돌다리 강매석교

봉대산에서 내려와 제2자유로 고가 아래를 통과해 창릉천을 따라 조금만 걸으면 강매석교   (江梅石橋)를 만난다. 고양시 유일의 옛 돌다리다. 공식적으로는 일제강점기인 1920년에 축조된 것으로 정리됐지만, 여전히 1800년대에 축조됐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향토사학자들도 있다. 

또한 강매석교의 용도에 대한 이견도 여전하다. 공식 설명문에는 ‘이 다리를 이용해 각종 농산물, 땔감 등을 현천동, 수색 모래내를 거쳐 서울에 내다 팔았다’고 적혀 있지만, 창릉천 하중도(河中島)와 이어지는 다리의 위치를 엄밀히 따져보면 한강을 따라 젓갈과 소금을 싣고 온 배들이 짐을 부려놓는 해포(醢浦)나루의 물자 하역을 위해 만든 다리라는 주장이 훨씬 설득력있게 들린다. 

고양의 유일한 옛 돌다리인 강매석교. 
고양의 유일한 옛 돌다리인 강매석교. 

시기와 용도 논란은 잠시 접어두고, 돌다리의 아름다움에 집중해보자. 강매석교가 가치 있는 것은 오래되어서도, 기능적이어서도 아니라 조선시대의 전통 석교 축조 기법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다리이기 때문이다. 가운데가 살짝 올라간 안정된 구조, 세로 기둥과 가로 기둥이 튼튼하게 맞물린 설계가 다리를 만든 이들의 정성과 수고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새롭게 조성된 '창릉천 푸른숲길'. 
새롭게 조성된 '창릉천 푸른숲길'. 

새롭게 단장한 창릉천 푸른숲길 

앞선 연재에서 말했던 것처럼, 고양누리길을 정기적으로 걷는 재미 중 하나는 새로운 변화를 발견하는 즐거움이다. 강매석교부터 창릉천 둔치를 따라 ‘창릉천 푸른숲길’이 새롭게 조성돼 둑방길을 대체하는 새로운 선택지가 됐다. 풀섶 사이 산책로를 걸으며 강바람을 맞는 기분이 상쾌하다. 

징검다리를 밟고 강매배수펌프장 물길을 건너면 코스모스축제가 열리는 창릉천 하구 꽃밭이다. 황폐하게 방치됐던 둔치를 강고산마을 주민들이 뜻을 모아 낭만적인 쉼터로 가꾼 곳이다. 군데군데 버드나무 그늘이 드리운 꽃밭 곳곳에는 예쁜 포토존이 마련돼 있고, 성급하게 피어난 코스모스들이 화사한 가을 축제를 예고하고 있다. 
자유로 하단을 지나 행주내동 먹거리마을을 지나 행주산성 정문인 대첩문에서 행주누리길이 마무리된다. 한나절동안 마주한 산길과 들길, 물길 풍경들이 마음의 사진첩에 저장된다. 
나들이 뒤풀이는 유명한 식당들이 빼곡한 행주내동 먹거리마을에서 해도 좋고, 행주산성버스정류장에서 011번 버스를 타고 능곡전통시장으로 나와 골목식당을 찾아봐도 좋겠다. 

가을을 기다리는 코스모스 꽃밭의 포토존. 
가을을 기다리는 코스모스 꽃밭의 포토존. 

❚행주누리길 걷기 정보 
- 코스 길이 : 11.9km
- 소요 시간 : 3시간 20분~4시간
- 출발점 : 원당역 3번 출구
- 도착점 : 행주산성 대첩문 
- 경관포인트 : 북카페쉼터, 강매고가, 봉대산 정상, 강매석교, 창릉천 코스모스길
- 화장실 : 5곳(원당역, 성라공원, 강매역, 코스모스꽃밭, 행주산성) 
- 뒤풀이 맛집 : 행주내동 먹거리촌, 능곡전통시장 

[지도 제공=고양누리길 홈페이지]
[지도 제공=고양누리길 홈페이지]

 

봉대산 숲길. 
봉대산 숲길. 
하나 둘 익어가는 길가의 포도송이. 
하나 둘 익어가는 길가의 포도송이. 
버드나무 그늘이 시원한 강고산마을 꽃밭. 정면에 보이는 나지막한 산이 덕양산이다. 
버드나무 그늘이 시원한 강고산마을 꽃밭. 정면에 보이는 나지막한 산이 덕양산이다. 
행주누리길의 종착점인 행주산성 대첩문. 
행주누리길의 종착점인 행주산성 대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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